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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이신화의 유럽 인문 여행79]천 개 창문을 가진 박물관 도시, 알바니아 베라트

2021-08-25 12:39

글·사진 : 이신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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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수도 티라나를 기점으로 남쪽에 위치한 베라트는 인구가 수천 명에 불과한 조용한 시골마을이다. 아름다운 오숨 강이 마을을 가르며 소리 없이 흐르고, 야트막한 산 위로는 계단식으로 지어진 창문 많은 집들이 어우러진다. ‘천 개의 창문을 가진 도시’라는 별칭을 가진 베라트는 차분하면서 고풍스럽다. 1961년부터 박물관 도시로 보존되다가 2005년에는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08년에는 망갈렘 지구까지 그 범위가 확대됐다.

폭염에도 에어컨 없는 알바니아 시외버스

알바니아 수도인 티라나에 거점을 두고 베라트(Berat)로 가는 시외버스에 오른다. 티라나에서 2시간 정도 소요된다는 말에 원점회기 여행을 강행한다. 시외버스를 타면 알바니아가 얼마나 가난한 나라인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뜨거운 여름철인데 그 흔한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다. 알바니아 풍치를 잘 보려고 맨 앞자리를 차지한다. 편하게 가고 싶어서 옆에 사람이 못 앉도록 짐을 놓고 통로 쪽에 자리를 잡는다. 그런데 한 여자가 다가와 굳이 내 옆자리에 앉겠단다. 밖의 풍광을 보고 싶어서라고. 정작 그녀는 풍광은 뒤로하고 앉자마자 잠을 잤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눈 것은 베라트에 대한 여행 정보를 물어 보면서다. 30대 초반 미혼인 그녀는 티라나에서 국어 선생이라고 했다. 모처럼 휴식을 내어 고향집으로 가는 길이다. 그녀는 일부러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러한지 온갖 까다로운 척 고고한 척은 다한다. 길고 긴 이야기를 하는 동안 베라트에 이른다. 베라트에 내려 티라나로 가는 막차 버스를 체크하다가 낭패를 당한다. 티라나에서 두 시간 걸린다는 것은 잘못된 정보다. 3시간 30분이나 소요된 데다 막차 버스 시간은 오후 4시다. 도착 시간은 오후 1시경. 베라트를 구경할 시간은 3시간도 채 안 된다. 버스 안에서 만난 그녀가 알려준 정보로는 작은 마을이라서 걸어 다녀도 된다고 했으나 터미널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다. 무작정 택시에 올라 ‘오래된 성’으로 향한다.


베라트 골목 풍경.JPG
베라트 골목 풍경,

베라트에서 가장 높은 곳에 가장 오래된 고성 마을

베라트의 여행 구역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오숨(Osum) 강둑을 기점으로 동쪽에는 고리차(Gorica) 마을이고 서쪽으로는 올드 타운인 망갈렘(Mangalem) 지구다. 망갈렘 언덕 끝에 칼라야(Kalaja)라는 성 마을이다. 두 지역은 1780년 오스만 투르크 지배 때 건설한 다리가 이어준다. 베라트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칼라야에서 여행을 시작하니 짧은 시간에 꼭 맞는 최상의 여행 동선이다. 성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고풍스러움이 가득한 가옥들이 밀집돼 있다. 한 눈에도 깊은 역사가 느껴진다. 베라트는 알바니아의 고도 중 하나다.

베라트 성벽과 마을.JPG
베라트 성벽과 마을.
베라트 민속 박물관.JPG
베라트 민속 박물관.

 

BC 4세기 중엽 일리리아인들이 돌로 요새 형태의 성을 만들고 거주한 게 기원이다. 고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 성채는 그리스, 로마의 비잔틴 제국, 1차 불가리아의 지배를 받다가 1450년 오스만 투르크에게 점령당했다. ‘베라트’라는 지명은 1018년에 처음으로 언급돼 오늘에 이른다. 베라트 사람들은 처음에는 일리리아인으로 불렸다가, 나중에는 아르베(Arbër), 최종적으로 알바니아인으로 불렸다. 주민의 대부분은 이슬람교도이며 나머지는 그리스도교도다. 도시 주거 형태는 발칸 지역의 18세기 말~19세기의 전통적 가옥들이다. 비탈면에 계단식으로 지어진 주거지들은 도시의 생활양식에 맞게 개조했다. 집안으로 햇빛이 잘 들도록 수평으로 배치했다. 베라트의 전통 가옥은 창문이 특징이라서 ‘수천 창문의 도시’로 일컬어진다. 이런 가옥 구조는 베라트 말고도 지로카스테르(Gjirokastër)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소수민들이 살았던 불가리아 멘리크(Melnik), 이탈리아의 카탄자로(Catanzaro)가 있다.

 

고리차 다리.JPG
고리차 다리.
고리차 마을.JPG
고리차 마을.

기원전부터 18세기까지 공존하는 곳

베라트의 요새는 긴 세월 많이 파괴되었지만 BC 4세기 경부터 18세기의 종교, 문화가 함께 공존한다. 대부분 문화기념물로 보존되고 있는 가옥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식당, 숙박업소로도 이용한다. 마을의 가옥 한 채는 ‘베라트 국립 민속 박물관’이 되어 다양한 전시를 한다. 레이스 박물관도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은 비잔틴 스타일의 교회들이다. 20개의 교회와 1개의 모스크가 있다. 13세기~14세기에 지어진, 성 마리 블라헤르나(St. Mary Vllaherna) 교회, 성삼위일체 교회(Byzantine church of the Holy Trinity), 성 미카엘 교회(St. Michael) 등 비잔틴 교회들이 부서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성벽 언덕 위에 있는 14세기의 삼위일체 교회에서는 비잔틴 벽화를 볼 수 있다. 또 성벽 밖, 가파른 언덕에 위치한 성 마이클 교회도 남아 있다. 15세기 초, 오스만 투르크 점령 시절에는 요새도 상당한 변화를 겪는다. 요새를 강화하면서 재정립하면서 새로운 탑들이 세워졌고 성 밑으로는 성 술탄 모스크(1481~1512), 리드 모스크(1555년)가 들어선다.

 

16세기 알바니아에서 가장 위대한 ‘이콘’ 화가, 오누프리

특히 베라트의 큰 매력은 오누프리 박물관(Onufri Museum, 1986년 개관)이다. 10세기 교회 위에 14세기에 세워진 성 메리 교회가 박물관이 되었다. 오누프리는 16세기 알바니아에서 가장 위대한 ‘이콘’ 화가다. 프레스코화와 이콘 기술을 마스터하고 베라트와 베니스에서 1547년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는 그림에 ‘빛나는 빨강(shiny red)’ 색을 처음 도입했는데 프랑스인들은 이 색깔을 ‘오누프리의 빨강(Onufri Red)’이라고 불렀다. ‘오누프리의 스타일’은 그의 아들 니콜라(Nikolla)에 의해 계승되었지만 아버지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다. 오누프리의 박물관에는 오누프리와 그의 아들의 작품, 또 다른 화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비잔틴 시대의 성 삼위일체 교회.JPG
비잔틴 시대의 성 삼위일체 교회.
오누프리 박물관.JPG
오누프리 박물관.

 

 

 
베라트 뿐만 아니라 알바니아 교회와 수도원에서 발견된 1500개의 작품 중에서 173개를 전시한다. 1637년, 쥬세페 드 리베라(Jusepe de Ribera)가 그린 성 오누프리의 초상화가 있다. 16세기에 지어진 성 테오도로(St. Theodore) 벽에도 오누프리의 벽화가 있다. 그 외에도 1951년, 오누프리의 이름을 기록한 최초의 비문이 쉘칸(Shelqan) 교회에서 발견됐다. 카스토리아(Kastoria) 교회에는 오누프리의 기원(1547년 7월 23일)이 새겨져 있다.

 

 

오숨강과 고리차 마을.JPG
오숨강과 고리차 마을.
성채에서 바라본 모습.JPG
성채에서 바라본 모습.

 

성채에서 바라보는 토모르 국립공원과 오숨 강

베라트 성채의 가장 큰 매력은 발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이다. 우뚝 솟은 토모르(tomorr, 2,416m) 국립공원과 오숨 강이 휘도는 모습과 고리차의 가옥들이 한 눈에 담긴다. 이 요새에는 전설이 흐른다. 토모르 산의 거인과 또 다른 지역의 쉬피라그(shpirag)라는 젊은 여자가 싸웠다. 결국 둘 다 죽었다. 이때 여자가 흘린 눈물은 오숨 강이 되었고 고리차 왼쪽 위의 산은 쉬피라그라는 이름이 붙었다. 베라트의 성채에서 망갈렘 역사 지구를 향해 내려온다. 택시로 올라왔던 길고 긴 길을 내려간다. 그러나 긴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반질반질한 가도의 조약돌은 너무나 미끄러워서 걸을 수가 없다. 땡볕에 낙상해 죽을 판이다.


쉬피라그 산 밑의 가옥들.JPG
쉬피라그 산 밑의 가옥들.

어렵사리 성채를 내려와 평평한 올드타운에 이르면 역사박물관과 리드 모스크(Lead Mosque)가 있다. 리드 사원은 1555년 바예지드 2세(Bayezid II, 1481~1512)때 지어진, 베라트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찻길을 걷다보면 망갈렘과 고리차를 있는, 1780년에 세워진 일곱 아치 다리를 만난다. 넓이는 129m이며 총 5.3m인 일명 고리차 다리의 모습이 아름답다. 원래는 목조 다리였는데 1880년, 홍수로 무너진 후 1920년대에 돌로 재건되었다. 1930년대까지 계속 보수하고 변형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역 전설에 따르면 원래 나무 다리 지하 감옥에는 여자가 감금되어 죽었고 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다리라고 한다. 이것으로 베라트의 여행을 끝냈지만 현실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왕이면 하룻밤 유하면서 여유롭게 여행을 즐겨야 했다. 토마르 산이 빚어낸 300여만 년 전 물이 침식해 퇴적한, 기암이 펼쳐지는 오숨 강의 915m의 구부러진 협곡과 빽빽한 숲을 구경했어야 했다. 매력이 넘치는 베라트다.


Travel data

 
가는 길: 티라나에서 시외 버스를 타면 된다. 알바니아는 푸르곤(furgón)을 타야 하니까 꼭 숙소의 안내를 받아라. 최근에는 길이 좋아져서 길이 좋아서 2시간 20분 정도면 도착한다고 한다.

 

현지교통: 시내 교통이 있지만 많지 않으니 고성까지 가려면 망설이지 말고 택시를 이용해라. 고성까지 오르는 길이 너무나 미끄러워서 걷지도 못하니 택시비가 절대 아깝지 않다.

음식정보: 고성 내에도 전통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다. 고성 밑에 있는 망갈렘 지구에도 맛집들이 있다.

 

숙박정보: 고성 내에도 숙박이 가능하다. 미리 숙소 예약을 안 해도 현지민들이 다가온다.고리차 지구에는 호스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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