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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이신화의 유럽 인문 여행55]스위스 베른에서 만난 아인슈타인의 두 얼굴

2021-01-03 10:40

글·사진 : 이신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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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수도, 베른(Bern)은 가을 비에 촉촉하게 젖었다. 수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실제로 아주 작았다. 기차역 주변 말고는 인적도 뜸해 번잡한 구석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베른은 스위스의 첫 진면목을 보여주기에 충분히 아름답다. 가을이 깊어가는 그 베른에서 만난 아인슈타인.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의 사적인 삶은 ‘망치’에 크게 얻어 맞은 듯하다.
베른 전경.JPG
베른 전경

 

스위스 수도 베른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베른은 스위스 최초로 198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된 도시다. 베른은 1191년, 체링겐(Zahringen) 가문의 베르히톨트 공작 5세(Duke Berchtold V)은 자신의 권력 중심지인 니데크 요새(Fort Nydegg)를 도심으로 건설했다. 1218년, 체링겐 가문이 단절되자 자유 도시가 되면서 서쪽의 차이트글로헨투름(Zeitglochenturm)으로 도심이 확장되었다. 베른은 크지 않아 여행객들은 걸어 다니면서 충분하게 도시 구경을 할 수 있다. 구시가지의 슈피탈 거리(Spitalgasse)에서 니데크 다리(Nydegg brucke)까지 뻗은 길 주변에 볼거리가 몰려 있다. 그 골목에는 유럽에서 가장 긴 석조 아케이드(라우벤, Lauben)가 이어진다. 베른 도시가 생성됐던 12세기 후반에 지어지기 시작해 16세기 중반에 완성된 건물들. 저장고 형태의 반 지하 상점이 늘어서 있다. 거리마다 이 형태의 건물이 늘어져 길 찾기가 헷갈린다면 시계탑을 기점으로 삼으면 된다.



시계탑.JPG
시계탑

 

 

시계탑은 랜드마크

시계탑은 베른이 건설될 때, 도시의 서문(西門)으로 세워졌다. 당시 베른의 영역은 동서로 900m, 남북으로 450m 정도에 불과했지만 도시가 점차 발전하면서 경계선이 점점 서쪽으로 확장됐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망루, 치트글로게(Zytglogge) 감옥 탑이 축조됐다. 15세기 초반, 화재를 겪은 후에 치트글로게에 시계가 부착된다. 그러다 1530년에 거대한 천문시계가 탑에 달려 오늘에 이른다. 이 시계는 태양, 달의 궤도, 별자리까지 알려주는 첨단 발명품이었다. 으레 그렇듯 시계탑은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 뿐 아니라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매시 정각 4분 전부터 곰들과 광대들이 나와 춤을 추는 시간. 그때 즈음 관광객들은 고개를 외로 꼬고 있다. 그 시계탑 아래로는 버스들이 오간다.

 

베른 시가지의 분수대.JPG
베른 시가지의 분수대

 

 

또 하나, 도심 골목 속에서 시선을 잡아 끄는 것이 있다. 다양한 테마로 만들어진 인형과 석조물이 아우러진 작은 분수다. 음용이 가능하다. 거기에 가는 곳마다 만나는 곰 형상이다. 베른은 곰의 도시. 베른이라는 이름 자체가 도시를 세운 체링겐 가문이 곰 사냥을 해서 시작됐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아레(Aare) 강을 잇는 니데크 다리 건너편에 곰 공원도 있다. 웬지 어설프기만 한 곰 공원이지만, 시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미공원(로젠가르텐, Rosengarten) 가는 길목이라서 으레 보게 된다.

 

그 외 스위스 최대의 고딕양식의 건물(높이 100m)인 대 성당(Bern Munster)과 국회의사당도 포인트다. 15세기에 만들어진 대성당은 정문의 ‘최후의 심판’과 오르간, 스테인드글라스 등이 볼거리다. 약 100m 높이의 탑에 오르면 시내를 잘 조망할 수 있다. 또 연방의회 의사당 건물은 피렌체 르네상스 양식의 중후한 돔이다. 베른이 연방수도로 채택되던 해인 1848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1902년 완공되었다. 내부 견학이 가능한 가이드 투어가 있다. 의사당 앞의 광장은 아름다운 분수와 야경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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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하우스

 

 

베른에서 만난 아인슈타인의 집

또 관심을 끄는 인물은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년~1955년)이다. 삼척동자도 다 알만한 세계적인 유명 물리학자인 그는 베른과 인연이 있다. 베른에는 아인슈타인이 결혼해 2년간 살았던 ‘아인슈타인 하우스(Einsteinhaus, 구시가지 크람 거리(Kramgasse)의 49번지의 아케이드 건물 2층, 베른 성당과 시계탑 사이)’가 있다. 아인슈타인 하우스는 1902~1905년까지 머물던 집으로 2005년 개관한 박물관이다. 그의 신혼 생활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또 국립역사 박물관 2층의 넓은 전시실에는 아인슈타인에 관한 것들이 속속 전시되어 있다. 아인슈타인 하우스보다 더 자세하게 아인슈타인의 사생활이 소개되어 있다. 스위스에도 역사적으로 빛낸 유명 인물들이 많을텐데 왜 베른에 거대한 아인슈타인 박물관을 만들었을까? 아인슈타인과 베른은 어떤 연계가 있을까? 그저 천재로만, 상대성 이론을 정립했다는, 단편적인 사실만 알고 있던 특히 필자의 호기심을 유발시킨 코너는 여자였다. 그의 첫사랑은 물론이고 그가 사랑했던 마지막 사랑까지 소개되어 있었다. 오직 연구만 했을 것이라는 ‘샌님’의 고정관념이 확 깨지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아이슈타인에게는 몇 여자가 있었던 것일까?

 

아인슈타인 첫번째부인.JPG
아인슈타인 첫번째 부인

 

 

천재와 바람기의 상관관계는?

 

 
독일의 유태인계로 태어난 아인슈타인의 첫사랑은 1895년, 스위스 아르고비아의 주립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다 그는 이 학교의 요스트 빈텔러 선생 집에서 하숙을 하면서 이 집 딸 마리 빈텔러를 사랑하게 됐다. 아인슈타인은 당시 많은 편지를 썼으나 1896년 현재 스위스 연방 공대로 불리우는 취리히 공대에 입학하게 되고 마리 빈텔러는 교사직을 위해 작은 산골 도시 올스베르크로 가게 되자 둘의 관계는 식기 시작했다.

 

 

1901년, 취리히 공과대학 물리학과를 마치고 교사가 되고자 하였지만 자리를 얻지 못했고 결국 베른 특허국에 취업하고 이곳으로 온다.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자 이듬해(1903년) 취리히 공과대학 동창이었던 밀레바 마리치((Mileva Marić, 1875년~1948년)와 결혼한다. 세르비아계였던 밀레바는 선천적인 장애로 한쪽 다리를 절었고 4살 연상녀였다. 밀레바는 이미 결혼 전인 1902년에 딸 리제를(Lieserl)을 낳았고, 아이슈타인 하우스에서 1904년에 첫째 아들인 한스 알베르트(Hans Albert)를 낳았다. 둘째 아들인 에두아르트(Eduard)는 1910년에 낳았다. 밀레바는 매우 똑똑했고 아이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논문 작성을 함께 거든 여인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그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밀레바를 부담스러워 했다. 급기야 자신의 사촌인 엘사와 재혼하기 위해 그는 밀레바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아인슈타인 젊은 시절.JPG
아인슈타인 젊은 시절

 

 

 

 
결국 아인슈타인과 밀레바는 16년 만에 이혼한다. 이혼 위자료는 아직 타지도 않은 노벨상의 상금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이혼 후, 달랑 넉달 만에 내연의 관계였던 사촌 엘자 뢰벤탈과 결혼식을 올렸다. 그의 바람기는 재혼 후에도 잠들지 않아 평생 비서와 유부녀, 소련의 여성 스파이 등 여러 명의 연인을 두었다.

 

 

더불어 그는 아이들도 살갑게 돌보지 않았다. 밀레바와 혼전에 얻었던 딸은 출생 이후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으며, 이혼 후에는 두 아들과 거의 연락하지 않았다. 둘째아들 에두아르트는 아버지가 가족을 버렸던 일을 평생 용서하지 않아 두서없는 원망의 편지들을 보내곤 했고, 결국에는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아이슈타인은 1932년 히틀러 집권 3주 전에 아슬아슬하게 미국으로 이주했지만 미국에서도 생활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한편 아이슈타인에게 버림받은 밀레바의 생활은 어땠을까? 이혼 이후 굉장한 생활고에 시달려야 하는 비참한 생활이었다. 아이슈타인이 미국에서 세계적 명성을 높여가는 동안 그녀는 초라한 동네의 피아노 강사와 수학 교사 일을 하며 어렵게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녀가 낳은 두 번째 아들은 극심한 정신질환을 앓았고, 밀레바 역시 정신적 스트레스로 말년에는 반신불수가 되어 침대 생활을 한다. 결국 아이슈타인과 더불어 ‘상대성 이론’을 완성시켰던 밀레바는 73세, 초라한 노파의 모습으로 외롭게 숨을 거둔다. 유명인들의 ‘가십(gossip)꺼리는 호기심을 자아내지만 아인슈타인의 여성 편력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Travel data

가는 길

한국에서는 취리히 공항을 경유하는 게 일반적이다. 취리히 공항에서 베른까지는 1시간 단위로 열차가 오간다. 파리, 프랑크푸르트 등 유럽 각지에서 열차가 수시로 연결된다.

 

현지교통

트롤리 버스(무궤도 전차)와 트램이 느리게 오간다. 숙소에서 프리 대중카드를 주는 경우도 있으나 그냥 걸어 다니면 된다.

 

먹거리

 

 
아케이드 대부분은 상점과 레스토랑으로 이용된다. 퐁듀(Fondu) 등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주로 베른지방에서 먹는 음식으로는 베르너 플라테(Berner platte)가 있다. 돼지 고기 소시지, 베이컨, 다양한 햄 종류, 훈제 돼지고기, 도가니와 소 혀 등 차고 따뜻한 고기 종류를 콩, 양배추절임, 삶은 감자, 완두 콩을 겨자와 함께 먹는 음식을 지칭한다. 1798년 3월 5일 만들어진 요리다. 노이에네그(Neuenegg)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친 베른 인들이 축배를 들기 위해 만들어낸 것으로, 집집마다 갖고 있던 재료를 모두 가지고 나와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코른하우스켈러(Kornhauskeller) 같은 베른의 미식 레스토랑에서 맛볼 수 있다 또 초컬릿은 유명해서 선물용으로 구입해도 좋다. 스위스 초컬릿은 스위스의 체계적인 초컬릿 생산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진 특산품이다.

 

 

숙소정보

시계탑이 있는 구시가지 주변에 숙소를 정하면 편리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인터넷

 

스위스 카드 구입하기

스위스 패스는 아주 유용하다. 스위스 패스를 이용하면 열차는 물론 포스트버스 등 대중교통 대부분을 이용할 수 있으며 케이블카 할인, 박물관 무료 등 혜택이 많다. 머무는 시간이 길지 않다면 날짜에 맞는 카드를 구입하면 된다. 한국에서 준비해야 할 것은 융프라우 정상에서 라면을 획득할 수 있는 티켓이다. 현지에서 표를 구입할 때는 꼭 라면 티켓을 달라고 말해야 한다.

 

화폐단위

유로 대신 스위스 프랑을 쓴다. 숙박 사이트를 이용하면 된다.

 

스위스 관광청

https://www.myswitzerland.com/ko/destinations/jungfraujo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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