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였던 오나시스와 재클린이 데이트를 즐기던 곳이기도 하다. 오래된 명화 페드라(Phaedra, 1962년 作)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했던 곳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수니온 곶의 부서진 포세이돈 신전으로 넘어가는 핏빛 낙조는 캘린더 사진을 만들어낸다." /> 사업가였던 오나시스와 재클린이 데이트를 즐기던 곳이기도 하다. 오래된 명화 페드라(Phaedra, 1962년 作)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했던 곳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수니온 곶의 부서진 포세이돈 신전으로 넘어가는 핏빛 낙조는 캘린더 사진을 만들어낸다."> 바이런, 오나시스, 재클린도 반한 아테네 땅끝, 수니온 곶의 핏빛 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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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이신화의 유럽 인문 여행53]바이런, 오나시스, 재클린도 반한 아테네 땅끝, 수니온 곶의 핏빛 낙조

2020-12-16 10:44

글·사진 : 이신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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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동쪽 끝에 수니온(Sunion) 곶이 있다. 1810년 봄, 영국의 낭만 시인 바이런은 “수니온의 대리석 절벽 위에 나를 올려놓아다오”라고 노래했다. 또
사업가였던 오나시스와 재클린이 데이트를 즐기던 곳이기도 하다. 오래된 명화 페드라(Phaedra, 1962년 作)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했던 곳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수니온 곶의 부서진 포세이돈 신전으로 넘어가는 핏빛 낙조는 캘린더 사진을 만들어낸다.
수니온곶.JPG
수니온 곶

 

 

영화 <페드라>의 마지막 촬영지 수니온 곶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시내 버스를 타고 수니온곶까지 가는 길은 멀다. 구불구불한 해안 길을 따라 근 2시간 정도는 가야한다. 마치 완행버스를 타듯, 버스는 정류장마다 멈춘다. 영화 <페드라(Phaedra)>를 떠올린다. 오래된 그 영화의 끝 장면은 인상적이다. 당시 20대의 안소니 퍼긴스가 해안도로를 타고 질주하면서 '페드라!'라고 절규하면서 세바스찬 바흐의 명곡 '토카타와 푸가'를 불러댄다. 질주하는 차 안에서 청년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 라라...페드라! 페드라!”하고 의붓어머니의 이름을 외치며 절규하면서 차가 바다로 전복되면서 죽어간다.

 

이 영화는 미국인 줄스 다신(Jules Dassin, 1911~2008) 감독의 작품이다. 줄스 다신의 두 번째 부인은 페드라에서 새어머니 역할을 맡았던 멜리나 메르쿠리(Melina Mercouri,1920~1994)다. 그녀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농염한 여배우만은 아니다. 그리스 명문가 출신의 배우였고 가수였다. 그리스 독립투쟁을 했으며 말년에는 국회의원과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성공한 정치인이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허스키하고 끈적거리는 굵은 목소리로 부주키(bouzouki, 그리스 전통악기)와 기타 선율에 맞춰 ‘페드라 사랑의 테마’를 노래한다. 구슬프고 애절한 느낌의 그 노래는 긴 여운을 남긴다. 


또 기억해야 할 인물이 있다. 줄스 다신의 아들인 조 다생(Joe Dassin, 1938~1980)이다. 그는 미국인이지만 샹송을 멋지게 불렀다. 우리나라 가수가 번안해 부른 ‘샹제리제’가 그의 노래다. 그것말고도 만약에 그대가 없다면(Et si tu n'existais pas)이나 인디안 여름(L'ete Indien)같은 불후의 명곡을 남겼다. 달달한 그의 목소리는 특히 여성들의 심금을 울린다. 샹숑의 대명사로 통하는 ‘아다모’와 버금간다. 그는 새엄마인 메르쿠리와 듀엣곡(_Ochi Den Prepi Na Sinandithoume)을 부르기도 했다. 수니곶까지 가는, 지루함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소재들이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면 여름의 더위도, 지루함도 사라지게 할 것이다.

 

포세이돈 신전.JPG
포세이돈 신전

 

 

바다의 신, 포세이돈 신전과 신화들

버스 종점에 이를 즈음, 야트막한 바다 끝, 언덕에 대리석 기둥이 보인다. 흙먼지가 이는 허허벌판에 부서진 포세이돈(Poseidon) 신전의 열주가 우뚝 서 있다. 주변에는 성루와 부서진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포세이돈 신전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규모는 작다. 그래도 이곳의 좋은 점은 사방팔방 트인 바다일 것이다. 지금은 부서진 신전이지만 오래전에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원래는 BC 700년경에 포세이돈 신전과 아테나 신전을 함께 지었다. 서로 400m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도리아식으로 세워진 신전은 기원 뿐 아니라 방어기지와 등대 역할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신전은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격돌한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과 이후 마케도니아와의 전쟁을 겪으면서 참화를 피하지 못했다. 이후 440년, 탁월한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아테네의 융성기를 이끌면서 비로소 4년간에 걸쳐 재건된다. 그러나 BC 480년, 3차 페르시아 전쟁 때 페르시아 군에게 지면서 철저하게 파괴된다. 포세이돈 신전 안에 있었을 포세이돈 청동 상과 귀중한 봉헌물들이 모두 약탈당했다.

이 신전에는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Aigeus)와 그의 아들인 그리스 신화 속 영웅 테세우스(Theseus)의 비극적 신화가 전해온다. 아이게우스의 이름이 변형돼 ‘에게해’가 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이 신전은 긴 세월 부서진 채로 남아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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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해

 

 

세기의 갑부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

 

 
세기의 결혼으로 화제를 뿌린 오나시스와 재클린 여사도 데이트 시절, 수니온 어딘가에 와서 에게해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세기의 갑부, 돈 많은 남자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그리스 선박왕 아리스토틀 오나시스(Aristotle Sokrates Onasis, 1906~1975)다. 자료를 통해 알아본 그는 당시 그리스였던 스미르나(현 이즈미르)의 부유한 담배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2년, 투르크가 이즈미르를 점령하면서 모든 재산을 몰수, 파산 당하고 그리스로 탈출한다. 오나시스 가문은 더 나은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오나시스를 남미로 보냈고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야간 전화 교환수가 된 오나시스는 집안 친구의 도움을 받아 낮에는 담배 수입업을 시작했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오리엔트종 수입 잎담배의 사용을 10%에서 35%로 증가시켰다. 오나시스는 2년 만에 잎담배 판매에서 얻은 5%의 수수료로 10만 달러의 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유조선 사업을 해 떼돈을 벌었다. 1946년, 선박왕 스타브로스 리바노스의 딸 아시나 리바노스와 첫번째 결혼해 두 자녀를 보았으나, 1960년에 이혼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오페라 프리마돈나 마리아 칼라스와 오랫동안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1968년,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미망인 재클린 부비에 케네디와 재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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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니온 곶에서 스케치하는 사람들

 

 

오나시스와 두 여자의 스캔들

오나시스는 역사적으로 기록된, 애정의 삼각관계가 있다. 오나시스를 놓고 마리아 칼라스, 그리고 재클린 케네디 두 여자다.

 

세기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1923~1977)는 오나시스를 만나면서 인생의 전기를 맞게 된다. 오나시스는 계획적으로 마리아 칼라스를 유혹했고 그녀가 오나시스의 크루즈선인 크리스티나 호를 타면서 사랑은 시작되었다. 유부녀였던 칼라스는 남편과 이혼하고 오나시스를 선택한다. 하지만 그 사랑은 길지 않았고 결국 오나시스는 재클린 케네디와의 결혼한다. 사랑의 배신으로 황폐해진 칼라스의 말년의 인생을 다룬 칼라스 포에버(Callas Forever, 2002)라는 영화가 있다.

 

한편 오나시스가 재혼한 재클린(1929~1994)에게도 ‘의도적인 작업’을 걸었다. 케네디 동생 로버트 케네디까지 암살 당하자 재클린 케네디는 자신과 아이들도 누군가에게 암살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 사이 오나시스는 재클린 캐네디 집에 완벽한 보안 시설을 설치해 줬고 재클린은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오나시스 재력에 기대기 시작했다.

 

에게해 낙조.JPG
에게해의 낙조

 

 

 

 
재클린 케네디를 도와준 것은 정치인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결혼 후, 모든 공식석상에 반드시 재클린을 대동했다. 반면 재클린은 그런 자리의 참석에 숨막혀 했다. 거기에 재클린은 영부인 시절에 비해 10배 이상 돈을 쓰며 사치를 일삼았다. 결국 오나시스는 그 전부터 사귀고 있던 마리아 칼라스를 찾아다니면서 ‘양다리’를 걸쳤다. 재클린 케네디 역시 지오반니 아그넬리, 영화배우 윌리엄 홀든과 염문을 뿌리며 매스컴에 오르내렸다. 결혼 5년 만인 1973년 두 사람은 파국을 맞았다. 재클린에게 유산을 상속하지 않기 위해 유언장을 쓴 오나시스는 1975년 3월 15일 71세 나이로 사망했다. 오나시스 유서 때문에 재클린은 1,000만 달러 밖에 위자료를 받지 못하게 되자 소송을 제기했고 이후 2,000만 달러(243억 원)를 상속 받았다.

 

 

사람이야기를 단지 몇 글자로 정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날, 인적 없는 바닷가 쪽으로 가서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앉아 있으면서 영화 페드라도 떠올리고 오나시스, 마리아칼라스, 재클린의 인생, 그리고 에게해 저 어딘가에 떠 있을 호화유람선을 그려보면서 그들의 삶을 생각했다. 그날 바라본 낙조는 ‘처절한 아름다움’이었다.

 

Travel data

가는 방법

아테네 1호선인 빅토리아 역에서 출발한다. 그 버스는 시내에서 여러번 선다. 신타그마 역에서 하차. 국회의사당 반대편 광장으로 나오면 맥도날드가 보인다. 햄버거집으로 가지 말고 우측 알파 뱅크 쪽으로 가면 작은 버스 정류장이다. 버스 터미널이 아니고 작은 팻말만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버스 시간표

하절기:06:30~18:30분까지 1시간 간격/수니온 곶에서 아테네:08시~21시까지 1시간 간격. 요금은 탑승 후 차장이 직접 표를 판매할 때 내면 된다.

 

기타 정보

식당이 딱 한군데 있다. 음식, 음료, 주류 등을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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