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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긴스카야 강변도로와 프스코프 강 여행

2020-11-28 10:27

글·사진 : 이신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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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스코프 시내 건너편의 올긴스카야 강변 도로에도 유서 깊은 명소들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12세기의 고대 수도원인 스파소-미로쉬스키가 있다. 또 앙증맞은 올긴스키 예배당이 크렘린과 마주하고 서 있다. 벨리카야 강물에 유영하는 크렘린의 아름다움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뷰 포인트’다. 또 프스코프 강줄기에도 눈 시리게 아름다운 공원과 오래된 교회들이 있다. 모두 빼놓을 수 없는 프스코프의 명소들이다. 러시아를 떠나는 마지막 도시 프스코프. 그래서였을까? 크렘린의 블라셰프스카야 탑쪽에서 바라본 낙조는 유난히 붉었다.
클레멘트 교황의 수도원.JPG
클레멘트 교황의 수도원

 

 

클레멘트 교황의 수도원

프스코프에 머무는 마지막 날. 조금은 익숙해진 도시는 금세 무료해진다. 거기에 다른 나라로 떠날 사람은 더욱더 그러하다. 그래도 못 본 여행지는 찾아봐야 하는 것이 여행작가의 숙명이다. 숙소 앞의 올긴스카야 강변도로(Olginskaya Embankment)를 따라 여행을 한다. 

 

올긴스카야 강변도로는 올긴스키 다리를 기점으로 길이 분리되어 있어 따로 찾아야 한다. 일단 숙소를 기점으로 우측 방면으로 여행을 떠난다. 강변에는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부부가 보인다. 본능적으로 그네들을 바라본다. 보호자가 나무 조각을 강 위로 던지면 물고 나오는 개. 보호자가 좋아하니 자꾸만 집착하는 놀이를 한참 쳐다보다가 푸른 지붕 돔을 가진 클레멘트 교황의 수도원(Temple of Clement of the Pope)을 향해 걸어 간다. 언제 누구에 의해 설립 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클레멘트 수도원의 연대기의 첫 기록은 1354년이다. 로마의 4대 교황인 클레멘트 1세(88년~99년)에게 헌정되었다는 기록이다. 1615년에는 스웨덴의 침입으로 파괴되었다가 18세기에 복원했고 이후 다시 폐지되기를 여러 번. 20세기에 복원했다지만 현재의 복원 상태가 좋지 않다. 강변 옆이라서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웬지 폐쇄된 듯,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작은 수도원이다.

 

 

스파소-미로쉬스키 수도원 앞 모래사장.JPG
스파소-미로쉬스키 수도원 앞 모래사장

 

 

연륜이 깊어서 낡은, 스파소-미로쉬스키 수도원

클레멘트 교황의 수도원을 지나면 스파소-미로쉬스키 수도원(Spaso-Preobrazhensky Mirozhsky Monastery, Spaso-Preobrazhenskiy Mirozhskiy Muzhskoy Monastyr)이다. 수도원 앞의 강변은 모래사장이다. 여름철이라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보여 모래사장 쪽으로 다가선다. 물놀이에 전혀 관심 없는 여행객은 피서객들을 그저 먼 발치에서만 볼 뿐. 문득 산딸기가 보인다. 러시아 산딸기는 한국의 산딸기 보다 더 시다.

 

이어 건물 외벽을 한 바퀴 빙 돌아 수도원 입구에 도달한다. 입구에서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온 두 명의 여성 관광객을 만난다. 방학을 맞아서 왔다는 선생들이다. 멀리서 일부러 찾으러 올 정도로 유명한 수도원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그리스도의 변형성당(12세기~20세기 초), 수도원장의 집(16~19세기), 성 스테판 교회(17세기), 숙소와 식당(Dorter, Fraters House, 18~19세기 말), 게스트하우스(17~19세기), 목욕탕(19세기 초), 외벽(1799~1805) 등 유서 깊은 건축물들이 있다. 그러나 수도원 내부의 건물들은 깊은 연륜 만큼이나 많이도 낡았다. 또한 정작 12세기의 프레스코 화가 남았다는 그리스도의 변형 성당은 출입 금지상태여서 외관과 색깔만 흐릿하게 남은 파샤드의 벽화를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대신 성전의 기념품 숍은 열려 있어 초를 사서 불을 밝히고 전통 빵을 구입한다. 툴라 빵보다는 맛이 떨어지는 프스코프 빵을 먹으면서 이 수도원에서 한참을 머문다. 조용한 산사에나 온 듯, 마음이 차분이 가라앉는다.

 

스파소-미로쉬스키 수도원의 변형성당.JPG
스파소-미로쉬스키 수도원의 변형성당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12세기의 수도원

자료에 의하면 스파소-미로쉬스키 수도원은 프스코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 중 하나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유서 깊은 곳이다. 현재 프스코프에 남은 몽골 이전의 건물 12개 중 한 곳이다. 수도원 설립 날짜는 정확치 않으나 1130년 경으로 추정한다. 노브고로드 대주교(1130년~1156년)인 니폰트(Nifont, ?~1156년)가 망명해 만든 변형 성당이 남아 있다. 니폰트의 취향에 따라 석회암 암석 위에 그리스 스타일로 건축된 변형성당. 내부의 프레스코 화는 1156년 연대기에 처음 언급된다. 콘스탄티노플의 예술가들에 의해 그려진 비잔틴 시대의 벽화는 붉은 진사, 유약, 공작석 등, 비싼 수입 페인트가 회화용으로 사용되었다. 이 프레스코 화는 벨리카야 강의 홍수 피해에서도 80% 이상이 보존되었다. 1887년, 러시아의 유명 건축가이자 복원자인 블라디미르 수슬로프(Vladimir Suslov, 1857~1921)가 성당과 벽화를 지속적으로 연구해 재건했다. 가끔은 예수가 벽에 나타난다는 전설이 흐른다. 이 성당은 현존하는 프스코프 교회의 건축 스타일의 모티브다.

 

프스코프에서 가장 풍요로운 수도원이자 중요한 문화 중심지

수도원은 프스코프 남쪽 끝의 벨리카야 강과 작은 미로즈카(Mirozhka)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미로즈카 강은 수도원 이름과 무관치 않다. 이 수도원이 세워진 고대에는 당시 프스코프의 크렘린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이었다. 이 지역에는 이교도와 기독교가 함께 존재했다. 니폰트 주교는 러시아 영토의 이교도들에게 활발한 복음주의 운동을 펼쳤다. 수도원에서는 새 선교사들을 교육시켰다. 선교사들은 금욕적인 생활등으로 모범을 보이면서 전파 활동을 열심히 했다. 당시 이 수도원은 프스코프에서 가장 풍요로운 수도원이자 중요한 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반면 변방에 위치한 이 수도원은 프스코프를 공격하는 적군들의 거점지가 되었다. 1299년 겨울, 리보니아 군대는 수도원을 공격했다. 프스코프 연대기의 작가인 이오시프(Iosif) 수도원장을 죽였다. 1323년에도 리보니아 인들에게 다시 공격을 받았다. 1581년에는 폴란드의 스테판 바토리(Stephen Bathory) 왕이 수도원을 점령해 프스코프를 포위 공격했다. 1615년에는 스웨덴 군대가 이 수도원을 점령했다. 이 수도원은 긴세월 프스코프의 역사를 공존하고 있다. 1922년, 볼셰비키에 의해 문을 닫았다가 1994년에 러시아 정교회로 돌아왔다. 유서 깊은 이 수도원에는 이콘 화가 학교(iconographic school)가 있다. 교회 주변에는 미로스키 수목원 공원(Arboretum Mirozhsky Park)이 있고 벨리카야 강을 잇는 50다리가 지척이다. 수도원 강 너머로는 포크롭스카야 탑과 성령 버진의 중보기도와 탄생 교회를 마주한다.

 

올긴스카야 예배당과 가정성당.JPG
올긴스카야 예배당과 가정성당

 

 

옛 발트해 페리 선착장 앞의 가정 성전과 예배당

오던 길을 거슬러 올긴스키 다리 쪽으로 걸어오면 가정 성전(Temple of Assumption(Sweating))을 만난다. 가정성전은 예전 발트로 가는 페리 선착장(Riga Avenue, Rizhskiy Avenue)이 있던 자리다. 가정성전은 1444년, 첫 번째 연대기에 언급된다. “단기 6952년, 브로디(Brody)의 주현절(Epiphany) 교회, 성모 마리아(Holy Mother of God) 교회를 세워 10월 26일에 봉헌했다”는 기록이다. 교회 지붕 위에는 세 개의 주석 십자가가 있고 큰 성당 지붕 위에는 주석으로 덮은 나무 십자가가 있다. 이 십자가에는 비둘기가 앉아 있다. 이 비둘기가 성전을 지키는 동안에는 성령의 은혜는 프스코프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전설이 흐른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종탑이다. 성전 근처에 따로 만들어진 종탑은 일자의 5개의 종 기둥을 갖고 있다. 그냥 간과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종탑이다.

가정성전에서 강변 쪽으로 가면 작은 올긴스카야 예배당(Olginskaya Chapel)이 있다. 올가 공주가 새겨진 이 예배당을 찾는 이유는 벨리카야 강과 함께 어우러지는 반대편 크렘린 전망을 바라보기 위함이다. 크렘린 성벽 위로 트리니티 성당과 종탑이 삐죽 올라와 있고 남쪽의 블라셰프스카야 탑 사이의 성벽에는 2015년에 만들어진 “러시아는 여기서 시작됐다(Россия началась здесь, Russia started here)”라는 기념비가 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냥 아름답다.

 

 

프스코프 강변과 나무들.JPG
프스코프 강변에 있는 나무들

 

 

프스코프 강변 여행

프스코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행 코스가 프스코프 강 지류다. 프스코프 강은 크렘린 성벽을 휘돌아서 벨리카야 강으로 합류된다. 보편적으로 시내 쪽의 우측 강변 길을 따라 산책하게 된다. 강 폭은 넓지 않고 깊지 않아서 천변처럼 보인다. 광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흥겹게 춤을 추면서 놀고 있다. 강 너머로는 나무와 아름다운 핀스키 공원(Finskiy Park)이 어우러져 그 풍치가 빼어나다. 이 산책로에서 눈길을 끄는 피터 앤 폴 교회(Peter and Paul with Buya Church)가 언덕 위에 있다. 여느 교회보다 규모도 크게 느껴지는 이 교회는 1573년에 건축된 유서 깊은 건축물이다. 프스코프에 보존된 14~16세기의 기념비 중 하나다. 이 교회는 리보니아 군의 침략으로 파괴되었고 17세기 초반까지 황폐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소련 시대인 1920~30년대에는 폐쇄되어 창고로 사용되었다. 그러다 프스코프(1941-1944)의 도시 복원 기간에 정비되었다. 특히 종탑이 유명한 곳. 그러나 굳이 언덕 위로 오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장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가히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프스코프 강과 핀스키 공원의 잔디밭, 거기에 연두색 지붕 돔을 가진 주현절 교회(Church of the Epiphany With Zapskovye)가 함께 어우러진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다. 한 여름이면 강에서는 물놀이를 즐기고 공원 잔디에서 선탠을 하는 사람들. 그런 곳을 눈 앞에 두고 언덕까지 올라가서 교회 보는 일로 소모하고 싶지 않다. 자리를 잡고 필자도 강물에 발을 담근다. 닥터 피쉬가 달려 들어 발을 물어 뜯는다.

 

주현절교회 (2).JPG
주현절 교회

 

 

약수터와 주현절 교회

슬슬 일어나 더 앞쪽으로 걸어가서 강을 잇는 다리(Bridge across Pskov, Most Cherez Pskovu)를 건너 자프스코프예(Zapskovye)의 주현절 교회로 향한다. 얕은 강다리 밑에서는 아이들의 물놀이가 여념 없다. 강 다리를 건너서 교회로 다가서는, 언덕 밑에 작은 약수터가 있다. 물줄기가 없는 작은 언덕에서 흘러나오는 약수가 신기하다. 먼저 물을 받는 사람은 친절하게 필자의 물통을 가져가 담아준다. 드디어 만난 주현절 교회는 가까이에서 보니 많이 낡았다. 그러나 이 교회 역시 예사롭지 않은 건축형태다. 특히 종루가 눈길을 끄는 것은 당연하다. 학생들이 이 교회를 그리고 있다. 그네들도 숙소에서 만난 여대생처럼 야외 수업을 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자프스코프예(Zapskovye)의 주현절 교회는 1398년, 프스코프 연대기에 기록된다. 고대 프스코프에서 가장 큰 정교회 중 하나로 손꼽히는 교회다. 도시가 발달하면서 1495년에 재건축되어 점차 확대되면서 도시에서 가장 큰 교회 중 하나가 되었다. 이 교회는 고대 프스코프 건축학교(Pskov School of Architecture) 스타일을 따르고 있다. 비잔틴과 노브고로드 전통에서 영감을 얻은 프스코프 건축 학교는 15세기와 16세기에 최고 절정에 달했다. 러시아 건축 학교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다. 당시의 건축물들은 모두 국가 중요 건축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주현절 교회의 돔 지붕색은 녹색으로 보기 드문 케이스다. 교회 내부로 들어서면 고대 프레스코를 볼 수 있다. 중세 프스코프의 뛰어난 건축 기념물이다.

참고로 프스코프 강 줄기 따라 더 올라 가면 래트링 탑(Rattling Tower, Gremyachaya tower)이나 핀란드 쿠오피오 도시 이름을 딴 공원 등이 있다. 산책을 할 수 있고 자전거를 탈 수 있으며 뗏목과 보트를 대여 할 수도 있다.

 

낙조 (2).JPG
프스코프 강변에서 바라본 낙조

 

 

아름다운 낙조, 맛있는 만찬

주현절 교회를 끝으로 프스코프 여행을 끝낸다. 행여나 강변에서 낙조를 볼 수 있을까? 크렘린 남쪽의 블라셰프스카야 탑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 나와 올킨스키 다리 위에 선다. 유럽에서 낙조를 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러시아에서도 마찬가지. 그런데 프스코프 벨리카야 강변에서는 아주 멋진 낙조를 보여준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에라스무스 다리에서 봤던 그 감흥이 밀려온다. 떠남을 아쉬워 하는 작별 인사가 아니었을까?

 

낙조를 보고 전날 아주 만족스러웠던 모조 가스트로 바(mojo gastro bar)를 다시 찾는다. 러시아 마지막 밤 만찬은 역시나 맛이 좋다. 러시아 맥주만 빼면(러시아 맥주는 맛이 떨어진다) 다 좋은 밤이다. 일찍 저녁을 먹고 일찍 숙소에 돌아 왔으나 조용하다. 어제 숙소에는 새로운 게스트가 들어왔었다. 겨울이면 영하 40도나 되는 북부쪽 도시에 산다는 중년 여성이다. 그녀는 커스텀 컴퍼니에서 일한다 했는데 뜻이 통할 만큼의 영어를 한다. 일본도 왔었다고 했다. 그녀는 아침에 나랑 같이 여행을 하자고 제안했었다. 그러나 여행 마지막 날을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싶지 않았고 늦잠을 잔 상황이라서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녀의 귀가는 아주 늦었다. 웬지 말을 하고 싶었던 그밤.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계속)

 

Data

클레멘트 교황의 수도원:Olginskaya 강둑 16, 프스코프

 

스파소-프레오브라젠스키 수도원주소:2 Mirozhskaya Embankment, 프스코프/

전화:+7 8112 57-64-06, +7 8112 57-64-03/

웹사이트:http://mirozhsky-monastery.ru/https://russia.rin.ru/guides_e/7449.html

 

가정 성전 주소:Rizhskiy Avenue, 프스코프(Zavelichye 마을)

 

페트라 1세 파벨라 바이에아 교회 주소:Karla Marksa, 2, 프스코프

 

자프스코예(Zapskovye)와 함께 주현절 교회 주소:Gertsena, 7, 프스코프

 

기타 프스코프의 볼거리들

필자가 현지에서 놓친 여행지들이 있다. 블라드미르 레닌 아파트 박물관(V. Lenin's Apartment Museum)이다. 레닌 동상 뒤쪽에 블라드미르 레닌 아파트 박물관이 있다. 여느 도시와 달리 프스코프에 박물관이 있는 것은 레닌이 3개월 동안 이곳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1900년 1월, 서른 살이 된 레닌(1870년~1924년)은 크라스노야르스크의 5년 유배 생활을 마치고 석방된다. 레닌은 수도나 대학 도시 또는 주요 도시에서 살 권리가 없었다. 곧 모스크바 남쪽에 있는 포돌스크로 갔다가 망명 전에 프스코프에 정착하기로 결정한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국경에 인접한 프스코프는 유럽 사회 민주당원들과의 연계를 용이하게 하는 도시였다. 그는 약사 루리(Luria)의 15평의 아파트에 정착해 83일 동안 이곳에 살았고 이후 여권을 받아 해외로 나가 몇 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그가 살던 아파트는 1970년, 사후 100주년 기념으로 박물관으로 개장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집은 파괴되었기에 새로 복원했다. 그의 방에는 책상, 침대, 선반, 소파 및 몇 개의 의자가 놓여 있다. 레닌은 특히 축음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블라드미르 레닌 아파트 박물관

주소:Lenina, 3, 프스코프

전화:+7 811 272-47-69

 

두 사람의 선장 기념비와 대장장이 기념비

그 외에도 두 사람의 선장 기념비(Two Captains Monument)가 있다. 프스코프 지역 어린이 도서관 (Pskov Regional Children 's Library) 앞 광장에 있다. “두 사람의 선장(1938∼1944)”은 프스코프 태생인 베냐민 카베린(Veniamin A. Kaverin, 1902∼1989) 작가의 대표작이다. 북극탐험에 얽힌 비밀과 소련의 역사를 추리적 수법에 의해 엮어 나간 작품으로 러시아 극지 탐험가의 모험을 이야기한다. 1946년 스탈린 상을 수상했고 25년 동안에 42판을 인쇄했다. 1955년과 1976년에는 영화화되었다.

 

또 하나는 대장장이 기념비(Hardwareman Monument)다. 프스코프는 오랫동안 대장장이가 유명했다고 한다. 그걸 동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관광객들은 대장장이가 손에 들고 있는 말굽을 문지르며 소원을 빌면 행복이 온다고 전한다.

 

그리고 프스코프 태생으로 뛰어난 건축가이자 복원자인 유리 스페갈스키(Yuri Pavlovich Spegalsky, 1909년~1969년)의 아파트 박물관(Oktyabrsky Prospekt)이 있다. 유리는 1928년, 레닌그라드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1936년부터 레닌그라드 집행위원회의 기념비 보호국에서 근무하면서 복원작업을 했다. 후에 프스코프에서 활동했다. 1947년, 프스코프를 떠나 레닌그라드로 가서 다양한 작업을 했다. 1969년 1월, 복원 작업장에서 갑자기 사망했다. 그는 프스코프의 공동 묘지(Mironositsky)에 묻혔다. 남편 사후, 그의 부인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아르샤쿠니(1908~1991)의 노력으로 책이 출간되었다. 1986년에는 유리가 살던 아파트가 박물관으로 개장했다. 박물관은 푸쉬킨 거리(Pushkin Street)에서 안뜰로 들어가 아치 통로로 들어가면 왼쪽에 입구가 있다. 인터컴에 전화를 걸면 된다. 박물관 내부에서는 유리의 다양한 작품, 흔적등을 볼 수 있다.

 

두 사람의 선장 기념비

주소:Oktyabrskiy Avenue, 7A, 프스코프/

전화:+7 811 268-20-59/

웹사이트:http://www.kaverin.ru/dva-kapitana/muzej/2289-muzej/

2017년 10 월 16일, 소설 "두 대장"박물관은 수리 작업과 관련하여 활동을 중단했다.

 

유리 스페갈스키 박물관

주소:Oktyabrskiy pr-kt d. 14, Kvartira 74, 프스코프/

전화:+7 811 222-4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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