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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도에서 만난 벨리키 노브고로드 성의 위엄

2020-09-19 11:56

글·사진 : 이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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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벨리키 노브고로드. 그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벨리키 노브고로드의 크렘린(데티네츠)의 성벽을 만나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복원되었지만 성벽에는 천년고도의 연륜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거기에 크렘린 성벽 안에는 말 그대로 ‘야외 박물관’이다. 한 여름, 땡볕에 지치면 푸른 잔디밭에서 오수를 취하면서 천천히 여행을 즐기면 된다.
옛 재래시장.JPG
옛 재래시장

 *전통 재래시장에서 만난 고려인이 원하는 것은 비자?

벨리키 노브고로드 여행 첫날, 중년의 숙소 스태프는 영어 한마디도 못한다. 도시 지도 프린터를 해달라고 해도 알아듣지를 못한다(단, 그네들이 잘하는 것이 있다. 숙박비 받는 것과 여권 서류 적는 일은 정확하다). 실갱이 한들 얻어지는 게 뭐 있겠는가? 그냥 숙소를 빠져나온다. 순전히 짐작만으로 벨리키 노브고로드 성 쪽으로 길을 걷다보니 재래시장을 만난다. 건물 자체로만 보면 한때 큰 재래시장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건물 밖에 과일과 채소 난전만 약간 활기가 있고 실내는 거의 죽은 상점이다. 현대의 마켓에 뒤밀려서 상권은 완전 끝난 듯하다.


건물 안에서 한 청년을 만난다. 그는 우즈베키스탄 인으로 우즈베키스탄의 그릇과 향신료를 팔고 있다. 1살 때 러시아에 왔고 8월이 되면 17세, 아직은 16세라고 말하는 그는 학생이다. 소년의 피부색과 얼굴이 필자와 똑같다. 딴 민족들과 섞이지 않은 몽골인 염색체다. 그의 형이 한국에서 공부중이라고도 말한다. 영어구사가 매우 약했기에 이 정도 얘기로 서로 ‘굿바이’를 하면 된다. 그런데 그가 뜬금없이 '비자(VISA, 국가가 외국인에 대하여 입국을 허가하는 증명서)라는 말을 꺼낸다. '비자?' 한국에 가려면 비자가 필요하다는 말일 게다.


길거리 꽃가게.JPG
길거리 꽃가게

 사실 이런 상황은 ‘랴잔’에서도 있었다. 이슬비가 내리는 날, 한 식당 앞에서 한국인 얼굴을 한 젊은 여성을 스치듯 만난 적 있다. 그때 그녀에게 ‘얼굴이 같아’라는 제스추어를 취했을 뿐인데 갑자기 '차를 태워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 번역기를 통해서였다. 갑자기 무슨 차? 이렇게 생각했는데, 아마도 그녀가 원했던 것이 '비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비자’를 말하는 심정은 알겠지만 그 순간부터 둘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흐르게 된다. 이 날도 소년의 말에 모른 체 할 수밖에 없다. 얼른 말을 돌린다. ‘음식점은 없니?’라고 말이다. 그 소년은 2층으로 올라가란다. 그곳에는 타지키스탄 인이 전통 화덕 빵을 팔고 있다.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타국에서 먹고 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산다.


시계탑.JPG
시계탑

 *부서진 데자틴스키 수도원의 멋진 종탑

빵을 사들고 조금 걸으니 부서진 유적지를 만난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왔다는 많은 화가(혹은 미술학도)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나중에 안 일이지만 미술학도들은 방학 전 현장에서 그림 그리기가 수업의 일부였다). 부서진 성당 조각 위에 성모 이콘과 성당 사진이 놓다. 또 아주 멋진 3층의 게이트 종탑(1809년)이 있다. 종탑 옆의 긴 건물에는 벨리키 노브고로드 예술 문화 박물관(State Museum of Artistic Culture)과 러시아 예술가 연합(Union of Artists of Russia)이 있다. 이 기관들은 그림을 그리는 마스터 클래스나 도자기 워크숍 등을 지속적으로 펼친다고 한다. 또 일부만 남은 성벽(1869년)과 수도원 사이의 채소밭에 만들어진, 사라진 묘지에는 2008년에 만든 기념 표지석이 있다.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돌 표지석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은 데자틴스키 수도원(Desyatinsky Monastery)이다. 데자틴스키는 영문표기로 십일조 수도원(Monastery of the Tithes)이다. 이 수도원의 첫 기록은 1327년이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앞선 12세기 초로 추정한다. 1397년, 버진 탄생 수도원(Monastery of The Virgin Nativity)의 석조 건물이 건축되었다. 전형적인 벨리키 노브고로드 고대사원 스타일의 건축물이었다. 당시 수도원에는 외국 대사관과 손님을 영접하기 위한 군주방과 손님방이 있었던 것으로 발굴 조사 밝혀졌다. 그러나 긴 세월동안 여러 번 파괴되고 재건을 반복하다가 1611~1617년, 스웨덴 점령 시기에는 석조 교회만 남고 다른 목조 건축물들은 모두 파괴되었다. 이후에도 대성당은 그 형태를 잃어 갔다. 이 수도원에는 한때 수녀와 노약자, 장애인들이 거주했다. 1918년부터는 벨리키 노브고로드 비밀경찰(GubChK, 공동국가정치부(Joint State Political Directorate))들에게 체포된 사람들의 감옥소였다. 그러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심각하게 파손되어 복원 대신 해체를 선택한 옛 수도원 터다. 비록 폐허지로 남아 있는 수도원이지만 길고 긴 역사의 흔적이 잔류하는 이 곳이 좋다.


데자틴스키 수도원의 성당터.JPG
데자틴스키 수도원의 성당터

*벨리키 노브고로드 크렘린

수도원 터를 비껴나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크렘린 공원(Kremlin Park)의 오솔길을 걸으니 이내 멋진 벨리키 노브고로드 크렘린 성곽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스의 도시마다 '아크로폴리스'가 있듯이 러시아에는 크렘린이 있다. 벨리키 노브고로드의 크렘린은 그동안 러시아에서 본 요새 중에서는 최고다. 붉은 벽돌로 아주 촘촘하게 성벽을 잘 쌓아 올렸다. 11세기에 만들어진 요새라는데 계속 복원을 했는지 아주 견고하다. 성곽의 길이는 약 1.5km. 성곽 옆, 일부는 산책로가 나 있는데 한 바퀴 에둘러 둘러보는 일도 쉽지 않을 듯하다. 성곽도 높아서 안쪽을 들여다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견고한 성벽에 고깔 모양의 성탑이 있어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총 9개의 성탑 중 3개는 붕괴되고 현재는 6개의 성탑이 남아 있다. 가장 높은 탑은 15세기에 지어진 코쿠이(Kokuy)로 은색 지붕 탑을 갖고 있다. 또 14세기 초의 즐라투스트 탑(Zlatoust Tower)은 15세기에는 감옥이었고 18세기 말에 두 개의 건물이 추가되었다. 러시아 애국 전쟁(1812년) 후에는 벨리키 노브고로드 고대 유물박물관이 되었고 현재는 사무실로 이용된다. 19세기 말에 사법부와 재무부의 기록 보관소로 사용된 팰리스 탑(Palace Tower)이 있다. 그 외에도페도로프 탑(Fedorov tower), 블라드미르 탑(Vladimir tower), 시간의 갤러리(Gallery of Time)가 남아 있다.


크렘린 북문.JPG
크렘린 북문

 *노브고로드의 크렘린(데티네츠)의 역사

자료를 찾아보니, 벨리키 노브고로드 크렘린은 엄밀히 말하면 벨리키 노브고로드 데티네츠(detinets)라고 칭한다. 1044년에 처음 사용된 데티네츠는 도시의 요새, 중부요새로 크렘린과 유사한 말이지만 프스코프와 벨리키 노브고로드에서만 사용되던 말이다(현재는 대부분 크렘린으로 통용하고 있어서 크렘린으로 통일한다).


이 요새는 시내 중심가에서 북쪽으로 약 3km 정도 떨어져 있고 볼호프 강 언덕에 자리한다. 첫 시작점은 989년, 벨리키 노브고로드의 첫 번째 주교인 요아킴 코루수니아닌(Ioakim Korsunianin, ?~1030)이 부임하면서다. 요아킴은 이교도들의 매장지였던 이곳에 “성 소피아 대성당(The Cathedral of St. Sophia)”을 건축한다. 당시 귀족들은 교회 남쪽의 야로슬라프 궁전 쪽에 거주했다. 1044년에 만들어지고 1116년, 추가 건설이 이루어진다. 1302년, 석조 탑과 성벽이 지어졌지만 방어벽과 제방은 흙과 나무로 되어 있었다. 바실리 칼리카(Vasily Kalika, 1280~1352) 대주교(재위 1330~1352)가 부임한 이듬해인 1331년부터 동쪽에 돌담을 재건한다. 돌담 재건은 주교 사후인 1335년까지 이어진다.


1433년, 에우티미오 2세(Euthymius II, 에브피미(Evfimy), 1429~1458) 대주교 시절에 대대적으로 재건된다. 그는 벨리키 노브고로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화 후원자였다. 연대기의 기록에 따라 12개가 넘는 교회를 건축하거나 재건했다. 교회 말고도 많은 부속 건물들을 건축했다. 성 소피아 대성당은 물론 대성당 동쪽의 종탑과 서쪽의 시계탑을 지었다. 시계탑은 부셔져 1673년에 재건했다. 1437년, 바실리가 재건한 벽 일부가 볼호프 강쪽으로 붕괴되자 복원했다. 특히 에우티미오 2세 대주교가 부임하던 해에 건축한 벨리키 노브고로드 공화국의 귀족 평의회 홀은 지금까지 남아 브릭고딕(Brick Gothic) 스타일의 대표적인 사례로 통한다. 이 홀은 둥근 아치 형태로 되어 있어 성공회실 또는 패싯(Facets)실로 불린다.


현재의 성채는 이반 3세(Grand Ivan III)의 지배시절에 무스코비테(Muscovite) 건축가들에 의해 1484년~1490년 사이에 건축된 모습이다. 재건비의 3분의 1은 겐나디(Gennady, 1400~1504) 대주교가 지불했다. 이후 1966~1967년에 복원해 오늘에 이른다. 탑의 벽은 15세기의 아치형과 17세기의 좁은 계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성소피아 성당내부.JPG
성소피아 성당내부

 *요새 안은 야외 박물관

성벽의 즐라투스트 탑을 지나면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작은 다리가 나타난다(요새 밖은러시아 영웅기념비가 있는 작은 광장이다). 더위에 지쳐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북쪽 성문(Spasskaya 타워)으로 들어선다. 크렘린 영역(Territoriya Kreml)의 광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은 “러시아의 천년 기념비(Millennium of Russia)”다. 역사적이기보다는 현대적인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는 1862년에 세워진 기념비다. 류리크가 노브고로드에 도착한 천년을 축하하기 위해 세운 것. 종 모양으로 된 이 청동 기념비에는 128명의 인물상이 새겨져 있다. 862년~1862년에 국가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인물들이다. 조각은 정교하고 기념비는 웅장해서 자꾸만 카메라를 들이대게 된다.


크렘린 영역의 가운데 길을 중심으로 우측으로는 벨리키 노브고로드 박물관(Novgorod Museum)과 벨리키 노브고로드 지역 도서관(Novgorod Regional Library)이 있다. 이 거대한 건축물들은 제국 시대에 행정 건물이었다. 박물관에는 도시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이콘 및 기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 광장 왼쪽으로는 필하모닉 건물이 있고 그 외에도 성 소피아 성당과 종탑을 비롯해 역사적인 건물들이 온통 뒤섞여 있다. 또 성벽에는 조국전쟁(2차대전)의 용사들을 기리는 꺼지지 않은 불(Eternal Flame of Glory)이 있는 추모대가 있다.


소피아 성당.JPG
소피아 성당.

 *성 소피아 성당과 주변 건축물들

볼거리가 너무 많은 크렘린 내부다. 일단 가장 눈길을 끄는 성 소피아 성당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금색과 은색의 지붕 돔을 가진 흰색 건축물은 아름답고 화려하다. 고대 러시아 건축의 가장 뛰어난 기념물로 손꼽히는 성 소피아 성당은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 사원이다. 앞서 말한대로 성 소피아 대성당은 989년, 벨리키 노브고로드의 첫 번째 주교인 요아킴 코루수니아닌에 의해 건축되었다. 야로슬라프 1세(Yaroslav I the Wise, 978~1054)의 아들이었던 블라디미르 야로슬라비치(Vladimir Yaroslavich, 1020~1052) 왕자가 지원했다. 12세기, 성당 내부에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프레스코화가 그려지면서 예술적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당시 이 성당은 벨리키 노브고로드 공화국의 주요한 교회였다. 현재도 벨리키 노브고로드의 대표적인 도시의 상징이다. 그러나 성당 내부는 여느 정교회와 별다르지 않다.


성 소피아 대성당을 대충 보고 밖으로 나오면 주요 건축물들이 주변에 흩어져 있다.

성 세르지오 교회(Church of St. Sergius of Radonezh at Vladychny Dvor)는 화려하지 않지만 시계탑 종탑(17세기)이 삐죽이 올라가 있어 눈길을 끈다. 라흐마니노프 예술대학(Novgorod Regional College of Arts S.v. Rachmaninov) 건물도 있다.


특히 눈여겨 봐야 할 곳이 있다. 세르지오 교회 옆에 있는 성공회(Episcopal)실이다. 붉은 벽돌 건물로 다면궁(Palace of Facets)이라고 불린다. 이 건축물은 1433년, 벨리키 노브고로드 대주교인 에우티미우스 2세(Euthymius II)때 만들어졌다. 원래는 귀족협의회 회의소였다. 1473년, 벨리키 노브고로드가 모스크바 공국에 합병되었을 때는 이반 3세(Ivan III)가 헌장을 낭독하고 서명 한 곳이다. 1822년에 교회가 되었다. 소련 시절에는 예술공예품 박물관이 되었다. 2008년에 원래의 ‘브릭고딕(Brick Gothic) 스타일로 복원했다. 복원 당시 내부에는 당시의 프로스코 화가 남아 있었고 회의소의 지하실에는 광범위한 지하 금고가 발견되었다. 이 건축물은 러시아에 보존된 가장 오래된 민간 구조물이다. 또 다면궁 복원 중에 바실 칼리카(Basil Kalika, 1280~1352) 대주교의 집이 발견되었는데 현재는 팻말로만 알려준다.


특히 필자의 눈길을 끄는 곳은 리쿠후드 박물관(Likhudov Building Museum)이다. 여느 곳과 달리 목조 계단과 목조 처마가 있다. 15세기의 대주교 궁전 자리에 1670년 건축된 건축물. 1706년, 그리스 의사인 요아킴(Joachim Likhud)과 소프로니(Sofroniy Likhud) 형제가 슬라브-그리스어 학교를 세운다. 리쿠후드 형제들은 이 도시의 교육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들로 해박한 지식인이었다. 이 학교는 19세기에 신학교가 되었다.


소피아 종탑 주변.JPG

*전망대 역할을 하는 소피아 종탑

남쪽의 성 문밖으로 나오기 전에 소피아 종탑(Sophia Belfry) 박물관이 있다. 유료 관람이고 중세복장을 한 사람이 입구를 지키고 있다. 소피아 종탑의 첫 번째 기록은 1044년으로 요새의 기록과 역사를 함께 한다. 이 종탑은 홍수로 1439년에 재건되었다. 1530~1540년대에는 상당히 큰 종 모양의 종탑이 재건되었다. 그러다 제2차 세계 대전에 파괴되었다가 1948년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 종탑은 기념관이자 전망대 역할을 한다. 이내 요새 밖으로 나오면 시원한 볼호프 강이 눈앞에 펼쳐진다.(계속)


*Data

*데자틴스키 수도원:주소:Desyatinnaya St., 벨리키 노브고로드/웹사이트:http://artmus.natm.ru/tegi/desyatinnyy-monastyr/http://strana.ru.

*크렘린:주소:Sofiyskaya Storona, 노브고라드/+7 816 277-36-08/웹사이트:http://novgorodmuseum.ru/golovnoi-muzyei/kremli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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