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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이신화의 유럽 인문 여행36]고대 유적도시 터키 에페소스와 성모 마리아의 집

2020-08-26 11:01

글·사진 : 이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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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셀추크에서 2km 떨어진 곳에 있는 에페소스 고고학 박물관은 고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고대의 무수한 유적들이 오롯하게 남은 곳.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셀추크와 에페소스는 기독교인들의 순례지로 손꼽힌다. 에페소스는 성경의 ‘에베소서’를 일컫는다. 예수의 죽음 이후, 예수의 제자 요한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지키며 남은 생애를 보냈던 곳. 에페소스 근처에는 성모 마리아의 집이 있고 셀추크에는 사도 요한의 교회 터가 있다.
에페소스 유적지.JPG
에페소스 유적지

 *에페소스 고고학박물관은 노천 그대로

터키 이즈미르 주의 셀추크(Selcuk)의 유적지는 에페소스 고고학박물관, 아르테미스 신전(Artemision), 중세 주거지가 남아 있는 아야술루크(Ayasuluk) 언덕, 고대의 주거 유적이 남아 있는 추쿠리치 둔덕(Cukurici Mound), 성모 마리아의 집(House of Virgin Mary)으로 구역으로 나누게 된다. 대부분 여행자들이 셀추크로 가는 이유가 에페소스 유적을 보기 위함이다. 파묵칼레에서 만난 여행사 직원은 ‘에페소스 가이드 투어’를 권한다.


여행 상품이 ‘꽤 좋다’는 말에 티켓을 구입해 셀추크에서 에페소스 투어에 나선다. 숙소까지 찾아온 여행사 미니 버스는 에페소스 고고학 박물관의 남문 앞에 선다. 단체 가이드 투어는 북문 언덕에서 시작해 남문으로 내려가게 된다. 개인 여행자들은 반대편 북문에서 시작해 언덕을 기어 올라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불불산(Bulbuldag)과 파나이르산(Panayirdag) 계곡을 따라 엄청나게 많은 부서진 유적들이 이어진다. 비가림 조형물이 없는, 노천 유적지에는 전 세계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다. 부서진 유적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가이드 설명을 듣지 않는다면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곽거리 안내 표시.JPG
유곽거리 안내 표시

 *고대에 크게 흥했던 도시 에페소스

에페소스의 역사는 약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이스트로스(Kaistros, 현재는 퀴직 멘데레스) 강이 땅을 적시며 바다로 흘러 드는 항구 도시였다. 비옥한 땅과 좋은 입지는 상업 중심지로 성장시킨다. BC 11세기 말 경, 그리스 이오니아 인이 정착했고 BC 6세기부터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BC 334년,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이 지배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대왕의 후계자이며, 친위대의 한 사람인 리시마코스(Lysimachos, BC 360~BC 281)가 에페소스를 수도로 정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경기장, 체육관, 원형극장 등을 세워 헬레니즘 문화가 발달된다. 이어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BC 27∼14년) 때에는 소아시아 서부지역의 수도로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가 되어 정치적, 경제적 번성기를 맞이한다.


 BC 9세기에는 인구 25만에 달하는 대도시였다. 특히 아르테미스를 모신 신전은 BC 4세기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의 건축물이었다. 그러다 3세기 들어서 고트 족의 침입으로 쇠퇴하기 시작한다. 거기에 항구로 연결되던 카이스트로스 강의 토사가 퇴적되어 교역이 중단된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셀추크로 수로를 내고 부흥을 꾀했지만 10세기에는 완전히 버려진 도시가 된다. 땅 속으로 사라져 버린 에페소스는 1863년에 발굴이 시작된다. 1898년에는 독일의 고고학자 벤돌프가 오스트리아 고고학 연구회를 설립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다. 오랫동안 완전히 버려졌기에 예전의 원형이 보전될 수 있었다. 현재 전체 유적의 10% 정도 밖에 발굴되지 않은 이곳에는 대부분 로마시대의 유적과 함께 고대 헬레니즘 시대가 뒤섞여 있다.

바실리카의 극장 오데온.JPG
바실리카의 극장 오데온

 *바실리카 열주, 작은 음악당, 목욕장 유적지 등

남문 입구 쪽에는 로마 제정시대의 바실리카(Basilica) 열주들이 늘어서 있다. 로마 때, 재판소, 집회장, 시장, 관공서, 지붕이 있는 야외극장 등 공공의 대규모 건물을 있던 곳이다. 국가 아고라, 스토아(stoa, 그늘에서 대화를 나누고 뉴스를 교환하며 정치를 논하던 곳), 연극이나 음악회, 시 낭송 같은 공연이 열렸던 작은 극장 오데온(odeon), 바리우스 목욕장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오데온 위쪽에 난 아치형 문을 나가면 에페스 유적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언덕이다. 이곳엔 로디안 열주와 시청 청사의 유적지가 있다. BC 3세기 경, 아우구스투스 때에 지어진 프리타네이온(Prytaneion)이라는 공회당 자리다.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봉헌된 시청사에서는 아르테미스 여신상 2개가 발굴되었다. 현재 셀추크의 고고학 박물관에 있다. 프리타네이온에는 에페소스를 지키는 성화를 보관했다. 절대 불이 꺼지면 안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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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소스 바실리카 광장의 열주들

 *도미티아누스 광장에 남은 유적들은 나름 선명

프리타네이온을 벗어나면서 내리막 길이다. 내리막을 내려가면 도미티아누스(51~96) 황제의 이름이 붙은 광장이다. 제법 넓고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유적들이 많이 흩어져 있다. 오른쪽의 가이우스 멤미우스(BC 70~?) 기념비는 비교적 온전하다. 가이우스는 BC 34년에 영사관이었고 BC 30년경에는 아시아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위대한 할아버지 술라와 아버지를 부조로 새기고 기념비 중앙에 묻혔다. 광장 반대편에는 폴리오 기념물과 샘이다.


광장 한 구석에는 승리의 여신 니케의 부조와 그리스 신화의 의신(醫神)인 아스클레피우스(Asklepios)를 상징하는 뱀 모양의 부조가 남아 병원터임을 보여준다. 광장 안쪽에는 도미티아누스 신전이다. 당시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원로원과 사이가 좋지 않아 끝내 암살당했으며 "기록말살형"을 받았다. 로마의 역대 "기록말살형" 황제는 네로와 칼리큘라가 있다. 신전 건물 앞부분은 문밖에 남아있지 않으나 뒤쪽에는 벽과 계단, 건물 내부의 구조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헤라클라스 문.JPG
헤라클라스 문

 *헤라클레스 문과 크레테스 거리

이어 헤라클레스 문을 통과하면 크레테스(Curetes)의 도로가 이어진다. 도로 폭이 급격하게 좁아진다. 마차, 수레 등 바퀴 달린 것들을 가지 못하고 하층민도 갈 수 없는 도로. 열주기둥은 켈수로 도서관까지 뻗어 있다. 크레테스의 도로 주변은 다소 복잡하다. 목 없는 동상 은 여의사다. 또 로마 5현제의 2대왕이었던 트라야누스(53~117)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샘(트라잔 샘)은 2층으로 된파샤드가 3면으로 둘러싸고 있다. 분수대의 중앙 받침대 위에는 12m 황제의 동상이 있었다는데, 현재는 비어 있고 황제의 발목만 남았다. 물이 흘러나왔다는 둥근 석조물은 마치 화병처럼 보인다.


근처의 테라스 하우스는 당시의 고급주택 7채라는데 거의 무너져 내려 구분이 어렵다. 하드리아누스 신전 안에 있는 석관은 클레오파트라의 막내 여동생인 아시노 4세(Asinoe IV, BC 68?~BC 41)의 것으로 추정한다. 그녀는 이곳에서 암살 당했다. 하드리아누스 신전 뒤쪽에는 스콜라스티카의 목욕장이 있다. 현재는 무너지고 1층의 외벽만 남아 있다. 욕장에서 더 들어가면 공중 화장실(Lartin)이다. 2세기에 지어진 이 공중 화장실은 50개의 대리석 변기들이 늘어서 있다. 수도관을 통해 물을 끌어와 사용한 수세식이었다. 스콜라스티카 목욕탕보다 지대가 낮은데, 아마도 목욕탕에서 사용한 물을 끌어와서 사용한 것 같다.


*가장 아름답고 멋진 켈수스 도서관

에페수스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건물은 켈수스 도서관이다. 135년, 로마의 원로원이자 소아시아 총독을 지낸 가이우스 율리우스 켈수스 폴레마이아누스를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 갈리우스 율리우스 아퀼라가 건립한 도서관이다. 웅장한 무덤과 도서관이 통합된 형태로 켈수스 납골당은 1층 아래에 있다. 도서관은 천장이 매우 높은 2층 건물. 세 곳의 출입구 중에서 가운데가 가장 넓고 가장 높다. 코린트식의 기둥이며 입구 천장에는 아름다운 문양이 있다. 문 사이의 벽에는 지혜(Sophia), 미덕(Arete), 통찰(Ennoia), 지식(Episteme)을 상징하는 여신상이 있지만 진품은 발굴 중에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로 반출되었다고 한다. 30개 정도의 서가가 있고 1만2천권이 넘는 장서가 있어서 당시 고대 세계 전역에서 걸출한 학자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어 연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하 터널은 맞은편의 유곽 건물로 연결된다.



*대규모 원형 극장

북문과 가까워지면서 거대한 원형극장을 만난다. 파나 유르산 언덕에 지어진 야외극장은 2만 4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다. 이 대극장은 서쪽을 향하고 있어 항구 쪽에서 도시로 들어오면서 바로 보이게 지어졌다. 공연장의 길이는 50m이고 관객석까지의 직경은 150m, 높이는 34m에 달하는 엄청나게 큰 경기장이다. 음향이 잘 들리게 설계되어 있어 해마다 공연이 펼쳐진다. 이 극장 사도 바울과 은세공인 데메트리오스 사이에 소동이 일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바울이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자 아르테미스 여신상의 은조각상이 팔리지 않을 것을 염려해 소동을 벌였단다. 이 소동은 서기장에 의해 중단되었으나 바울은 결국 이 도시를 떠나게 된다. 대극장에서 북문까지 아르카디안 500m 거리가 이어진다. 고대 때는 항구로 이어지던 길. 김나지움 극장터는 항구에 도착한 사람들은 항구 욕장에서 몸을 씻고 운동을 하던 곳이다. 토사가 퇴적되던 때, 지하수로를 내고 셀추크까지 토관을 이은 흔적이 남아 있다.


*성모마리아의 집

에페소스 유적지를 벗어나 불불산 깊숙이 숨어 있는 성모마리아의 집으로 간다. 에페소스 유적 남쪽의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하여 차량이 없이는 오르기 쉽지 않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사도 요한(6년경~100년경)의 보살핌을 받으며 이곳에서 만년을 보냈다고 전해온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난 후 요한은 마리아를 예루살렘에 있던 자기 집에 모시고 살았다. 60년대 중후반경 노구의 마리아를 모시고 복음하기 위헤 에페소스로 왔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성모 마리아의 집에는 요한이 물 세례를 베풀던 세례 터가 있고 아담한 돌집이 있다. 가정집처럼 보이지만 예배당이다. 1967년 교황 바울 6세가 이곳을 방문했고, 그 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다시 방문했다. 이를 계기로 그리스도교 인들의 순례지로 꼽히게 되었다.


*Travel data

가는 길:한국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직항이 운항된다. 12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스탄불에서 셀주크를 가려면 이즈미르 공항까지 가면 된다. 이즈미르에서 버스로 50분 소요된다. 터키 여행객 대부분은 이스탄불에서 버스로 12시간이나 걸리는 이즈미르까지 곧추 가는 사람은 드물다. 주변 여행지를 경유해 가면 된다.

현지교통:돌무쉬를 이용하면 된다. 에페소스 거쳐 성모의 집을 가려면 여행 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중식도 제공한다.

맛집정보:셀주크의 마켓 옆에 있는 오쿠무쉬 피데 살로누(okunus pide salonu)는 맛있는 버섯 피데집이다. 화덕에 굽고 가격은 아주 저렴하다. 한국인 정보서에 소개되어 한국인들이 많이 메모를 남겼다. 또 괴프테 전문 식당은 50년 넘게 자리하고 있다. 직접 주문하는 방식이다. 특히 야채 샐러드에는 호두가 들어가 있어 맛있다. 매주 토요일마다 풍성한 장터가 열린다.

숙박정보:쉬린제의 니산얀 호텔이나 펜션들이 있다. 그러나 셀주크 시내에 머무는 것이 이동하는데 훨씬 편리하다.

기타 정보:셀주크에 흩어진 유적을 찾으면 된다. 포도주로 유명한 그리스 마을인 쉬린제(Şirince)도 필수 코스다.

홈페이지:http://www.selcuk.bel.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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