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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림과 함께하는 홈문화 17]아름다운 자연 속에 피어난 동서양의 만남

2021-06-21 09:11

글 : 백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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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속도 안에서는 봄이 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주변을 둘러보면 벌써 봄날은 저만치 가버린 듯합니다. 어느덧 초록은 짙어지고 무성해진 잎 사이로 부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성급하게 봄을 알리려 잎보다 먼저 피어난 매화, 산수유, 진달래와 같은 목화에 취해 봄날을 보냈는데, 이제는 봄꽃의 향연도 끝나고 초여름을 알리는 작약과 라일락이 마당에서 화사하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자연이 주는 빛나는 선물에 세상사 잡다한 상념도 잠시 잊게 됩니다.

 자연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예술 분야에서 자연은 항상 중요한 모티브가 되어왔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예술은 오랫동안 꽃과 새를 모티브로 한 그림과 공예를 추구해왔습니다. 이러한 자연 친화적인 소재는 18세기에 서양에서도 꽃을 피웠습니다. 마르코 폴로 이후 17세기 동양에 대한 흠모가 서양에 널리 퍼지면서 ‘중국 취미의’라는 의미인 ‘시누아즈리’ 시대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로코코 시대로 알고 있는 시대가 바로 18세기 시누아즈리 시대로, 프랑스 궁정과 살롱에서 섬세하고 우아한 곡선적 장식이 유행했습니다. 가구나 장식은 모두 경쾌하고 우아한 형태와 무늬들로 만들어지고, 자기에도 지나친 도안화를 피하는 대신 인간이나 식물 형태의 자연스러운 무늬가 활용되었습니다. 이 시대 유럽에서는 동양의 도자기와 실크, 그리고 옻칠한 가구가 부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유럽인들은 중국의 도자기와 옻칠 가구를 통해 먼 미지의 땅인 동양의 풍경과 함께 화조 문화도 함께 접하게 되었습니다.

 
도자기와 비단에 표현된 버드나무와 정자가 있는 중국 풍경은 유럽인들의 눈을 사로잡았고, 가보지 못한 미지의 나라를 동경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동양에서 온 비단과 차 그리고 찻잔은 비싼 가격인데도 앞다투어 소비하고 싶은 귀족들의 최애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동양의 산물에 빠지지 않고 늘 등장하는 이미지는 바로 자연이었습니다. 여인들을 장식했던 드레스와 벽과 의자를 꾸몄던 비단은 단순한 직물을 넘어 미지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중국의 풍경은 버드나무를 뜻하는 ‘윌로우 패턴’이라는 이름의 찻잔을 유행시켰습니다. 처음에 동양의 풍경을 그대로 묘사했던 윌로우 패턴의 찻잔은 나중에는 그들의 풍경을 담은 서양적인 ‘윌로우 패턴’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기조는 19세기에도 이어져서 아르누보라는 사조를 낳았습니다. 급속한 산업의 발달로 공장에서 찍어낸 조악한 디자인의 제품을 접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예술 양식을 찾았습니다. 아르누보는 모든 역사적인 양식을 부정하고 자연에서 유래된 아름다운 곡선을 모티브로 삼아 새로운 표현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파도나 포도넝쿨의 줄기, 꽃봉오리, 화염무늬, 당초무늬 등 장식성이 넘치고 유기적인 움직임이 느껴지는 모티브들을 즐겨 그렸습니다. 알퐁스 무하의 파스텔 톤 포스터는 아르누보의 분위기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온몸을 휘감는 여인의 풍성한 머리칼과 하늘거리는 드레스, 그리고 이름 모를 꽃은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색채와 어울려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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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등장하는 자연의 소재 중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매미, 메뚜기 그리고 잠자리와 같은 곤충일 것입니다. 이 또한 동양 문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극동의 나라들은 변태를 거쳐 성충에 이르는 곤충들을 대기만성과 불굴의 의지를 나타내는 표상으로 여겨 많은 예술 작품에 모티브로 사용했습니다. 과거 시험 하나를 보고 일생 동안 유학생으로 살아야 했던 힘든 상황을 ‘대기만성’의 미덕으로 어루만지며 다독였던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에 등장하는 잠자리는 아르누보 시대 에밀 갈레의 유리공예와 가구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석과 유리공예에서 걸출한 명성을 가지고 있는 아르누보의 작가 르네 랄리크 또한 잠자리를 모티브로 한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두 대륙이 기나긴 세월 속에서 줄기차게 만남을 모색하며 자연을 사랑하는 인간의 같은 심성을 공유했으리라 여겨집니다. 실크로드와 십자군 전쟁, <동방견문록>을 거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이후 인류 최초의 대규모 글로벌 무역이 이루어졌고, 유럽인들의 동양문화에 대한 열망은 자연에 대한 관심으로 맞닿았습니다. 유럽을 여행할 때 대저택에서 만나게 되는 도자기방과 옻칠 가구에 나타난 동양의 풍경은 모두 이러한 역사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가의 정원에 꼭 있었던 두 종류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즉 회화나무와 배롱나무였습니다. 이 두 나무를 양반가에서 그토록 사랑했던 이유는 봄에 가장 늦게 싹을 피우는 두 나무의 특성 때문이었습니다. 마냥 말라 있던 배롱나무 가지에도 이제 새잎이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의 예상과는 달리 세계적 팬데믹이 일 년을 넘겨 반년을 더 보태며, 아직도 연일 확진자의 숫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지켜보고 기다리는 대기만성을 미덕으로 삼았던 선조들의 지혜처럼 팬데믹으로 지친 일상에도 활기가 솟아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답답하고 힘든 마음을 치유해주는 것에 자연보다 더 좋은 것은 없기에 봄볕이 따뜻했던 시기부터 우리의 마음은 들로 산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문득 다가올 어느 맑고 푸른 날, 잠시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상념을 내려놓고 눈을 돌려 우리 곁에 다가와 있는 싱그러운 초여름의 바람을 깊은 호흡으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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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림은…
 
하우스 갤러리 이고 대표. 한국 앤티크와 서양 앤티크 컬렉터로서, 품격 있고 따뜻한 홈문화 전도사다. 인문학과 함께하는 앤티크 테이블 스타일링 클래스와 앤티크 컬렉션을 활용한 홈 인테리어, 홈파티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고갤러리: 02-6221-4988
블로그: blog.naver.com/yigo_gallery 
인스타: yigo_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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