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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닌대학교와 칸트 동상

2021-05-10 15:33

글·사진 : 이신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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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닌그라드의 칼리닌대학교 교정에는 칸트 동상이 있다. 칼리닌대학교에 칸트 동상이 있으니 옛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전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그러나 그것은 절대 오산이다. 칼리닌대학교에는 그 어떤 역사적인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볼품없는 시멘트 건물 속에 18세기 의복을 챙겨 입은 칸트 동상이 서 있다. 또 한 가지 볼거리라면 벙커 박물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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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건물.

 

임마누엘 칸트 발트 연방 대학(IKBFU)

강변을 벗어나 칼리닌그라드의 여행 마지막 장소인 칼리닌그라드 대학까지 걸어간다. 칸트의 흔적을 찾고 싶은 마음에 칸트 동상이 있는 칼리닌그라드 대학을 찾은 것. 막상 도착해보니 오래된 역사의 흔적은 전혀 없고 그저 단순한 시멘트 대학 건물 뿐. 실망감이 몰려올 수밖에 없다. 필자가 여행할 때는 이곳이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으로 착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에는 대학을 복원하지 않았고 알브레히트 동상만 달랑 있었다. 역사 깊은 쾨니히스베르크 대학 교정이 칼리닌그라드 대학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이 대학에 칸트의 동상이 서 있을까? 자료를 찾아보니 이 대학의 정식 명칭은 임마누엘 칸트 발트 연방 대학(IKBFU, Immanuel Kant Baltic Federal University)이다. 칼리닌그라드의 현재 3개의 대학 중 한 곳인데, 칼리닌그라드의 대표 대학으로 손꼽힌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대학의 시초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원조인 알베르티나 대학 캠퍼스에서 시작되었다. 1944년 세계 제2차 대전으로 칸트 섬이 파괴되자 1945, 알베르티나 대학은 완전히 폐쇄되었다.

 

러시아 10대의 상위권 대학

전쟁 후 1947년 루소포네 칼리닌그라드 아티클 교육학 연구소(Russofone Kaliningrad Article Pedagogical Institute)가 알베르티나 캠퍼스에 설립된다. 1967년까지 칸트 섬에 있다가 칼리닌그라드 주립 대학이 되면서 현재의 장소로 이전한 것. 2005, 쾨니히스베르크 창립 750주년 기념행사에 블라드미르 푸틴 대통령과 독일의 게르하르드 슈뢰더(Gerhard Schröder) 총리가 참석했다. 이때 대학교 이름이 임마누엘 칸트 러시안 연방 대학(Immanuel Kant Russian State University)으로 개명된 것이다. 짧게 칸트 대학(Kant University)으로 불렸다.

 

2008년 대학에 과학 공원이 만들어졌다. 2010~2011년에는 대학을 확장하고 리모델링하면서 임마누엘 칸트 발트 연방 대학(IKBFU, Immanuel Kant Baltic Federal University)이 되었다. 임마누엘 칸트 발틱 연방 대학은 러시아 최서단 지역의 상당히 수준 있는 대학으로 명망을 얻은 듯하다. 러시아 상위 10대 대학으로 손꼽힌다. 현재 이 대학교는 자연 과학에서 인문학에 이르는 다양한 과정을 갖춘 12개의 학부로 구성되어 있다. 학부 및 대학원생 약 12800명의 학생과 580명의 교수진이 있다. 특히 이 대학 내에는 칸트 학회가 있는데 칸트, 또는 칸트의 철학은 물론 16세기의 쾨니히스베르크와 러시아 간의 역사적 연관성을 연구한단다. 이 칸트 대학에서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하는데, 어쨌든 칼리닌그라드로 도시명이 바뀌면서 생긴 첫 대학이고 프로이센의 알베르티나 대학의 캠퍼스에 만들어졌고 현재도 칸트의 명맥을 잇고 있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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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청동상.

 

교정에 서 있는 칸트 청동상

대학 내 교정에서 볼만한 것은 칸트(1724~1804) 청동상 뿐이다. 볼품없는 시멘트 건물 속에 18세기 의복을 챙겨 입은 칸트 동상. 화강암 받침대 위에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이고 서 있는 칸트 동상에서는 당시의 시대상을 엿보게 한다. 머리에는 그의 트레이드인 짧은 스타일의 가발을 쓰고 딱 붙은 바지에 타이트한 긴 코트를 입고 오른손은 앞으로 뻗는 몸짓을 하고 있다. 왼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옆구리에는 움푹 들어간 트리콘 모자(삼각모자:tricorn hat, 일명 콕모자, cocked hats)를 끼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칸트의 기념비는 사후 50년 후인 1864년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기념비가 만들어지기까지 7년간이나 분쟁과 갈등을 겪어야 했다. 청동상은 당대 최고로 유명한 독일 조각가 크리스티안 다니엘 라우치(Christian Daniel Rauch, 1777~1857)의 작품이다. 그는 앞서 소개한 젤레노그라츠크 해안 마을 편에서 루이제 여왕의 실물 크기의 대리석 흉상을 만든 이다. 이 동상은 알베르티나 대학 건물 근처에 세워졌다. 그러다 칸트의 옛집(Prinzenstrasse 3, 현재 Prospekt Leninskiy, 40-42а)에 설치되었다. 그러나 당시 로툰다(rotunda)로 인해 폐쇄되었다. Schlossstrasse가 건설되는 동안 이 기념비는 1885년 파라데플라츠(Paradeplatz)로 옮겨졌다. 광장 중앙에는 이미 프레드릭 빌헬름 3(Frederick William III) 기념비가 있었다. 따라서 칸트는 정원의 남서쪽 모퉁이에 서 있었다. 19454월 세계대전 침공 전에 구리옙스키(Gur'evskii, Guryevsk) 지역(중심에서 약 8km 떨어짐)에 숨겨 놓았다. 이 동상은 1990년까지 소재가 수수께끼였다. 칸트의 후손이나 독일 여성 저널리스트 마리온 돈호프(Marion Countess Dönhoff, 1909~2002) 백작 부인이 동상의 위치를 공개했다. 그렇지만 이미 수년 전에 동상은 녹아내렸다. 그러자 1991~19921, 독일 조각가 하랄드 하케(Harald Haacke, 1924~2004)에 맡겨 원본 조각을 맞춰 복제품을 만들었다. 1992, 칼리닌그라드 대학 건물 동쪽에 복사품인 기념비가 세워진 것이다.

 

칸트 대학에서 만난 교수들

어쨌든 칸트 때문에 칼리닌그라드에 왔고 그와 관련한 흔적들을 많이 못 봤으니 대학 교정에 동상이 있는 것으로도 만족스럽다. 관광객들도 없고 방학을 맞은 대학의 교정은 한적하다. 푸르른 교정의 공원에 앉아 한참을 앉아있는다. 그 때 학교 건물 안에서 세 사람이 밖으로 나온다. 남자 둘과 여자 한명이다. 커피 잔을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밖으로 나온 듯하다. 그들에게 몇 마디 대화를 나눈다. 이공계의 교직원들이라는데 한 명만 영어를 구사한다.

 

왜 칸트 유적이 거의 없어?”

괜히 그들이 칼리닌그라드에 사는 이유만으로 따져 묻는다.

칼리닌그라드에서 칸트의 흔적을 본 것은 기껏 성당의 칸트 묘지와 대학의 동상 뿐이니 절로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여성이 말한다.

쾨니히스베르크 성당에 있다고 했지만 자신감 없는 태도였기에 그냥 간과하고 말았다.

그때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성당 내부에 칸트 박물관이 있다는 것을 어느 누군가에게 다시 물었어야 했다. 칸트의 생가도, 칸트의 벤치도 못 봤다. 좀 더 깊숙이 들여다봤어야 했음을 후회한다. 그러나 안간 것 보다는 백배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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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박물관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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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박물관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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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박물관으로 내려가는 계단.

 

벙커 박물관

대학 내에 칸트 동상 말고도 볼거리가 또 한군데 있다. 벙커 박물관이다. 정식 이름은 쾨니히스베르크 폭풍우 박물관이다.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계단 입구에는 아무 것도 없기에 박물관을 운영하는지가 파악되지 않는다. 찾는 이도 없다. 그러나 이 벙커는 단순한 대피소가 아니다. 이 벙커 박물관은 19453월부터 독일 사령부의 본부자리였다. 당시 쾨니히스베르크 총 사령관인 오토 라쉬(Otto Lasch, 1893~1971)는 이 벙커에서 항복법(Act of Capitulation)에 서명을 했다. 라쉬는 히틀러의 명령에 불복하고 194549일 쾨니히스베르크를 적군에 항복했다. 히틀러는 그에게 교수형으로 사형을 선고했으며 당시 덴마크와 베를린에서 그의 가족은 체포되었다. 라쉬는 소련에 포로로 들어가 전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소련의 노동 교정 수용소에서 25년형을 선고 받았다. 언제까지 복역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라쉬는 1971년 쾰른 주의 본(Bonn)에서 사망했다. 194557일 이른 시간에 랭스에서 서명되었고 대부분의 유럽에서는 58일이었다. 59일은 러시아, 벨로루시, 세르비아, 이스라엘이 서명했다. 나찌가 패하고 붉은 군대가 장악한 벙커다. 벙커는 깊이 7m, 길이 42m, 15m, 21 개의 방으로 구성된 단층 지하 콘크리트 방폭 대피소다. 2차 세계 대전의 분위기가 부지 내에 재건되었다. 박물관에는 디오라마와 소련군의 쾨니히스베르크 습격에 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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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덴부르크 문.

 

브란덴부르크 문

브란덴부르크 문은 브란덴부르크 성(현재의 우샤코보 마을)으로 이어지는 길을 건널 때 1657년 쾨니히 스 베르크에서 최초의 요새화 사격의 남서부 구역에 지어졌다. 자금 부족과 해당 프로젝트로 인해 주최 측은 지붕 아래에 배치하고 지구 성벽에 쉬고 있는 나무 문을 만드는 것으로 제한되었다. 확실한 보호를 위해 물로 채워진 foss가 만들어졌다. 100년 후 프로이센 왕 프레드릭 2세의 명령에 따라 낡은 구조물이 부서지고 끝이 뾰족한 두 개의 넓은 통로가 있는 거대한 벽돌 건물이 그 자리에 세워졌다. 새로운 단단한 문은 남쪽(현재 Suvorov Street)으로 가는 길을 완전히 막았으며 도시를 안전하게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두꺼운 성벽은 작은 수비대를 안전하게 덮었고 내부 케이스 메이트에 있었다. 거기에는 사무실, 보조, 보관실과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1843년의 복원 작업 중에 문은 크게 재건되었다. 뾰족한 장식 박공, 십자형 사암 꽃, 윗부분의 양식화된 잎, 팔의 외투 및 메달로 장식되었다. 보옌 야전 사령관(1771-1848), 전쟁 부 장관, 프로이센 군대 개혁 참여자의 조각 초상화가 성문에 걸렸다. 오른쪽에는 두 번째 요새화 사격의 저자 중 한 명인 엔지니어링 군단장인 Ernst von Aster 중장(1778-1855)이 있다. Baldur Koester의 건축 설명(알렉세이 샤부 닌 번역) :브란덴부르크 문(베를린 도로로 이어지는 Königsberg의 남서쪽에 있는 정착지 이름을 따서 명명 됨), 계획에 2개의 패스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Friedland처럼 보인다. 그림에 따르면 성문 앞에 놓을 수 있는 원형 탑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처음에는 부스 역할을 했던 양쪽 케이스 메이트는 나중에 보행자용 게이트로 다시 제작된 킹스 게이트와 동일했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모든 성문의 실제 고딕 양식에 가장 가깝다. 고딕 양식의 약병으로 장식된 두 개의 가파른 박공은 대부분의 경우 강력한 수직 악센트로 전면에 긴 전면을 제공한다. 그리고 작은 포탑이 항상 가장 높은 요소를 형성한다면이 경우 포탑 위에 약병이 발사된다. 아치의 크기를 보여주는 아래에있는 분절 아치에서 구조를 식별 할 수 있다. 0.5m나 더 높은 고딕 양식의 아치는 건축 학적 '채우기'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도시로 향하는 쪽에는 두 개의 페디먼트에 두 개의 초상화 메달이 여전히 남아있다. 첫 번째 메달은 필드 마샬 폰 보옌 (field Marshal von Boyen), 두 번째 메달은 폰 아스터 장군이다. 이 작품은 Wilhelm Ludwig Sturmer에 의해 실행됐다. 건물은 건축 기념물로 국가에 의해 복원되고 보호된다. 

 

오늘날 Marzipan MuseumBrandenburg Gate에 있다.


Data

칸트 대학주소Ulitsa Aleksandra Nevskogo, 14, Kaliningrad/전화 +7 401 259-55-95

칸트 동상(Kant's monument): Ulitsa Universitetskaya, 2, Kaliningrad

벙커박물관(Museum "Bunker"): Ulitsa Universitetskaya, 2, Kaliningrad

주소 Sovetskii Avenue, 4, 칼리닌그라드/전화 +7 (4012) 60 18 38

칸트의 집주소Prospekt Leninskiy, 40-42а, Kaliningrad

 

칼리닌그라드의 중심은 8 개의 문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이전에는 10 개도 있었다. 각 게이트에는 고유한 역사, 특성 및 비밀이 있다. 눈으로 꼭 봐야 한다!

 

이 성당에는 칸트 박물관이 있고 칸트가 다니던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는 그의 동상만 남았다. 또 칸트의 집(Leninskii Prospekt 40-42A)이 있다. 그가 태어나고 살았던 집은 살아남지 못했다. 단지 "여기에 22.04.1724가 태어나고 1740년 임마누엘 칸트까지 살았던 집이 서 있었다"라는 명판만 남았다. 칸트가 즐겨 찾았던 해안 산책로에도 그의 동상이 있다. 칸트 인물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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