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여성조선 정기구독 이벤트
COLUMN
  1. HOME
  2. COLUMN

[여행작가 이신화의 유럽 인문 여행68]운하의 도시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렘브란트, 고흐

2021-05-04 18:24

글·사진 : 이신화 작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네덜란드는 렘브란트, 고흐 등 세기의 화가를 배출해 낸 나라다. 수도 암스테르담에는 렘브란트가 살던 집을 볼 수 있다. 살아생전 빛을 보지 못했던 고흐 박물관에는 관광객들의 줄이 이어진다. 국립박물관에서도 무수한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다. 하이네켄 양조장 체험을 하면서 즐기는 공짜의 맥주 한 잔과 선물로 받는 맥주잔이 즐겁다. 가을빛이 물든 운하 도시, 암스테르담. 합법적인 ‘홍등가’의 붉디붉은 불빛이 운하의 물길을 흔들어대고 있다.

고흐자화상.jpg

고흐 자화상.

 

 

고흐박물관.jpg

고흐 박물관.

 

 

국립박물관.jpg

국립박물관.

 

‘자유’, ‘실용’, ‘관용’이 넘쳐나는 나라

영화 <안녕, 헤이즐(The Fault in Our Stars, 2014)>은 18세 소녀의 죽음을 담보로 한, 시한부 최루 영화다. 원작은 존 그린의 소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다. 영화 속 소녀는 감명 깊게 읽은 책을 들고 그 작가를 직접 만나 소설이 끝난 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우여곡절 끝에 불치병에 걸린 소년과 함께 작가를 찾으러 암스테르담까지 가게 된다. 영화 말미에 나오는 암스테르담을 화면으로 보면서 여행 추억에 빠져든다. 암스테르담은 물길의 도시다. 좁거나 넓은 운하가 도심 전체에 방사형으로 퍼져 있다. 이 운하들은 ‘암스테르담의 17세기 운하 연결망’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네덜란드는 일찍부터 선상기술이 발달되었고 해양무역의 주역이었다. 초기에는 청어를 많이 잡아 여러 나라에 팔면서 돈을 벌어 들였다. 현재 뱃사람을 일컫는 마도로스(Matross)라는 단어도 네덜란드어다. 유럽 대중레포츠로 각광 받고 있는 요트도 네덜란드어다. 해상력을 키우기 위해 러시아 로마노프 왕가를 시작한 표토르 대제도 배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 나라로 유학 온 역사적인 기록이 남아 있다. 17세기에 조선소가 발달된 도시인 잔담(Zaandam)이었다. 현재는 잔세 스칸스라는 곳으로 풍차로 유명한 관광도시가 되었다. 


특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무역인과 호객꾼, 행상인, 선원들이 넘쳐났다. 뱃사람들이 모이는 항구 주변으로는 자연스레 홍등가(Red Light District)가 생겨났다. 이 나라에서는 합법화됐다. 구역을 제한함으로써 오히려 야간에 일어나는 범죄, 성 범죄 등이 없어졌단다. 성의 자유로움은 이 나라의 좋은 관광 상품으로 자리 잡았고 큰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마리화나도 불법이 아니다. 커피숍, 마리화나 담배를 파는 상점, 마리화나 씨앗 파는 난전등은 흔하다. 500g이상은 팔 수 없으며 길거리 흡연은 못하는 등 법적 제한은 분명히 있다. 이 또한 관광수익금이 엄청나다. 그 외 동성결혼, 안락사도 합법화되어 있다. 이런 합법화에 대해 이 나라 사람들은 ‘자유’, ‘실용’, ‘관용’이라고 말한다.  


렘브란트하우스.jpg

렘브란트 하우스.

 

 

렘브란트 야경.jpg

렘브란트 야경.

 

 

렘브란트 야경을 모티브로 만든 동상.jpg

렘브란트 야경을 모티브로 한 동상.

 

렘브란트 하우스에서 화가의 ‘빛’ 을 찾다

17세기 그림을 모르는 문외한이라도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렘브란트(1606~1669년)가 이곳에서 살았다. 암스테르담에 ‘렘브란트 하우스(1639∼1658년 거주)’가 있다. 렘브란트가 살던 집을 그대로 개조했다. 17세기에 지어진 집은 화려하진 않지만 현재의 주변 집들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그렇다면 렘브란트는 당대에 ‘부족함 없는’ 화가였을까? 


렘브란트는 네덜란드 서부의 구 라인 강 하류에 있는 공업도시인 레이덴(Leiden)에서 태어났다. 제분업을 하는 중산층 집안이었고 자식들 중 가장 영특해 배움의 기회를 얻었다. 철학을 공부했지만 별 흥미를 못 느껴 스와넨부르흐라는 화가의 화실에서 3년간 수학하고 다시 피테르 라스트만에게서 6개월 동안 배웠다. 그때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유명인이 되었다. 카메라가 없던 시절에는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게 화가의 일이었다. 실물보다 잘 그려주면 대부분 만족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돈은 얼마든지 벌어들일 수 있었다. 그 즈음 어여쁜 사스키아와 사랑에 빠졌고 결혼도 했다. 그녀의 가문은 렘브란트 보다 지위가 높아서 주위의 인맥을 끌어들이기에 쉬웠다. 


결혼 후, 렘브란트는 허영에 빠졌다. 비싼 집(현재의 렘브란트 하우스)을 구입하고 부인을 보석으로 칭칭 감아줬다. 돈을 물 쓰듯 해도 될 정도로 부자 화가였다. 하지만 초상화 그리기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를 나락으로 떨어트린 작품은 ‘야경’(1642년)이다. 렘브란트는 등장인물들을 실물보다 잘 그려주면 만족해하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그림 속에 자기만의 ‘빛’을 불어 넣었다. 그 그림은 웃음거리가 되었고 돈도 받을 수 없었다. 소문은 발 빠르게 퍼져 더 이상 초상화 주문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초상화 주문은 죽기 5년 전 피복업자 길드 조합원들의 단체 초상화(1653년)였다. 점입가경, 그 무렵 결핵을 앓고 있던 아내는 아들 한 명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아내의 죽음을 잊기라도 하려는 듯 작업에 미쳐 들어갔지만 여전히 흥청망청 돈을 써댔다. 


그러다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집안일과 아이를 돌보던 하녀, 헨드리키에였다. 하지만 그녀와는 아내의 유언 때문에 합법적인 결혼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죽으면서 상속자를 아들의 몫으로 해놓았고 다른 여자랑 결혼하면 한 푼도 받을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집은 경매에 붙여졌고 헨드리키에는 불륜녀라고 손가락질 받았다. 렘브란트는 죽을 때까지 나락에 빠져 혼자 그림만 그렸다. 돈 주고 살 모델이 없어 자화상을 그리거나 딸, 아들, 아내를 자주 그렸다. 말년에는 동판을 너무 오래 들여다본 탓에 거의 장님이 되어 63세 때 가난한 유대인 지구에서 쓸쓸하게 죽었다. 


운하와 거리 도시들.jpg

운하와 거리 도시들.

 

빈센트 반 고흐, 최다의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다

암스테르담에는 고흐미술관(Vincent Van Gogh Museum, 1973년 개관)이 있다. 늘 관람객들이 줄지어 서 있다. 회화 작품 200여 점, 소묘 작품 500여 점, 고흐(1853년~1890년)가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고흐의 작품을 가장 많이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고흐는 브라반트 북쪽에 위치한 그루트 준데르트(Groot Zundert)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목사였고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 셋, 남동생 둘 중의 맏이였다. 고흐의 젊은 시절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아니 평생 시련과 고난을 안고 살았다. 젊었을 적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했지만 결국 전도사의 길로 가지 못했다. 당대 유명한 화가였던 친척인 안톤 모베(Anton Rudolf Marve, 1838~1888)의 화실에서 유화를 그리면서 미술 수업을 받고 그림에 전념했으나 밥벌이도 못했다. 화방을 운영하던 동생 테오에게 그림을 주고 생활비를 받는 형식으로 생계를 이어갔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사랑에 성공한 적도 없다. 과부가 된 친척에게 사랑을 고백하기도 했고 심지어 매춘에 아이까지 임신한 여인과 동거도 한다. 그는 프랑스 아를에서 고갱과 사이가 틀어져 귀를 잘라버리는 기이한 행동을 했다. 결국 생레미(Saint Remy)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해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 sur Oise)에 머물다 29살 때 권총 자살을 한다. 살아생전 그가 판매한 그림은 붉은 포도밭 딱 한 점이었다. 그것도 동생 테오의 친구의 여동생이 구입해준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을 가장 많이 그린 화가이며 무수한 영화, 책자가 발간되어 전 세계인에게 사랑 받고 있다. 암스테르담의 고흐 미술관에 들르면 느껴지는 쓸쓸한 이유다. 그러나 가장 많은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고 고흐 그림들을 이용해 만든 여러 가지 소품이 탐이 날 정도로 아름답다. 암스테르담에서 고흐 미술관을 찾아야 할 이유 중 하나가 된다.


하이네켄 박물관.jpg

하이네켄 박물관.

 

 

하이네켄 맥주 저온실.jpg

하이네켄 맥주 저온실.

 

 

하이네켄 체험관.jpg

하이네켄 체험관.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하이네켄 맥주공장~안네 프랭크의 집~잔세스칸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 1885년 개관)도 필히 가봐야 할 곳이다. ‘렘브란트 하우스’에서는 볼 수 없는 렘브란트의 명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유명한 ‘야경’ 앞에는 사람들로 북적된다. 또 얀 베르메르(Jan Vermeer, 1632~1675)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등의 작품도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 베르메르는 렘브란트와 더불어 17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다. “화가의 아틀리에”는 사진과 똑같은 구도로 그려졌다고 밝혀졌다. 그 외에도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19세기의 신고딕 건축물 또한 볼거리다.


하이네켄 맥주 체험관(Heineken Experience)도 재미가 있다. 하이네켄의 역사는 물론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 발효실, 체험실 등을 순차적으로 보게 되는데 중간중간 시음을 할 수 있다. 현장에서 마시는 생맥주 맛이 일품이다. 그 외 ‘안네 프랑크의 집’(Anne Frank Huis)도 있다. “안네의 일기”는 이곳에서 2년간(1942년~1944년) 숨어 지내면서 쓴 일기장이다. 


Travel Point

찾아가는 방법: 대한항공과 네덜란드 항공(KLM)이 암스테르담 스키 폴 국제공항(Airport Schiphol)직항으로 운행. 약 10시간 소요.

현지교통: 시내 일일권 교통카드를 사면 편리하다. 지하철, 버스 등을 자유자재로 이용가능하다. 국철은 요금이 달라서 따로 표를 구입해야 한다. 운하가 많아 유람선을 타보는 것도 괜찮다.

음식정보: 굳이 전통 음식점을 찾아낼 필요는 없다. 시내 곳곳에는 무수한 식당이 있다. 음식은 대체적으로 맛이 좋다. 특히 암스테르담에서 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감자튀김(Friets)은 꼭 먹어봐야 할 간식꺼리다. 유명하다고 소문난 벨기에 보다 비교 안 되게 맛있다. 

숙박정보: 숙소는 고급체인호텔부터 게스트하우스까지 다양하다. 시내에서 떨어져 있더라도 1일권 교통권을 이용하면 이동은 어렵지 않다.

기타 정보: 암스테르담 시내 유명 박물관에 가서 직접 표를 사려면 긴 시간을 소요해야 한다.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하는 것도 좋지만 현지 여행사에서 구입하는 방법이 있다. 똑같은 가격대로 구입 가능하다. 또 네덜란드는 치즈가 유명하다. 치즈 투어를 하려면 이 역시 여행사에서 당일 투어를 신청하면 된다. 풍차마을 잔세 스칸스(Zaanse Schans)는 물론 마르켄섬~볼렌담까지 알찬 여행코스로 안내한다.

Copyright ⓒ woman.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 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1. 메인으로
  2. 기사목록
  3. 맨 위로
댓글달기
글쓴이    비밀번호 (숫자 4자리를 입력해주세요)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이번호 커버이미지
이번호
서점 이벤트
  • 예스24
  • 교보문고
  • 인터파크
  • 알라딘
  • 이달의 목차
  • 지난호보기
  • 정기구독
이마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