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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의 주요 흔적, 칸트 섬

2021-03-24 11:39

글·사진 : 이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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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는 동프로이센의 주도였던 쾨니히스베르크 도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여행자들은 러시아 구경이 아니라 쾨니히스베르크를 만나기 위해서 이 도시를 찾는다. 그러나 쾨니히스베르크는 세계 2차대전으로 폐허가 되어 거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중 현재의 칸트 섬이 복원되어 쾨니히스베르크 옛 모습을 가장 많이 보여준다. 섬에는 유서 깊은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이 있다. 붉은 벽돌 건물에 고딕 탑이 있는 대성당은 프레골랴 강을 정원 삼고 있어 그 아름다움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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쾨니히스베르크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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쾨니히스베르크 성당과 강.

 

칸트 섬과 프레골랴 강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이 있는 ‘칸트 섬’에 들어서면 섬인지 육지인지 도통 알 수 없다. 항공촬영이나 위성지도를 봐야만 프레골랴 강이 사각형으로 에워싸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프레골랴 강은 체르냐홉스크(Chernyakhovsky)에서 인스트루치(instuch) 강과 안그라파(Angerapp) 강이 합류하면서 시작돼 그 길이가 123km. 칼리닌그라드를 지나면서 발트 해의 비스툴라 석호(Vistula Lagoon)로 흘러 들어간다. 그 강줄기가 빚어낸 칸트 섬의 옛 이름은 크네이포프(Kneiphof)다. 프로이센의 옛말로 늪지대, 물이 범람하는 구역이라는 뜻이다. 크네이포프 섬에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 대성당이 있었다. 알베르티나 대학도 있었다. 현재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은 러시아에서 흔히 보는 정교회 건물과는 전혀 다른, 독일식 벽돌 고딕스타일의 성당이다. 복원된 칸트 섬(약 3만 평)에는 찬란한 쾨니히스베르크의 역사적인 흔적들이 복원되어 있다.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 남은 동프로이센 시대의 성당. 이 성당을 이해하려면 일단 칼리닌그라드의 역사부터 이해해야 한다.


프로이센 공국의 주도 쾨니히스베르크

러시아 서단(西端)에 위치한, 항구도시 칼리닌그라드 주는 프로이센 공국(1525~1618, 1701~1918)의 중심지였다. 동프로이센 시대의 주도는 쾨니히스베르크였다. 도시 시초는 1255년 튜턴 기사단이 성을 건설하면서다. 1457년, 튜턴 기사단의 본부가 세워지고 1525년, 프로이센 공국의 수도가 되었다.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하고 제국을 세웠을 때도 수도는 베를린이었지만 정신적 수도이자 왕도는 쾨니히스베르크였다. 이름 자체도 왕(쾨니히)의 도시(베르크)란 뜻이다.

쾨니히스베르크 미니어처.jpg
쾨니히스베르크 축소판.

 

왕국의 수도가 이전한 뒤에도 역대 프로이센 왕들은 이곳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1701년,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주의 선제후(選諸候) 프리드리히 3세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1세로 즉위식을 올렸다. 한자 동맹국이 되어 무역을 주도해 경제가 번성했던 쾨니히스베르크. 독일은 2차 대전에 패배하면서 가장 소중한 프로이센의 본토 대부분을 승자인 러시아와 피해자인 폴란드가 나눠 가져갔다. 길고긴 쾨니히스베르크 500년의 역사는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속에 묻혀 있다.


러시아 외톨이 도시 칼리닌그라드

칼리닌그라드는 1946년 소련의 정치인 미하일 칼리닌의 이름으로 바뀐 도시명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소비에트 시절, 칼리닌그라드는 중요한 전략적 위치를 차지했다. 부동항(不凍港)이기에 러시아 발트 함대의 중요한 근거지였다. 발트 함대는 1950년대에 이 도시에 본부를 두고 90년대 초까지 소련의 군사기지로서 출입을 금지시켰다. 그러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고 발트3국이 독립하자 러시아 본토와 떨어진 고립된 지역이 되었다. 2004년 칼리닌그라드와 이웃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유럽 연합에 가입하면서 칼리닌그라드는 유럽 연합에 둘러싸여 버렸다. 현재는 북쪽은 리투아니아, 남쪽은 폴란드, 서쪽으로는 발트 해에 접한 ‘끼인각’으로 칼리닌그라드는 다른 나라를 거쳐서 가야만 하는 대륙 속의 섬이 되고 말았다. 러시아 본토와는 완전히 분리돼 외톨이가 되었다. 러시아 전체에서 가장 가난하고 실업률이 높은 도시다.

성당벽화.jpg
성당 벽화.

 

14세기 튜턴기사단에 의해 건립된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

칸트 섬에 있는 대성당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본다. 붉은 벽돌 건물에는 두 개의 고딕식 탑이 있고 시계도 붙어 있다. 대성당의 정문 앞에는 청동으로 만든 미니어처(Miniature, ‘Symbols of Königsberg, 1930’)를 볼 수 있다. 성당의 뒤쪽(북동쪽)으로 가면 칸트 묘지가 있고 묘지 옆에는 알프레히트 공작의 동상이 있다. 성당 벽에는 오래된 몇 개의 벽화도 볼 수 있다. 본당 앞 쪽에는 표토르 대제 동상이 있다. 모든 것들이 이 성당과 연관된 것들이다.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은 1297년~1302년에 작은 가톨릭 성당으로 시작되었다. 1322년, 삼랜드(Samland) 주교인 요한 클레어(Johann Clare)가 크네이포프 섬 동쪽에 새 성당을 건축하게 된다. 처음에는 요새로 설계되었지만 튜턴 기사단 단장 루터 폰 브라운 슈바이크(Luther von Braunschweig, 1275~1335)의 반대로 종교 건물로만 지어진다. 대성당 건축이 시작되기 전에 습지 대지 위에 수백 개의 참나무 기둥을 땅에 박았다. 그 당시는 현재보다 훨씬 러프(rough)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1380년, 주요 건물들을 완공하고 성모 마리아(Virgin Mary)와 성 아달베르트(St Adalbert)에게 봉헌했다. 그래서 현재도 성모 마리아 대성당 또는 성 아달베르트라고 불린다. 공사는 14세기 말까지 계속되었다. 본당 내부는 멋진 프레스코 화로 장식하고 건물 정면에 탑 두 개와 첨탑 위에 인어 풍향계를 설치했다. 당시 이 대성당은 도시의 영적 중심지였고 건축과 장식은 신도들의 자부심이었다.

 

그러다 알프레히트 공작 시절에 루터교로 바뀌었다. 1528년부터 1945년까지 개신교였다. 그후 알베르티나(Albertine) 대학(1544년)이 설립되었을 때 성당도 이전한다. 16세기 중반, 대성당의 두 탑이 불타자 멋진 르네상스 스타일로 재건되었다. 19세기에 이르러 대성당은 어려운 시기를 맞이한다. 1807년, 나폴레옹의 군대가 도시를 점령했을 때 성전은 감옥으로 바뀌었고 조금 후에 병원으로 변했다. 다행히 프랑스 점령은 오래 가지 않았기에 대성당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1944년 8월 20일, 영국군의 3일 동안의 폭격으로 섬의 모든 것들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1945년 5월까지 성당에는 불에 탄 해골만 있었다. 소비에트 연방에서는 복원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복원은 1990년대에서야 시작됐다. 독일인들이 나서서 복원을 주도했다. 1996년에 복원된 현재 대성당의 부지에는 정교회와 개신교 예배당이 있고 탑 부분은 박물관과 컨서트 홀로 사용된다.


16세기 교육의 중심지, 알베르티나 대학교

칸트의 묘지 근처에 프로이센 공작인 알프레히트 호헨졸레른(Albrecht Hohenzollern, 1490~1568)의 동상이 있다. 알프레히트 공작은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은 물론 프로이센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알브레히트는 브란덴베르크의 공작으로 37대 튜턴 기사단의 마지막 단장이자 초대 프로이센의 공작이다. 그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공식으로 지지한 몇 안되는 군주이며, 폴란드에서 최초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공식 지지한 소수의 군주였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을 지지한 알브레히트는 1527년, 튜턴 기사단 단장을 발터 폰 카논부르크에게 넘겨주고, 로마 가톨릭에서 루터교로 개종했다.


특히 그는 1544년, 알베르티나 대학교(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전신)를 창립했다. 이 대학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개신교 아카데미(첫번째는 마르부르크 필립스 대학교(혹은 마부르크 필립스 대학교, Philipps-Universität Marburg)다. 그는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재를 털어 대학을 설립했다. 신성 로마 제국 내의 가톨릭 명문 대학인 폴란드 크라크프 대학에 대응해서 설립한 것. 알브레히트는 독일어 교재와 프로테스탄트 교리 문답집의 인쇄 비용도 자체 부담했다. 그는 루터교의 신학자인 안드레아스 오시안더(Andreas Osiander, 1498~1552)를 초대교수로 위촉한다. 1549년에는 천문학 서적의 번역과 발간에도 투자했다. 1551년, 안드레아스 헤스를 초빙해 쾨니히스베르크 성의 남쪽 성벽을 건설했다. 그밖에도 쾨니히스베르크의 공립 도서관을 설립했다.


대학은 처음에는 신학, 의학, 철학 및 법학, 나중에 자연 과학 등 4개의 대학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17세기에는 사이먼 다흐(Simon Dach)와 그의 동료 시인들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러시아의 표토르 대제도 1697년, 알베르티나 대학을 방문했다. 그의 동상이 있는 이유다. 칸트도 이 대학의 총장(1786~1788)이었다. 이 학자들은 후기 바이마르 고전주의와 독일 낭만주의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 유서 깊은 대학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알프레히트 공작의 동상

알프레히트 공작의 동상은 칼리닌그라드 탄생 750주년을 기념해 2005년에 설치되었다. 원래는 동쪽 벽 전체가 공작 알브레히트 기념비였다. 알브레히트 동상은 새로 만들어졌지만 남쪽 벽에는 오래된 두 개의 비문이 남아 눈길을 끈다. 이 비문은 알브레히트의 두 번째 부인, 안나 마리아(Anna Maria)와 아들(Bogislav Radzivil 왕자, 1669년 사망)이다. 알브레히트가 죽은 지 16시간 만에 안나도 역시 역병에 감염되어 같은 날 사망하게 되었다. 그가 사망하자 1570년~1571년에 기념비가 설치되었다. 당시의 기념물은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유명 조각가 코르넬리스 플로리스 드 블랑드트(Cornelis Floris Vriendt, 1514~1575)가 작업했다. 코르넬리스는 장례식 기념물 작업으로 유명한 조각가였다. 그 외에도 또 다른 비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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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리히트 동상.

 

 

칸트 무덤, 독일인 러시아에 잠들다.

성당의 뒤쪽(북동쪽)에는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무덤이 있다. 콜로세움 기둥이 세워진 건물 안쪽의 석관. 키릴 문자를 못 읽어도 석관이나 기념비에 적힌 그의 이름은 알아볼 정도로 쉽다. 이 성당에 교수의 무덤이 생긴 것은 1558년부터다. 알베르티나 교수들은 성당 북쪽 벽에 안장할 수 있었는데 1804년, 칸트가 성벽에 안장된 마지막 인물이었다. 1924년, 철학자의 사후 200주년이 다가옴에 따라 새로운 기념관을 짓기로 한다. 칸트의 무덤 위에 신 고딕 양식의 예배당이 세워졌다. 화강암 묘비 주변에 13개의 열주 기둥을 만들었다. 실제의 유골은 보여지는 석관보다 훨씬 더 깊숙이 들어가 있다.

칸트의 무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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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묘지.

 

표토르 대제 동상과 컨서트 티켓

성당 정문 입구에 표토르 대제(1672~1725) 동상이 있다. 대성당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은 위치에 서 있다. 총을 세로로 세워 들고 있는 기념 동상이다. 표토르는 쾨니히스베르크를 두 번 방문했는데 첫 방문은 1697년(25세). 표토르는 국가의 군대를 강화하는데 도움이 될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비밀 여행을 하고 있었다. 쾨니히스베르크에 도착한 그는 피터 미하이욜로프(Peter Mikhaylov)라는 가명을 사용하면서 프레드릭부르크 요새(Fort Friedrichsburg)에서 공부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폭탄 발사기술로 칭찬을 받았다. 그때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동상에는 그의 젊은 얼굴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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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표토르 대제 동상.

 

동상 앞쪽에서는 대성당의 오르간 연주 티켓을 팔고 있다. 러시아 여행 때 휴장기를 맞아 공연을 못 본게 아쉬워서 기꺼이 티켓을 구입한다. 연주회 날짜는 이틀 뒤여서 칼리닌그라드에서 하루를 더 머물게 된다.(계속)

 

Data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 

주소: Kanta St, 1, 칼리닌그라드, 전화: (+7)4012 63 17 05/sobor-kaliningrad.ru


칼리닌그라드웹사이트: 

https://visit-kaliningrad.ru/https://www.inyourpocket.com/kaliningrad/전화:+7 (4012) 45 38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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