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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림과 함께하는 홈문화 13]차 한 잔의 위안

2021-02-22 09:35

글 : 백정림 하우스 갤러리 이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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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겨울밤이 이어지는 엄동설한의 한가운데다. 저녁 여섯 시도 되기 전에 어두워지고 쌀쌀해지는 날씨 탓이기도 하지만,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코로나의 영향으로 사람과의 대면을 멀리하며 귀가를 서두른다. 저녁도 비교적 일찍 먹게 되고 어둔 밤에는 자연스럽게 따끈한 차 한 잔을 하게 된다. 요즘같이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는 일과를 마친 후 안락한 집에서 여유롭게 마시는 차가 하루의 끝에 접하는 일상의 몇 안 되는 기쁨이자 위안이다. 일회용 컵에 마셔도 어색할 것이 없는 커피와 달리 차는 조금은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예쁜 찻잔에 마셔야 제격인 듯 여겨진다. 동양에서 시작된 차이지만 우리가 요즘 접하는 홍차 문화는 유럽을 통해 새롭게 전해진 것이다. 이렇듯 우리 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차 문화도 예전에는 유럽에서 호사스러운 의례였다. 차가 유럽에 처음으로 전해졌을 때 차는 비싼 수입품이었고 찻잔 또한 먼 동양에서 온 귀한 산물이었다. 

차가 중국에서 시작된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이러한 동양의 차 문화는 언제부터 서양에 전해졌을까?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었던 15세기 후반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동양의 차 문화가 유럽에 전해졌다. 도자기와 함께 전해진 차 문화는 유럽인들에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극동의 나라에 대한 호기심과 경외심을 갖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당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상하수도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매우 열악한 환경에 있었고 수질 또한 좋지 않았기에 음료로서 차 문화의 보급은 상류층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퍼져나갔다. 유럽인들이 차를 처음 접했을 때 사용했던 잔은 물론 중국에서 건너간 것이었다. 그들이 접했던 찻잔은 손잡이도 잔 받침도 없는 것이었다.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최초로 유럽에 전해졌던 차는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졌고 유럽인들은 다과를 곁들여 차를 마셨다. 그래서 티 볼과 함께 접시가 수입되었고 찻잔과 같은 무늬의 접시를 잔 받침으로 추가해서 사용했다. 도자기의 소유가 부와 권력의 척도였던 시대였기에 누군가 찻잔과 같은 무늬의 접시를 볼 밑에 받쳐 차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유행처럼 퍼져나갔을 것으로 생각된다. 약으로 인식된 차는 가격 또한 고가여서 소량의 차를 지금의 에스프레소 잔만큼이나 작은 티 볼에 담아 마셨다. 뜨거운 티 볼을 손으로 잡고 먹는 것이 매우 불편하게 여겨졌고 이것을 해소하고자 고안해낸 것이 잔 받침에 차를 따라 마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잔 받침의 모양도 오목한 형태로 바뀌게 되었고 뜨거운 찻잔을 잡는 부담도 덜 수 있었다. 1740년경에 찻잔에 손잡이가 붙여졌지만 차를 잔 받침에 따라 마시는 습관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어져 빅토리아 시대에도 여전히 잔 받침에 차를 따라 마시는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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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 년을 오롯이 코로나의 영향 아래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늘어난 것 중의 하나가 택배와 배달음식일 것이다. 그리고 배달음식의 꽃은 누가 뭐래도 중국 음식일 텐데, 탕수육을 먹을 때 일명 ‘부먹찍먹’파가 있듯이 영국에서도 홍차가 대중화되면서 ‘홍차에 우유를 넣는지’ 아니면 ‘우유에 홍차를 넣는지’로 사람들의 신분이 나뉘던 때가 있었다. 유럽은 근대 이전까지 오랫동안 나쁜 수질로 고생했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영국인들은 식물의 뿌리를 넣어 물을 끓여 마시는 것에 익숙했다. 홍차가 영국에 처음 들어갔을 때 그들의 오랜 습성으로 인해 홍차 또한 우려서 마시지 않고 끓여서 마셨다. 그렇게 끓인 홍차는 떫은맛이 났고, 이러한 떫은맛을 완화하기 위해 영국 사람들은 우유와 설탕 그리고 레몬즙을 넣어 마시기 시작했다. 맛을 위해 홍차에 첨가된 설탕 또한 고가의 수입품으로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기에도 적절한 기호품이었다. 귀족들과 부유한 중상공인들인 상류층은 홍차를 듬뿍 넣은 후에 우유를 살짝 넣어 마셨고, 홍차를 마시고는 싶으나 아껴 먹어야 하는 일반 사람들은 홍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우유를 먼저 많이 넣고 홍차는 조금만 넣는 방법으로 찻잎을 아끼면서 티타임을 즐기는 방법을 택했다. 우리의 ‘부먹찍먹’에는 신분과의 연관이 없지만 영국의 ‘홍차 먼저 우유 먼저’에는 이처럼 깊은 사연이 있으니 흥미로운 일이다. 
 
사실 차가 대중들의 기호품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홍차의 귀한 몸값으로 인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쌈 지역에서 1820년대에 차가 생산되기 전까지 차는 왕실에서도 귀히 여기는 비싼 기호품이었다. 1662년에 영국 찰스 2세에게 시집온 포르투갈 공주 캐서린 왕비에게서 소개된 차는 영국인들의 본격적인 차 문화의 시작을 알렸다. 캐서린 왕비는 결혼 지참금으로 인도 뭄바이와 함께 7척의 배에 설탕과 향신료 그리고 차를 가져왔다. 당시 영국인들은 나쁜 수질로 인해 여성이나 남성 모두 아침부터 저녁까지 맥주의 일종인 에일(ale)과 와인을 마셨으며, 그래서 누구나 매일 술에 절어 지냈다. 알코올로 인해 많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던 그 시기에 차 애호가였던 캐서린은 남편의 바람기로 외로운 심경을 귀족 부인들을 불러 궁정에서 함께 차를 마시는 것으로 달랬다. 여왕의 취미는 고상하고 고급스러운 취향으로 받아들여져 상류계층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 더욱이 비싼 홍차는 때마침 불어닥친 ‘고급품의 소비를 통한 신분 과시’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점점 더 인기를 얻게 되었다.
 
영하 십 몇 도의 추위가 이어지는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은 음료 그 이상을 넘어 하루의 고단함을 다독여주는 위안이 되는 듯하다. 차 고유의 향을 오롯하게 느낄 수 있는 스트레이트 차도 좋고, 영국인들이 즐겨 마시듯 따끈한 우유를 스티밍해서 설탕을 넣어 마시는 밀크티도 좋을 것이다. 어린 시절 눈 오는 날이면 더욱 간절했던 찹쌀떡의 유혹처럼 17세기 서양의 문화를 뒤흔들어놓았던 홍차 한 잔의 위안은 겨울철이면 더욱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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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림은…
하우스 갤러리 이고 대표. 한국 앤티크와 서양 앤티크 컬렉터로서, 품격 있고 따뜻한 홈문화 전도사다. 인문학과 함께하는 앤티크 테이블 스타일링 클래스와 앤티크 컬렉션을 활용한 홈 인테리어, 홈파티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고갤러리: 02-6221-4988
블로그: blog.naver.com/yigo_gallery 
인스타: yigo_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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