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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큐레이터 유기선의 <자본의 방식> 35]99.99%의 행운

2020-11-26 11:34

글 : 유기선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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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를 아무리 많이 관찰했더라도
모든 백조가 희다고 추론할 수는 없다.
단 한 마리의 검은 백조가 발견되면 반증될 수 있다.”

18세기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인성론(A Treatise of Human Nature)』에서 이렇게 적었다. 18세기 말에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으로 이주하는 유럽인들은 검은 백조와 마주했다. 검은 백조는 ‘백조는 희다.’라는 경험 법칙을 완전히 무너트렸다.

 

미국의 경제학자 나심 탈레브는 예측할 수 없는 극단적인 경제현상을 데이비드 흄이 말한 블랙스완(Black Swan)에 빗대어 설명했다. ‘블랙스완’은 기대하거나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일이 갑자기 발생하는 경우를 뜻한다. 탈레브는 “우리가 경험 법칙이 성립되지 않는 흑조들의 세계에 살고 있다”라고 말한다. 과거의 경험으로 검은 백조의 존재 가능성조차 파악하는 것도 어렵지만, 검은 백조가 없다고 단정 짓는 것은 더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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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간과 자연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을 정규분포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대학생(남)을 대상으로 키를 조사하면 1.5m 이하와 2m 이상은 거의 없지만, 1.7m 이상 1.8m 이하는 많다. 특정 값이 나올 확률은 평균 근처로 갈수록 커지는데, 조사량이 많을수록 평균값을 중심으로 넓게 퍼지는 분포가 구체화된다.

 

정규분포는 우리 사회에 일어날 법한 것을 통계적인 수치로 표현했을 때의 모습이다. 이에 대해 영국의 수학자 이언 스튜어트는 “통계학의 활용은 우리 세계를 몰라보게 향상시켜 왔다”라고 했다. 하지만 금융시장에서는 정규분포가 빈번하게 무시된다. 이는 마치 1.5m 이하와 2m 이상인 경우가 자주 발견되는 것과 같다. 분포상 양쪽의 꼬리가 두꺼운 펫 테일(fat tail)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양쪽의 꼬리가 두꺼워질수록 평균에 집중될 확률은 낮아지고 예측은 맞지 않는다. 이례적인 현상들이 자주, 그리고 크게 나타날 수 있다.

 

1998년, LTCM(Long-Term Capital Management, 채권 트레이더인 존 메리웨더가 설립한 미국의 헤지펀드이다.)이라는 펀드운용 회사는 러시아 모라토리엄(라틴어로 `Morari’는 `지체하다’를 뜻한다.)이라는 두꺼운 꼬리 사건(가능성이 낮은)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수년간 벌어들인 돈을 한순간 잃어버릴 가능성은 0.00000000 … 00000001 (0의 개수가 100여 개에 달한다)에 불과한 25- 표준편차 사건이 발생했다고 언급했다. 이 확률은 지구 역사상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만큼 매우 희박하다.

 

LTCM은 러시아 장기국채의 가격은 저렴하고 미국 국채의 가격은 비싸다고 판단했다. 저렴한 러시아 국채는 오를 것에 배팅했고, 미국 국채는 내려갈 것이라는 데 배팅했다. 이제 러시아 국채의 인기가 높아져 국채가격이 상승(이자율 하락) 하거나 미국 국채가격이 하락하면 큰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국가부도를 뜻하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러시아 국채의 인기는 더욱 시들었다. 러시아 국채가격은 급락했지만 안전자산으로 손꼽히는 미국의 국채가격은 급등했다. LTCM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이 펀드는 대체로 채권 간의 가격 차이가 벌어지는 것을 활용했다. 채권의 금리 차이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발행된 것일수록 찾는 이들은 많기에 유동성은 높다. 그만큼 프리미엄이 붙어서 비싸다. 헌것은 새것보다 좀 더 싸거나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다. 물론 이 차이는 ‘새것’이 나오면 거의 사라진다. LTCM은 이러한 차이가 사라질 것이라는 데 배팅했다. 인기가 많은 새것은 공매도하고 헌것은 대량으로 사들였다. 공동 설립자 로젠펠드는 인터뷰에서 “안전한 만큼 큰돈을 벌 수 없다는 단점을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로 극복했다”고 언급했다. 투자원금의 100배가 넘는 자금을 차입하면서 미미한 수익을 극대화했다.

 

이들의 세계관은 간단하다. 가격은 궁극적으로 균형점을 향해간다는 것이다. 가능성 99.99% 이상의 확률로 시장은 당연히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LTCM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특별한 사건 같은가? 이러한 위험성에 우리도 노출되어 있다.

 

만약 1,000번 중 999번의 확률로 1달러를 받고 나머지 1번은 2천 달러를 줘야한다는 게임이 있다면, 당신은 99.9%의 확률로 계속 1달러를 벌기 위해 게임에 참가할지 모른다. 아직까지 손실을 본 사람이 없다는 얘기를 들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당신은 언젠가 2천 달러를 토해내야 하는 시점이 도래한다. 어제도 1달러를 받았기 때문에 오늘도 1달러를 받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큰 낭패를 보게 된다. 탈레브는 “우리는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라고 말한다. 그가 보는 현실은 더욱 위험하다. 앞선 게임은 최대 손실이 2천 달러에 그치지만, 현실에서의 손실 규모는 가늠조차 안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배팅이 손실이 아닌 이익으로 끝날 수도 있다. 불확실성 뒤에는 행운이 자리한다. 행운은 확률적으로 무작위적이다. 로또는 수많은 사람들 중 단 몇 명에게는 깜짝 놀랄 만한 행운을 주면서도 당첨자는 끊임없이 나온다. 로또라는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행운의 크기도 커진다. 탈레브는 로또에 당첨될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행운의 손 덕분이므로 우리는 성과에 겸손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또다시 당첨될 것이라고 복권을 마구 사는 짓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는 과거 수익률이 좋은 펀드가 앞으로도 좋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과 같다. 탈레브는 “과거의 뛰어난 실적을 당사자의 능력으로만 보는 것은 효과적인 분석방법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항상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면 매우 행복해한다. 동시에 행운이 또 올 것이라는 허황된 꿈을 꾸게 된다. 탈레브는 ‘운’이 당신을 찾아오더라도 끊임없이 리스크 관리에 힘을 쏟으라고 말한다. 운이 찾아온 것은 절대 당신이 똑똑하거나 시장을 예측하는 능력이 좋아서가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면에는 상당한 운이 따라줬지만, 그것을 자신의 능력으로만 치부해서 끝내 모든 것을 잃는 사람들도 많다. 확률에 의존하는 도박사들은 게임에서 이기는 횟수가 증가할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시한다. 그리고는 끝내 모든 것을 잃고 시장을 떠났다. 탈레브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99.99%에 달하는 행운에 속지 말아라.”

 

 

이 글은 <자본의 방식>(행복우물출판사)의 일부분입니다.

 

경제 큐레이터 유기선은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금융시장과 경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여러 학자들의 사상을 거슬러 올라가 ‘돈과 자본이란 어디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가?’에 대한 의문을 토대로 금융의 역사와 철학, 금융을 움직이는 심리 등에 관한 글을 썼다. 그 중 인사이트가 있는 ‘자본과 관련된 48가지 이야기’를 추려서 쉽게 단순화했다. 저자가 집필한 <자본의 방식>은 ‘2019년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사업’ 선정작품으로 당선되었다. 우리 삶에 가장 가까이 있지만 먼 듯한 이야기, 돈과 자본에 대한 통찰력있는 큐레이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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