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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림과 함께하는 홈문화 10]가을, 찻잔의 미학

2020-11-20 08:50

글 : 백정림 하우스 갤러리 이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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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싶었는데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몸을 움츠리게 하는 쌀쌀함이 느껴진다. 몇 달 지나면 나아지려니 했던 유례없는 세계적 전염병이 우리의 일상에 파고들어 이젠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익숙해질 정도다. 이렇게 속절없이 한 해를 보내게 되나 하는 섭섭한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하지만 만추 속에서 한 가지 일상 속 위안은 따뜻한 차 한잔이 더욱 맛있게 느껴지는 계절이 왔다는 것이리라.

 차의 기원은 인류 역사에서 매우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100가지 풀을 맛보다가 독초에 중독되었던 신농이 찻잎을 먹고 독을 해독했다고 한다. 신농은 기원전 2,700년경 전설상의 임금이니 차의 역사는 약 5,000년이나 되는 셈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차가 세계 각국으로 전해지게 된 것에는 불교 전파와 관련이 있다. 수양하는 승려들은 정신을 맑게 하고 피로를 없애준다고 하여 차를 애용했고 사원에는 항상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승려들이 세계 각국으로 불교를 전파하면서 차도 함께 전해졌다.

그러나 차가 유럽에서 그토록 각광을 받게 된 배경에는 차 자체의 효능이나 독특함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16세기를 거쳐 17세기가 되었을 때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왕권이 강화되면서 신항로를 개척하고 무역을 통한 부를 누리는 계층이 생겨났다. 바로 왕족과 귀족, 그리고 직접 무역 전선에 있었던 상공인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부를 과시하며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서 일반인이 가질 수 없는 차별되는 독특한 것을 소유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이때 가장 적절한 과시 수단으로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값비싼 도자기였다. 머나먼 동양에서 온 도자기는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값 또한 엄청나서 고결한 자신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데 적격이었고, 이것과 짝을 이루는 것이 동양에서 건너온 차였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 힘입어 차의 인기와 수천만 점의 중국 도자기가 네덜란드와 영국 동인도회사를 통해 유럽으로 흘러들어갔다. 경덕진에서 만든 청화백자에 새겨진 중국 풍광이나 꽃과 새의 아름다운 도안은 중국에 관한 로망으로 이어졌고, 로코코 예술의 탄생을 촉발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서양에서는 고온에 견디는 경성 도자기를 만드는 노하우가 없었기 때문에 많은 왕족과 귀족들이 그 진귀함과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중국의 찻잔은 하얗고 반대편이 비칠 정도로 얇지만, 내구성은 서양에서 만든 자기 그릇을 훨씬 능가했다. 많은 유럽의 왕족들은 열광적으로 도자기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특별히 도자기를 전시하는 방을 만드는 사람도 생겨났다. 17세기 중반에는 유럽 상류층들의 자기 수집 열병으로 인해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이 해외로 유출되었다.

높은 수입 관세와 급증하는 도자기에 대한 수요로 인해 유럽 각국에서는 중국과 일본 도자기의 내구성에 견줄 만한 도자기 개발을 경쟁적으로 서둘렀다. 최초의 성공적인 시도는 독일 작센의 마이센 지방에서 이루어졌고 마침내 중국 도자기에 버금가는 단단한 경성 도자기가 유럽 최초로 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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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유럽인들은 각 나라의 실정에 맞는 도자기를 발 빠르게 생산하며 중국 자기의 단순한 모방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도자기를 생산해냈다. 1740년 즈음에 손이 뜨겁지 않도록 손잡이를 붙인 찻잔이 제조되었고, 이때부터 차받침이 아닌 찻잔을 직접 들고 차를 마시게 되었다. 1748년 폼페이 유적 발굴을 계기로 ‘신고전주의’가 유행하게 되면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적인 미가 다시 부활되었다. 신고전주의 찻잔에는 포도무늬, 화관 모양, 여신, 조개, 신화 등의 고전적인 소재가 많이 그려졌다.

1761년 웨지우드는 소득이 적은 노동자 계급도 구입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연구했다. 그 결과 유백색의 경질도기인 크림웨어(creamware)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후 크림웨어는 조악한 저급 도자기와 최고급품과의 중간을 노린 ‘실용 도자기’의 대명사가 되어 많은 가정에 보급되었다. 1780년경에는 중국의 풍경을 그린 ‘윌로우 패턴’이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윌로우 패턴은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소나무, 버드나무, 누각, 다리, 배 등과 같이 전형적인 중국 산수화가 그려진 것이었다. 윌로우 패턴의 찻잔을 통해 영국인은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대영제국의 영광을 실현했던 빅토리아 시대에는 자수성가한 중산층이 급증했고 이러한 사회적 배경으로 개인주의가 퍼져나갔다. 찻잔에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전해져서 차를 마시는 당사자를 위한 장식이 유행했다. 바로 찻잔 밖이 아니라 찻잔 안에 문양을 새기는 방법으로 요즘에도 빅토리안 시대의 앤티크 찻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양식이다.

거리의 풍경은 어느덧 늦가을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고, 차와 함께 계절의 정취에 빠지고픈 마음이다. 오늘 오후에는 간편한 머그 대신 예쁜 찻잔 하나를 꺼내어 느닷없이 다가와 있는 만추의 날씨를 마음으로 가득 안아보는 것은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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