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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큐레이터 유기선의 <자본의 방식> 33]위기의 진원지

2020-10-26 15:47

글 : 유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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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빅 쇼트>의 주인공 마이클 버리는 이렇게 말한다. “내 생각에 그들(월스트리트)은 자신들이 무엇을 만들었는지 모르는 것 같아. 지금 시장은 상환되지 못하는 대출들로 꽉 차있어. 이것은 시한폭탄이고, 나는 이것을 이용할 거야.”

영화 <빅 쇼트>의 주인공 마이클 버리는 이렇게 말한다.

 

“내 생각에 그들(월스트리트)은 자신들이 무엇을 만들었는지 모르는 것 같아. 지금 시장은 상환되지 못하는 대출들로 꽉 차있어. 이것은 시한폭탄이고, 나는 이것을 이용할 거야.”

 

버리는 미국 금융시장이 곧 붕괴될 것이라는 데 모든 돈을 걸었다. 마침내 그의 말대로 시장은 붕괴되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여기서 ‘모기지(mortgage)’란, 주택담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증권을 발행한다는 뜻이다.) 사태는 ‘주택가격이 하락하면서 주택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벌어진 일’이다. 여기에는 네 명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집을 사려는 자, 은행(상업은행), 월스트리트(투자은행), 전 세계의 투자자다.

 

은행은 돈을 빌려줄 때, 당신이 갚지 못할 것을 대비해 주택을 담보로 잡는다. 이 주택 담보물은 월스트리트에서 증권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 투자자에게 판매된다. 쉽게 말해 담보 물건인 주택이라는 재료로 만든 ‘증권’이라는 종이 조각을 파는 것이다. 증권에는 돈을 빌린 사람과 언제까지 갚을 것이라는 것이 적혀있다. 증권을 소지한 자는 돈을 빌려 간 사람들의 원금과 이자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산 것이다. 이 권리는 은행과 월스트리트를 거쳐 전 세계의 투자자 손에 쥐어졌다. 만일 은행에서 돈을 빌린 사람이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하면 가장 큰 피해자는 은행이나 월스트리트가 아니라 투자자들이다. 이들은 얼굴도 모르는 미국인이 집을 사는데 빌린 돈을 갚을 것이라는 데 배팅했기 때문이다. 이를 주택 담보 증권(MBS)이라고 한다. 이 증권에는 이렇게 쓰여 있을 것이다.

 

“서브 프라임 증권을 사는 순간,
당신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미국인이 돈을 잘 갚도록
기도 드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증권을 산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저위험 고수익(low risk high return)이다. 월스트리트는 이런 심리를 이용한다. 증권을 묶어서 등급에 따라 고수익과 저수익을 나눴고, 신용평가사(무디스, 피치 등)는 수수료를 벌기 위해 묻지 마 도장(최고 등급 AAA)을 찍었다. 잉크 값으로 돈을 버는 이들은 도장을 최대한 많이 찍어야 했다. 그것만이 유일한 목적이다. 신용평가사는 자신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품에 도장을 찍었고, 월스트리트는 마케팅에 활용했다. 안전한 자산이라고 홍보하면서 말이다. 집값이 올라갈 때는 이러한 무리수가 통했다.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집을 경매 처리했고, 집값이 오른 만큼 시세 차익을 누릴 수 있었다. 실제로 미국의 집값은 계속 오르고 있었고 가격이 상승할 때는 그 누구도 손실을 보는 이가 없었다. 전 세계의 투자자는 수익을 냈고, 월스트리트와 은행은 수수료를 챙기고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얻었다.

 

하지만 집값이 하락하자 집을 팔거나 경매로 처분되어도 대출금을 다 갚지 못했다. 돈을 빌린 입장에서는 갚지 않는 것이 더 나았다. 문제는 월스트리트의 태도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위험을 줄이기보다는 활용할 방안으로 ‘보험’을 만들었다.(이 보험(신용부도스와프-CDS)은 원금이나 이자를 지급받지 못할 위험에 대비한다) 그리고 미국의 주요 보험사 AIG는 월스트리트의 자산을 평가하고 위험을 측정한 뒤, 보험료를 받아 갔다. 자동차 운전자인 월스트리트는 보험 가입으로 자신이 지닌 신용위험(돈을 받지 못할 위험)을 감소시켰다. 모두가 보험 가입하자 마치 AIG가 모든 위험을 흡수하는 듯 보였다.

 

2007년부터 집값이 하락하자 AIG는 보상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보험금을 줄 여력이 없었다. 대형 사고가 날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AIG의 한 임원은 미국의 주택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를 줄 알았다고 답했다. AIG 파산은 곧 월스트리트의 붕괴였다. 돈을 빌려 간 사람들은 집값이 하락하자 원금과 이자를 갚기가 어려워졌고, 담보는 부실해졌다. 담보로 만든 각종 상품들도 동시에 무너졌다. 거대한 경제 공동체인 월스트리트를 위해 미 정부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다.

 

월스트리트가 시장에 뛰어든 이유 단 한 가지, 돈이다. 이들은 파티가 끝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규제는 뒤편으로 밀려났다. 월스트리트는 적극적으로 불법 로비를 했고 은행은 적극적으로 대출했다. 정부는 더 많은 세금을 걷을 수 있었고, 집을 구한 사람들이 던져주는 표에 매료되었다. 손해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월스트리트의 탐욕이 거셀수록 미국에서는 집을 구하기 쉬워졌으나 위험은 커졌다.

 

물론 월스트리트가 판매한 상품들은 그 자체로 위험하지 않다. 주택담보물은 증권으로 판매해서 담보물이 갖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고, 보험은 위험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일시적이거나 적당한 규모는 모두가 위험에서 해방되는 좋은 방법인 셈이다. 하지만 무분별한 발행과 계약으로 구조는 복잡해졌고, 위험은 고스란히 축적되었다. 돈을 빌린 미국인들이 갚지 못할 위험은 고스란히 남았고, 집값 하락으로 돈을 갚지 못하자 위험은 전 세계에 퍼져있는 투자자로 향했다. 서브 프라임 사태가 터지자 은행의 말만 믿고 증권을 사게 된 사람들은 거리로 쫓겨났지만, 은행들은 거리로 쫓겨난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다시 일어섰다. 투자자로부터 엄청난 수수료를 벌어들이더니, 위기가 닥치자 투자자가 낸 세금으로 지원을 받아 다시금 일어섰다. 이것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진실이며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누가 마지막에 폭탄을 손에 쥐고 있는가? 마지막까지 폭탄을 손에 쥐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 상품이 무엇인지, 어디서 판매되어 여기로 온 것인지도 몰랐다. 위기의 진원지인 월스트리트가 만든 상품에는 이렇게 적혀있을지 모른다.

 

‘위험은 어디로 도망가지 않았다.
우리는 위험을 당신에게 넘겼을 뿐이다.’

 

 

이 글은 <자본의 방식>(행복우물출판사)의 일부분입니다.

 

경제 큐레이터 유기선은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금융시장과 경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여러 학자들의 사상을 거슬러 올라가 ‘돈과 자본이란 어디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가?’에 대한 의문을 토대로 금융의 역사와 철학, 금융을 움직이는 심리 등에 관한 글을 썼다. 그 중 인사이트가 있는 ‘자본과 관련된 48가지 이야기’를 추려서 쉽게 단순화했다. 저자가 집필한 <자본의 방식>은 ‘2019년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사업’ 선정작품으로 당선되었다. 우리 삶에 가장 가까이 있지만 먼 듯한 이야기, 돈과 자본에 대한 통찰력있는 큐레이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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