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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미약 앤틱 이야기44]동양을 향한 오랜 열망, 마이센 도자기로 피어나다!

2020-10-15 14:36

글·사진 : 백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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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초기 마이센부터 빅토리안 시대까지의 독일과 영국의 도자기입니다.

도자기의 영어 이름이 'china'라는 것에서 알수 있듯이 도자기는 역사적으로 전형적인 중국인들의 특산품입니다.15세기부터 중국의 차, 비단은 이슬람을 거쳐 꾸준하게 유럽 시장으로 유입되었고, 이전까지 이슬람 지역에 다량 수출된 중국 도자기 역시 육상, 해상으로 연결되는 이슬람 교역로를 통해 이탈리아에 상륙하면서 본격적으로 유럽 사회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중국 도자기가 유럽 사회를 휩쓸게 된 데에는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는데, 사치품으로서 중국 도자기가 지녔던 사회경제적 가치가 초기 중국 도자기 열풍의 주된 요인이었습니다. 유럽에 도착한 온전한 고품질의 중국 도자기는 원거리 교역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특성이 더해져 18세기 대량 유입 시기 전까지 유럽 사회에서 최상품의 사치재로 통용되었습니다.


16세기 이후 유럽 사회 내에서의 사치품 소비 증가와 소유를 통한 지위 과시라는 두 가지 사회 풍조는 중국도자기의 유입과 결부되어 고가의 중국 도자기를 소유하는 것이 소장자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부유함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실제로 귀족들은 ‘자기 진열실’을 만들어 자신이 소유한 중국 도자기를 전시함으로써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과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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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의 마이센 쎈터피스입니다.

유럽의 폭발적인 도자기 수요로 인해 막대한 양의 은이 중국으로 유출되었고, 이로 인해 국가의 부를 상징하는 은의 보유량이 심각하게 줄어드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유럽의 여러 왕은 물론 각 지역의 권력자들도 앞다투어 백색 자기를 스스로 개발하기 위한 노력과 투자를 경쟁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중국에서 수입되던 ‘백색의 금’이라 불리던 도자기를 제조하기 위해 앞 다투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독일의 아우구스트2세도 화려한 생활로 바닥난 금고를 채울 욕심으로 당대에 유명했던 연금술사인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를 연금시킨 채 백색자기를 개발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오랜 실패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1710년 유럽 최초의 백색자기가 작센의 마이센지방에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유럽은 도자기에 있어서의 오랜 동양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하게되고, 이후 서양의 도자산업은 산업혁명의 주축이 될만큼 그들의 경제역사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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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의 마이센 쎈터피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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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림은
하우스 갤러리 이고의 백정림 대표는 한국앤틱과 서양앤틱 컬랙터로서, 품격있고 따뜻한 홈문화의 전도사이다. 인문학과 함께하는 앤틱 테이블 스타일링 클래스와 앤틱 컬랙션을 활용한 홈 인테리어, 홈파티 등을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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