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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어부바 사랑’의 의미

2020-10-11 09:05

글 : 이어령  |  사진(제공) :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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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바 문화의 원형은 모자관계에서 생겨났다. 그것은 어른이 아이를 업어주는 관계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업어주는 거다. 엄마가 아이를 업고, 장성한 자녀가 연로한 부모를 업는다. 이는 생명에 대한 배려이자 상대에 대한 사랑이다. 업어서 좋고, 업혀서 좋다.
“소낙비는 내리고요, 허리띠는 풀렸고요, 업은 애기 보채구요, 광우리는 이었구요, 소코팽이 놓치구요, 논의 뚝은 터지구요, 치마폭은 밟히구요, 시어머니 부르구요, 똥오줌은 마렵구요…” 어떤 날 보채는 아기 포대기로 업고 요리 갔다 저리 갔다 얼러대는데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영락없는 이 노래의 엄마 꼴이다.

하성란 작가의 소설 <그 여름의 수사>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농촌에서 아기를 포대기로 업고 숨이 가쁘도록 일하는 시골 아낙네의 모습과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자신의 모습이 여실하게 그려져 있다. 이 글에 나오는 두 엄마는 시대도 사회도 하는 일도 다른데 모두 아기를 등에 업고 있다. 포대기로 업은 거다.

안을 때도 포대기로 안아주고, 업을 때도 포대기로 업을 수 있다. 안겨도 업혀도 품는 문화고, 포대기를 둘러 등으로 업으면 어부바가 된다. 포대기 하나로 깔고 덮고 안고 업는다. 포대기 천은 끈까지 달려 그야말로 원 소스 멀티 유스의 융통성 있는 디자인으로 되어 있다. 도둑이 들어올 때는 ‘쓰고’ 와서, 나갈 때는 ‘싸’가지고 나가는 보자기 문화의 연장이다.


“안아줘도 깽깽, 업어줘도 깽깽, 어쩌라고 깽깽”

한국의 옛날 어머니들은 포대기 하나로 아기를 가슴에 품고 등으로 업는다. 아기들은 낯선 세상 밖으로 나와도 이 포대기의, 한국 특유의 ‘품는 문화’와 ‘업는 문화’ 안에서 양수와 다름없는 따스한 환경 속에서 지낸다.

“안아줘도 깽깽, 업어줘도 깽깽, 어쩌라고 깽깽”이라고 애 업고 꾸짖듯이 부르던 노랫말이 생각난다. 아이들은 철이 없다. 말이 통하지도, 힘이 통하지도 않는다. 그저 우는 아이 앞에 장사 없다. 이 노래를 뒤집어 해석하면 아무리 깽깽대던 아이라 해도 가슴에 안고 등에 업으면 금세 잠잠해지고 거짓말처럼 잠이 든다는 거다. 아기는 본래의 천사로 돌아간다. 우는 아이를 그치게 하는 방법은 딱 하나, 안아주고 업어주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말이다. 안아주고 업어주는 한국의 그 포대기 문화가 없다면 아이가 ‘깽깽’거릴 때 어떻게 할까.


‘업는다’는 것, ‘업힌다’는 것

닭이나 개나 말을 업을 수 있는가? 업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살아 있는 인간뿐이다. 업히려는 의지와 마음이 있어야 한다. 애를 업으려면 묶어야 한다. 자신의 몸과 결합시켜야 한다. 끈으로 묶거나 포대기로 싸야 한다. 묶으면 물건이 된다. 포대기로 싸면 생명체는 그 안에서 자유롭게 꿈틀대고 움직이고 자세를 바꿀 수 있다.

‘업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업힌다’는 것은 무엇인가. 약자가 강자를 업는 것은 어부바 문화가 아니다. 가마꾼이 가마 탄 사람을 메는 관계도 아니다. 그것은 이해관계에 불과하다. 업혀서 미안하고, 업어서 힘겨운 관계가 아니라는 거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어부바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부바 문화의 원형은 모자관계에서 생겨났다. 그것은 어른이 아이를 업어주는 관계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업어주는 거다. 엄마가 아이를 업고, 장성한 자녀가 연로한 부모를 업는다. 이는 생명에 대한 배려이자 상대에 대한 사랑이다. 업어서 좋고, 업혀서 좋다.

아이를 업는 건 보릿자루를 메고 다니는 것과는 다르다. 보릿자루는 그저 무거운 짐일 뿐이다. 어부바 문화에는 사랑과 정이 서로 오간다. 지배와 의존이 아니라 사랑과 애정 속에 업고 업히는 관계. 이것이 상생이다. 수렵 채집 시절부터 우리의 어부바 문화는 상생 관계였다.

엄마가 보는 것을 아이가 본다. 같은 시선이다. 굴러가는 유모차의 바퀴가 아니다. 어머니의 한 걸음 한 걸음의 보행이 어렸을 적 태내에서 기억했던 심장 소리의 리듬과 어울린다. 등에 업혀 어머니가 듣는 것을 듣고, 보는 것을 본다. 낯선 냄새와 소음과 제대로 통합되지 않는 풍경의 조각이 하늘과 땅 사이로 펼쳐진다.

어깨너머로 요리하는 것, 세탁하는 것, 바느질하고 청소하는 어머니의 가사와 집안 구석구석을 다 구경한다. 나들이를 갈 때면 바깥 풍경은 기본이요, 동네 아주머니의 얼굴과 목소리도 익힌다. 서양 아기들이 요람에 누운 채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바라볼 때, 우리 아이들은 엄마 등에 업혀 세상을 보고 듣는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어머니의 어깨너머로 미리 느끼고 배우는 현장 학습이다. 새 소리를 듣고, 꽃을 보고, 바람을 타고 오는 모든 생활의 냄새를 어머니의 땀내와 함께 맡는다.

미국 소아과학회의 전문가들을 비롯해 한국의 포대기 육아법 예찬론자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바로 ‘엄마와의 상호작용’이다. 다시 말해 “엄마가 아이를 등에 업은 채 단순히 자기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엄마가 아기를 인식하면서 일하는 동안 아이 또한 엄마와 상호작용을 한다”는 대목이다. ‘엄마와 아기의 상호작용’, 내가 줄곧 주장해온 바로 그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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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바의 문화 유전자에는 세월이 없다

한 금융기관의 광고가 눈길을 끈다. 대학 새내기 딸을 업고 가는 아빠, 노모를 업고 가는 딸, 장바구니를 든 아내를 업는 남편, 어린 동생을 업은 누나, 아이를 업은 아빠…. 다양한 어부바를 통해 업는 사람의 따뜻한 마음과 업히는 사람의 고마움과 행복을 담은 광고다. ‘평생 어부바’라는 슬로건 아래 금융권은 소외 계층에게 언제든 따뜻한 등을 내주겠다는 철학을 한국적 정서로 담아낸 것이다.

결혼식은 서구식 웨딩 문화 형식으로 거행되지만, 한국식 폐백은 어김없이 거행된다. 이 자리에서 신랑의 신부 업어주기는 빠지지 않는다. 칠순 잔치, 팔순 잔치 현장에서도 자녀들의 부모님 업어드리기 이벤트는 단골 메뉴다. ‘어부바’의 문화 유전자에는 세월이 없다.

금융권에서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드러낸 ‘어부바’라는 단어를 내세운 것을 봤을 때 더 반갑고 감사했다. 일방적인 수혜가 아니라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어부바. 단순히 취약계층을 돕는 것이 아닌 어려운 상황을 돌파해서 벗어나게 해주는 어부바. 자선은 베푸는 쪽에 부담이지만 서로가 발전하는 어부바 정신은 신협을 통해 도움을 받은 한 사람이 또 다른 이웃을 업을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보살핌을 통해 성장하듯이 금융권에서 소외계층을 위한 다양한 혜택을 베푼다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업어주며 사랑과 정이 오가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을 보면 아기 예수도 ‘말구유’라는 나무 상자에 따로 떨어져 눕는다. 가까운 일본에도 아기를 등에 올리는 문화가 있지만, 엄연히 말해 그것은 한국의 ‘어부바’ 문화와는 다르다. 아기를 등에 끈으로 ‘묶는’ 것에 가깝다. 한국의 포대기는 엄마의 양손이 가벼워지는 동시에 등에 업힌 아기도 몸이 자유롭다.

어부바를 한다는 것은 옛말에 담겨 있던 ‘너 좋고, 나 좋고’의 정서가 녹아 독특한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순간이다. 업히는 사람과 업는 사람 사이에는 관계의 ‘상호성’이 만들어진다. 독립적이면서도 의존적이고 동시에 상호성도 지니고 있는 관계가 완성되는 것이다. 어느 한쪽만 편하고 다른 한쪽은 부담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꺼이 ‘어부바’를 하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한국의 어부바 문화는 단순히 육아의 한 방식이라기보다 문화 전반의 상징성을 지닌다. 가령 세계은행 총재 김용이 2017년 테드(TED) 강연에 나와 어머니가 자신의 어린 동생들을 등에 업고 전쟁에서 피난하는 얘기를 통해 한국인으로서의 자신을 소개하며 한 소녀의 어부바 사진을 보여줬다.

“자세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분께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이분은 제 어머니는 아니지만, 한국전쟁 당시 제 어머니는 자기 어린 동생을 등에 업고 걸어서 서울을 떠나 피난하였습니다.”

이제 어부바는 육아법을 넘어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문화론에 이르게 된다. 한국의 문화 유전자와 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포대기를 훌륭한 학문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한국의 엄마들. 포대기를 사용하는 여러 나라 부모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포대기를 매는 법이 담긴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포대기 한류 바람을 일으킨 디지로그 시대의 엄마들, 치맛바람을 포대기 바람으로 바꾼 엄마들의 모습에서 새로운 한국인 이야기의 싱싱한 미래를 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요즘 유행하는 ‘오래된 미래’ 아닌가.
 
 
*본 칼럼은 이어령 교수의 저서 <한국인 이야기>(파람북)에서 발췌한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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