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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큐레이터 유기선의 <자본의 방식> 26]돈의 달인 J. P. 모건

2020-08-18 11:24

글 : 유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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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폰트 모건의 권력은
그가 보유한 수백만 달러의 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위임받은 수십억 표(주식회사의 다수 주주가 의결권을 피어폰트 모건에게 양도한 것이다.)에서 나왔다.”
_ 『월스트리트 저널』의 편집장 서리노 S. 프랫

JP 모건의 수장 제이미가 베어스턴스를 인수하자 사람들은 그를 피어폰트 모건과 비교했다. 20세기 월스트리트에서 J. P. 모건(John Pierpont Morgan)이라는 이름은 신용 그 자체였다. 그의 신용은 가진 자산보다 더 많은 돈을 손쉽게 조달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다. 월스트리트에서는 “신이 자금을 조달한다면 피어폰트 모건을 찾을 것이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의 자금은 미국의 철도, 철강, 통신 분야까지 뻗었다. 모건의 자금줄이었던 JP 모건 은행의 옛 이름은 피바디 은행이다. 미국인 사업가 조지 피바디가 미 채권을 영국 런던에 팔기 위해 1838년에 설립했다. 피바디가 떠난 자리를 사업 파트너 J. P. 모건의 아버지, 주니어스 스펜서(J. S. 모건)가 채웠다. 이 은행을 활용해 존 피어 폰트 모건(J. P. 모건)은 자본 소유자와 수요자 사이에서 유럽 자금을 미국으로 끌어들였다.

 

영국에서 시작(1825년) 된 철도 건설이 광활한 땅을 가진 미국에서 결실(1869년 미국에는 동부와 서부, 대서양에서 태평양을 잇는 대륙횡단철도가 탄생했다.)을 맺자 모건은 중개자 역할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경영권에 개입했다. 뉴욕 철도회사 A&G(올버니(뉴욕주)~ 서스쿼해나(펜실베니아주) 구간) 경영권 다툼에서는 판사를 돈으로 매수해 승리로 이끌어 이사 자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당시에는 모건만큼 큰 신용을 가진 단단한 방어벽도 드물었기에 철도회사들은 모건의 자금과 신용을 원했다. 그들은 모건의 신용을 활용하고, 모건은 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기업과 자본가의 협약을 관계 금융(관계 금융은 금융회사가 기업 꾸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 과정에서 획득한 비재무 정보를 바탕으로 대
출, 투자 등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밀착형 금융 서비스를 말한다.)이라고 한다.

 

이제 모건은 철도를 넘어서 건설업까지 손을 뻗었다. 1871년, 화마가 시카고의 모든 것을 삼키자(시카고 대화재) 빈자리에는 건축 붐이 일어났다. 1885년에는 철재 구조물로 지어진 세계의 초고층 빌딩인 인슈어런스가 미국 시카고에 지어졌다. 목재 건물이 대다수인 시절에 철제 구조물은 새로운 혁신이었다. 모건은 자신이 가진 제조업과 철도 등 다양한 사업의 지분을 하나로 묶을 업종을 철강이라고 생각했다.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철강업은 모든 산업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모건은 경쟁업체를 인수해서 미국 자본주의에 질서(과열경쟁 종식)를 부여하고자 했다. 이런 관점에서 앤드루 카네기의 철강 제국은 모건에게 필요했다. 그는 앤드루 카네기를 찾아가 약 5억 달러라는 거금을 주고 인수했다. 모건은 카네기와의 담판이 끝난 후 이렇게 말한다. “이제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카네기 씨” 모건은 카네기 철강회사를 타 회사와 합병시켜 US 스틸이라는 제국을 탄생시켰다.

 

자본금이 100만 달러만 되어도 기업규모가 크다고 여겨졌던 시절에 US 스틸의 자본금은 무려 14억 달러였다. 월가의 분석가들은 US 스틸이 발행한 엄청난 양의 주식으로 시장이 침체에 빠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기우였다. 모건의 파트너인 조지 퍼킨스는 “J. P. 모건이 유통한 주식은 사하라 사막에서도 매수자가 있다”라고 했다. US 스틸이 설립되자 모건 왕국이 생산한 조강은 미국 전체 생산량의 약 60%를 차지했고, 순식간에 카네기를 넘어선 철강왕 모건이 탄생했다.

 

모건은 철도와 철강, 건설을 넘어 통신, 전기에도 손을 뻗었다. 전화가 개발되기 전에 주된 통신망은 전신과 전보였다. 각 철도역을 따라 설치된 전신소는 정보를 주고받는 중심지였다. 철도업의 장악은 곧 전신망의 장악을 의미했다. 전신을 활용한 통신 분야는 모건에게 또 다른 기회였다. 아날로그형 인터넷 격인 전신 시스템에 대한 그의 믿음은 확고했다. 그는 미국의 거대 전신 회사인 웨스턴 유니언을 삼켰다. 물론 웨스턴 유니언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막대한 수익보다는 이곳에 입사한 발명왕 에디슨과의 만남이었다. 그와의 인연은 훗날 GE(General Electric) 사의 설립 토대가 된다.

 

J. P. 모건은 무엇이 돈이 될지를 정확하게 직감했고 과감하게 투자했다. 재산이 불어날수록 모건의 자신감은 확신으로 이어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 게 옳은지를 알고 있다고 자부했을 정도였다.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오랜 시간 기다리게 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권위를 치켜세우거나 거래에는 ‘예’나 ‘아니오’로 짧게 답했다. 모건은 언제나 자기 확신에 찼고 목소리에는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쳤다. 사람들은 모건의 이런 성격을 피해 가려고 했지만 자본만은 그를 떠나지 않았다.

 

19세기 중엽 미국은 남북전쟁으로 갈라진 거대한 대륙이 합쳐졌고, 대륙횡단철도는 동부와 서부를 연결했다. 그 속에서 모건의 자본으로 고층건물(U.S 스틸)이 지어졌고, 그 사이를 전구(GE)로 환하게 밝혔다. 그의철도회사들은 도시와 도시 사이의 효율적인 물류 운송을 실현했다. 모건은 거대한 대륙을 하나로 잇고, 세우며, 밝게 비췄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자산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았고 시대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만일 모건의 자본이 철도, 강철, 전기에 흘러가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글은 <자본의 방식>(행복우물출판사)의 일부분입니다.

경제 큐레이터 유기선은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금융시장과 경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여러 학자들의 사상을 거슬러 올라가 ‘돈과 자본이란 어디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가?’에 대한 의문을 토대로 금융의 역사와 철학, 금융을 움직이는 심리 등에 관한 글을 썼다. 그 중 인사이트가 있는 ‘자본과 관련된 48가지 이야기’를 추려서 쉽게 단순화했다. 저자가 집필한 <자본의 방식>은 ‘2019년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사업’ 선정작품으로 당선되었다. 우리 삶에 가장 가까이 있지만 먼 듯한 이야기, 돈과 자본에 대한 통찰력있는 큐레이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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