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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 서다

2021-03-08 14:35

글·사진 : 이신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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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리투아니아 클라이페다에서 러시아 칼리닌그라드로 간다. 끔찍했던 러시아 키릴 문자와 영어소통이 안 되는 러시아로 다시 가는 이유는 단 한 가지. 18세기 철학자인 ‘칸트’를 만나기 위함이다. 무계획은 아니다. 행여나 하는 생각으로 러시아 화폐를 남겨 두었었다. 클라이페다에서 쿠로니아 석호를 지나 러시아 국경에 다다랐을 때부터 또 긴장감이 엄습한다. 무사히 칼리닌그라드로 입성할 수 있을까?(리투아니아 ‘니다’ 사진은 구글에서 가져왔다)
클라이페다 버스안.jpg
클라이페다 버스 안.

 

클라이페다 크루즈 터미널에서 쿠로니아 모래톱을 달리다

수면 습관은 나이와 상관이 없는 듯하다. 날 밤을 샐 수는 있으나 이른 기상은 여전히 끔찍하다. 한 숨도 못자고 새벽에 겨우 일어난다. 그러나 숙소에 부탁해두었던 택시는 올 생각이 없는 듯하다.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캐리어를 끌고 부리나케 걷는다. 버스가 처음 섰던 그 터미널 위치만 대충 가늠하면서 새벽길을 걷는다. 인적 없는 새벽의 클라이페다. 힘겹게 골목을 지나치면서 못 보던 묘비 판석도 못 봤던 조각 공원도 스친다.

 

다행히 버스에 오른다. 안도의 한숨이 내어진다. 그런데 이 버스는 데인 강변으로 오더니만 소년 동상이 있던, 그 크루즈 터미널 앞에 선다. ‘어떻게 된 거지?’ 알고 보니 영국의 도버해협까진 아니지만 배에 버스를 싣고 쿠로니아 석호를 건너 쿠로니아 모래탑(Curonian Spit) 도로(167)를 달려 칼리닌그라드로 가는 것이었다. 쿠로니아 모래탑은 BC 3000년경에 형성된 빙하의 빙퇴석이 기초가 되어 긴 세월동안 바람과 해류에 변형되어 해수면 위로 올라와 모래톱이 된 것. 역사적으로나 생태학, 지질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쿠로니아 모래탑 길은 리투아니아와 칼리닌그라드를 경계한다. 이 모래톱에 가장 유명한 마을이 있는데 리투아니아 니다(Nida, 독일어:Nidden). 클라이페다 올드 타운에서 전날 만난 동양인들이 간다던 그 니다’. 버스 안에서 간판을 본 게 전부지만 니다에 대한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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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국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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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버스 정류장.

 

니다는 예술가의 마을

니다는 현재 리투아니아 클라이페다 주의 네링가에 속해 있다. 원래는 프로이센 땅(1773년부터)이었으나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리투아니아 령이 되고 1923년부터 리투아니아 니다마을이 되었다. 니다는 특히 19세기 후반, 예술가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1890년 경, 쿠로니안 모래톱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200명 이상의 화가들, 작가, 작곡가, 음악가 및 배우들이 방문했다. 이 예술가들은 헤르만 블로데(Herman Blode, ?~1934)의 호텔에서 숙박을 하고 작품의 일부를 그에게 남겼다. 이 호텔에 머문 유명한 예술가는 독일 노벨 작가인 토마스만(Thomas Mann, 1875~1955), 독일 작가 루드비히(Ludwig Passarge, 1825~1912) 및 인도계 영국가수인 잉글버트 험퍼딩크(Engelbert Humperdinck, 1936~)등 다수 있다. 이 호텔은 현재 니다의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1920년대 후반, 호텔 경영주 헤르만이 병에 걸리자 독일풍경화가이자 사위인 에른스트 몰렌하우어(Ernst Mollenhauer, 1892~1963)가 이어갔다.

니다 토마스만 별장.jpg
토마스 만의 별장.

 

니다 토마스 만의 여름별장

니다에는 토마스 만의 여름 별장이 있다. 영화 <베네치아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 1912)>이 떠오르는 토마스 만. 노벨상을 수상한 1929, 토마스 만은 인근 라우쉔(Rauschen, 현재 스베틀로고르스크:Svetlogorsk)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니다를 방문했다. 그는 석호 언덕 위에 톰 삼촌의 오두막(Onkel Toms Hutte, Uncle Tom’s Cabin)’이라는 여름 별장을 만들었다. 그의 가족들은 1930~1932년 여름을 이 초가집에서 보냈다. 서사시 소설인 <요제프와 그의 형제들(Joseph and His Brothers, Joseph und seine Bruder)>의 일부가 이 오두막에서 쓰여 졌다. 1933, 나치의 위협을 받은 작가는 독일을 떠나 니다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 집은 1939, 클라이페다 지역이 나치 독일에 다시 합병 된 후에는 장교들의 휴양지로 사용되었다. 독일인들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소련군에 의해 강제로 추방되었다. 소련 붕괴 후 관광산업이 번성했고 지역 주민들의 후손인 독일인들이 휴가지로 찾아오자 토마스 만의 집은 박물관이 되었다. 니다를 놓치고 온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렇게나마 정보를 알았으니 언젠가는 가게 될 것이다.

칼리닌그라드 터미널.jpg

국경 넘어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역에 도착

니다를 지나자마자 버스는 러시아 국경에 선다. 리투아니아 국경은 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러시아 국경에서는 한참을 정차 했었다. 버스 안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 기다려야 했다. 러시아 국경 통과는 우려했던 것처럼 쉽지 않았다. 국경의 중년 여자 직원은 필자의 여권을 열심히 체크한다. 그녀는 여권을 한 장 씩 넘기는 행동을 연달아 반복한다. 러시아 토르조크 호텔의 그 밤, 젊은 여성이 떠오른다. 그 스태프는 여권 복사를 수십 번 이상을 했는데 딱 그런 모습이다. ‘통과를 안 시켜 주려는 것인가? 예전 코소보 여행 때처럼 다시 돌아가게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 앞에 서서 표정을 살핀다. 결국 여권이 내 품안으로 되돌아왔다. 그녀, 일종의 제스추어 아니었을까? ‘우리나라는 외국인들을 이렇게 어렵게 받아들여하는 행위 말이다. 바닷물고기 도치(심퉁이)가 겁을 주려고 볼따귀를 마냥 부풀리면서 겁을 주려는 행위가 떠오르는 짓이다.

 

버스가 칼리닌그라드 터미널에 도착할 때까지 잠이 들었던 듯하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또 끔찍한 키릴 문자다.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로 피곤한 글자다. 단 러시아의 여느 시골 도시와 다른 점은 터미널 규모가 크다. 또 국제표 티켓 부스에 영어 스태프가 있다. 리투아니아 클라이페다로 가는 버스표를 산다(그땐 클라이페다로 돌아가서 빌뉴스로 가야 하는 줄 알았다).

 

칼리닌그라드 버스 역에서 택시 잡기

러시아를 떠날 수 있는 티켓을 구입했으니 이제 숙소를 찾아 가야 한다. 러시아 모스크바 공항에서 산 한 달 짜리 심(SIM) 카드는 이미 불통이다. 인터넷이 안 돼 얀덱스 택시 어플은 사용할 수 없다. 터미널 밖으로 나오니 여느 터미널처럼 길게 택시들이 기다리고 있다. 럭스(Lux) 택시라는 명찰을 붙인 할아버지 기사의 인상에서 신뢰감이 느껴진다. 숙소 주소를 보여주면서 위치 확인하라는 제스쳐를 취한다. 그 기사, 잘 아는 곳인듯 캐리어를 택시로 끌고 간다. 요금을 안 물어 보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니 300루블 달랜다. 바가지다. 200루블로 흥정을 하니 안한단다. 때마침 뭔가 정직해 보이는 얼굴을 한 택시 기사가 있어서 갔더니 가격은 똑같다. 이럴 바에는 첫 번째 할아버지가 낫겠다 하고 가니 빈정상한 듯, 안 간단다.

또 시작이군. 러시아.’ 트라우마가 몰려온다.

 

그 때 버스 정류장 근처에 서 있는 젊은이가 눈에 띈다. 그에게 다가가 택시 좀 불러줘. 난 지금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어라고 했다. 러시아 여행에서 젊은이에게 부탁한 것은 이곳 말고도 프스코프도 있었다. 보편적으로 젊은이들은 약간의 영어는 구사하고 핸드폰을 다 갖고 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가 택시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빨리 안 온다. 택시가 도착하기 전에 그 젊은이가 가버릴까봐 노심초사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터미널 주변의 택시기사에게 미운 털(동양인이라서 금방 찍힌다)이 박혔기에 그 젊은이가 가버리면 난감하다. 그 젊은이, 시간은 있다지만 무척 더운 듯한 표정이다.

그에게 자꾸 말을 시키면서 시간을 벌어 본다.

이름이 뭐니?”

그리스 이름이야. 알아 맞춰봐.”

힌트를 달라고 했더니 ‘D’로 시작된단다.

‘D’로 시작하는 그리스 이름을 어찌 알겠는가?

그 청년의 이름은 드미트리였다.

친절한 드미트리.jpg
드미트리 커플.

 

그때 한 여성이 다가온다. 드미트리는 애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애인도 드미트리가 낯선 외국인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선뜻 다가서지 않고 뒤에서 웃으면서 기다려준다. 그 사이 택시가 왔고 연거푸 고맙다며 그들과 헤어진다.

 

인터넷 앱으로 부른 택시는 바가지가 없다는 것쯤은 안다. 숙소 앞에 도착해서 가격 물어보니 110루블. 10루블은 팁으로 120루블을 준다. 터미널 택시기사에게 300루블을 줬으면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여행 중에 이런 방법을 꼭 기억해둬라.

 

칼리닌그라드의 최고 호스텔

숙소는 칼리닌그라드의 메인인 빅토리아 광장 근처의 복잡한 번화가 차도 변(Leninskiy Prospekt)에 위치한다. 2층이다. 체크인을 하면서 돈을 지불하려고 하니 카드 결제만 가능 하단다. 이 숙소는 카드 결제가 아니면 예약이 안 된다. 예약할 때, 그런 부분까지 꼼꼼히 체크하지 않는 게 필자의 성격이다. 2일을 예약했다. 혼성 도미토리 룸의 창가 옆 아래 베드가 배정된다. 창밖으로는 차도 대신 한적한 가옥들이 보여 정적이고 베드는 커튼에 가려져 좋다. 무엇보다 저렴한 호스텔인데도 에어컨을 틀어줘 시원하며 욕실이 실내에 있다. 부엌으로 가보니 넓고 커피나 차는 물론 소금, 후추 등 양념도 잘 갖춰져 있어 밥도 해먹을 수 있을 듯하다.

 

가장 강점은, 많이 걱정했던 언어소통이 된다는 점이다. 20대의 젊은 여자 스태프는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다(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아가씨는 남자친구와 함께 숙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러시아 여느 숙소하고는 다른 자본주의 경영체제다). 이제는 익숙해진 호스텔 생활. 그동안 러시아 여행에서의 언어불통 고민이 해결되니 고민 끝이다. 러시아에서 이 정도로만 언어가 소통되었다면 결코 도망치진 않았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가성비가 참 좋다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호스텔은 완벽했다. 점수에 짜디짠 필자가 이 숙소에는 100점 만점에 100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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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헤르만 블로데 호텔.

 

친절한 칼리닌그라드 사람들

가벼운 마음으로 숙소를 나온다. 서두를 것도 없다. ‘칸트만나러 왔으니, ‘칸트흔적만 찾으면 대만족이라는 생각이다. 버스 터미널에서 택시타고 오면서 첫 여행지의 위치를 이미 점지해 두었다. 설명 없어도 딱 저기야하는 지점이 있었다. 택시 차창 밖으로 보여준 프레골랴 강(Pregolya River, 독일어:Pregel) 주변은 그 아름다움이 대단했다. 숙소에서 걷기에는 먼 거리여서 시내버스를 타기로 한다. 차도를 건너서 역방향으로 가야 한다. 차도를 건너면 많은 현대적인 건물들 사이로 작은 공원이 있다 공원 언덕에 조국의 엄마(Mother Russia)’라는 동상이 서 있는데 딱 랜드마크로 삼을 포인트다. 이 조각은 1974, 조각가 에둔노프(BV Edunov)의 작품이란다. 가판대에서 버스 티켓(20루블)을 산다. 첫 날이니 많은 곳을 다닐 생각이 없다(다음날 1일 권 구입).

프레골랴 강.jpg
프레골랴 강.

 

시내버스를 타고 강변 다리(구각교:trestle bridge)를 앞두고 얼른 하차한다. 조금이라도 덜 걷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강과 다리가 금방 안 보인다. 다리 쪽으로 걷다가 앞서가는 아기 엄마에게 길을 묻는다. 길 물은 게 무색하게 금방 강줄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앞서가는 젊은 엄마는 계속 필자가 따라오고 있는 지를 예의 주시한다.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고 가던 길을 멈추면서 방향지시를 해준다. 계단을 다 내려설 때까지 그 행동을 해주던 친절한 러시아 사람. 이런 인간미는 러시아 많은 도시에서 받았기에 그 따사로운 마음이 깊게 스며든다.

칸트섬.jpg

 

칸트섬 조각공원.jpg
(위) 칸트 섬, 칸트 섬 조각공원

 

프레골랴 강과 칸트 섬

저 멀리 멋진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Konigsberg Cathedral)이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길 안 물어도 될 정도로 쉽다. 프레골랴 강변 따라 난 산책로를 천천히 걷는다. 조각 공원을 만난다. 1984, 소련 시절에 만들어진 이 공원은 36천여 평으로 넓다. 숲과 벤치가 있는 공원에는 조각들이 아주 많다. 청동, 대리석, 금속 및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조각들이 23개나 된다. 그러나 정확히 아는 인물은 고로키 뿐이다. 조각들에 관심은 많지만 전부 키릴 문자이니 이해하기는 역량 부족이다. 건성으로 보고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 앞에 선다. 아름다운 강변에 서 있는 이 성당에는 어떤 역사가 있을까?(계속)

 

Data

찾아가는 방법

항공편: 칼리닌그라드에는 크라브로포(Khrabrovo) 국제 공항이 있다. 주로 러시아 내선항공들이 운항된다. 모스크바(셰레메티예보, 도모데도보, 브누코포(Vnukovo) 공항), 상트페테르부르크(풀코보 공항)로 운항된다. 그 외 프스코프, 크라스노다르로도 운항한다. 국제항공으로는 베를린으로 갈 수 있다. 그 외 SAS 스칸디나비아 항공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칼리닌그라드로 취항한다. 한국에서는 모스크바를 경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버스편: 발트 3국은 국제버스노선이 아주 잘 되어 있다. 폴란드의 바르샤바와 리투아니아의 빌뉴스와 클라이페다, 라트비아의 리가 등에서 버스가 운행된다. 클라이페다가 가장 가깝다.

 

철도편: 기차역 유즈니(Yuzhniy, 남쪽)역 주소는 Zheleznodorozhnaya St.,13-23), 전화는 8 (800) 775-00-00, 온라인티켓은 http://kppk39.ru/

 

현지 버스편:유즈니 시외 버스 정류장에서 시내 버스 이용.

 

리투아니아 니다 섬 정보

헤르만 호텔 주소: Skruzdynės st. 2, 니다, 전화는 +370469 52221, 웹사이트는 info@hotelbanga.lt/http://hotelbanga.lt/

토마스만 별장 주소: Skruzdynės g. 17, 니다, 연락처는 +370 469 52260, 웹사이트는 https://www.mann.lt/lt/bilietai/

 

칼리닌그라드 정보

조국의 어머니 동상(Mother Russia):Ulitsa Teatral'naya, 19, 칼리닌그라드

칸트 섬 조각공원 전화: +7 (4012) 45 38 44, 웹사이트는 westrussia.org

추천 숙소: KD Hostel 주소는 Leninsky Prospekt 1, 236000 칼리닌그라드

칼리닌그라드 웹사이트:

https://visit-kaliningrad.ru/https://www.inyourpocket.com/kaliningrad/전화:+7 (4012) 45 38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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