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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이신화의 유럽 인문 여행59]호수 도시 루체른과 바그너 이야기

2021-01-27 11:49

글·사진 : 이신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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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중부의 호수 도시, 루체른. 로이스 강에는 14세기의 목조다리 카펠 교가 긴 세월 그 자리를 지키고, 강변 따라 아름다운 가옥들이 열지어 있다. 밤이 되면 호수 물길 따라 흔들리는 야경이 멋진 도시다. 스위스에서도 아름다운 도시로 소문난 곳. 1897년 여름, 이곳을 찾은 마크 트웨인은 10주간 머문 후 ‘휴식과 안정을 취하기에 가장 매력적인 곳’이라고 격찬했다.
브리엔츠마을.JPG
브리엔츠 마을

 

 

목각이 유명한 브리엔츠 호수의 동쪽 마을

스위스 루체른(Luzern, 437m)은 여행자들의 필수 여행코스다. 루체른은 취리히에서 접근하거나 혹은 융프라우를 보고 인터라켄에서 브리엔츠(Brienz) 호수를 건너 기차를 타고 온다. 필자는 인터라켄~루체른 행 기차 대신 브리엔츠 호수를 거쳐 루체른으로 가는 방법을 택한다. 브리엔츠(Brienz) 호수 증기 외륜선((蒸氣外輪船, paddle steamer, 바퀴가 돌면서 물을 밀어내는 힘을 추진력으로 삼는 선박)을 타고 브리엔츠에서 내린다.

 

브리엔츠는 호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아름다운 산 중턱의 작은 마을. 이 마을은 ‘베르너 오버란트’ 지방의 여행 시작점으로 루체른이나 인터라켄을 최단 코스로 이동할 수 있는 마을이다. 다시는 올 수 없는 곳이기에 루체른 행 기차에 오르기 전, 잠시 마을을 둘러보기로 한다.


브리엔츠는 7세기부터 알레마니 족이 정착했고 1146년 문헌에 처음 등장한다. 1528년 베른 주에 편입되었다. 브리엔츠의 메인 가도인 브룬가쎄(Brunngasse;브룬거리)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적이 있다. 마을 입구에 특별난 것이 눈에 띈다. 배 위에 여성이 패들을 들고 앉아 있는 목각과 양치기가 짧은 호른을 불고 있는 목각이다. 브리엔츠는 ‘조각의 마을’이라고 칭한다. 전통적인 목각을 만드는 곳으로 유명한데 1862년에 설립된 주립 목각대학이 있다. 바이올린 제작도 한다. 마을 가옥들은 대부분 18세기의 건축물로 참 아름답다. 발렌베르그 야외 박물관(Ballenberg Open-air Museum)에서는 16~19세기의 옛날 스위스를 볼 수 있다. 부엌, 방, 거실, 옛날의 농사 방법과 낙농하는 모습을 시연도 한다.

 

또 브리엔츠의 명물은 브리엔츠 로토른(Brienz Rothorn Bahn, BRB) 증기 협궤열차다. 브리엔츠(566m)의 동쪽 끝에서 브리엔츠 호수의 정상(2,244m)까지 7.6km 운행되는 두량짜리 증기 기관차다. 1892년에 개통한, 스위스에서 네 번째로 높은 철도역이다. 증기기관차는 Geldried(1,019m)~Planalp(1,341m)~Oberstafel(1,819m)~Rothorn Kulm역(2,244m)을 통과한다. 호수와 고산의 절묘한 풍경을 파노라마로 즐길 수 있는 곳. 브리엔츠에서 하룻밤을 유하고 여유롭게 여행을 했으면 좋을 뻔 했다.

 

스위스의 전통 가옥.JPG
스위스의 전통 가옥

 

 

루체른 숙소의 해프닝

브리엔츠에서 빵 두개 사고 바나나와 사과, 우유, 햄을 산다. 이제는 아쉽지만 베르너 오버란트 지역을 벗어나야 한다. 기차를 타려고 하는데 기차 역사도 없고 티켓 부스도 없다. 한 할아버지가 오토 머신을 손으로 가르킨다. 어찌어찌 해서 티켓을 구입해 루체른 기차에 오른다. 오른쪽에 앉으라 했는데 이미 중국인 관광객들이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다. 기차 차창으로 비쳐지는 아름다운 풍경. 그러나 피곤을 이길 자는 없다. 그렇게 1시간 30분 정도 지나 루체른에 도착한다. 도시의 첫 느낌은 뒤로 하고 예약한 호스텔부터 찾아 나선다. 숙박 사이트에는 ‘한국 사람이 많이 온다. 한국어가 지원된다. 조식으로 감자볶음밥을 준다‘고 해서 예약한 게 아니다. 루체른에서는 가격이 가장 쌌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얼추 오후 4시가 가까워오고 있다. 당연히 바로 체크인이 될 줄 알았는데 오후 4시가 체크인이란다. 그 전에는 일절 짐을 맡아주지 않는단다. 일찍 도착했다면 무용하게 숙소에서 시간을 보낼 뻔 했다.

 

루체른에서 2일간 머물게 된다. 5인용 도미토리 룸을 신청했는데 그 방을 이용하려면 다음날 방을 옮겨야 한다면서 6인용 객실을 권한다. 하루 지나 방을 옮기려면 체크아웃을 하고 다시 체크인을 하려면 오후 4시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스태프의 말이다. 스태프는 귀여운 대만인으로 호텔경영학 전공하는 학생이다. 그는 이 호스텔의 주인이 한국여자인데 친정(한국)에 갔단다.

 

2층의 6인용 룸은 아주 좁다. 침대 시트는 찢어질 정도로 작아서 겨우겨우 맞춰 놓아야 한다. 방에는 태국, 일본여자 빼고는 다 한국인이 필자까지 4명이나 된다. 그런데 이 호스텔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다른 숙소는 문밖으로 나오면 자동으로 문이 잠기기에 항상 키를 챙겨야 하는데 이 숙소는 밖으로 나오면 문이 안 잠긴다. 룸 키가 무용하다.

 

브리엔츠마을의 목각.JPG
브리엔츠 마을의 목각

 

 

더 큰 문제는 저녁 때 일어난다. 웬 외국여자가 노크도 없이 룸에 갑자기 들어와 샤워를 하겠단다. 처음에는 이게 뭔소리지? 룸의 태국여자와 일본여자 두 명이 말한다. 전날에도 불쑥 들어와서 샤워를 했단다. ‘고스트’란다. 욕실에 들어간 그 여자는 근 30분 동안이나 샤워 물소리를 내고 있었다. 비좁은 방안에는 그녀의 샤워 소리만 들린다. 그녀가 같은 방 게스트라면 샤워를 30분을 하던, 1시간을 하던 말을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 룸의 게스트가 아니다.

 

그 다음날 아침, 샤워를 하려는데 그 여자는 이미 입속에 칫솔을 물고 들어와서 샤워실로 향하고 있다. 6명이 욕실을 이용하기에도 복잡한 상황. 그녀에게 ‘안된다’고 소리친다. 순간 준비되지 않은 언어를 써야 하는데 흥분된 상태에서 도통 영어가 나오지 않는다. 더 황당한 것은 룸의 한국 젊은이들, 모두 쥐죽은 듯이 함구하고 있다. 시덥잖은 대화하면서는 영어, 일본어, 태국어를 번갈아가면서 수다를 떨던 그 실력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 여자에게 ‘넌 아래 휴게소 화장실’로 가라고 말하고 얼른 샤워실로 들어가 문을 잠궜다. 그 여자 소리친다. 이 숙소 사장이 그렇게 하랬단다. 아무리 사장이 허락한 일이라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


오랫동안 여행하면서 이런 숙소는 금시초문이다. 열쇠는 주면서 문은 잠기지 않고 다른 방 게스트가 들락거리면서 샤워실을 점령하고, 오후 4시에 체크인하면서 짐은 맡아주지 않은곳. 난생처음 겪는 일이다. 침대는 삐걱거려 한 사람이 움직이면 다 일어나야 할 정도로 소리가 크고 침대 시트는 작아서 끼우는데 낑낑거리고, 침대에 개인 조명기가 없고 화장실의 샤워 소리, 오줌싸는 소리, 물 내리는 소리까지 다 들어야 하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다. 하지만 다른 룸 게스트가 내 지정 룸에 와서 맘대로 샤워실 들락거리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숙소의 경험이다.

 

루체른호.JPG
루체른호

 

 

루체른 호수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어쨌든 루체른 여행은 해야 한다. 숙소를 벗어나 버스를 이용해 루체른 호수 쪽으로 나온다. 루체른은 로이스(Reuss) 강 하구와 피어발트슈태터제(Vierwaldstättersee)라고 하는 호숫가에 자리 잡고 있다. 알프스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취리히보다 더 아름답고 공기도 맑다. 호반 주변에는 벨에포크 풍 호텔과 문화 컨벤션 센터, 카카엘(KKL: Culture and Convention Centre)들이 에둘러 둘러싸고 있어 호수 위에 아름다운 반영을 그려낸다. 카카엘은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디자인한 것으로, 도시를 빛내는 건축물 중 하나다. 다양하고 풍성한 문화 행사장으로 이용된다.

 

루체른 호수 위로는 우아한 흰 백조들과 통통거리는 외륜선이 함께 떠다니고, 꼭대기에는 눈이 덮인 리기 산과 필라투스 산(Pilatus Mt, 2,132m)의 파노라마 풍경이 펼쳐진다.

 

루체른의 아름다움은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 바그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음악가는 물론 빅토르 위고, 괴테, 실러, 바이런 등 문학가들이 찾았다. 1897년 여름, 이곳을 찾은 마크 트웨인은 ‘휴식과 안정을 취하기에 가장 매력적인 곳’이라고 격찬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이 월광 소나타로 불리게 된 배경에도 루체른이 있었다. 베토벤은 평생토록 루체른을 방문한 적이 없지만 베를린 태생의 시인이자 저널리스트, 음악평론가인 루트비히 렐스타프(1799~1860)는 베토벤의 제1악장에 대해 “달빛이 비치는 루체른 호수 물결에 흔들리는 작은 배” 같다고 평했다. 그래서 “월광 소나타”라고 붙였다고 한다. 베토벤은 1801년(31세)에 이 곡을 작곡해 그가 연모하던 귀족집안 소녀 줄리엣타 구잇차르디(Giulietta Guicciardi)에게 바쳤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귀족집안의 청년과 결혼해 이탈리아의 나폴리로 이주하고 말았다.

 

브리엔츠 마을 언덕.JPG
브리엔츠 마을 언덕

 

 

루체른은 원래 평화로운 조그만 어촌이었다. 루체른이 외부에 알려진 때는 8세기, 베네딕트 수도원 장크트 레오데가르(St. Leodegar)가 세워지면서다. 도시 명은 켈트어와 로망스어가 혼합된 로체리나(Lozzerina, 늪의 거주지)에서 유래해 루체른이 되었다.

 

그 후 13세기에는 장크트 고트하르트 고개(2,108m)에 산악철도가 개통되면서 알프스 남북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자리 잡았다. 북부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 지방과 라인강 상류 지방을 연결하는 요충지로 발전했다. 당시 합스부르크 가의 영토였던 이 지방에서는 13세기 말부터 서서히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루체른도 가담해 1332년에 독립한다. 루체른은 16세기 초부터 시작된 종교개혁 때에도 반 종교 개혁 도시로 남아 로마 교황의 사절이 머물면서 가톨릭의 본거지 역할도 했었다. 현재 8세기에 건설된 교회와 많은 옛 가옥, 바로크식 건물 등이 남아, 유서 깊은 도시로 각광받는다. 특히 루체른 호수의 수상교통이 발달하면서 루체른은 스위스 관광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루체른 마을은 여행자들이 묵어가는 목적지가 되었다.

 

루체른 목조다리.JPG
루체른 목조다리

 

 

루체른 카펠 목조다리

루체른의 대표 관광지는 로이스 강을 길게 잇는 목조다리 카펠교(Kapellbrücke)다. 카펠교는 1365년, 도시 요새의 일부분으로 축조되었다. 로이스 강 오른쪽 둑에 있는 구 시가지를 왼쪽 둑의 신도시와 연결해 남쪽(즉, 호수)의 공격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했다. 다리의 길이는 처음에 270m가 넘었지만 수년에 걸쳐 수많은 단축과 강둑 보충 등으로 현재는 총 길이는 204.7m다. 1993년에 다리가 파손되어 내부 그림 3분의 2가 파괴되었고 1994년 4월에 복원했다. 카펠교는 여전히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지붕 있는 다리다.

 

카펠교의 볼거리는 다리 안쪽에 그려진 그림이다. 17세기, 스위스는 물론 루체른의 역사적 장면들을 담은 그림과 글씨가 다리 안쪽의 천장에 걸리게 된다. 도시의 수호성인 성 레오데가르(St. Leodegar)와 성 모리츠(St. Maurice)의 일대기와 루체른 역사적 장면들을 담았다. 지역 가톨릭 화가인 한스 하인리히 바그만(Hans Heinrich Wägmann, 1557~1627)의 작품이다. 원래 158점의 그림 중 147점이 존재했는데 1993년 화재 후 존재했던 그림들은 재건했다. 판넬의 대부분은 가문비 나무고 린든 나무와 단풍나무가 몇 개 있다.

 

다리 중간의 팔각형 석조물 급수탑(Wasserturm, 34.5m)은 등대 겸 방위 탑이었다. '물 위에 서있는 타워'라는 의미에서 "워터 타워(Water tower)"라고 한다. 이 탑은 약 1330년 경에 만들었다. 수세기 동안이 탑은 감옥, 고문실이었다. 나중에는 시립 기록 보관소 및 지역 재무부로 사용되었다. 오늘날 타워는 지역 포병 협회와 관광 선물 가게가 있지만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카펠교와 가옥들.JPG
카펠교와 가옥들

 

 

카펠교 윗 쪽에는 1408년에 세워진 슈프로이어 교(Spreuer Bridge)가 있다. 이 다리 역시 도시 요새의 일부다. 1626년~1635년에 화가 카스파르 메글링거(Kaspar Meglinger)가 “죽음의 춤(Dance of Death)”이라는 이름의 그림 67점을 다리에 그려 넣었다. 슈프로이어(Spreuer)라는 다리 이름은 밀의 겉껍질(왕겨, Chaff)을 이곳에 버린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한편, 고산 칼새 무리가 수 십 년 동안 지붕 아래에 둥지를 튼다. 이 새가 아프리카의 겨울 서식지에서부터 돌아오면 루체른은 봄이 시작된다.

 

성 마테우스 교회.JPG
성 마테우스 교회

 

 

바그너와 코지마가 결혼한 마테우스 교회

로이스 강과 루체른 호수를 가르는 다리를 건너면 구시가지 골목이다. 곡물 시장, 와인 시장, 뮐렌 시장 등이 있는 그곳에 작은 마테우스 교회가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와 코지마(1837~1930)가 결혼식(1870년)을 한 곳이다. 바그너와 코지마는 어떻게 루체른에서 결혼을 하게 되었을까?

 

바그너는 이미 세상이 다 알고 있는 독일 음악가. 코지마는 프란츠 리스트의 딸로 아버지와 바그너는 친구 사이였다. 바그너와 코지마는 24살 차이로 따지고 보면 아버지의 친구와 결혼한 것이다. 둘이 결혼한 때는 1870년, 바그너 57세, 코지마 33세였다.

코지마는 당시 독일의 피아노 연주자 겸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1830~1894)의 부인으로 딸 둘이 있었다. 코지마는 10대 후반에 한스의 어머니 집에 머물며 학교를 다니다가 이른 나이에 첫 결혼을 한다. 남편 한스는 리스트의 제자이자 바그너의 추종자였다. 코지마는 점차 명성이 높은 음악가들과 교류하게 되면서 바그너를 만났다. 코지마는 연주와 지휘에 종사하던 한스보다 위대한 예술을 창조하는 일에 종사하는 바그너를 더 동경했다. 그의 음악에 매료된 코지마는 바그너를 사랑하게 된다. 온갖 패악을 다 저지르고 다닌, 문제 많은 바그너지만 그가 갖고 있던 ‘사람 끄는 마력’이 코지마에게도 멕힌 듯하다.


유부녀 코지마와 바그너의 동거와 결혼

코지마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다. 딸 둘을 데리고 근처에 살던 바그너의 집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1865년, 두 사람 사이에는 딸이 태어난다. 코지마가 남편과 이혼하기 5년 전이다. 바그너는 이 아이에게 이졸데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졸데다. 바그너는 50이 넘어 자신의 아이를 처음 갖게 된 것. 2년 뒤에는 에바가, 또 2년 뒤에는 아들 지크프리트가 탄생한다. 이 부분은 아버지 리스트와 정부관계였던 어머니 마리 다구 백작부인의 삶과 흡사하다. 어머니 마리 다구는 유부녀였지만 아버지 리스트와 살림을 차려 둘 사이에서 아이 셋을 낳았다. 첫째 딸 블랑딘, 둘째 딸 코지마, 그리고 아들 다니엘이었다. 코지마의 그런 성장과정이 ‘도덕 불감증’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지크프리트가 탄생한 다음 해인 1870년 7월 18일, 코지마와 한스가 이혼하고 다음 달 8월 25일에 바그너와 코지마는 루체른 마테우스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그 해 12월 25일, 바그너는 코지마의 생일에 그녀가 자고 있는 침실 계단에 15명의 연주자를 대기시키고 코지마가 일어나자 그녀 몰래 작곡한 “지크프리트의 목가”를 들려준다. 코지마의 생일과 자신들의 결혼을 축하하고 아들 지크프리트의 탄생을 기뻐하는 마음을 함께 담은 것이다.

 

코지마는 바그너의 모든 일상에 관여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바그너는 그 덕분에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바그너의 대표적인 작품이자 종합예술장르인 뮤직 드라마 '니벨룽겐의 반지 4부작' 완성에 적극적 협조했다. 1883년 바그너가 사망하자 코지마는 그들이 거주했던 바이로이트를 바그너 음악의 성지로 자리매김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루체른의 빈사의 사자상.JPG
루체른의 빈사의 사자상

 

 

빙하공원의 빈사의 사자상

또 시내에는 후기 르네상스 시대부터 내려오는 시청사 뿐만 아니라 두 개의 뽀족한 첨탑이 눈길을 끄는 호프 교회가 있다. 호프교회는 735년, 이 도시에 처음 세워진 수도원이다.

 

루체른의 명물로는 빙하 공원에 있는 ‘빈사의 사자상(Löwendenkmal)’이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자상이 작은 연못 위 바위 절벽 속에 들어 앉아 있다.

 

이 사자상은 스위스의 슬픈 역사가 깃들여 있다. 스위스는 좁은 국토에다 농경지가 적은 산악지대, 지하자원도 없는 가난한 나라였다. 젊은이들은 5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외국부대에 용병으로 참가해 돈을 벌어야 했다. 1792년, 프랑스 대혁명 때 루이 16세를 지키던 786명의 스위스 용병들이 있었다. 다른 국가들의 용병들은 모두 도망갔지만, 스위스 용병들은 끝까지 남아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이 죽어간 이유는 단 하나. 후세들에게까지 용병자리를 물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 메시지가 스위스 정신이 되어, 지금 경제강국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일 것이다.

 

선대의 처절한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자상은 1820년, 덴마크의 조각가 토르 발센이 시작해 1821년 독일 출신인 카스아호른에 의해 완성되었다. 사자의 발 아래에는 부르봉 왕가의 문장인 흰 백합의 방패와 스위스를 상징하는 방패가 조각되어 있다. 마크 트웨인은 "세계에서 가장 슬프고도 감동적인 바위"라고 묘사 했다.

 

Travel data

루체른

주소:Luzern Tourismus AG Zentralstrasse 5 6002 Luzern/전화:+41 (0)41 227 17 17

 

마테우스 교회

주소:Hertensteinstrasse 30, 6004 Luzern/전화:+41 41 227 83 00

 

빈사의 사자상

주소:Gletschergarten Luzern Denkmalstrasse 4 6006 Luzern/전화:+41 (0)41 410 43 40

 

루체른~인터라켄 기차편 :https://www.interlaken.ch/en/experiences/poi/luzern-interlaken-express

 

현지교통

루체른에서는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강변 주변이나 구시가지는 걸어 다니면 된다.

 

맛집 정보

호수 주변이나 구시가지에 레스토랑이 많다. 로체르너 쉬겔리파스테테는 루체른을 대표하는 전통음식이다 패스트리로 된 그릇 안에 크리미한 소스와 감미로운 송아지고기, 버섯이 가득 담겨 있다. 생갈렌(St. Gallen)은 우리 발음에 친숙한 '소맥(소시지와 맥주)'이 대세다. 독어권에서 많이 접할 수 있는 큼직한 소시지, 브라트부어스트 중에서도 생갈렌의 것은 스위스 전역에서 특별히 맛있기로 손꼽힌다. 여기에 크래프트 비어를 능가하는 생갈렌 맥주를 함께 곁들이면 된다. 강변 옆의 라트하우스양조장(rathausbrauerei, http://www.rathausbrauerei.ch/en/)은 하우스비어를 생산하는 곳으로 블론드 비어가 대표적이다. 필라투스 산의 물을 이용한다. 또 뮐렌 광장에는 대형 쿱(coop) 마켓이 있다.

 

숙박정보

숙박은 루체른 시내를 이용하면 된다.

 

여행 포인트

7월과 8월에는 컨서트, 발레, 오페라, 무용, 연극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해마다 8, 9월에는 국제음악제가 개최된다.

 

필라투스 산.jpg
필라투스 산

 

 

필라투스 산

루체른의 남쪽에 있는 필라투스(Pilatus, 2120m)산. 필라투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처형을 반대하지 않은 빌라도 총독의 라틴어 본명이다. 빌라도의 망령이 떠돌아다니다가 이곳에 정착했다는 전설이 있는 일명 ‘악마의 산’인데 산세가 워낙 험준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필라투스 산을 가려면 알프나하슈타트(Alpnachstad)역에서 등산 철도를 이용해 필라투스역(2,070m)까지 오르면 된다.

 

문의

루체른 홈페이지:www.luzern.ch

 

스위스정부관광청:www.myswitzerland.com/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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