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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이신화의 유럽 인문 여행76]모스타르 네레트바 강의 명물 ‘스타리 모스트’

2021-06-30 09:53

글·사진 : 이신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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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의 모스타르(Mostar)의 사진 속 풍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특히 네레트바 강을 잇는 아치형 스타리 모스트는 유네스코에 지정된, 유럽 최고의 다리다. 그러나 그 실체는 비참하고 초라하다. 보스니아 내전의 가난과 상처가 덕지덕지 배어 있다.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스스럼없이 관광객들에게 다가와 구걸하는 도시. 그렇다고 여행을 포기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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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네스츄코바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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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네스츄코바 도로와 식당

 

크로아티아를 도망쳐 보스니아 모스타르로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서 도망치듯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남서쪽 네레트바 강(Neretva River)의 깊은 계곡에 위치한 모스타르로 향한다. 버스 터미널에서 3분 거리에 있는 숙소에 짐을 풀고 천천히 올드 타운으로 걸어간다. 시가지를 걷는 동안 부서진 건물들이 눈에 띈다. 2차대전 때도 대대적인 폭격을 당했고 보스니아 내전 때도 세르비안들에게 무차별에게 공격당한 흔적이다. 신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복원할 재정적 여력이 없어 방치 중인 이 도시는 그냥 씁쓸하다.

 

전쟁, 내전으로 이곳이 얼마나 가난하고 척박한 도시가 되었는지는 올드타운의 오네스츄코바(Onešćukova) 도로로 들어서면서 알게 된다. 메인 타운으로 들어서기 전 관광안내소 팻말이 있어 안으로 들어선다. 여느 나라, 여느 도시와 다르게 안내원의 표정과 행동은 무례하기 짝 없다. 여행자에게 설명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 태도다. 안내원에게 여행 작가임을 밝히고 너희 나라를 더 알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넌 뭐하는 거냐?”고 따졌더니 그제서야 못마땅한 표정으로 억지 설명을 한다. 그녀의 표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웃음으로 점철되어 있다. 온 유럽에서 가장 수준 이하의 행동을 보여준 모스타르의 관광 안내소(이 곳 말고도 사라예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행동거지를 보면서 가난, 전쟁, 비참함의 동정보다는 노력하지 않는 태도에 역정이 솟구친다. 동계올림픽까지 치른 나라의 수준은 최악이다. 이것은 시작점에 불과하다.

 

모스타르 올드 타운에 남은 오스만 흔적들

올드타운을 잇는 길 양쪽으로는 무수한 숍이 이어진다. 반질반질한 조약돌이 박혀 있는 길바닥을 따라 여러 시대에 걸쳐 지어진 옛 가옥들이 이어진다. 강을 잇는 모스크 다리를 경계로 가톨릭과 이슬람교가 나뉘었다지만 가톨릭 교회의 첨탑조차 삐죽 올라간 미나렛 형태다. 마을 앞쪽, 카르스트 지형의 산정(520m)에 거대한 십자가가 있다. 보스니아 내전에 사망한 가톨릭계 크로아티아인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 그것 말고도 무수한 십자가가 있는 공동묘지도 흔하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의 흔적이 훨씬 많다.

보스니안들이 즐겨 먹는 체바치.jpg
보스니안들이 즐겨 먹는 체바피

 

다리 중간 즈음 전통 복장을 입고 손님을 유치하는 식당에 앉는다. 이들이 즐겨 먹는 요리인 체바피(ćevapi, 혹은 체밥치치(ćevapčići)’)를 시켜 먹고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로 다가선다. 도로 끝에 둥근 형태의 헤레비아 타워(Helebija Tower)가 있다. 1716년에 지어진 방어용 탑으로, 지하는 감옥으로 위층은 수비대의 숙소와 경비초소로 사용했다. 현재는 보스니아 내전에 관한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문을 지나 대리석이 깔린 다리를 건너면 1676년에 만들어진 5층 높이의 타라 타워(Tara tower)’가 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 때 탄약저장고로 사용된 건물은 현재 박물관(Old bridge museum)'으로 이용된다.

스타리 모스트.jpg

 

스타리 모스크.jpg

 

스타리 모스트위에서 바라본 상가.jpg
스타리 모스트와 그 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

 

이 도시에서 가장 내로라하는 스타리 모스트는 멋진 아치형으로 네레트바 강을 연결한다. 유럽에서 이슬람 양식으로 지어진 다리 중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는다. 모스타르 지명도 이 다리와 무관치 않다. 스타리 모스트는 세르보크로아티아어(srpskohrvatski)오래된 다리라는 뜻이고 다리를 지켰던 다리 파수꾼들을 모스타리(mostari)라 했다. 중세 시대에는 목조다리였다. 이후 1566, 오스만 제국의 쉴레이만 대제(1494~1566)때 뛰어난 장인이었던 미마르 하즈루딘(Mimar Hajrudin)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석조다리다. 미마르 하즈루딘은 당시 오스만제국의 최고 건축가였던 미마르 시난(Mimar Koca Sinan, 1489~1588)의 제자로 이 다리를 완공하는데 9년이 걸렸다. 5m에 길이 30m, 그리고 높이가 24m. 긴 세월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내왔다.

 

잊지 말자, 1993년 스타리 모스트

그러나 이 다리는 19931191015분에 산산이 파괴된다. 파괴되기 전 상황은 이렇다. 모스타르는 긴 세월동안 두 개의 문화가 공존했다. 네레트바 강을 사이에 두고 북쪽에는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인들이 살고, 남쪽에는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이 살았다. 가톨릭과 동방정교의 전파는 로마가 동서로 나뉘었을 때(395) 15세기 이후, 오스만 제국 지배 하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그들은 별 탈 없이 잘 지냈다. 그러다 19923월 보스니아의 무슬림과 가톨릭 세력(크로아티아인)이 마음을 모아 유고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세르비아계가 이를 거부하면서 내전이 시작되었다. 유고 연방군이 18개월 동안 모스타르를 포위하고 공격을 퍼부었다.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계의 끈질긴 저항으로 도시를 지켜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크로아티아 정부를 등에 업은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자들이 무슬림(보스니악)을 몰아내려고 모스타르를 공격했다. 수천 명의 무슬림이 학살당하고 추방됐다. ‘집단학살, 인종청소란 용어가 발생한 나라다.

 

그 와중에 스타리 모스트도 산산조각이 났다. 당시 크로아티아 군대의 사령관인 슬로보단 프랄랴크(Slobodan Praljak, 1945~2017)는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징역 20년 형이 언도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서 독극물이 든 병을 마시며 자살(72)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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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하는 사람들

 

산산이 부서진 다리는 1997년 재건축됐다. 유네스코의 지원 하에 고고학적 연구와 유럽전역에 흩어져 있던 역사기록들이 동원됐다. 1088개의 다리 파편들을 헝가리 잠수부들이 건져 올렸고 터키의 건축가들이 돌을 재배치했다. 모두 전통 공구와 기법을 이용, 손으로 조각해 20047월 재건했다.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고 평화의 다리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교각 귀퉁이에는 ‘Don’t forget ‘93’이라는 작은 글귀가 쓰여 있다. 이 다리 위에서는 다이빙하는 전통이 있다. 1664년부터 해온 관습은 1968년부터 공식적으로 다이빙 경기가 되었다. 매년 7월 마지막 일요일에 다이빙 대회가 열린다. 그런데 시도 때도 없이 동네 사람들은 다이빙을 빙자해서 돈을 요구한다. 실제로 한 남자가 다가와 내가 이곳에서 떨어질 테니 돈을 달라고 한다. 또 다른 다리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진다. 다리 밑에서 다리 위까지 쫒아 올라와 구걸한다.

마담. 나 담배도 펴야 하고 술도 마셔야 하니까 돈 좀 줘라고 말이다.

 

작은 터키, 쿠윤질룩(Kujundziluk) 거리

모스트 다리를 건너 쿠윤질룩(Kujundziluk, 터키인의 거리)길에 접어들면 터키 향이 더 강렬해진다. 강변을 따라 기념품, 수공예품, 각종 전통 공예품을 파는 숍들이 이어진다. 오스만 제국 시절 이 지역에는 피혁업자, 금세공업 등 30여개의 장인 조합(길드)가 있었던 바자르 지역이다. 켜켜이 묵은 향기가 가득한 무슬림 골목. 시간이 되면 아잔(신도에게 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이 울리고 터키식 양탄자, 터키 국기가 휘날린다. 현실에선 숍 구경보다 구걸하는 소년, 소녀들의 구걸에 신경이 쓰인다. 선뜻 카메라를 꺼내 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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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윤질룩 터키 골목

 

이어 브라체 페지카(Brace Fejica) 골목에 이르면 1617년에 지은 코스키 메흐메드 파샤 모스크(Koski Mehmed-Pasha Mosque)를 만난다. 헤르체고비나 지역에서 가장 큰 돔과 미나렛(minaret)을 가진 회교사원. 2차 대전과 내전을 거치면서 완전히 파괴된 것을 복원한 사원이다. 입장료를 내고 사원 안으로 들어선다. 이 사원을 방문한 이유는 모스트 다리를 제대로 보기 위함이다. 사원 내부의 좁은 계단을 따라 탑까지 오른다. 사원에서 보는 다리는 가까이서 보는 것보다 수 백 배 아름답다. 네레트바 강 밑으로 아치형 다리가 반영되고 양 옆의 탑과 가옥이 어우러진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분명코 모스타르는 저 다리가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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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키 메흐메드 파샤 모스크

 

숙소로 돌아오는 주택가에서 만난 카라조즈 베이 모스크(Karađoz Bey Mosque). 모스타르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오래된(1557) 모스크다. 메흐메드-벡 카라조즈(Mehmed-beg Karadjoz)라는 도시 유지의 기부로 지어져서 그의 이름이 붙었다. 오스만의 최고의 건축가인 미마르 시난의 작품이다. 시난은 이스탄불의 블루모스크를 비롯해 유명한 건물을 많이 지은 당대의 유명한 건축가다. 모스크 바로 옆에는 독특한 모양의 묘지가 눈길을 끈다. 그 외 오스만 시절인 1635년에 지어진 비쉬체비츠(Biscevic) 저택도 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모스타르를 구경한 셈이다. 그러나 크로아티아를 벗어나면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는 무수한 거지들 때문에 대반전을 보여줬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되었지만 모스타르의 속내를 조금만 알았으면 그 이해의 폭은 훨씬 커졌을 것이다. 여전히 멋진 다리를 보기 위해 무수한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Travel Point

항공편: 우리나라에서 모스타르까지 가는 직항편은 없다. 보통 유럽의 관문인 프랑크푸르트로 간 뒤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버스를 타면 된다. 1시간 40분 정도 소요된다. 크로아티아 스플리트나 두브로브니크에서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현지 교통:모스타르는 걸어 다니면 된다.

음식정보:올드타운의 서쪽 편에 있는 사르드반(Sadrvan) 레스토랑은 도로 가에 있어서 찾기가 좋다. 그 외 모스트 다리 밑으로도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다. 주택가의 식당은 가격이 저렴하다.

숙박정보:올드타운까지 캐리어를 끌고 가는 것보다는 버스 터미널에서 근처에 있는 숙소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게스트 하우스 나나(Guest House Nana)는 가깝고 저렴하다. 엘리트 게스트 하우스(Elite Guest House)는 평점이 가장 높은 숙소다.

물가정보: 가격이 매우 저렴해서 부담 없이 여행을 즐기면 된다.

기타 정보:크리바 쿠프리야 다리(Croojed Bridge, Kriva Cuprija)는 네레트바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작은 지류인 라도볼랴 강(Radobolja River)을 잇는 다리다. 16세기 중반(1558)에 지은 다리로 8.43m 길이에 4.21m 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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