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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이신화의 유럽 인문 여행74]슬로베니아의 국민 시인 프란츠 프레세렌과 류블랴나

2021-06-08 09:39

글·사진 : 이신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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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를 우리나라 서울과 비교 한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한 나라의 수도지만 조용한 소도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올드 타운에는 한 나라의 오랜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작은 도심을 한껏 빛내준다. 류블랴니차 강 주위로는 운치 넘치는 바, 거리 음악가들의 공연 소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좁은 운하 같은 강 줄기를 따라 유람선이 오간다. 특히 류블랴나 고성에 올라 서 바라보는 도시의 매력만 하겠는가.
루블라차 강 모습.jpg
루블라차 강 모습

 

 

감옥이 탈바꿈된 셀리차 호스텔.jpg
감옥에서 탈바꿈된 셀리차 호스텔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의 이색 숙소

슬로베니아 류블랴나(Ljubljana)는 버스역과 기차역이 거의 붙어 있다. 터미널에서 셀리차 호스텔(www.hostelcelica.com)까지 걷는다. 감옥을 호스텔로 탈바꿈시켰다 해서 꽤 인기를 누리는 숙소다. 숙소 외벽에는 화려한 그래피티가 난무하지만 실제로는 체계가 잘 잡힌 숙소다. 쇠창살과 두꺼운 철문 등으로 장식해 실제 감옥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방도 있다. 규모가 큰 숙소는 정해진 규칙을 정확히 따른다. 체크인 시간이 되어야만 입실이 가능하다는 말에 모양새가 제 멋대로 변하는 푹신한 가죽 의자에 거의 몸을 누이다시피 한다. 배정 받은 방은 천편일률적인 사각모양의 공간이 아니다. 창의성과 편리성이 돋보이는 숙소 구조가 마음에 든다.

 

숙소를 벗어나 터벅터벅 걸어서 시내 구경에 나선다. 류블랴니차 강을 만난다. 류블랴나 서쪽 브르흐니카(Vrhnika)에서 발원해 류블랴나를 거쳐 사바 강으로 이어지는 총 41km의 강줄기다. 이 강을 경계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나뉜다. 구시가지에는 류블랴나 성을 둘러싼 중세 건물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고, 신시가지에는 이 도시의 랜드 마크로 통하는 프레셰르노프(Presernov) 광장이 있다.

 

국민 시인 프란츠 프레셰렌의 애절한 짝사랑

신시가지 프레셰르노프 광장으로 우선 간 이유는 프란츠 프레셰렌(Preseren, 1800~1849)을 만나기 위함이다. 슬로베니아의 국민 시인으로 꼽히는 프레셰렌이 쓴 시 축배는 슬로베니아 애국가 가사가 되었고 지폐에도 그의 얼굴이 있을 정도로 국민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국민들의 문화생활을 권장하기 위해 프레셰렌의 날(해마다 2)을 공휴일로 만들었다. 이날 시민들은 프레셰렌 동상 밑 계단에 앉아 그의 시를 읽거나 박물관 및 전시회를 본다. 그는 평생 이룰 수 없었던 사랑 이야기로 더 유명하다.

 

프레셰렌은 살아생전 변호사였다. 그의 나이 33세 때 줄리아 프리믹을 보고 첫 눈에 반하지만 그녀는 부잣집 상인의 딸로 감히 넘볼 수 없는 신분이었다. 시인은 사랑 표현도 못하고 3년 동안 벙어리 냉가슴 앓듯, 가슴 속에만 간직했다. 아나 젤롭시크를 만나 아이 셋까지 낳았으나 끝내 결혼은 하지 않았다. 48세에 죽을 때 줄리아를 단 한 번도 잊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줄리아에 대한 짝사랑의 열정을 시로 승화시켜 수십 편을 썼다. 프레셰르노프 광장에 서 있는 시인의 동상도 평생 가슴속으로만 사랑했던 여인을 애처롭게 바라만 보고 있다. 시인의 시선을 대각선 방향으로 따라가면 하우프트만의 집이 있고 그 집 2층 창문에 줄리아의 테라코타 상이 있다.

성에서 바라본 류블라냐의 전경.jpg
성에서 바라본 류블라냐의 전경

 

 

성 내부 구경하는 아이들.jpg
성 내부 구경하는 아이들

 

프레셰르노프 광장의 여자 동상과 프란치스칸 성당의 에피소드

광장의 동상을 기점으로 북쪽에는 붉은 색의 프란치스칸 수태고지 성당이 있다. 1646~1660년 오래된 교회가 있던 그 자리에 이탈리아의 조각가 프란체스코 로바(Francesco Robba, 1698~1757)가 주체가 되어 초기 바로크 양식의 성당을 건축했다. 1895년 대지진으로 파손된 프레스코 화들은 1936, 슬로베니아 출신의 인상파 화가인 마타이 스테르넨에 의해 다시 그려졌다. 또 프레셰렌 동상 동쪽에는 이탈리아 풍의 약국 건물이 있다. 19세기 때 지식인들이 즐겨 찾던 카페였다고 한다. 프레셰렌 동상 뒤에는 상의를 입지 않은 여자가 서서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있다. 이 여자는 프레셰렌의 뮤즈를 형상화한 것. 이 동상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프란체스칸 성당에서는 신성해야 할 성당 주변에 여성의 반 누드 동상이 세워진 것이 선정적이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당시 주교는 비난의 편지를 보냈고, 언론에서도 철거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 묘안은 성당에서 안보이도록 주변에 나무를 심는 것. 나무의 무성한 잎들 때문에 성당에서는 뮤즈의 나체가 보이지 않았고, 마침내 교회에서도 프레셰렌 동상을 세워두는 데에 찬성했다고 한다.

 

류블랴니차 강을 잇는 트리플 교와 재밌는 다리들

메인 광장에서 구시가로 들어가려면 토모스토교라는 삼중교를 건너면 된다. 삼중교는 루블라챠 강을 잇는 4개의 다리 중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1280년까지 목조다리였지만 화재 이후 1657년 재건축되었고 1842, 이탈리아 건축가 지오반니 피코가 현재의 석조 다리 원형을 갖추었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칼 대공을 기념하기 위해 프란츠 교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넘나들면서 병목현상은 심해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2(1931~1932)에 걸쳐 보행자 전용 다리를 양쪽에 추가해 현재와 같은 세 갈래 형태의 다리를 만들었다. 슬로베니아의 대표 건축가인 요제 플레츠니크(1872~1957)의 빼어난 작품이다.

푸줏간 다리의 소원 자물쇠.jpg
푸줏간 다리의 소원 자물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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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셰렌의 동상

 

그 외에도 부처스 다리가 있다. 도축인들이 모여 고기 장사를 했기 때문에 정육점 다리라고 명명했다. 사랑을 이뤄준다는 자물쇠와 두꺼비 조형물이 놓여 있다. 연인들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다리에 자물쇠를 채우고 그 열쇠는 강 밑으로 던져버린다고 한다. 다리 바닥의 오른쪽 부분을 투명 유리로 만들어 다리를 걸으며 발밑으로 초록빛 강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00년대에 만들어진 이 있는 다리가 있다. 양쪽 다리 처음과 끝에 총 네 마리의 용이 서 있는데 박쥐의 날개와 불을 뿜는 입, 날카로운 독수리 발톱을 갖고 있는 서양용이다. 용은 이 나라의 상징이며 문장이다.

 

로마 때부터 시작된 화이트 류블랴나

올드 타운으로 들어서면 신시가지와는 비교 안되게 옛 향기가 물씬 풍겨난다. 류블랴나의 도시 기원은 BC 5세기 로마의 에모나(Emona) 제국이다. 500년 동안이나 지배했던 제국이기에 시내 곳곳에는 로마시대의 문화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6세기부터 슬라브 민족인 슬로베니아 인이 정착했다. 8세기에는 바이에른과 프랑켄에 속했으나 그 후 카롤링거 왕조(751~843)의 프랑크 왕국 치하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서유럽 문화권에 편입되었다. 10세기에는 신성로마제국, 14세기에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았다. 이때 흰색의 교회와 저택이 많이 들어섰기에 화이트 류블랴나라는 별명을 얻었다. 16세기에는 신교도 운동이 일어나 민족운동의 중심지였다. 1809~1814년까지는 동부 아드리아 해로 진출하려는 나폴레옹이 일시적으로 만든 일리안 주의 수도이기도 했다. 세계 대전을 겪고 유고슬라비아가 되었고 19916월에 독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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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타운

 

올드타운의 가장 번화가는 헤라클레스 분수대로 이어지는 메스티니 골목이다. 시청사 앞 노비 광장에는 멋진 세 개의 카르니올란(Carniolan) 강들의 분수대가 있다. 주전자를 들고 있는 세 명의 남자 형상을 가진 분수다. 1751년 이탈리아 조각가 로바의 대표 작품으로 그가 로마여행 때 본 베르니니(1598~1680)의 작품인 ‘4개의 강 분수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또 이 골목에는 유명 지질학자 요한 바이크하르드 폰 발바소르(1641~1693)의 집이 있다. 그는 1689년 뉘른베르크에서 카르니올라 공국의 영광이라는 백과사전을 출판했다. 카르스트 지형 연구의 선구자였던 그는 런던 왕립학회 회원이었다. 또한 뱀파이어에 대한 최초의 문서도 기록했다. 시청사에서 반대편 골목으로 나가면 류블랴나 대성당, 성 제임스 성당이다. 류블랴나에서 가장 높은 종탑을 갖고 있다. 대성당 앞, 강변 옆으로는 생선 마켓이 있고 보드니크(vodnik) 광장에는 청과물 시장이 열린다. 그 외에도 수많은 극장과 박물관, 미술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필하모닉이 있다.

 

유서 깊은 류블랴냐 성은 인기 있는 결혼식 장소

류블랴나에서 내로라하는 곳은 류블랴나 성(www.ljubljanskigrad.si/en)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수도 있지만 메스티니 골목에서 좁은 옛 길을 따라 성벽까지 오르는 것이 좋다. 올드타운의 깊은 속살을 보는 듯하다. 성은 첫 눈에도 결코 화려하게 치장되지 않았다. 이 성은 9세기에 처음 세워졌다가 1511년 지진으로 파괴된 후 17세기 초에 재건됐다. 당시 15~16세기에는 주로 터키의 침략을 막는 요새로 사용되었고, 17~18세기에는 군사 병원 및 무기 저장고 역할을 했다. 지금은 슬로베니아 역사 전시관, 웨딩홀, 전망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의 꼭대기 전망대에 올라서면 붉은색 지붕들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오밀조밀 모인 지붕 사이로 류블랴니차 강이 흐르는 모습이나 발아래 풍경을 가늠하게 된다. 성에서는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지만 1~2% 부족한 조망이지만 아쉽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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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블라차 강변과 바자르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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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블라냐의 삼중교

 

건축가 요제 플레츠니크의 빛나는 건축물들

성을 내려와 슈즈메이커 다리를 건너면 대학거리다. 1810년에 설립된 류블랴나 대학교 외에도 멋진 건축물들이 많은 구역이다. 1941년 지어진 국립 & 대학 도서관은 세련미가 넘친다. 건축가 요제 플레츠니크의 작품이다. 요제 플레츠니크가 류블랴나에 미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삼중교, 부처스교, 코블러스교, 크리잔케 야외극장, 야외 시장 건물 등. 애써 찾지 않아도 그의 작품들은 부지기수다. 그는 1895년의 대지진 이후 주요 건물들을 재건했다. 19세기 말 유행한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이 류블랴나에 많은 이유다. 그러나 살아생전 플레츠니크는 그만한 대접을 받지 못했지만 사후에 인정받은 대단한 건축가다. 류블랴냐는 설렁설렁 돌아봐도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서 메인 광장과 강변길은 더욱 흥미가 깊어진다. 노랫가락 소리가 울려 퍼지고 강둑에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Travel data

교통편: 슬로베니아로 가는 직항 항공편은 없다. 한국과 직항으로 이어지는 가장 가까운 공항은 오스트리아 비엔나 공항. 혹은 터키 이스탄불까지 가서 이동해도 된다. 인천-이스탄불은 주 11회 매일 한 편 이상 운항한다. 이스탄불-류블랴나까지도 매일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다. 이스탄불~류블랴나는 2시간15.

현지교통: 걸어 다니면 된다. 시에서 운영하는 전기 차량 ‘KAVALIR’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운전기사에게 손짓을 해 차를 세우고 목적지를 말하면 된다.

음식: 올드타운 쪽을 비롯해 식당은 다수 있다. 한국인 입맛에 잘 맞지만 바가지 상흔도 있으니 유의. 강 옆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집이 유명하다. 대학근처에 있는 피자집(Pizzeria Ljubljanski Dvor)도 기억해두면 좋다.

숙박정보: 호스텔을 이용하면 매우 저렴하다.

무료 워킹 투어: 프리셰렌 광장에서는 매일(11, 오후 2) 무료 워킹 투어가 진행된다. 관광객들에게 받는 팁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2시간 정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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