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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빌뉴스 여행의 해프닝

2021-06-03 15:57

글·사진 : 이신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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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빌뉴스.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작은 익숙함에 마음의 안정이 생긴다. 그러나 절대 똑같은 스토리는 만들어지진 않는다. 같은 장소라도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꼭 찾고 싶었던 식당을 찾았다가 변해버린 모습에 옛 기억이 뒤죽박죽 뒤섞인다. 거기에 컴퓨터까지 고장 난다. 첫 번째 기억과 두 번째 기억을 기억 창고에서 따로따로 보관해야 할 이유다. 그게 바로 여행의 묘미라고 위안해야 할 것이다.

버스 터미널에서 가까운 숙소 안 해프닝

이번에 예약한 숙소는 첫 번째 그 집(Come to Vilnius)이 아니다. 좋은 집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왜 그 집을 예약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필자가 이용하는 숙박 사이트를 확인해보니 첫 번째 그 집은 그 사이 평점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터미널에서 가깝고 평점 좋은 호스텔(25 hours)을 선택 했다. 터미널에서 멀지 않아서 숙소까지는 잘 찾아왔으나 또 난관이다. 이 집도 주인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나와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방문 암호를 메일을 보내준다는데, 받은 기억이 없다. 인터넷이 안 되는 곳에서는 메일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런데다 여느 집이나 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안위하게 생각했었다.

 

칼리닌그라드에서 빌뉴스까지 먼 거리니 숙소에 도착했을 때 이미 주인은 없었다. 체크인을 못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다. 2층으로 올라가보니 사람은 있으나 전혀 도움 줄 생각이 없다. 애걸복걸해서 겨우 방에 들어섰다. 1층의 숙소는 단층 침대다. 게스트들은 옷가지 등을 아무렇게나 널어놓았고 울긋불긋한 천 시트가 뒤덮인 실내는 결코 깔끔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른 집으로 옮길 생각은 없다. 며칠만 견디면 되니 참으면 그만이다. 일단 하루 종일 제대로 못 먹었고 다시 오면 찾고 싶었던 그 식당(Leiciai)에서 회포부터 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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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i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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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iai 식당 내부

 

변해버린 식당 인심

룸에는 동양인 여성 한 명이 있는데 일본인이다. 그녀에게 너도 갈래?”하고 물으니 그렇게 하겠다며 따라 나선다. 시청사를 기준으로 찾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시내로 들어선다. 긴가민가하면서도 식당 골목을 잘 찾았다. 반가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여름 피크라서 그런지 손님들이 많았는데 빈 자리는 있었다. 실내로 들어서려니 키 작고 뚱뚱하고 인상까지 험한 남자 종업원이 눈을 치켜뜨면서 넌 여기서 기다려를 연발한다. 마치 헐크처럼 화를 냈다. 나중에 보니 “Welcome. Please wait here to be seated‘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다. 그 사이 엄청 인기 있는 식당이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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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와 지역 맥주

 

그러나 그 종업원의 태도는 이해 불가다. “4년 전에 왔었어라는 변명은 쓸데없는 짓이었다. 필자가 그의 얼굴을 기억 못하듯 그 또한 무수한 동양인의 한 명을 어찌 기억하겠는가. 그가 기억해달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저 예전보다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했기에 잠시 구경하고 싶었을 뿐이고, 무엇보다 첫 번째 방문 때는 그런 팻말이 없었고 분명히 친절했었다. 그런데 친절은커녕 인상을 구기며 오만불손한 종업원의 태도에 좋은 추억조차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그날 화사하게 웃으면서 음식을 즐기던 사진이 앨범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말이다. 그 집에서 10년 일했다는 종업원의 불친절한 태도는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느낀 듯하다. 한 리뷰어도 화가 잔뜩 났다고 써놓은 글이 있었다. 누군가는 옛 추억을 그리면서 찾기도 한다는 것을 그 종업원은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런 기사를 본 적 있다. 리투아니아 인들은 체계적이고 계산적이라기보다 사교적이며 친근하며 감성적이다. 발트 3국 중에서는 가장 활기차고, 가장 성질이 급하다고 평가받는다. 그 예로, 소련에서 독립 선언도 가장 먼저 했으며 그 과정 중에서도 유일하게 유혈 혁명을 일으켰다. 한마디로 다듬어지지 않은, 순수함이 많이 남아 있는 민족성이다. 정 많고 성격 급한 한국인과 닮은 사람들이라고. 어쩌면 그 종업원도 그런 류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식당은 다시 안 갈 것인가? 아니다. 일단 음식이 맛있다. 무엇보다 그 겨울, 나의 첫사랑의 기억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 또 간다면 그 식당을 분명 찾을 것이다. 그 종업원에게 함지박 만하게 웃어주는 요령 정도는 다시 할 수 있다.

 

분노에 찬 일본인 여성

밖에서 기다렸다가 그 종업원이 안내하는 자리에 일본 여성과 앉았다. 그녀의 이름은 미나’. 종업원의 태도에 기분은 나쁘지만 숙소에서 처음 만난 미나에게 가자고 부추겼으니 불쾌한 기분은 최대한 누르면서 메뉴판을 들여다본다. 맛있었던, 치킨 샐러드와 지역 맥주를 주문한다. 미나는 한참동안 메뉴판을 살피더니만 돼지바비큐를 시킨다.

 

서로 아는 게 없는 사람들이니 호구조사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동글한 얼굴형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끼고 긴 생머리를 늘어트린 마나는 히로시마에서 약사로 일하는 전문직의 30대 싱글녀다. 그녀는 당시 일을 그만두고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가 여행지에서 만난 여느 일본인들과 별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행하면서 만난 몇몇의 일본인들은 보편적으로 말을 잘 받아주는 편이었다. 이탈리아 피렌체 숙소에서 만난 젊은 남자는 시실리의 끔찍한 에피소드를 말하니 귀를 쫑긋했었다. 버스 안에서 만난 젊은 일본 여성도 일본인 특유의 친절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녀는 달랐다. 대화를 나누다 분노에 얼굴이 일그러지는 그녀를 보고 순간 당황했다. 그 이유는 그녀가 손가락 약지에 낀 반지 때문이었다. 약지의 반지는 기혼임을 표시하는 증표다. 그녀가 싱글이라고 했기에 왜 반지를 꼈어?”라고 물었는데 기혼은 왼쪽, 미혼은 오른쪽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오른쪽 왼쪽을 누가 구분할까?”라고 했더니 그녀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감정을 속일 줄 모르는 여성이었다. 순간 깜짝 놀라서 미안하다고 사과 했다.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서로 얼굴 붉힐 이유는 없잖은가? 그런데 그녀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분노조절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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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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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사 광장의 밤

 

새벽 문에 걸린 보름달

상황은 묘하게 뒤틀렸지만 이 식당의 음식은 맛있다. 맛있는 음식을 안주 삼아 지역 맥주 두 잔까지 마시니 여행 피로와 기분 나쁨도 사르르 풀린다. 미나와 함께 왔으니 숙소까지 같이 돌아가는 것은 예의다. 식당 밖으로 나와 지척의 시청사 광장으로 나선다. 시간은 깊어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1994) 된 구 시가지는 노란 조명 등으로 물들었다.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건축들을 보니 자꾸만 첫 번째 여행 때의 감성이 되살아난다. 속으로 잘 있었지?’라며 눈인사를 나눈다. 익숙한 골목길 끝에 있는 새벽 문앞에 도착한다. 16세기에 쌓았던 성벽 출입구의 9개 성문 중에서 유일하게 남은 성문. 숙소로 갈 때마다 일부러 거쳐 가는 문이다. 아치형 성문 사이로 보름달이 걸려 환하게 길을 밝힌다. 떠오르는 옛 기억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또 비교한다. 게디미나스 성탑에서는 초승달을 봤는데 이번 여행 때는 보름달이다. 행운이 시작되는 것일까?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고장난 컴퓨터

큰 사고는 다음날 일어났다. 하룻밤 자고 난 다음날, 인터넷 접속을 하다가 잘못된 비밀번호를 억지로 넣고 연결하려는 탓에 컴퓨터가 완전 먹통이 되고 말았다. 이 숙소에서는 두 가지 컴퓨터 라인을 쓰고 있는 것을 몰랐던 것. 시스템이 완전히 깨져 버렸다. 여행 한 달 조금 넘어 생긴 대형 사고다. 4개월 여행 계획인데 나머지 3개월을 컴퓨터 없이 지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작업해 둔 한글 파일은 문제도 아니다. 컴퓨터는 인터넷 확인 뿐 아니라 사진 파일도 저장해야 한다. 컴퓨터를 새로 사든지 고국으로 앞당겨 귀국하든지 별 생각이 많다.

 

인생을 살다보면 1분 전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을 때가 종종 생긴다. 컴퓨터 좌판기의 엔터키를 건드리지 않았던 그 1분 전으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후회로 통곡하는 아침이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출근한 숙소지기에게 고장 난 컴퓨터에 대해 말을 했더니 직접 나서서 컴퓨터 고치는 가게로 데리고 간다. 한 군데는 문을 열지 않아서 다른 가게로 옮긴다. 핸드폰을 파는 작은 매장이다. 어수룩해 보이는 주인과 성격이 활발한 판매원 젊은 아주머니가 있는 가게다. 수리비가 비싸더라도 컴퓨터만 고칠 수 있다면 빌뉴스에서 계속 머물겠다는 생각이다. 일이 손에 잡힐 리 만무하다. 김 빠지고 맥 빠지는 날이지만 숙소에만 있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프랑스 림에서처럼 카메라가 고장 난 것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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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마켓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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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뉴스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시장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가까운 홀 마켓(Hall Market, Halės Turgus)으로 간다. 필리모(Pylimo) 거리와 바질리요누(Bazilijonų) 거리가 만나는 교차로에 있다. 그러나 건물 외관만 봐서는 절대 시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멋지다. 유서 깊은 건축물처럼 보여 시장보다는 관공서 같은 느낌이다. 시장의 상가들이 문을 닫아 버리면(개장시간: 7~18, 혹은 15시까지) 그 구분은 상상하기 어려워진다.

 

이 홀 마켓은 당시 빌뉴스의 대표적인 건축가이자 엔지니어였던 바클로바스 미체네브큐스(Vaclovas Michnevičius, 1866~1947)가 설계했다. 빌뉴스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의 자리에 건축(1904년에 시작해 1906년에 완공)되었다. 이 시장은 고대부터 있던 곳으로 빌뉴스 주민들과 손님들이 신선한 식재료와 산업 용품을 구입했던 자리다. 현재의 모습은 2006년에 완공한 것. 시장 개관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2년에 재건축과 확장을 시작해 4년 만에 재개장했다. 이 시장에는 다양한 종류의 신선한 고기, 생선, 훈제 제품, , 유제품 및 유기농 식품, 농산물(야채 및 과일), 산업용품의 매장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이곳은 주민들을 위한 시장 통이지 단기 여행자들에게는 큰 메리트가 없다. 그저 홀 마켓 입구에 쌓여 있는 청과물 매장을 기웃거리면서 제철 과일이나 살 뿐이다. 필자도 이 시장에서 구입한 것은 자두와 토마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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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즈디누 펠레다 자매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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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명판

 

 

자매동상과 공원.jpg
자매동산과 공원

 

작은 공원에서 만난 작가 자매 동상

길을 건너면 작은 공원이다.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은 작은 공원에서 라즈디누 펠레다(Lazdynu Peleda) 자매의 청동상을 만난다. 두 명의 여자가 마주보고 있는 동상은 마치 이집트 클레오파트라가 연상된다. 머리에 쓴 두건이 머리칼처럼 보여 그런 느낌이 든다. 이 동상은 1993년에 설치되었다. 조각가 달리아(Dalia Matulaitė)와 건축가인 유라스와 리만타스(Jūras Balkevičius 그리고 Rimantas Buivydas))의 작품이다. 이 자매의 동상이 세워진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라즈디누 펠레다 자매는 19세기 후반의 리투아니아 유명한 작가다. 자매가 남긴 유명 작품은 리투아니아 민족 문학의 고전이 되었다. 언니는 소피아(Sofija Ivanauskaitė-Pšibiliauskienė, 1867~1926), 동생은 마리야(Marija Ivanauskaitė-Lastauskienė, 1872~1957). 이 자매의 아버지는 폴란드-리투아니아 귀족이자 화가(Nikodemas Ivanauskas, 1844~1931)였다. 아버지는 그의 부모로부터 파라기아이(Paragiai, 리투아니아 북서부)에 있는 영지를 물려받았다. 예술가의 재능을 가진 아버지는 결혼해 소피아가 태어나자 뮌헨으로 가서 예술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바르샤바, 크라쿠프, 시아울리아이(Siauliai, 혹은 샤울레이)에서 살았다. 둘째딸 마리야가 태어난 후 5년 뒤인 1877년 경 가족은 이 영지로 돌아 왔다.

 

귀족 화가 자매들, 빌뉴스에서 만나

소피아는 파라기아이 영지에서 태어났고 10살에 다시 돌아와 살았다. 정규교육을 따로 받지 않았고 오로지 가정에서 교육이 이뤄졌다. 소피아는 1891(24), 이웃 지주(Przybylewski)와 결혼했다. 소피아는 아버지뻘 되는 남편과의 결혼이 행복하지 않았다. 불행한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1903(36), 어린 아이 둘과 함께 빌뉴스로 이사했다. 가난한 소피아는 빌뉴스에서 서점 판매원, 재봉사, 약국 도우미 등, 무작위로 일했지만 삶은 늘 궁핍했다. 대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많아졌다. 출간과 기고를 했다.

 

여동생 마리야는 15세에 자수를 배우기 위해 영지 인근 도시인 시아울리아이로 갔다. 16세 이모가 운영하는 폴란드 바르샤바의 섬유 공장에서 9년을 보냈다. 1898(26),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이사했다. 그녀는 자수사업가가 되었다. 나중에는 의류 보석 작업장에서 주문을 받았다. 그녀는 그곳에서 만난 벨로루시 문학 비평가이자 유명 정치가인 바클라우 라스토우스키(Vaclau Lastouski, 1883~1938)1903(31) 결혼했다. 남편 바클라우는 11살 연하였다. 그러다 마리야 부부는 1906(34) 빌뉴스로 이사했다. 남편은 벨로루시 신문사인 나사 니바(Naša Niva)의 편집실에서 일하면서 서점(Vilnius Belarusian)을 관리했다. 1910년부터 이 가족은 직장 근처(현재 PylimoKalinauskas 거리의 교차로)에서 살았다. 그들의 작은 방은 벨로루시와 리투아니아의 크리에티브 클럽이 되었다. 자매가 이곳에서 자주 만난 것은 당연했다.

 

한편 마리야가 남편과 언제까지 함께 했는지는 정확치 않다. 결혼했다가 금방 헤어졌다는 기사도 발견되고 바클라우가 고향 벨로루시 민스크로 돌아간 1927년에 혼자였다는 기사도 검색된다. 둘이 갈라선 것은 금방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이 부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1919년 남편이 감옥에 투옥되었다. 이 부부가 1910~1920년까지 살던 집(Pylimo str. 5(Old Town Eldership)에는 명판(1996)이 붙어 있다는 것을 보면 부부가 헤어진 것은 그 즈음인 듯하다. 어쨌든 마리야는 딸 둘을 낳았고 바클라우는 감옥에서 나와 카우나스에서 일하다가 고국으로 돌아가 정치인, 벨로루시 역사가, 작가 및 홍보 전문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1938(55), 소련에 의해 총살당했다. 남편은 현재에도 벨로루시의 유명인사다.

 

라즈디누 펠레다필명으로 출간

자매 가족의 필력은 집안 내력이었나보다. 아버지는 화가였지만 저술 작업도 했다. 언니 소피아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하면서도 열심히 글을 쓰고 기고하고 출간했다. 동생 마리야 또한 17세에 바르샤바에서 글을 써서 기고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빌뉴스에서 자매가 만났을 때 동생 마리야는 리투아니아 어를 전혀 몰랐다. 그녀의 가족은 어릴 적부터 폴란드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모국어가 폴란드어다. 특히 마리야는 폴란드 바르샤바에 살았기에 리투아니아 어로 글쓰기는 불가능했다. 이때 언니 소피아가 마리야를 독려해 글을 쓰게 한다. 소피아는 마리야의 글을 리투아니아 어로 번역하고 편집했다 자매는 라즈디누 펠레다(Lazdynų Pelėda)’라는 필명으로 책을 출간했다. 두 명의 작가였지만 당시 독자들은 한 명의 작가로 알았다. 이 둘의 펜(pen) 이름은 아울과 헤이즐(Owl, Hazel)이었다.

 

1914(41) 소피아가 결핵에 걸려 카우나스로 이사했다. 세계대전 때는 고향 파라기아이의 영지에서 함께 살았다. 소피아는 이 영지에서 사망(1926, 59)했다. 언니가 죽은 후, 마리야는 1938(66) 카우나스로 이주해 죽을 때(1957, 85)까지 살았다. 현재 자매의 파라기아이 영지에 있던 19세기의 생가 본채는 1966, 라즈디누 올빼미 박물관(Lazdynai Owl Museum)이 되었다. 이 박물관은 아크메네(Akmenė) 지구의 남서쪽에 위치한다. 이 작은 공원에서 또 다른 유명인의 동상을 만나게 된다. 그의 이름은 타라스 셰브첸코(Taras Shevchenko). 이미 한국에도 그에 관련된 책이 많이 출간되어 있어서 완전히 낯선 인물이 아니다.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사와 빌뉴스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다음 회에 이어진다.(계속)

 

Data

홀 마켓:주소 Pylimo g. 58, 빌뉴스/전화 +370 5 262 5536/웹사이트 http://www.halesturgaviete.lt/lt/paslaugos.html

자매 동상:주소 Arklių g., 빌뉴스/전화 +370 5 262 9660

파라기아이 자매박물관: 주소 K. Kasakausko g. 17, LT-85367 Akmenė/전화 (8,425)55075

타라스 셰우첸코 동상: 주소 Arklių g. 26, 빌뉴스

빌뉴스 웹사이트: https://www.govilnius.lt/visit-vilnius/전화+370 686 57232

빌뉴스 패스: https://www.govilnius.lt/visit-vilnius/get-vilnius-p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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