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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이신화의 유럽 인문 여행72]알바니아 제 2의 항구 도시, 두러스의 매력 잡기

2021-05-31 14:45

글·사진 : 이신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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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에서 서쪽으로 약 34km 떨어져 있는 항구도시 두러스. 티라나에서 버스로 약 한 시간 거리다. 두러스는 아드리아 해안을 낀 최대 항구도시로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였다. BC 627년에 그리스인들이 정착한 게 도시의 기원. 도심에서는 6세기에 건설된 성벽,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에 건축된 원형극장, 색채가 아름다운 모자이크, 로마인의 온천 목욕탕, 조그 왕의 별장 등을 볼 수 있다. 알바니안의 영웅적인 배우 알렉산드로 모이시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도 남아 있다.
베네치안 탑 위의 테라스.jpg
베네치안 탑 위의 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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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안 타워와 성벽

 

로마시대 베네치안 탑에서 커피 마시기

한 여름 지중해와 접해 있는 알바니아는 과장 없이 타 죽을 것처럼 날씨가 뜨겁다. 티라나의 숙소 매니저는 두러스(Durres)까지 안내를 해주겠단다. 긴 여행에 지친 여행객은 모처럼 받는 남의 친절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그와 함께 두러스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내심 바다를 낀 항구도시이고 휴양도시라는 말에 멋진 풍치를 기대해 본다. 버스에서 내려 길 건너 시 청사건물을 보며 차도를 따라 해안으로 발길을 옮긴다. 가는 길목에서 알바니아 정교회인 사도 바울과 성 아스티 교회의 멋진 건물을 만난다.

 

이슬람교도들이 대부분인 알바니아에서 보기 드문 정교회다. 1세기에 사도 바울이 이 지역에 기독교를 전파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1994~2002년에 완공한 정교회다. 지은 지 오래되지 않아 고풍스럽다기보단 화려함이 밴 이 교회는 로마 비잔틴 시대의 건축물과 거의 비슷하다. 이어 아드리아 해안을 바로 앞두고 5세기 로마 시대에 건축된 성벽과 둥근 베네치안 탑을 만난다. 베네치안 탑 위에는 카페임을 보여주려는 듯 파라솔이 펼쳐져 있다. 유럽 다수 나라들은 중요한 문화유적 건물들을 카페, 레스토랑, 숙소 등으로 이용하는 일이 흔하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일단 뜨거운 열기를 식히기 위해 성탑 꼭대기의 테라스로 오른다. 베네치안 성탑 위에서는 아드리아 해안과 볼가 공원, 자유 동상 등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좋다. 항구에는 화물선들과 선적할 박스가 눈에 띈다. 아드리아 해에서 열 번 째로 큰 화물 항구인 두러스는 이탈리아, 그리스, 몬테네그로 등과의 교역이 활발하다. 철도 노선을 통해 내륙과도 연결되어 있어, 공업 제품 등의 중요한 집산지 역할을 한다.

 

디라키움 제국 때 만들어진 원형 탑

두러스 성벽과 베네치안 탑은 로마 비잔틴의 디라키움(Dyrrachium) 제국의 황제 아나스타시우스 1(491~518)에 의해 지어졌다. 두러스 성벽과 함께 지어진 4.6m 높이의 이 원형 탑은 1273년 지진으로 파괴된 후 복원되었고 베네치아 공국 때와 오스만 투르크 지배 시절에도 강화되었다. 이 성탑은 193947일 알바니아를 침공한 이탈리안들과 알바니아 애국자들이 싸운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성탑 주변으로 무조 울퀴나크(1896~1939)의 동상과 함께 총포 조형물이 있다. 그 외에도 네덜란드 군 사령관과 정치인이었던 톰손(1869~1914)의 동상도 볼 수 있다. 이탈리아 무솔리니 통치 시절에 알바니아 침공에 대항한 독립 영웅들이다. 몬테네그로의 울치니에서 태어나 두러스에서 사망한 무조 울퀴나크는 당시 로열 알바니아 해군으로 이탈리아 군에 저항하다 사망했다.

로마 시대의 성벽.jpg
로마 시대 성벽

 

1905년과 1913년 사이에 알바니아의 공국의 국제 헌병대장이었던 네덜란드인 톰손은 1914, 이탈리아 저격수에게 살해되었다. 모두 알바니아 자유를 위해 순직한 순교자들. 존 레논 동상이 벤치에 앉아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탑을 벗어나 해안을 따라 직선으로 이어지는 타울란티아(Taulantia) 거리를 걷는다. 바다에는 마을 소년들이 물놀이에 여념 없다. 소년들은 멋진 포즈로 다이빙을 하면서 기꺼이 사진 모델이 되어준다. 바다 안쪽으로는 벤투스 항구 다리가 밋밋한 바닷가에 포인트를 준다. 벤투스 항구 건물 안에는 식당, 호텔 등이 있다. 벤투스 항구에 이어 모래사장이 깔린 해수욕장이 펼쳐진다. 해수욕장에서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해안가에 자리한 한갓진 레스토랑에 앉는다. 해물 리조토로 점심을 먹었더니 과일을 멋스럽게 장식한 조각 과일을 서비스해 준다. 분명코 알바니아 어를 잘 구사한 동행한 호텔 매니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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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영웅 톰손

 

 

다이빙 하는 소년들.jpg
다이빙하는 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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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러스 모래 해변

 

두러스의 고고학 박물관에서 역사를 읽다

타울란티아 거리를 되돌아오면서 고고학 야외 박물관에 흩어져 있는 문화유적의 조각들을 보게 된다. 두러스의 역사를 읽을 수 있는 유적들이 야외와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것. 두러스는 알바니아에서 오래된 도시 중 하나. 도시 기원은 BC 627, 코린트와 코르푸 출신의 그리스 인에 의해 만들어진 에피담노스(Epidamnos). 두러스는 상업이 발달할 수 있는 천혜의 입지였다. 내륙과 바다 사이로 가파른 절벽이 있고 바위는 천연 항구역할을 했다. 이후 기원전 312, 일리리아의 왕 그라우키아스에게 점령당한다. 기원전 230년 무렵에는 로마 공화정과 일리리아의 전쟁이 두 차례 치러지면서 로마가 이 도시를 점령한다.

 

로마인들은 에피담노스라는 이름이 불길하다고 생각해 디라키움으로 바꾼다. 디라키움은 로마의 주요 군사, 해군 기지로 발전하게 된다. 테살로니키와 콘스탄티노플을 연결하는, 주요한 이그나티아 가도의 서쪽 끝이 이 도시였다. 특히 이곳에서 태어난 아나스타시우스 1(491~518) 때 강력한 요새로 발전한다. 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되자 보수하면서 12m에 이르는 높은 성벽을 재건하고 강화했다. 벽의 두께는 4명의 기병들이 나란히 말을 탈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에도 불가리아 제1제국, 동로마 제국에 침공되었고 1501년에는 오스만 제국에 침략 당한다. 19141920년에는 잠시 알바니아의 수도가 되었지만 193947, 이탈리아에 점령당했다. 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독일이 점령했고 여러 우여곡절 끝에 엔베르 호자(1908~1985)40여년 넘는 철권통치를 겪고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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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 레스토랑의 리조토

 

배우 알렉산드로 모이시의 집

고고학 박물관을 지나 골목 속으로 들어가면 6세기의 성벽 길이 이어진다. 현재 세 개의 문과 성벽 3분의 1이 보전되어 있다. 두러스의 가난을 보여주는 낡은 가옥들을 지나치다가 성벽 옆에 있는 사브리 투치(1916~1992) 동상을 만난다. 크루야 시에서 태어난 그는 국민 조각가로 불린다. 또 한군데는 당대의 유명 배우였던 알렉산드로 모이시(1879~1935)의 박물관이다. 19세기 가옥은 당시 부자가 살던 집으로 1982년에 모이시 박물관이 되었다. 이 집은 모이시가 초등학교 시절(1884~1889) 5년간 살던 곳이다. 모이시가 두러스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다. 부자 상인이었던 알바니안 아버지와 피렌체의 의사 딸이었던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당시 이탈리아 트리에스테(Trieste)에서 태어났다. 그는 스무살 때까지 오스트리아 비엔나 왕립 극장에서 보컬을 공부했지만 강한 이탈리아 악센트로 배우가 되기 어려웠다. 여러 우여 곡절을 겪다가 당시 영향력 있는 감독 막스 레인하르트(1873~1943)의 제자가 되면서 세기적인 배우의 길에 올라선다.

 

1911년 러시아에서의 공연이 비평가들에게 극찬을 받는다. 이후 그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가로 질러 여행하면서 무려 1400번 이상이나 공연한다. 1914,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어 시민권을 취득해 독일 배우로 기록되어 있는데 1933년에는 독일을 떠나 알바니아 조구 1세 왕에게 알바니아 시민권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까지도 인정받는 배우로 베를린, 잘츠부르크, 비엔나에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 특히 알바니아에서는 매우 중요한 국가 배우로 존경받는다. 티라나의 음악과 예술 아카데미의 드라마 학교 뿐만 아니라 대학, 그리고 두러스의 시티 극장에 알렉산더 모이시라는 이름을 붙였다. 현재 그의 묘지는 스위스 루가노 호수가 내려다 모르코테에 있다.

원형 경기장의 문.jpg
원형 경기장 문

 

 

원형 경기장 내부.jpg
원형 경기장 내부

 

 

원형 경기장 주변의 가옥들.jpg
원형 경기장 주변 가옥들

 

로마 시대의 성벽과 원형경기장 유적지

성벽에는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아치형 문이 있다. 문을 통과하면 야트막한 언덕 위에 AD 2~4세기 무렵 건설된 로마 원형경기장이 부서진 채로 남아 있다. 로마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에 건축된 132m의 타원형 경기장은 발칸 반도에 건설된 최대 규모의 원형 경기장. 한 번에 2만 명을 수용 할 수 있었다. 4세기 후반에는 기독교 예배당이 지어졌다. 처음에는 프레스코 화로 장식했고 6세기에는 모자이크가 추가되었다. 13세기에도 교회가 세워졌다. 이 경기장은 16세기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흙 속에 뒤덮인 채로 방치 되었다. 1966년 후반에 발견되어 1980년대에 발굴을 시작했지만 더 파괴되자 2004년부터 파르마 대학교에서 맡아 복원 작업을 하게 된다.

 

하지만 심각한 구조적 결함을 보완하지 못했고 모자이크와 프로테스코 화는 쇠퇴하고 있다. 2013년 유럽에서 가장 위험에 처한 문화유산 중 한 곳이 되었다. 경기장 근처에는 로마 목욕탕의 유적도 남아 있다. 1502, 오스만 제국 시절에 세워진 파티흐 모스크도 볼 수 있다. 이 모스크는 공산주의 때 폐쇄되고 미나렛도 철거되었지만 독재가 끝난 후에 재건되어 1973년 알바니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그 외에도 두러스 서쪽 언덕 위에 조구 1(1895~1961) 궁전이 있다. 스칸데르베그 3세라고도 일컫는 조구 1세는 알바니아 공국의 마지막 왕. 그는 1925년 정권을 장악하고 1928년에 왕위에 올랐지만 이탈리아와 정치적, 군사적 종속관계가 심화되면서 결국 1939년 이탈리아에 병합되고 말았다. 그는 그리스, 프랑스, 영국 등지를 전전하다가 프랑스에서 객사했다.

 

Travel data

찾아가는 방법:직항은 없다. 이탈리아 몬테네그로, 그리스 등을 통하면 된다. 또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Trieste), 앤코나(Ancona), 바리(Bari) 또는 슬로베니아의 코퍼(Koper)에서는 페리 직항이 운항한다.

현지교통: 두러스는 크지 않다. 천천히 걸어 다니면 된다. 단 로얄가의 언덕 위에 위치한 조그 왕의 집은 많이 걸어야 한다.

음식정보:해안가의 레스토랑이 쭉 이어진다. 바닷가와 인접해 있어 해산물 요리가 맛있다.

숙박정보: 두러스는 휴양도시여서 숙소들이 많다. 호텔, 빌라, 게스트 하우스, 아파트 등 다양하다. 해안가에 거의 밀집되어 있다.

홈페이지: http://www.durres.go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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