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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오르간 연주 듣고 칸트 산책로 걷고

2021-05-04 18:43

글·사진 : 이신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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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의 오르간 연주회는 전통과 연륜을 자랑한다. 하지만 휘황찬란한 영상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 16세기의 고전 오르간 연주는 고통을 안겨줄 뿐이다. 그렇다 해도 유서 깊은 오르간 연주회는 칼리닌그라드 여행 중에 놓치면 절대 안 되는 좋은 체험거리. 연주회의 고통은 칸트의 강변 산책로를 걷는 것으로 해갈하면 된다. 19세기의 칸트나 21세기의 필자나 느끼는 좋은 감정은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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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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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내부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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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도서관.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 내부 모습

다음날 숙소의 빈자리는 생기지 않았다. 결국 숙박지기가 추천해준 다른 숙소로 옮긴다. 도로 건너편이라서 어렵지 않게 찾는다. 예상대로 이 숙소의 중년 아주머니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한다. 거기에 정전이다. 어차피 하루만 견디면 될 일. 방이 정리되길 기다리는 동안 퇴실하는 한 커플을 만난다. 그중 남자는 퇴실을 뒤로 하고 노트북을 꺼내들더니만 친절을 베푼다. 도통 이해 못할 러시아식 친절이지만 그걸 계기로 서로 페이스북 주소를 교환했고, 단지 그 인연으로 그와는 한동안 소식을 전하는 사이가 된다. 


느긋한 마음으로 숙소에서 머물다 대성당으로 향한다. 오르간 연주회가 오후 두 시. 여유 시간이 있어서 또 한번 칸트 섬을 어슬렁어슬렁 둘러보다 콘서트 시간에 맞춰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거대한 콘서트 홀의 객석이 꽉 채워지고 있다. 성당 내부에는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말고도 장식들이 화려하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오르간 연주회인데다 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으니 뭐가 뭔지 알리 만무하다. 그저 건물 벽면에 걸린 여러 자료들을 카메라에 기억해두는 것이 전부다. 


벽면에는 옛 쾨니히스베르크 성당의 흑백 사진이 걸려 있고 인물 사진도 많다. 독일 작곡가 요하네스 에카드(johannes eccard, 1553~1611), 요한 스토바우스(Johann Stobäus, 1580~1646), 사이먼 다흐(Simon Dach, 1605~1659), 에른스트 호프만(Ernst Hoffmann, 1776~1822) 등. 호프만의 초상화 밑에 적힌 1790년~1792년이나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의 1836년~1837년은 그들이 이 성당에서 일했던 시기일 것이다. 바그너가 이 성당에서 일했다는 것이 신기하다. 많은 초상화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끌어당기는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사이먼 다흐다. 리투아니아 클라이페다 극장 광장의 분수대에서 장황하게 설명했던 다흐는 친구들과 함께 많은 찬송가를 만들었다.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의 오르간 연주의 역사

오르간 연주회를 듣기 전 자료를 통해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의 오르간 연주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14세기, 성당의 첫 번째 오르간은 작고 볼품없었다. 예배 때마다 두 명의 성직자가 교회로 가져 왔다. 오르간 연주가 본격화된 것은 알브레히트 공작(1490~1568)때다. 공작은 특별한 오르간 학교를 만들기에 주력했다. 세기 말에는 폴란드 크라쿠프와 다른 도시의 음악가들이 오르간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이 대성당에 왔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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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간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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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다흐.

 

1587년, 오르간을 바꾸고 16세기 말까지 이용했다. 17세기에는 사이먼 다흐와 친구들에 의해 프로이센 전체에서 가장 크고 가장 대표적인 오르간으로 명망을 얻었다. 18세기에는 오르간 발명가인 요한 마엘젤(Johann Maelzel 1772~1838)이 바로크 양식의 새로운 대형 악기를 발명했다. 거의 4천 개의 파이프가 있는 오르간이었다. 독일 후기 낭만주의 작가이자 작곡가인 에른스트 호프만이 음악의 기본을 이해한 것도 이 악기였다. 1928년, 마지막 네 번째 오르간이 대성당에 등장했다. 동시대 사람들은 이 오르간을 ‘뛰어난 예술 작품’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1944년, 영국 공습으로 성당은 완전 파괴되었다. 성당이 복원되고 1966년, 독일 오르간 제작사인 에밀 해머 오르겔바우(Emil Hammer Orgelbau)사의 바로크 양식과 장식을 살린 새로운 악기를 들였다. 현재 대성당에서는 매년 700개 이상의 콘서트가 열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자, 최고의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이 공연한다. 소련의 대표적인 아르메니아계 작곡가인 미카엘 타리베디예프(Mikael Tariverdiev, 1931~1996)의 이름이 붙은 국제 오르간 콩쿠르도 이곳에서 열린다.


오르가니스트 만수르 유스포프 

현실에서 오르간 콘서트는 어떨까? 40여 분 간 이어지는 오르간 연주는 참 괴롭다. 이미 현란한 영상에 길들여진데다 클래식 찬송 곡에 익숙하지 않은 필자 같은 사람에게는 오르간 연주는 거의 소음 수준이다. 자칭 음악에 조예가 깊다고 하는 자는 허세일 것이다. 연주회장에서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있을 때, 한 젊은 여성이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정말이다. 원고를 쓰면서 그날 연주자인 오르가니스트 만수르 유스포프(Mansur Yusupov, 1992~)의 연주를 다시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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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 오르간.

 

연주회장에선 얼굴조차 보지 못한 오르가니스트인 만수르를 사진과 영상으로 만나보니 참 잘생긴 청년이다. 그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 음악원의 유명한 교수(DF Zaretsky)의 보조 연수생이란다. 많은 상을 받은 그는 2017년부터 이 대성당의 유명 오르간 연주자로 일하고 있단다. 그의 잘생긴 얼굴을 보면서 연주를 들었다면 덜 지루했을까? 그러나 절대 후회스럽지 않다. 역사도 깊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르간 연주회 체험은 칼리닌그라드 여행의 꽃이다. 컨서트 평균 티켓 가격은 350루블 정도(한화 5300원). 콘서트 홀만 방문하려면 100루블(한화 1500원)이다.


칸트 박물관

대성당 건물의 4층에는 ‘칸트 박물관’이 있다. 그러나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칸트 박물관의 입구를 찾지 못했고 사전 정보가 없어서 아쉽게 간과하고 말았다. 몇 사람들이 칸트 박물관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듯한데, 귀를 기울지 못한 불찰이었다. 칸트 박물관을 보려면 대성당 내부의 나선형 계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칸트 박물관에는 3개의 전시실이 있다. 첫 번째 전시관은 칸트 섬(또는 크네이호프(Kneiphof))의 역사를 보여준다. 두 번째는 발렌로트(Wallenrodt) 도서관이다. 1623년, 법학자이자 고서 수집가였던 공작, 마틴 폰 발렌로트(Martin von Wallenrodt, 1570~1632)는 알베르트 대학에 2000권의 귀중한 책을 기증했다. 그가 기증한 책을 바탕으로 대학 도서관의 기초가 되었다. 책 기증의 선행은 아들 요한(Johann Ernst von Wallenrodt, 1651~1735)으로 이어진다. 그는 1718년, 2000권을 더 기증했다. 발렌로트 도서관은 1909년, 쾨니히스베르크 주립 및 대학도서관에 통합되었다. 그 후 다양한 방법으로 1만권 이상의 책과 필사본을 수집했다. 파손된 이 도서관은 2005년에 복원했다. 마호가니(mahogany) 나무로 만든 책장에는 고서들이 빛나고 있다. 


마지막 전시관은 유명인물의 흉상과 칸트의 ‘죽음 조각’이 전시되어있다. 이 전시관에서는 칸트가 몇 년 동안 러시아 시민이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7년 전쟁(1756~1763)에서 러시아가 승리했다. 당시 칸트는 엘리자베타 여제에게 논리학과 형이상학과의 교수직을 요청했지만 그 자리는 수학 교수였던 프리드리히 요한 벅(Friedrich Johann Buck, 1722~1786)에게 돌아갔다. 또 18~19세기 프리메이슨의 습관과 프리메이슨 롯지(Lodge)의 관습도 보여준다. 박물관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에 메이슨 기호가 있다. 박물관 입장료는 150루블이며, 사진 촬영은 50루블이 추가된다. 


대서양 정복 개척자 기념비와 수호성인 세인트 니콜라스

오르간 공연을 보고 성당을 벗어나 프레골랴 강변 위쪽으로 간다. 강 너머에는 흰색의 대서양 정복 개척자 기념비(Monument to the pioneers of the Atlantic conquest)를 뒤에 두고 수호성인 성 니콜라스(St. Nicholas)의 청동상이 서 있다. 성 니콜라스는 여행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주로 강이나 바다에 놓인다. 성인은 한 손에 칼을 들고 한 손은 사원을 품어 안고 있는 형상이다. 분명히 '세상 모든 사람들 내게 오라'는 느낌이다. 정작 강을 잇는 다리가 없어서 구각교로 올라 대로의 차도(Leninsky Prospekt)를 따라 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또 다른 강변의 시작점에 서 있는 기념비들. 돛 형태의 대서양 정복 개척자 기념비는 청어잡이 어부들을 기원한다. 1948년 6월, 칼리닌그라드 어부들은 대서양 북부로 청어잡이 탐험에 나선다. 선박 퉁구스, 증기선 오네가(Onega), 5대의 모터 세일링 스쿠너(Motor sailing schooner)가 출항했다. 이 탐험은 칼리닌그라드 지역의 어업 발전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30년 후인 1978년, 기념비가 세워졌고 2008년, 부서진 기념물을 복구했다. 1년 후, 기념비 앞에 성 니콜라스 청동상을 만들어 2010년에 세웠다. 청동상은 조각가 세르게이 이사코프(Sergei Mikhailovich Isakov)의 작품이다.


기념비 옆 강변에는 어선 SRT-129와 등대선(lightship)인 이르벤스키(Irbensky)호가 떠 있다. 그냥 운행되는 배인 줄 알았으나 칼리닌그라드 해양 박물관의 전시품이다. 독일에서 건조된 청어잡이 배, SRT-129는 1947~1949년 소련으로 이전되었고 현재 러시아 북서부 지역에서 유일하게 보존된 어선이다.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등대선 이르벤스키도 폐선돼 경매에 들어갔을 때, 2015년에 해양 박물관이 인수한 것. 2017년 강변에 정박해 전시관으로 꾸며졌다. 배 앞에는 작은 아이 홀름 동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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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길.

 

칸트의 벤치와 세계 해양 박물관

이어지는 강변길을 따라 계속 걷다보면 ‘칸트 벤치’가 있다. 벤치 가장자리에 청동의 삼각 모자(Tricorne)와 칸트의 지팡이 조형물을 만들어 여느 벤치와 차별화했다. 200년 전, 임마누엘 칸트는 매일 강변을 산책 하고 벤치에 앉아서 배를 보았다고 한다. 칸트는  “전 세계를 보고 싶다면 쾨니히스베르그를 떠나서는 안된다. 항구를 방문하라!”고 말했단다. 그러나 여행 중 벤치를 찾긴 어렵다. 대신 강변 길 걷는 것은 너무 좋다. 19세기의 칸트나 21세기의 필자나, 느끼는 감정은 똑같은 듯하다. 칸트 벤치를 비껴 조금 더 가면 우측에 세계 해양 박물관(Museum of the World Ocean)을 만난다. 1990년 4월, 설립된 해양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선박 연구 박물관인데 봐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실내 관람은 안한다. 대신 해양박물관 앞, 강 위에 떠있는 우주 비행사 빅토르 파트세에프(Kosmonavt Viktor Patsayev)라는 함대로 다가선다. 우주 비행사 빅토르 파트세에프(1933~1971)의 이름이 붙은 이 배는 딱 봐도 독특하고 멋지다. 우주 통신을 위해 독특하게 설계된 세계 유일한 배는 1968년에 건조되었는데 1990년대 소련이 해체되면서 함께 기능을 잃었다. 2001년에 이곳에 정박했다. 이 함대 또한 관람과 체험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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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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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박물관 입구.

 

체험 배 말고도 범선(갤리선, Galley) 사진이 많이 걸려 있다. 그중 눈길을 강렬하게 끄는 사진이 있다. 해양사진가이자 기자인 발레리 바실프스키(Valery Vasilevskiy)의 작품이다. 그는 국제 항해 훈련(Sail Training International, 젊은이들에게 항해 기술을 훈련시키는 자선단체)을 받았는데 세도프(sedov, 훈련 선박)에 올라 14개월(2012~2013년)간 일주했다. 그의 사진은 그 어느 곳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생동감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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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박물관.

 

창고 박물관과 B-413 잠수정 박물관

강변에 흩어져 있는 배나 해양 관련 전시품들은 머리를 지끈하게 만든다. 그곳에 오래된 느낌이 물씬 나는 벽돌식 건물이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항구의 창고 박물관(Warehouse, museum)이다. 이 창고는 19세기에 건설되었다. 19세기 중반에 철도 다리가 건설되면서 이 창고는 화물 적재소로 이용되었다. 이 창고에 화물을 모아 마차에 싣고 철도로 실어 날랐다. 강변의 계류 벽(Mooring wall, 외항에 선박을 계류시켜 정박시키는 벽)과 자갈 길도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다. 2차 세계 대전 때 파괴되어 2000~2003년에 벽과 자갈길을 복원하고 2006~2007년에 건물을 복원해 박물관이 되었다. 


철교 쪽으로 더 다가가면 잠수정 박물관(Submarine Museum)이 있다. 1967년부터 1989년까지 실전 전투 잠수함이다. 대서양, 바이칼 호수 및 제네바 호수를 탐험한 잠수함이다. 박물관 내부에 들어서면 내부의 주요 기능별 방을 볼 수 있는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공간. 실제 잠수함에서 승무원들의 애환을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잠수정 앞쪽에 있는 다리는 독특한 계층 다리(Two tiered bridge)다. 배와 차량의 이동이 가능한, 독특한 다리구조를 갖고 있다. 멀리서 봐도 복잡한 느낌이다.


강 너머에는 프리드릭스부르크 문(Friedrichsburg Gate)이 있다. 1657년, 요새로 지어졌다. 1697년, 젊은 표토르 대제가 비공식적으로 기술을 배우던 그곳. 사령부 건물, 숙박 시설, 보급품 및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1852년, 프리드리히스부르크 문, 새로운 성벽, 4개의 둥근 탑 등, 대대적으로 재개발했다. 그러나 19세기 말까지 군사 창고로만 사용되었다. 제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파괴되어 2011년에 복원해 세계 해양 박물관이 관할한다. 이곳에 가려면 오로지 저녁(오후 7시30~10시) 가이드 투어(수, 목, 금, 최소 15인 그룹만)만 가능하다.


Data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 컨서트 홀: https://visit-칼리닌그라드.ru/en/entertainment/kirhi5572/kafedralnyy-sobor3202/https://sobor39.ru/en/about/concert-hall/

칸트 박물관: 전화 +7 (4012) 63 17 05 / 웹사이트 https://www.inyourpocket.com/칼리닌그라드/Kant-Museum_137464v

성 니콜라스 동상(Monument to Saint Nicholas):Naberezhnaya Petra Velikogo, 2, 칼리닌그라드

대서양 정복 개척자 기념비(Monument to the Pioneers of the Conquest of the Atlantic):Ulitsa Marshala Bagramyana, 칼리닌그라드

세계해양박물관(Museum of the World Ocean): Naberezhnaya Petra Velikogo, 1, 칼리닌그라드 / 전화+7 (4012) 53 17 44/ 웹사이트:www.world-ocean.ru

창고박물관: Naberezhnaya Petra Velikogo, 1, 칼리닌그라드/+7 (4012) 53 53 82

B-413 잠수함 박물관(B-413 Submarine Museum): Naberezhnaya Petra Velikogo, 1, 칼리닌그라드

프리드릭스부르크 문 가이드 투어 신청: 전화+7 (4012) 53 17 44 +7 (4012) 34 0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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