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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 de Veteran 20]2,000억 회사 매각하고 자연으로! ‘공작산 농부’ 이현삼

2021-07-05 12:12

글 : 이상문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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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돈을 벌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뛰었다. 하지만 돈이 쌓여도 가난했다. 병치레 잦은 몸, 극도의 스트레스에 지친 마음이 회사를 떠밀어내고 있었다. 산삼 한 뿌리로 인연 닿은 강원도 산골에 터를 잡고 눌러앉았다. 쉼도 일도 모두가 놀이가 되는 그곳에서 진짜 성공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살림하는 주부가 아니더라도 알만한 이름 ‘해피콜’. 2000년대 초반 절정에 이르렀던 이 프라이팬 브랜드를 만든 이가 바로 이현삼 회장이다. 시장 밑바닥부터 시작한 그의 입지전적인 성공 스토리는 오래된 구문이다. 잘나가던 그가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은 계기는 2016년 결단 내린 회사 매각이었다. 이후로 6년 동안 이현삼은 ‘공작산 휴양림 농부’로 살고 있다. 
 
농부가 사는 곳은 강원도 홍천의 산골. 공작산 아래 5만 평의 땅이 도피처였다가 낙원이 된 마술 같은 곳이다. 자연에서 건강을 되찾고 자연과 연애하며 자연을 바탕으로 가족사업을 일구고 있다. 사업이라곤 하지만 놀이다. 돈 벌기에 급급한 비즈니스가 아닌 ‘나와 가족’의 행복을 위해 골몰하는, 힘들지만 즐거운 노동이다.         
 
‘해피콜’은 연매출 1,600억 원에 달하는 큰 회사였다.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각지에서도 인기를 끌어 눈뜨고 있는 시간 대부분을 해외출장 비행기에서 보냈다 할 정도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잘나가던 회사를 팔기로 결심했을까. 알려진 바로는 건강 문제였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장애와 저체온증, 피부병 등이 그를 괴롭혔다. 사업도 좋고 돈도 좋지만 나부터 살고 봐야겠다는 각성이 용기를 내게 했다. 그 후로 6년. 자연과 함께한 삶은 그를 한결 더 성숙시켰단다. 그 변화의 과정, 지금도 후회 없다는 자연 속 삶 이야기를 책, <농부 하는 중입니다>(디자인하우스)에 엮어냈다. 6월 11일 공작산 자락 황톳집에서 못다 한 이야기, 자연과의 놀이 이야기를 시시콜콜 들어보았다. ‘

 
자연을 닮은 비누’라는 천연비누 ‘SAAN’ 이야기를 들었다. 여전히 사업을 하는 건가? 농사일 하면서 실험하고 있는 분야다. 나와 가족 건강을 위해 안심하고 쓸 수 있는 비누를 개발하려고 시작한 일인데 지금도 계속 연구 중이다. 해피콜 사업 하는 동안 온몸의 피부에서 각질이 하얗게 나왔었다.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는 세제에 관심이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천연 수제 비누 회사를 알게 됐고 인수했다. 조미료를 안 쓰는 음식을 만들 듯이 가성소다를 안 쓰는 비누를 만들 수 없나 고민하다가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지금은 각 대학병원에서 임상연구를 마쳤고 어느 정도 신뢰할 제품이라 가족들과 지인들이 함께 쓴다. 수제 비누라고 해도 가성소다는 대개 들어가 있다. 가성소다를 대체하려면 그 100배 정도의 죽염을 써야 한다. 비누 한 장 만드는 데 1년이 걸리는 노력을 들여야 하고 비용도 많이 들지만 꾸준히 연구와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비용과 시간, 공력이 과대하게 든다. 상품성이 있을까? 애초에 비즈니스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기업은 이윤 극대화가 목표 아니겠나. 이윤 없이 많은 돈과 노고가 들어가지만 이윤보다 내가 만족하고 가족이 만족하는 완성도 있는 제품 개발에 도전하는 것뿐이다. 경제적 이윤을 추구했다면 가성소다를 썼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걸 구분도 못할뿐더러 써도 문제될 것이 없다. 그렇게 해도 품질이 좋으니까. 약재 발효도 그렇게 오래 공들여 할 필요 없고 적당한 선에서 손익분기점 맞추면 된다. 그런데 이 일은 그런 차원이 아니다. 일단은 최선의 것을 만드는 걸 목적으로 한다. 이미 사업은 접었고 돈은 죽기 전까지 쓸 만큼은 있으니 최선의 가치를 구현하는 데 써보고 싶었다. 돈에 얽매이는 게 아니라 소명과 재미에 가치를 두고 하는 일이다.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원하는 만큼 개발하고 완성도를 높인 뒤 완전히 검증이 되면 판매는 그다음에나 적극적으로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인터넷에 올려놓고는 있다. 
 
해피콜 시절, 건강이 안 좋았다고 했다. 천연비누를 개발하는 것도 직접 겪은 질병 때문인 셈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병이었나? 경기도 포천 지역 수색대에서 군복무를 했다. 영하 28도에서 매복 근무를 주로 해서 손과 발에 동상이 걸렸다. 그때부터 감기몸살이 한 번 오면 오래가는 고충이 있었다. 제대하고는 잊힐 만했는데, 사업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증세가 다시 나타났다. 감기몸살을 1, 2년씩 달고 사는 때도 있었다. 여름에도 목욕을 못하고 내복을 입고 살았다. 몸이 시리고 늘 오한이 있었다. 실핏줄이 막혀 순환이 안 되니 몸에는 하얀 각질투성이였다. 
 
특별히 심하게 발병한 계기가 있지 않았을까? 평소 건강 체질은 아니었지만, 특히 회사 내부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극심하게 드러났다. 직원들의 파업이 있던 해가 있었다. 신경정신과를 3년 정도 다녔다. 위가 나빠 내과도 다녔고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오는 때였다. 2년 반 정도 하루도 빠짐없이 수면제에 의존해야 했다. 그때 누군가가 산삼을 먹으면 괜찮다 해서 먹었는데 조금 효과를 느꼈다. 그때 알게 된 곳이 여기 홍천 공작산이었다. 공작산 심마니가 준 산삼이었다. 삼을 구해 먹느라고 공작산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며칠 시간 내서 삼을 먹고 황토방에서 자고 돌아가면 오한이 가시고 몸이 견딜 만해졌다. 수면제 안 먹어도 되고 위장도 나은 듯했다. 그래서 집사람과 상의하고 그 겨울에 다시 내려왔다. 그때부터는 수면제와 신경정신과 약을 완전히 끊을 수 있게 됐다. 그 덕에 당시 파업과 세무조사를 겪고 빚더미에 올라 있던 회사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 초등학교 꼬마 애들을 부산에 있는 동생들에게 맡기고 공작산을 오가며 치유와 회복을 하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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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론 사업에 정진하게 됐나? 그런데 금세 재발이 되더라. 힘들어지면 다시 내려가 쉬고, 다시 올라와서 일하고 다시 쉬러 가는 생활이 반복됐다. 처음엔 1주일 쉬면 회복하고 나갈 수 있었는데, 다음엔 한 달은 쉬어야 했다. 그다음엔 3개월, 다시 6개월로 늘어났다. 체력이 계속 떨어지는 걸 느끼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사업에서 손을 떼고 회사를 매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 가만히 앉아 있는 거면 괜찮았을 텐데, 거의 매일 비행기를 타고 다녔으니 죽을 노릇이었다. 나 같은 사람에겐 비행기 에어컨이 최악이다. 그것 때문에 몸이 훨씬 더 망가진 듯했다. 한여름에도 가죽점퍼에 가죽장갑을 끼고 비행기를 탔다. 
 
병인은 뭐였다고 생각하나? 산삼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진짜 좋은 삼이어야 효과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보약도 자연생활보다는 못하다고 생각한다. 물과 공기와 자연식물이 사람에겐 최고의 약이다. 하지만 자연의 공기, 물도 못 이기는 게 스트레스다. 극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망가지게 돼 있다. 가장 큰 병인은 스트레스였다. 내가 산증인이다.   
 
잘나가던 회장님의 스트레스는 구체적으로 뭐였나? 창피하고 가슴 아픈 얘기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내부 관리였다. 결국 사람 관계였다. 난 장사하는 사람이니 물건 팔기에 바빴고 회계 처리나 인사관리 등엔 문외한이었다. 전체 관리만 했을 뿐이었다. 퇴직한 관리자 한 사람이 우리 회사 자료를 빼내 부패방지위원회에 고발했다. 국세청 조사를 1년 받고 검찰로 넘어가 조사를 받았다. 거의 3년 걸렸다. 당시에 신고포상제가 있었다. 자료를 모아뒀던 직원이 그 포상금을 노렸던 것 같았다. 부패방지위에서 국세청으로, 노동위로, 검찰로 끌려 다니며 일파만파 일이 커졌다. 미디어에 보도되진 않았지만 회사와 나는 극도의 위기에 내몰렸고 스트레스가 폭발 지경이었다. 당시의 연매출이 500억 정도였는데 세무조사, 검찰 조사 마친 후엔 연 60억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연 30억, 40억 적자를 내면서 회사는 풍비박산 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당장 포기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마음속으로야 하루에도 수십 번 때려치우고 싶었고, 다시는 회사 안 한다고 생각했었다. 법인자산과 사재까지 몽땅 털면 빚더미 정리하고 회사를 넘길 수도 있었다. 실제로 회사를 인계할 요량으로 적자를 찾기도 했는데, 회사 운영엔 관심 없고 장난치려는 사람만 그득했다. 밑바닥부터 키운 회사를 책임감 없는 사람에게 넘기긴 싫었다. 그러니 어쩌겠나. 기계도 있고 사람도 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정말 싫었지만 다시 시작했다.

이현삼의 해피콜은 2004년에 파업을 맞았다. 파업 후유증으로 일부 직원에 대한 해고가 있었고, 2005년 초 그중 몇이 부패방지위에 회사를 고발했다. 같은 해 8월부터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이듬해부터는 검찰 조사가 시작됐다. 곧 끝날 줄 알았던 검찰 조사가 담당검사 인사이동으로 지연됐고 2007년에 재개, 11월에야 마무리됐다. 벌금형으로 마무리된 12월, 부산 본사사옥 등을 매각하고 채무를 변제했다. 김해의 시골 공장으로 옮겨 올 때의 심경은 복잡 미묘했다. 포기하기에도 재기하기에도 애매한 그때는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형국이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다시 일어서야만 했죠. 2008년부터 다시 신상품을 개발하고 홈쇼핑 방송도 하고, 또 무섭게 달려들었습니다. 다이아몬드팬이 이때 탄생한 거예요. 그전엔 주서기나 양면 팬 위주였는데, 제품을 더 다양하게 개발하기 시작했죠. 2008년 6월, 재기 초반에 300억 매출이 되더니 금세 1,000억 매출이 달성되더군요.”
 
 
이현삼 회장은 경남 거창에서 나고 자랐다.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공소 등에서 막일을 하다가 상경해 남대문시장에서 장사를 배웠다. 시장에서 토스트팬 장사를 발견하고 이에 착안해 전국 장터에서 프라이팬을 판매하며 이름난 장돌뱅이로 살았다. 1999년 주방용품 전문 기업 ㈜해피콜을 설립한 이래 줄곧 성가를 울리던 기업인이었다. 양면 팬은 2001년 출시된 후 2,000만 개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였다. 호사다마였는지 그 큰 위기를 맞고 좌절하는가 싶더니 다시 일어선 것. 이후로 다이아몬드팬 등 출시하는 제품마다 홈쇼핑 매출 기록을 갈아치우며 히트 상품을 선보였다. 
 
그러나 회사는 부활하는 듯해도 건강은 나아질 기색이 없었다. 치유를 위한 ‘공작산 힐링’이 자주 반복되면서 급기야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깨달았다는 이 회장. 험난했던 사업가의 길을 접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형제들이 산골에 모여 산다. 좋은 점도 불편한 점도 있겠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작정한 건 아니었는데, 한둘씩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들어오게 됐다. 5형제 중 큰형만 빼고 4형제가 생활한다. 어머니와 큰형도 조만간 들어올 예정이다. 가족이 모여 살면 때로는 갈등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체로 즐겁게 지내고 우애도 좋다. 그런 집안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등공신은 아내다. 보통은 부인들이 이런 산골을 피하려고 한다. 아내의 동의가 없었다면 이런 생활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동서들이 다 들어온 건 아니어서 막내 동서와 함께 안살림을 도맡아 하게 됐는데 군소리 없이 역할을 잘 해내서 미안하고 고맙다. 
 
농사는 배운 적 있나?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이 농사짓는 것만 봤지 내가 해보진 않았다. 가난했다. 부모님이 부산으로 이사하고 나서 콩나물 공장, 미나리 공장 등에서 일했고, 우리 5형제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모두 다 돈벌이에 나섰다. 저마다 3D 업종인 금형공장, 철공소 등에서 일했다. 대학에 진학한 형제가 없다. 아버지는 내가 첫딸을 낳은 그다음 날 새벽에 돌아가셨다. 전국을 돌며 행상하고 한창 고생할 때였다. 그러다 사업을 하게 됐으니 농사를 제대로 할 기회가 없었다. 농사는 다들 문외한이었지만 공작산에 들어와 하나하나씩 배워가는 중이다. 처음엔 약을 전혀 안 쳤다. 그래도 농사가 너무 잘됐다. 대충 꼽아놓고 뿌리면 되는 거라 생각했다. 농사가 뭐 그리 어렵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런데 해를 거듭하면서 농사가 어렵다는 것, 하면 할수록 힘들고 경이롭다는 걸 알게 됐다. 나름대로 터득한 깨달음이 있었다. 농사를 안 지었던 땅은 굉장히 잘된다는 것, 그 지역에 농사짓는 사람이 없어야 내 농사가 잘된다는 것이다. 약을 우리만 안 치면 모든 벌레가 우리 밭으로 온다. 밀양에 사둔 자두 밭이 있었는데 약을 하나도 안 쳤더니 나무 한 그루에 매미 수천 마리가 붙더라. 밀양시내 매미 전체가 다 온 듯했다. 유실수만 그렇겠나. 논밭도 마찬가지다. 더 잘되게 하는 방법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재미에 빠져 산다.
 
학벌 콤플렉스 없었나? 성공한 CEO들은 나중에라도 대학원에서 학위를 얻기도 하는데…. 그런 거 별로 없다. 형식 말고 실질적인 걸 하라고, 어느 자리에 가서든 얘기한다. 허황된 그림을 그리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게 중요하지 대학교가 뭐 그리 중요한가. 난 어디 가든 고등학교만 나왔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진정한 프로는 정말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말하는 것이고, 최고의 전문가는 현장 밑바닥에서 나온다. 무술 하는 사람도 물 긷기부터 시작해 기초를 닦는 거나 마찬가지 이치다. 최고의 미용사는 머리 감기는 것부터 배운 사람들 중에서 나온다. 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밑바닥의 현장이 중요하다. 실질적인 공장에서의 노동이 프로를 만든다.
 
그래도 사업을 하자면 커뮤니티가 필요하지 않나? 내 할 일도 바쁜데 사람들과 꼭 어울려 다녀야 하는지를 의심했다. 시간도 없었다. 그럴 시간 있으면 소비자랑 더 많이 대화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제품을 연구하는 데도 시간이 부족했다. 그런데 파업 이후 시작된 위기를 겪고 나니 인맥이 중요하다는 걸 느끼긴 했다. 나쁜 인맥 말고 진짜 좋은 이들과의 인맥, 진심으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과의 친교는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지금은 그간 겪은 분들 중 좋은 분들과 연락을 유지하며 산다. 독불장군으로 살면 외로워지기도 하고 불필요한 피해를 입기도 하더라. 그렇다고 골프 회원권이 있어도 1년에 한 번도 안 간다. 사람들 만나기 싫어서가 아니라 골프 치는 데 하루를 다 뺏기는 게 아까워서다. 그 시간에 농장 일 돌보며 산에 있는 게 더 좋다. 
 
술과 담배도 안 하나? 담배는 일찍 배우고 일찍 끊었다. 술은 필요할 때 적당히 하는 정도다. 약재로 담근 술을 약으로 가끔씩 마시는 수준이다. 어쩌다 많이 먹는 날은 정해져 있다. 예전 사업할 때 회사 체육대회 날과 김장축제 날엔 엄청 마셨다. 직원들 모두에게 받아먹고 따라주고 했으니까. 그런 날은 미리 약도 먹고 철저히 준비하고 나간다. 오래전부터 가족체육대회도 한다. 그때도 마음놓고 술을 마신다.  
 
해피콜에서 양면 팬을 만들 때도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늘 연구해왔다.농사를 지으면서도, 천연비누를 개발하면서도 늘 연구하고 배우는 기질은 여전하다. 탁월한 장사 기질의 원천이 호기심과 끈기였던 것 같다. 노동은 어차피 다 힘들다. 하지만 관심을 얼마나 가진 일이냐에 따라 체험 강도가 달라진다. 재미있어 하는 일은 즐거울 수밖에 없다. 난 옥수수를 한 번에 심지 않고 귀찮아도 여러 번 나눠 심는다. 옥수수는 따서 바로 먹어야 최상의 맛이기 때문이다. 일주일 이상 지나면 당도가 떨어져 맛이 적다. 그러니 한꺼번에 다 따면 맛있는 옥수수를 온전히 먹을 수 없다. 나눠 심으면 나눠서 따먹을 수 있다. 이걸 알고 심는 것과 그냥 막연히 심는 것과는 다르다. 배추도 서리를 많이 맞아야 맛있다. 저장성도 훨씬 좋다. 집 근처에 배추 저장고를 세 군데 나눠 만들었다. 하나는 양지에, 다른 하나는 그보다 조금 음지에, 다른 하나는 아예 음지에 만들었다. 3월까지 먹는 배추, 그다음엔 6월까지, 그다음엔 9월까지 꺼내 먹는 배추김치로 나눠서 저장한다. 호기심을 갖고 이런저런 실험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허리 아프고 다리 아픈 걸 잊는다. 천연비누 만들기 위해 죽염을 굽는데, 그때도 ‘최고로 좋은 게 뭘까?’라는 생각만 한다. 일곱 번 이상 가마에 굽고 숙성도 시켜야 하는 지루하고 번거로운 과정이 있지만 힘든 줄 모르는 것도 다 그런 이유다. 놀이로서의 일을 하니까 관심이 떠나지 않고 괴롭지도 않은 것 아닐까? 사람은 편한 걸 좋아한다. 하지만 만날 누워 있으면 병이 든다. 무엇이든 적당히 공존하고 병행돼야 하는 것 같다. 일과 놀이 그리고 휴식, 이 모든 게 균형이 맞춰져야 행복하다. 그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는 게 지금 내 삶의 기준이자 도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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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있다면? 공작산 정상까지 자주 등산한다. 정상에 앉아 풍욕을 할 때가 제일 소중하고 좋은 시간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밭을 죽 둘러보는 것도 나만의 낙이고, 아궁이에 불 때고 불멍 하는 것도 나만의 시간이다. 작물이나 약재가 하루하루 자라는 걸 보는 것도 너무나 신기하고 이쁘다. 그 유혹 때문에 매일 아침 산책을 거르지 않는다. 익어가고 변화하는 모습이 꽃보다 월등히 예쁘다. 공유할 수도 있는 느낌이지만 나만이 즐기는 내밀한 순간들이다.  
 
책 제목 ‘농부 하는 중입니다’를 ‘공부 하는 중입니다’로 읽어도 무방하겠다고 생각했다. 농사의 매력에 빠져 ‘농사를 배운다’, ‘공부한다’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겠다. 농부라는 말이 단순히 ‘농사짓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알았다. 그래서 명함도 농부라고 직함을 박았다. 그런데 농부라는 말의 무게가 엄청나더라. 해를 거듭할수록 그 표현의 깊이를 달리 느끼게 됐다. 처음엔 농사를 너무 쉽게 생각했고 갈수록 어려워졌다. 초짜 땐 무를 땅 깊이 파묻었다. 그래야 맛있다고들 하길래 무작정 그랬다. 정말 그렇게 맛있는 무는 처음 먹어봤다. 무밥을 일주일에 서너 번씩 먹어도 안 질렸던 것 같다. 그런데 항아리가 깊고 주둥이가 좁으니까 무를 꺼내기가 힘들었다. 문제를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가 어떻게 했겠나. 그다음 해에 포크레인을 동원해 땅을 깊고 넓게 팠다. 무 저장고의 주둥이를 크게 한 거다. 결국 완전히 망쳤다. ‘무에 바람 들었다’, ‘바람 든 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무슨 말인지 알게 됐다. 그 좋은 무를 다 버리고 나서야 한 수 배운 셈이다. 그다음 해엔 다시 주둥이 작은 항아리를 묻었는데 그렇다고 성공한 것도 아니었다. 날씨가 변덕스러운 바람에 싹이 나고 무르고…. 농사란 참으로 변화무쌍하고 민감하다. 그 깊이를 다 따라잡기엔 아직 먼 것 같다. 
 
‘농사’를 칭송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연 속에 산다는 것 자체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 아닐까? 맞는 말이다. 농사도 신기하고 자연도 경탄스럽다. 자연은 게으른 사람에게도 너무 좋고 부지런한 사람한테도 좋다. 게으른 사람이라면 할 일이 하나도 없는 곳이 자연이고, 부지런한 사람에겐 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곳이 자연인 것 같다. 결국 모든 걸 품어주는 게 자연이다. 자연의 포용력 때문에 일도 놀이가 되고 놀이가 일이 되는 것 같다. 사업 일선에선 성공하고도 가난했다. 하지만 자연에서는 실패해도 성공이다.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는다. 
 
행복의 정의가 달라진 건가? 누구든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건 행복이다. 과거엔 돈벌이만 생각했고 사업의 성공이 곧 행복이라고 믿었다. 그러다 이곳 산과 인연 맺을 때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되돌릴 수 없는 인생, 죽을 때 억울하면 어쩔 것인가. 인생은 마라톤이다. 단거리에서 1등 하는 것보다 자기를 돌보며 재밌게 살면 그게 잘 사는 인생이고 그게 행복이다. 그러려면 건강이 제일 중요하고 먹거리가 중요하다. 인생 2막, 농부로 사는 이유도 그래서다. 나와 가족, 지인들을 위해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고 건강한 비누를 만든다. 해피콜 시절에 ‘세상에 없는 제품’만 만들겠다고 뛰어다녔다. 이젠 세상에 없던 제일 건강한 먹거리, 세상에 없던 천연비누를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돈이 얼마나 들든 힘이 얼마나 들든 버텨낼 여력이 있는 만큼 재미있게 매달려볼 생각이다. 그게 내 행복이다.    

 
그가 만드는 비누는 산이 여러 개 겹쳤다는 의미로 ‘사안(SAAN)’이라는 제품명을 얻었다. 비누 하나에 5만 원. 하지만 1개 만드는 데 꼬박 1년, 재료를 키우고 얻는 과정까지 합하면 최소 2~3년이 걸린다니 수지타산을 맞추기엔 턱없이 모자라다. 그래도 집에 마련한 불가마는 계속 죽염을 구워내고 산골 곳곳의 약재는 어김없이 자라나고 공장 항아리에서 발효되어간다. 거부이자 농부인 그의 독특한 고집과 뚝심이 아니었다면 이미 손들었을 일이다.       
 
‘해피콜 신화’의 주인공 이현삼 회장은 책에서 또는 입으로 진심으로 말했다.
 
“나는 남들보다 빠르게 살았고, 빠르게 죽어가고 있었다.” 
“하마터면 성공하고도 가난할 뻔했다.” 
“(언젠가 말고) 지금 행복할 것.” 
 
흔히 들었음직한 충고이지만 또 새롭다. 공작산만큼은 아니라도 좋다. 내 마음 어느 구석, 한 줌의 땅이라도 들여놓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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