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여성조선 정기구독 이벤트
ISSUE
  1. HOME
  2. ISSUE
  3. people&

[단독 인터뷰]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부인, 정희자 전 서울힐튼호텔 회장 ①

“네 번 만나고 결혼한 내 남편 김우중…꿈에서도 일만 해”

2021-02-27 07:41

취재 : 이근하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클라우드나인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정점도 찍었고 바닥도 쳐봤다. ‘인생사 새옹지마’라지만 너무나 굴곡졌던 삶의 여정. 정희자 전 서울힐튼호텔 회장의 농밀한 시간을 들여다봤다. 삶 자체가 장르를 넘나드는 사람이다.
 
2019년 12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떠났다. 자본금 500만 원으로 시작한 ‘대우’를 재계 2위까지 끌어올린 ‘샐러리맨의 신화’, 그의 생은 숱하게 기록됐다. 자서전에도 언론에도. 
 
1967년 대우실업을 세워 창업 5년 만에 수출 100만 달러를 달성했고, 1973년 영진토건을 인수해 대우개발로 간판을 바꾼 뒤 대우실업과 합쳐 ㈜대우를 만든 사람. 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해 해외사업의 기반을 다져 창업 31년 만에 41개 계열사, 396개 해외 법인을 거느린 사람. IMF 시기에 기업 공중분해와 관련한 검찰 수사를 피해 수년간 해외도피를 했으며 징역 8년 6개월을 선고받고 2008년 1월 특별 사면된 사람. ‘세계를 무대로 사업한 선구자’, ‘경제사범’ 정반대의 평가가 공존하는 사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업가 김우중 회장의 이야기를 짚다보니 문득 궁금해진다. 그의 인생길 동반자 시점에선 어땠을지. 영광과 시련으로 점철된 남편을 내조하는 아내의 심경은 어땠을까. 하물며 1세대 여성 경영인 정희자 전 서울힐튼호텔 회장이 아닌가. 만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정 회장에게 처음 인터뷰를 요청한 때는 2019년 12월 중순, 김 회장이 별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듬해 2월 자서전 출간을 앞두고 있단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발됐다. 김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출간 일정과 일부 내용에 변화가 생겼을 뿐 아니라 정 회장의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하다고 했다. 
 
이후로도 틈틈이 안부를 물었다. 마침내 올해 2월 <내 마음에 비친 나의 모습>이 나왔다. 여성가족부 차관을 지낸 이복실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과 함께 집필한 자서전이다. 2월 15일 서초동 한 스튜디오에서 정희자 회장을 맞이했다. 정 회장은 왼쪽 허리에 손을 짚은 채 막내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들어왔다. 과거 언론에 비친 여장부 면모가 희미해진 듯했지만 힘있는 눈빛만은 여전했다. 예리한 눈빛에 살짝 주눅(?)이 들려던 찰나, 정 회장이 활짝 웃으며 물었다.
 
“나 오늘 화장 괜찮아요? 좀 어색해. 원래 거의 안 하고 다니는데 얘(막내아들인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가 동석했다)가 기사 사진 찍으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웃음) 귀걸이도 좀 챙겨 왔는데 한번 해볼까요?”
 
“에이, 엄마. 아니에요. 그건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거기(착장)에 귀걸이는 아냐.”
아들의 만류 끝에 귀걸이는 걸지 못했다. 한 시대를 주름잡은 ‘터프 마담’, ‘호텔 여왕’도 자식 앞에선 어쩔 수 없는 부모였다.

김우중 회장이 가신 지 벌써 1년이 지났더라고요. 한 10년은 된 거 같은데 일 년밖에 안 됐구나 해요. 일 년이 굉장히 길게 느껴진다는 거지. 너무 보고 싶어서. 누가 “1년 됐다”고 하면 나는 “무슨 1년이야! 더 오래됐는데”라고 해요.
 
1년 동안 많이 힘드셨던가 봐요. 내가 잠을 잘 못 자요. 잠이 안 오니까 영감 사진을 두고 향불을 켜요. 사진이 침실 사방에 붙어 있어요. 영감이 죽기 전부터 그랬어요. 눈만 뜨면 쳐다보고 잠이 안 와도 보고. 우리는 자주 만나지를 못하니까 잘 때는 꼭 손을 잡고 잤어요. 젊었을 땐 팔베개도 했는데 나이 먹으면서 손만 잡고 잤지.(웃음) 
 
어머나, 너무 로맨틱한데요. (웃음) 내가 스킨십 하는 걸 좋아하는 거 같아요. 영감도 해달라고 하고.  
 
너무 그리워하면 꿈에 나오질 않는대요. 아냐, 그래도 나오더라고.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으니까 나와요. 한 달 전이었나? 꿈에서 봤어요. 거기서도 일만 하고 있더라고. 내가 어디 가서 뭘 하자고 하니까 “내가 할게. 당신은 저거 해.” 옛날에 한창 일할 때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정 회장님이 김 회장님을 많이 사랑하신 것 같아요. 그 양반도 나를 사랑했지. 
 
책을 보니까 정 회장님이 더 사랑하신 것 같던데요? 그래서 많이 외로웠겠다 싶고. 그러게요. (웃음) 외로우니까 만나면 포옹하고 그랬던 거야. 

이번 자서전은 남편에게 보내는 자신의 삶과 도전의 기록이라 했다. 늘 바빠서 몰랐을 아내의 시간들을 꼭 알려주고 싶었다. 
 
“내 마음은 그가 살아 있을 때 책을 내고 싶었다. 그러나 책이 나왔다고 해도 눈도 침침하고 귀도 잘 안 들렸는데 읽을 수나 있었을까? 그는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지도 못했고 사랑할 줄도 몰랐다. 어쩌면 저세상에서 지금도 남편을 포기하지 못하는 끈질긴 아내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을지 모르겠다.” (<내 마음에 비친 나의 모습> 중)
 

202103_218_2.jpg
1 1964년 김우중 회장과 정희자 관장의 결혼식. 2 신혼여행길에 오른 정 회장 부부. 3 첫 딸 선정 씨를 안고 있다.

 

#네 번 만나고 결혼, 내 남편 김우중
 
“다음 생에는 자상한 남편과 결혼하고 싶어요.”
 
 
김우중 회장과 다시 결혼하겠느냔 질문에 으레 하는 답이다. 말수가 없는 데다 평생 일에 빠져 살던 남편이 아내에게 내줄 곁은 없었다. 55년을 그렇게 보냈어도 정 회장이 제일 사랑한 두 남자 중 한 명이 김 회장이다. 첫눈에 반한 것이냐 묻는다면, “글…쎄”다. 세상 남자 중 ‘안경 쓴 사람’을 가장 싫어했는데, 55년 전 처음 본 날 김 회장이 그런 남자였다. 
 
친한 친구의 아이 백일잔치에 초대받았다. 친구의 남편 쪽 동창들도 있었다. 잔치를 마치고 친구네를 나서는데 친구 남편의 동창이 정 회장을 불러 세웠다. 한 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가 김우중 회장이다. 
 
요즘말로 필이 오지 않았다. 예쁘장한 얼굴, 총기 느껴지는 눈. 그게 전부였다. 정 회장은 김 회장을 거절했다. 이후 친구 부부가 나서 정 회장을 설득해 소개팅이 성사됐다. 
 
“옛날에 조선호텔 건너편 코너에 다방이 있었거든요? 거기서 만나서 차 한 잔 마시자고. 그땐 나도 허리가 요만(두 손으로 본인 허리를 힘껏 잡았다)했는데.”(웃음)
 
등쌀에 못 이겨 나간 자리에서 난데없는 청혼을 받았다. 김 회장은 정 회장의 ‘공부 욕심’이 마음에 든다 했다. 자신도 계속 공부를 하고 싶으니, 결혼하고 함께 미국에 나가는 게 어떻겠느냐 청했다. 당시 정 회장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꿈꾸며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주일 뒤 둘은 다시 한 번 만났다. 김 회장은 여전히 같은 얘기를 꺼냈고 정 회장은 내심 흔들렸다. 가정 꾸리기보다 자아실현에 더 욕심이 있던 정 회장에겐 절호의 기회 같았다. 결혼을 재촉하는 엄마를 피해 유학길에 오를 수 있는 기회. 그곳에서 주말이면 아이들과 근처 공원으로 피크닉을 가 한 주 피로를 씻으며 생활하는 삶도 기대됐다. 두 사람은 네 번을 만나고 약혼 날짜를 잡았다. 
 
“약혼식이 끝나자마자 결혼을 하자는 거예요. 혼자 날짜를 다 잡아와선 내놓아버리니 우리 어머니는 펄쩍 뛰셨죠. 날짜는 여자 집에서 잡아야 하는데 왜 그러느냐고. 할 수 없이 날짜대로 준비해서 식을 올렸는데 결과적으론 내가 속은 거지.(웃음) 같이 미국에 갈 줄 알고 결혼한 건데.”
 
신혼집은 김 회장이 다니던 한성실업에서 제공한 사택이었다. 신식이라곤 해도 십구공탄 아궁이가 셋이었다. 연탄은 바깥에서 피우고 들어가야 했다. 여름이면 물난리에 시달렸다. 하필이면 길에서 네 계단 내려가는 아래쪽에 있는 집이니, 홍수가 나면 한강이 되어버렸다. 누런 똥물이 집으로 쏟아져 들어오면 이불을 장롱 가장 높은 곳에 올리기 바빴고, 물이 빠지면 젖은 옷들을 말리느라 정신없었다. 그사이 첫딸 선정 씨가 태어났다. 김 회장은 한성실업 입사 6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해 승승장구 중이었다. 퇴근은 늦어졌고 출장은 길어졌다. 
 
김 회장은 일과 결혼한 것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집 밖에서 보냈다. 정 회장은 “젊은 시절 외로움과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숱한 날들을 보냈다”며 “그 세월을 견디지 못했다면 지금 나의 모습은 없었을 것”이라고 떠올렸다. 
 
둘 다 자존심이 강했다. 서로 입장만 내세우기 바빴고 보듬을 줄 몰랐다. 정 회장은 둘째 선재 씨를 낳고 몸조리를 하다 가출을 결심했다. 김 회장이 친구와 동업해 회사를 차리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가출한 지 2주 만에 돌아왔고 남편은 자본금 500만 원과 직원 다섯 명으로 대우실업을 세웠다. 평범한 월급쟁이가 올린 재계 2위 그룹, 대우의 출발이었다.  
 
김 회장은 직원들도 외국 바이어들도 꼭 집으로 데려왔다. 전화로 인원을 ‘통보’하는 게 전부였다. 이미 시작한 사업이지 않은가. 정 회장은 군말 없이 손님 밥상을 차렸다. 주 메뉴는 불고기, 잡채, 생선찜. 손님들이 언제 몇 명이 올 줄 몰라, 서너 가지 음식은 금방 차려낼 수 있게 재료 손질을 해두곤 했다. 
 
“그때는 식당도 별로 없던 시절이에요. 집에서 대접해야지 뭐. 바이어들이 밥을 먹으면 다음 날 회의가 순조롭긴 했어요. 그러니 먹여야지.(웃음) 회사 초창기 때는 직원들 먹이려고 직접 김치도 담갔었어요. 일꾼들 밥 먹는 것도 다 챙기고 감자도 삶아다 주고. 참 열심히 했어.”
Copyright ⓒ woman.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 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1. 메인으로
  2. 기사목록
  3. 맨 위로
댓글달기
글쓴이    비밀번호 (숫자 4자리를 입력해주세요)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이번호 커버이미지
이번호
서점 이벤트
  • 예스24
  • 교보문고
  • 인터파크
  • 알라딘
  • 이달의 목차
  • 지난호보기
  • 정기구독
이마트
lg생활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