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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패션디자이너가 된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박승희

2020-12-13 10:15

취재 : 이근하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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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길을 벗어나면 불안한 때가 있다. 새 길에 확신이 들지 않는 순간도 그렇다. 그래서 공식은 잘 깨지지 않는다. 선수는 은퇴하면 코치가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단, 박승희는 다른 길을 택했다. 패션디자이너가 된 금메달리스트 박승희, 그는 시종일관 미소를 띠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500m 결승, 박승희 선수는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뒤이어 오던 선수 둘이 한데 미끄러지기 전까진. 두 사람이 넘어지면서 박승희 선수까지 밀어 넘어뜨렸다. 찰나였다. 박승희 선수가 곧장 일어났지만 스케이트 날이 바닥에 걸리면서 재차 고꾸라졌다. 결과는 동메달이었다. 박승희 선수를 기억한다면 이날 경기 장면을 빼놓을 수 없다. 유재석은 최근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당시 넘어진 순간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물었다.
 
“2등 해야지!”
 
좌절의 감정을 느꼈을 거란 예상은 빗나갔다. 박승희의 답변에 출연진은 박장대소했다.
 
이 장면을 시청하다 문득 궁금해졌다. 박승희는 어떤 사람일까. 은퇴 이후 진로로 왜 디자이너를 택했을까. 브랜드 멜로페(MELOPE)의 대표 박승희와 마주 앉았다.

기분 탓인지 국가대표일 때보다 앳된 느낌이에요. 제 나이 듣고 놀라시는 분들이 좀 계세요.(웃음) 너무 어릴 때부터 운동해서인지 나이가 꽤 있다고 생각하시나 봐요.
 
오면서 ‘멜로페’ 홈페이지를 구경했는데 품절된 상품도 있더라고요. <유퀴즈>에 출연하고서 품절된 것도 있고 그 방송 이후로 멜로페를 아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멜로페의 의미는요? 음악 선율이란 뜻이에요. 이 일이 제겐 도전이고 힘인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끼면 좋겠어요. 자기만의 멜로디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친언니(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박승주)와 동업한다고 들었어요. 언니는 사무적인 부분을 맡고 있고 저는 디자인, 생산, 미팅 등을 해요. 규모가 크지 않아서 아직까진 둘이 감당할 수 있어요. 언니랑 같이 어떤 일을 만들어나간다는 것이 너무 재밌고 편안하고 힘이 되죠.
 
은퇴하고서 지도자가 될 줄 알았어요. ‘왜 다들 그 길만 생각하지’란 생각이 있었어요. 당연하게 여기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고정관념이잖아요. 워낙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선수 때도 주말마다 패션 아틀리에를 다녔고 은퇴 후에는 패션 디자인 학교 과정을 수료했어요. 후배들도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단 용기를 가지면 좋겠어요. 제가 그 가능성을 열어줬다면 너무 감사한 일이고요.
 
‘박승희가 만든 가방’이라고 조명 받는 부담감은 없나요? 없다면 거짓말인데 그렇다고 ‘어떡하지, 어떡하지’ 이런 건 아니에요. 내 제품에 떳떳하고 제가 밉보일 행동을 한 것도 없으니까요.(웃음)
 
그러고 보니 구설수 없는 선수였어요. 되게 이슈가 없었죠.(웃음) 주변에선 제가 방송을 했으면 좋겠대요. 이슈가 너무 없었기 때문에 좀 튀어야 한다고요.
 
선수 때 지킨 생활패턴은 많이 바뀌었죠? 금방 바뀌더라고요. 풀리는 건 너무 쉬운 것 같아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운동을 안 하니까 다음 날 걱정도 없어요.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에요.(웃음) 체중을 재는 종목은 아니다 보니 식단 관리는 심하게 하지 않았어요. 운동을 쉬면서 식욕이 사라져서 오히려 살이 많이 빠진 상태예요.
 
17년 동안 해온 운동을 은퇴하는 심정은 어땠어요? 아쉽기보다 설렘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아홉 살 때부터 스케이트를 탔으니 살면서 그것밖에 못 해봤잖아요. 자유로웠던 적도 많지 않았고. 패션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내가 선택해서 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는 게 설렌 만큼 아쉬움이나 미련은 그리 크지 않았어요.
 
이미 쇼트트랙 전 종목에서 메달을 딴 것도 한몫했겠죠? 맞아요. 항상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운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변수가 너무 많은 종목이라서 일정 부분은 운에 맡기고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정말 철저히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운동도 디자인도 결국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은요? 가족의 역할이 커요. 많이 믿어줬어요. 부모님은 ‘하고 싶은 건 다 하라’는 주의세요.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행복하다고요. 저희 삼남매한테 늘 그렇게 말씀하세요.
 
삼남매를 국가대표로 키워내신 부모님의 교육 지론이 궁금하네요. 엄마가 그런 질문을 많이 받으세요. 삼남매를 어떻게 이렇게 길러내셨냐고. 엄마 대답은 항상 “셋이니까 가능했다”에요. 부모가 간섭하지 않아도 셋이서 서로에게 힘이 됐다면서요. 우리는 경기를 못했다고 부모님이 혼내신 일이 거의 없어요. 부모님 입장에선 화낼 일이 굉장히 많았는데도요. 저희가 어리긴 해도 운동은 자식이 선택한 일이기 때문에 터치를 안 하셨대요. 그래서 셋 다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혈연이라도 선수끼리 생기는 경쟁심은요? 없었어요. 엄마도 언니랑 저랑 성별이 같아서 종목이 겹치면 자존심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싶으셨대요. 다행히 서로 하고 싶은 종목이 달랐어요.(웃음)
 
부모님께서 자식 자랑하기 여념 없으시겠어요. 지인들이 제 단점이 지나치게 겸손한 거래요. 자기 PR시대인데 제가 그런 걸 잘 못한대요. 부모님도 똑같으세요. 자식이 누구라고 먼저는 말씀 안 하시는데 남들이 먼저 얘기해주면 많이 좋아하세요.
 
메달이 많은 선수였으니까 연금도 꽤 되겠죠? 진짜 많이 물어보시는데(웃음) 연금은 메달 개수에 따르지 않아요. 점수제예요. 최대 100만 원으로 정해져 있어요. 일시불로 받은 것도 있고요.
 
금액이 은근히 쌓였겠는데요. 많이 쓰기도 썼어요. 집안이 경제적으로 좋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거든요. 제가 대학교 진학을 하지 않은 이유가 코치 꿈이 없기도 했지만, 돈을 벌어야겠단 생각이었어요. 소치 올림픽 때 메달 값 말고도 이래저래 많이 벌었는데 그건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전부.(웃음) 모아둔 돈이 많이 없어요. 이번 사업을 엄청 여유 있게 시작한 줄 아시는데 그렇지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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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스물아홉 살
클럽에 가보질 않았다. 주량은 많이 늘어서 맥주 한 캔이다. 노는 것에 별 흥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공연을 다니고 그림을 그리는 것, 박승희가 스트레스를 덜어내는 방법이다. 독서 모임을 주최할 만큼 독서를 좋아한다. 특히 에세이를 선호한다.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란다. 한 시간 남짓 인터뷰로 다 알 순 없겠지만, 박승희는 의연한 사람 같았다.

내내 느껴지길 정말 밝은 사람 같아요. 슬플 때가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슬플 때) 많죠. 요즘엔 결혼식을 가면 그렇게 울어요. 신랑신부가 부모님에게 인사할 때 울컥하더라고요. 영화를 볼 때도 그렇고 확실히 전보다 눈물이 많아졌어요. 남 앞에서 눈물 흘리는 걸 싫어했었거든요. <진짜사나이> 촬영 때도 저만 눈물이 안 나는 거예요. 좀 성숙해지고 나니 생각도 많아지고 눈물도 많아진 것 같아요.
 
본인 결혼식까지 떠올리게 된 건 아닐까요. 결혼 계획은요? 어릴 땐 20대 초반에 하고 싶었어요. 가족이 화목해선지 저도 빨리 가정을 이루고 싶단 욕심이 있었어요. 애기도 되게 많이 낳고 싶고. 친구들은 제가 이렇게 결혼이 늦어질지 몰랐대요. 아무래도 운동을 하면서 늦어진 것도 있고 지금은 멜로페를 하면서 너무 바빠졌어요.
 
최근엔 조카가 생겼죠? 너무너무 귀여워요. 언니랑 똑같이 생겼는데 귀여운 게 신기해요.(웃음) 간접적인 육아를 체험하면서 출산에 대한 생각이 반반으로 나뉘었어요. 일을 너무 하고 싶은데 저희 언니만 봐도 자유롭지 못하더라고요. 아이를 많이 낳을 거긴 한데… 아, 모르겠어요. 반반이에요.
 
본인은 어떤 엄마가 되고 싶어요? 저희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 근데 엄마처럼 아이를 온전히 믿고 지켜볼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제가 스케이트를 ‘막’ 탈 때 실격도 많이 당했었는데, 엄마 말씀이 당할 수 있는 실격은 다 당해보라고. 그래야 진짜 중요할 때 실격당하지 않는다고. 메달이 없어도 된다고. 그런 말씀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요.
 
 
박승희는 어디에 있을 때 빛이 나는 사람인가요? 어디에 있기 때문에 빛나기보단 제가 있는 곳이 빛났으면 좋겠어요. 남들이 보기에 제가 신기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저 역시 20, 30대가 갖는 불안감을 똑같이 안고 있어요. 앞으로의 삶을 예측할 수 없잖아요. 어떤 분들은 저를 보고 힘을 얻는다고 하시는데 제게 그건 행운이죠.
 
전 국가대표, 현 멜로페 대표로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모든 분이 제 생각에 공감할 순 없겠지만, 하고 싶은 걸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생각이 많아질수록 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드는 것 같아요.
 
앞으로 박승희 대표가 하고 싶은 건요? 꿈이 되게 많아요. 다양한 전문가들과 협업하면서 여러 방면으로 나가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가구 분야도 하고 싶고요.

박승희의 인생을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중 어느 것에 빗댈 수 있는지 물었다. 항상 코앞을 보진 않았다며 스피드스케이팅을 꼽았다. 아홉 살 승희는 출전할 수 있는 올림픽 개최년도를 계산해 2010 밴쿠버올림픽을 목표로 삼았다. 목표까지 10년, 그사이 지나온 일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천진난만하게 굴 아이가 왜 그 먼 목표를 생각했는지 그때의 내게 묻고 싶다”고 했다. 먼 목표점을 향해 내달리는 사람. 언젠가 그는 또 다른 타이틀로 대중 앞에 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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