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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마지막 수업

2013-05-24 17:17

5월 10일 ‘손석희의’ <시선집중>(MBC) 마지막 방송이 있었다. 같은 날 교수로 재직 중이던 성신여대에도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의 ‘마지막 수업’이 궁금해 캠퍼스를 찾았다. 뜻밖에 그는 아직 ‘수업 중’이었다.



옷차림이 달라졌다. 넥타이를 매고 상하의 복식을 갖춘 정장차림이다. <시선집중>의 진행자이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손석희는 대부분 셔츠에 재킷 혹은 점퍼를 입었다. 거취와 관련해 말을 아끼는 그이지만, 달라진 옷차림은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손석희 교수가 jTBC 보도·시사부문 사장에 취임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언론과의 접촉은 시사주간지 한 곳의 인터뷰가 전부였다. <시사인> 인터뷰에서 그는 “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생각으로 (방송을) 해왔다”고 했다. “언론의 사회통합 기능을 실천해보고 싶다”는 그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그의 말대로 시작은 ‘끝’을 전제로 한다. 그의 강의가 있던 학교를 찾았다. 손석희의 마지막 방송은 누구든 ‘다시듣기’를 할 수 있지만 손 교수의 ‘마지막 수업’은 수강생만 들을 수 있다. 손석희 교수의 제자들을 만나러 서울 동선동 성신여대 캠퍼스를 찾았다. 마이크를 내려놓는 것만큼이나, 교단에서 내려오는 일도 쉽지 않았으리라. 사직서를 제출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난 5월 16일, 뜻밖에 그는 아직 그곳에 있었다.  



1 손석희 교수와 사진을 찍기 위해 강의실 앞에서 기다리는 학생들.
2 손석희 교수의 연구실.
3 2006년부터 그가 재직하던 성신여대 캠퍼스.

캠퍼스에서 만난 손석희의 제자들
정문에서 캠퍼스로 이어지는 길은 가팔랐다. 휘어진 길을 따라 올라가자 곱게 단장한 여학생들이 졸업앨범 촬영에 한창이었다. 싱그러운 신록과 쏟아지는 학생들의 웃음소리, 그 소란 속에 조붓한 계단에서 고요히 책을 읽고 있는 학생이 보였다. “혹시 손석희 교수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지” 물었다. 2006학번, 졸업 후 취업준비 중이라는 그는 “전공자는 아니지만, 도움이 될 것 같아 수강했다”고 했다. 손석희 교수의 수업은 워낙 인기가 많아서, 수강신청에 애를 먹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과제가 많았어요. 수업도 꽉 채워서 하셨고요.(웃음) 그런데 과제가 힘들다기보다는 재미있었어요. 실습이나 실무와 관련된 과제가 많았거든요.”

“학점은 잘 줬느냐”고 물었다. 골똘히 생각하더니 “한 만큼 주셨다”고 한다. 우문에 현답이다. 2006년은 손석희 아나운서가 22년간 재직해 온 MBC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성신여자대학교에 전임교수로 부임한 해이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전 문화정보학부)가 창립된 해다. 손석희 학부장은 그 창립멤버이다. 

“우리는 (첫 시작을 한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동지입니다.”

2006년 3월 6일 성신여대 수정관, 이제 막 입학해 첫 강의에 들어온 새내기들에게 그가 건넨 인사말이다. 방송사를 퇴사하고 전임교수가 된 그의 ‘새로운 시작’은 그 당시에도 역시 핫 이슈여서 그의 첫 수업 10분은 언론사의 취재진이 함께했었다. 손석희 문화정보학부 교수의 ‘방송사 입문’은 “첫날부터 강의를 끝까지 하는 원칙”에 따라 무려 3시간 동안 진행됐다. 

학부장으로 부임한 후 그가 강조한 것은 ‘이론과 실제가 어우러지는 커리큘럼’이었다. 첨단 기자재가 갖춰진 실습 스튜디오가 생겼고, 콘텐츠 자료실이 마련됐다. <말하기와 토론>을 전공필수로 배운 ‘손석희의 아이들’은 토론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학과 창립 3년 만인 2010년 8월, 케이블 방송 tvN <백지연의 끝장토론>-대학토론배틀 결승전에서 성신여대 Let’s 팀이 우승했다. 무려 362개 대학팀이 참여했었다. “추상적인 내용보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아는 것만 이야기해 설득력을 높였다”는 게 심사위원들의 평이다. 

스튜디오에서 들려온 낯익은 목소리
2013년 봄 학기,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의 수업이 진행된다는 성신관 6층을 찾았다. 여러 개의 강의실을 지나자 스튜디오형 강의실이 보였다. 바깥에는 부조정실이 있고, 몇 대의 카메라는 안의 상황을 비추고 있었다. 스피커를 통해 수업의 내용이 바깥까지 새어나왔다. 부조실 벽면에는 토론배틀에서 우승한 뒤 찍은 기념사진이 걸려 있었다. 끄덕이며 지나가는 찰나,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비만세’는 내가 내 마음대로 먹을 권리도 없는가, 이를테면 20년 전에 안전벨트가 의무화될 때 벌어진 논란과 비슷해요. (생각할 사이를 준 후) 이해가 가요? 벨트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운전을 함부로 하는 건 아니거든. 개인의 선택을 왜 강제하느냐는 거죠.” 
손석희 교수였다. 불과 이틀 전, 인터넷에는 손석희 사장의 첫 출근 모습을 포착한 사진(우측)이 쏟아졌다. 순화동(jTBC) 사옥에 있을 줄 알았던 그는 전과 다름없이 강의 중이었다.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 <말하기와 토론> 수업, 주제는 ‘비만세(비만을 유발하는 이른바 정크푸드에 세금을 부과하는 일)’였다. 토론을 마친 뒤 손 교수의 총평이 이어졌다. ‘토론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때 사회자가 역할을 잘해주었고 찬성과 반대 양쪽 모두 착실한 자료준비가 돋보였다.’ 손 교수는 자신의 실제 경험을 예로 학생들의 이해를 돕고, 토론이 불리하게 돌아갈 때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라고 일러줬다. 경험은 흥미롭고, 대안은 논리적이라 <시선집중> 라이브 실황을 듣는 느낌이었다. 수업은 2시 30분까지 이어졌다. 첫 수업처럼, 시간을 꽉 채우고야 강의가 마무리됐다. 강의를 정리하며 그가 말했다.    

“지난주 (보도) 이후에 많이들 서운하기도 했을 텐데 따뜻하게 맞아주어서 무척 감사드리고, 수고들 많이 했습니다.”

박수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스튜디오의 카메라가 하나둘씩 꺼졌다. 분명 수업은 마친 것 같은데 학생들은 나올 줄을 몰랐다. 강의실 바깥에는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려, 손석희 교수와 사진을 찍으러 들어가는 학생들이 있었다. 수강생 한 사람 한 사람, 기다리던 학생들까지 모두사진을 찍어주고 한참이 지나서야 손석희 교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레이 색 정장에 블루 톤 넥타이를 맨 모습이었다. 일각에서는 그가 학기 중에 학교를 그만둔 일이 무책임하다고 했다. 그는 아무 대응을 하지 않았다. 학교에 오기 전까진 으레 그가 강의를 그만 둔 줄 알았다. 강의실에서 만난 그는 “‘당연히’ 이번 학기는 마무리한다”고 했다. “학교와도 이미 이야기가 된 사항”이다. 나중에 사직서를 제출했다면 불필요한 공격은 피했을 텐데, 정공법을 택했다. 수업 이외 다른 이야기는 ‘오프더레코드’, 더구나 인터뷰는 어렵다며 정중히 사양했다. 전에도 물론 인터뷰가 쉬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때와는 또 처지가 달라졌다. 언론과의 대응은 조직 내 이를 총괄하는 팀과 “사전에 조율이 있어야 한다.” 더구나 다른 매체와 일절 인터뷰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인터뷰’ 기사가 나가면 “곤란하다.” ‘오늘 인터뷰, 해야 하나’를 주제로 한다면 질 게 뻔한 토론이었다.

손 교수의 인저리 타임
“제가 <시선집중>과 함께한 시간은 13년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게 주어진 <시선집중>의 추가 시간은 약 40분입니다.”
(5월 10일 <손석희의 시선집중> 오프닝 중)

손석희는 2006년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새벽마다 회사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커브를 돌아 엘리베이터로 가는데 매일 똑같은 생각을 한다”고 했다. ‘이 커브를 몇 번이나 더 돌 수 있을까.’ 

두 달 전인 지난 3월 <토요일에 만난 사람>에 출연한 피아니스트 손열음 양과의 인터뷰 중에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피아니스트로 남게 되길 원하십니까?”
“저는 마지막에 제일 잘했던 연주자요.”
“네, 저랑 비슷한데요.”
“아, 정말로요?”
“저는 방송을 마칠 때 언젠가. 그 마지막 방송을 무척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거든요.” 

손석희는 13년 동안 ‘쉼 없이 새벽을 달려와’ 같은 지하주차장의 커브를 돌았고, 5월 10일 마지막 방송을 했다. 한 번도 침착함을 잃어본 일이 없는 사람이라 여겨졌던 그가, 이날은 목소리를 약간 떨었다. 이 방송은 13년의 <시선집중>을 마무리하는 시간일 뿐 아니라, 1984년 입사 후 30년 동안 걸어온 ‘방송인’의 삶을 일단락 짓는 자리였다. jTBC 이적은 ‘현장 언론인’에서 ‘경영인’으로의 변화이다. 그의 표현을 따르면 ‘반인반수(반은 방송인, 반은 교수)’의 삶에서 한 조직의 최종결정권자가 되는 일이다.

“…기대는 충족시키고 우려는 불식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작정입니다. 능력이 되지 않아 못 이루는 것은 어쩔 수 없어도 게을러서 못 이루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2006년 성신여자대학교 문화정보학부장을 맡아 ‘반인반수’가 된 후 그가 남긴 인사말이다. 교단에 선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부터 연세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등에서 신문방송학 강의를 진행해왔다. ‘전임교수’가 된 게 처음일 뿐이다. 왜 성신여대였을까는 그가 쓴 에세이집 <풀종다리의 노래>와 그의 첫 수업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1969년, 제가 중1 시절에 안암동에 살았는데 그때 성신여대 앞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걸어다녔던 기억이 있어요.”

손석희는 학창시절 집에서 학교까지 7~8정거장 되는 거리를 걸어다녔다고 한다. 그렇게 중학교 3년을 꼬박 모은 돈으로 고등학교 2학년 때 전축을 구입했다. 매일 홀로 걷던 그 길과 전축으로 듣던 LP판은 지금의 그를 있게 해준 자양분이다. 성신여대 앞을 지나다니던 중학생은 35년의 세월이 흘러 그 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캠퍼스에서 만난 학생들은 “손석희 교수님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고 했다. 그리고 7년이 지났다. 수정관에 있는 그의 교수실에는 스승의 날을 맞아 제자들이 준비한 색지가 곱게 붙어 있었다. ‘퇴실 중’이라는 푯말 아래 문틈으로는 미처 전하지 못한 편지도 꽂혀 있었다. 

“영원한 우리의 손석희 교수님, 교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더욱더 발전하여 A++ 한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손석희 교수의 수업은 이번 학기 종강 때까지 예정대로 진행된다. 손석희 교수의 ‘마지막 수업’은 아직 오지 않았고 추가시간(인저리 타임)은 이제 한 달여 남았다. 



손석희 저널리즘의 마지막 실험
“잘한 선택은 그것이 잘한 일임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고, 나쁜 선택은 또 그게 결과적으론 잘된 선택이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거고, 이래저래 에너지가 상당히 많이 드는데, 하여튼 전 몇 십 년을 그렇게 살아왔어요.”(2006년 인터뷰 중)

30대의 손석희는 푸른색 수의를 입은 모습이었다. 1992년 노조 집행부였던 그는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구치소에 갇혔다. 그에게 자유언론의 투사 이미지가 있는 건 이때의 영향이 크다. 정작 그는 ‘많은 분들의 지지를 받았기에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그때 20분 정도의 운동시간이면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며 ‘언젠가 저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멀리 가서 살고 싶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97년, 그는 그 다짐대로 2년간 미국으로 떠나 미네소타대 대학원에서 저널리즘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 경험으로 “내가 하는 일이 매스미디어 전반이나 시·청취자들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갈 수 있겠다는 것을 체계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됐고 “예전에는 문제의식 없이 했던 어떤 행위들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2009년 인터뷰 중) 그 진가는 <100분 토론>과 <시선집중>을 통해 발휘됐다. 하나는 새벽 2시, 다른 하나는 새벽 6시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이었음에도 ‘대중과 평단의 고른 사랑(?)’을 받았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신뢰도 1위의 언론인이 됐다. 

그리고 2013년, 손석희가 다시 넥타이를 맸다. 이제는 한 언론사의 보도·시사 부문 전반을 책임지는 사장이다. “내가 가진 저널리즘의 철학을 구현해보고 싶다”고 했다. 현재 ‘손석희의 종편행’을 두고 <100인(人) 토론>을 열어도 될 만큼 의견이 분분하다. 그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다만 그는 “그동안 고민해왔던 것들을 풀어낼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기를. 최선을 다해 자신이 믿는 정론 저널리즘을 실천해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누군가는 그의 선택이 옳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아니라고 한다. 누군가는 실망했다고 하고, 누군가는 이해한다고 한다.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지금 알 수 있는 건 그가 이 선택을 ‘잘한’ 선택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는 점이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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