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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간이 묻어난 허준호의 주름

2021-09-03 09:49

취재 : 임언영 기자  |  사진(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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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주름은 오랜 시간 연기가 퇴적되어 만든 일종의 훈장이다. 1986년 데뷔, 그리고 지금까지 다양한 작품에서 강렬한 모습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현재진행형 배우 허준호의 주름이 아름다운 이유다.
배우가 본인의 작품을 얼마나 애틋하게 여기는지, 연기를 얼마나 진실하게 생각하는지는 몇 마디 대화만 나눠도 금세 알게 된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나눈 허준호와의 인터뷰는 <모가디슈>를 사랑하는 마음과 연기를 대하는 진지한 태도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모가디슈>에서 존재감이 빠지지 않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북한 대사 림용수다. 1991년 소말리아 내전 시기, 림용수는 20년 동안 아프리카 대륙을 누비며 외교 기반을 쌓은 인물이다. 남한의 소말리아 외교를 사사건건 방해하면서 체제에 충성하는 동시에 유연하고 개방적인 모습도 가졌다. 깊게 파인 주름, 그리고 진지한 눈빛을 가진 허준호가 림용수라는 인물을 근사하게 그려냈다. 조인성, 김윤석으로 대표되는 남한 대사와 팽팽한 대립을 이루면서 작품의 긴장감을 끝까지 이어간다. 관객들은 허준호를 대표할 또 하나의 새로운 캐릭터가 탄생했다며 찬사를 잇고 있다. 

개봉 후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기분 좋고 감사하다. 예매율도 높고 반응도 좋다고 하니까. 개봉일은 늘 그렇지만 궁금하고 긴장된다. 
 
시나리오도 받지 않고 촬영을 수락했다고 들었다. 작품에 대한 직감이 있었나? 전-혀 없다. ‘(흥행이) 될까 안 될까’라는 생각은 지금까지도 안 한다. 나는 대본이 재미있으면 출연한다. 내 역할이 어떤지 살피는 것은 두 번째다. 류승완 감독이 작품 제안 때문에 한 번 봤으면 좋겠다고 해서,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나갔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소말리아 내전에 대한 대본이라는 것만 들었다. 식당에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보니 두 시간이 지났더라. 대본을 보지 않고 출연을 결정한 첫 작품이다. 희한하게 빨리 결정을 내리게 됐다. 류승완 감독이 설명을 잘 해줬고, 그날 대화가 좋았다. <불한당>에서 나를 보고 “다시 와서 반가웠다”는 말도 해주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믿음이 생겼다. 
 
북한 대사 림용수는 어떤 인물인가.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라, 캐릭터 해석도 다른 지점이 있었을 것 같다. 북한 대사라고 해서 막연하게 나쁜 놈이구나 했다. 굉장히 센, 동적인 이미지를 떠올렸었는데 나중에 그 생각이 다 무너졌다. 대본을 보니 북한을 떠난 지 20년이 되었다. 나이도 들었고, 아프다. 감독님이 주신 디렉션을 베이스로 맞춰나갔다. 오랜 시간 북한을 떠나 생활해서 체제에서 조금 자유로워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있었다.
 
류승완 감독의 디렉션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빠른 시간 안에 표현해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디렉션을 주셨다. 새로운 대사법에 대한 깨달음도 있었고, 좋았다.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은? 변해가는 림용수를 그리는 것이다. 남한이 유엔 가입을 못하게 해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부딪혀 부탁도 해야 하고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는 나라, 이념에 상관없이 내 식구를 살려야 하는 상황이다.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서 부탁하고 살아남아야 하는 인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리는 것이 나에게는 숙제 아닌 숙제였다. 
 
북한말 연습이 힘들진 않았나. 그분들이 살아오면서 배어 있는 문화적인 표현이나 말투는 내가 100% 따라 할 수 없다. 북한말을 구사하시는 분을 만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직접 말씀하시는 걸 듣고, 녹음을 해서 계속 들었다. 반복 연습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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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 자체가 힘이 되는 ‘최고참’ 선배 
 
100% 모로코 올 로케이션 촬영 현장, 전쟁 영화만 세 번 촬영한 경험이 있는 허준호는 후배들에게 존재 자체가 힘이 되는 선배였다. 4개월의 촬영 기간 동안, 촬영 이외의 모든 시간을 후배, 제작진과 함께하며 끈끈한 시간을 보냈다.    

해외 로케 촬영은 어땠나. <하얀전쟁>을 포함해 전쟁 영화만 세 번 촬영했다. 베트남, 필리핀, 태국 정글 다 들어가 봤다. 그땐 굉장히 열악했다. 현지 촬영 여건이 안 되어서, 스태프들이 다 못 가면 배우들이 짐을 나눠서 들고 가기도 하고, 촬영하다가 허락을 못 받아서 중단하고 기다리기도 했다. 모로코 <모가디슈> 촬영 현장은 너무 좋았다. 꿈에 그리던 현장이었다. 자본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였던 것 같다. 굉장히 잘 준비한 프로덕션을 만났다. 스태프와 감독들이 완벽하게 준비를 해줬다. 박수를 보낸다. 
 
현장이 대단했다는 찬사가 유독 많다. 경험이 많으니, 좀 더 구체적으로 느낀 차별점이 궁금하다.  과거의 제작비 10억이 지금 100억 이상의 가치를 가지니, 단순히 숫자를 기준으로 현장을 비교할 수는 없다. 그동안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많이 했지만 준비 과정이나 역량은 <모가디슈>가 일등이라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준비를 너무 잘하셨다. 내가 평소 사진을 잘 안 찍는데, 이번에는 세트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많다. 촌스럽게 아저씨처럼 서서, 나는 작게 나오는 사진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그 정도로 멋있었다. 
 
 
배우들끼리 에피소드도 많겠다. 그곳에는 헬스클럽이 없다. 작은 헬스클럽이 하나 있는데 시간만 되면 30~40명이 모인다. 거기서 <모가디슈>를 위한 얼굴을 만들기 위해 근력운동을 많이 했다. 에피소드는, 우리는 정말 가족 같다. 숙소에 있다 보면 밤에 전화가 온다. “형님, 올라오시죠”(웃음) 가보면 김윤석이 음식을 해놓는다. 시장을 혼자 돌아다니면서 재료를 사와서 요리를 해줬는데, 도가니탕을 먹은 적도 있다. 가족 같은 분위기라서 사적인 이야기도 많이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작품에 들어가는 깊이감도 박수를 칠 만큼 대단했다. 
 
김윤석 배우와 나란히 영화의 중심을 잡았다. 너무 영광이었다. 나는 진짜 김윤석 팬이었다. 누가 캐스팅됐는지 모르고 작품에 출연하기로 했는데, 나중에 김윤석, 조인성, 정만식 등 좋아하는 배우들이 들어와서 너무 좋았다. 현장에 가서 드디어 김윤석을 봤다. 역시 멋졌다. ‘배우 김윤석’에 대한 기대가 더 커졌고, 기대했던 것보다 현장에서 보면서 더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준비하는 것도 있구나’ 하면서 배우로서 배운 것도 많다. “당신 봐서 좋다. 보는 재미가 있다”고 대놓고 이야기했다.  
 
함께 연기한 조인성, 구교환은 ‘허준호 선배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배움이 된다’고 하더라. 한 것 별로 없다. 감사하다. 나는 인성이 <더 킹>이라는 영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세월과 연륜이 너무 좋았다. 남자 배우들은 연륜에서 연기 세계가 멋있어진다. 인성이는 멋있어질 나이고, 앞으로가 더 궁금하고 기대된다. 대화를 나눠본 결과 사적인 생활에서의 마음도 깊어져 있고 안정되어 있더라. 힘들 것 같은데도 본인만의 정신세계를 갖고 있어서, 깊어지고 멋있어져서 좋았다. 교환이는 열정적이다.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달려든다. 어렸을 때 나도 그랬다. 매일 아침 하루도 안 빼고 뛰는 것을 봤다. 박수를 보내고 있다. 


# 주름이 멋있는 배우 
 
개인적인 이유로 10년 정도 연기 공백기를 가졌던 허준호는 2016년 <불한당> 이후 쉬지 않고 열일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당시 <불한당>의 주연이었던 설경구가 허준호를 설득하기 위해 직접 찾아간 일화가 유명하다. 깊은 시간을 보낸 허준호는 깊은 주름만큼이나 깊어진 연기로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다. 

후배 조인성이 ‘주름이 멋있는 배우’라고 극찬했다. 주름이 없다가 (공백기를 지나) 주름이 생겨서 나타나서 괜찮을라나 했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가끔, 솔직한 이야기로 ‘시술을 해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다.(웃음) 뭐, 사실 별 생각이 없다. 처음 돌아왔을 때는 “왜 이렇게 늙었어” 소리에 힘들었다. 늙은 사람에게 늙었다고 하면 대답할 말이 없지 않나. 그걸 좋게 봐줘서 인성이에게 고맙다. 
 
35년의 시간 동안, 배우 허준호는 무엇이 깊어졌고 달라졌나.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재미있는 작품을 고르는 것은 똑같다. 솔직히 나도 보면서 시간 아까운 작품도 있다.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배우로서는, 나이가 들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 ‘아, 나는 희로애락을 주는 사람이구나.’ 희로애락을 줄 수 있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나는 그걸 받으려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게 배우로서 변한 생각이다. 어렸을 때는 그런 걸 받고 싶어서, 위로받으려고 했는데 점점 그런 마음이 없어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새록새록 욕심이 생기기도 하는데 절제하려고 노력한다.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종횡무진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공백기의 영향이 있나? 그런 영향은 아니다. 사실 내가 거절을 잘 못한다. 작품을 하나 쓰시려면 1년 이상씩 시간이 들지 않나. 생각해서 대본을 주시는 건데, 재미있으면 나는 한다. 물론 말이 안 되는 작품, 엉뚱한 작품은 안 하지만 ‘얼마나 노력해서 쓰신 작품들인데’라는 마음이 크다. 어렸을 때도 그런 태도로 작업했다. 앞으로도 나를 써주신다면 굳이 마다하거나 안할 이유가 없다. 감사하며 작품에 임할 것이다.   
 
다작 활동의 기본은 체력이다. 어떻게 관리하나. 틈만 나면 운동하러 간다. 주로 헬스클럽에 가서 근력운동, 유산소운동을 많이 하고 골프도 친다. 골프장에 가면 카트 안 타고 18홀을 걷는다. 
 
배우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모가디슈>를 촬영하면서 모든 것에서 자극과 영감을 받았다. 김윤석, 조인성, 구교환, 김소진, 정만식, 또 우리 북한 대사관 인물들이 작품에 임하는 모습들을 통해서도 느낀 것이 많다. 배우들은 각자 준비하는 과정들이 다 다르다. 한국에서 촬영하면 그걸 못 보는데, 4개월 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아침의 모습도 보고, 촬영 끝나고 생활하는 모습도 보면서 많이 배웠다. 새롭게 접근하는 법도 배우고, 이렇게 평생 배우면서 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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