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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수미가 내려올 때 본 꽃은…

2021-03-05 09:45

취재 : 임언영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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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갈 때는 꽃이 어디 있는지 몰라요. 내려올 때 다 보이죠. 사람 사는 게 꼭 그래요. 여태 못 봤던 것들이 내려놓고 보니까 굉장히 제대로 보이는 것 같아요. 제가 요즘 그래요.”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초입, 꽃에서 인생을 배운다는 김수미를 만났다.
 
“저기 봐요. 목련 봉오리에 약이 잔뜩 올랐어요. 우리 집 옥상에도 나무가 있는데, 요즘 꽃을 피우려고 총력을 다하더라고요. 자연이 참 위대한 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입춘이 지났다고 저렇게 꽃을 피우려고 마음을 먹었어요. 나는 자연을 접하면 사람이 하늘을 거스르면 안 되겠다 싶어요. 누가 명령한 것도 아닌데 벌써 꽃피울 준비를 하는 게 참 신기하잖아요.” 
 
경기도 모 처의 <수미산장>(KBS2·skyTV) 첫 녹화 현장. 김수미가 눈이 부신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스튜디오가 아닌 야외 촬영이 불편한 점도 많지만, 꽃과 자연을 좋아하는 김수미는 오히려 덜 피곤하다면서 차가운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소복하게 눈을 맞은 듯한 은빛 백발과 새하얀 개량한복이 눈이 부셨다.  
 
“백발도 처음이고 한복도 처음이에요. 데뷔 때는 얼굴이 서구적이라 사극을 못 했거든요. 내가 아직 머리가 안 쉬었(셌)어요. 평소에 염색을 하지 않고 은색 백발을 한 사람들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새롭게 콘셉트를 잡아봤어요.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수미산장>은 김수미가 운영하는 산장에 게스트가 놀러와 허심탄회한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나누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시간과 공간이 멈춘 산장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수미네 반찬>(tvN), <밥은 먹고 다니냐>(SBS)에서 그랬듯 그를 찾는 게스트들은 ‘김수미이기 때문에’ 끄집어낼 수 있는 속 깊은 이야기도 술술 털어놓으며 진솔한 시간을 보낸다.  
 
“내 앞에 오면 술술 말을 잘해요. 속으로 ‘이렇게까지 속내를 보여주나’ 싶은데, (게스트들이) 따로 편집을 해달라고도 안 하더라고요. 내가 엄마 같은가 봐요. 그래서 좋아요. 다들 답답하고 엉켜 있는 실타래를 풀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오는데, 처음 만나도 몇 마디 나누다 보면 ‘아,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구나’ 알겠어요.”
 
김수미 개인이 그동안 쌓아온 삶의 연륜과 상대를 대하는 진정성 있는 태도의 결과다. 호된 이혼을 치른 후 홀로서기를 한 구혜선은 <수미산장>의 첫 게스트가 되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김수미가 만드는 속 깊은 이야기 
소통의 비결은 ‘안전거리’ 
 
김수미의 조언에는 깊이가 있다. 대부분 본인이 살면서 직접 깨달은 것들이다. 평소 책을 좋아하는 김수미는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해 매일 일기를 쓴다. 
 
“새벽형 인간이라 내 일기는 항상 ‘어제는’으로 시작해요.(웃음) 어제는 대청소를 했다고 썼어요. 수십 년째 일기를 쓰고 있는데, 1년 수첩을 바꿀 때 제일 앞에 ‘명예는 정직의 왕관이다’라는 문장을 적어요. 그 글이 가슴에 와 닿더라고요. 정치인이든 연예인이든,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에요. 정직하지 않으면 명예는 1초 만에 사라질 수 있어요.” 
 
이렇게 매일 사색의 시간을 가지며 평생을 살아온 그에게 삶의 지혜가 꽉 채워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 세대를 넘어 그를 잘 따르는 후배가 유난히 많은 것도, 그의 연륜에서 나온 현명함의 결과다. 
 
“내가 몸소 부딪히면서 알게 된 것들이에요. 후배들이 조금이라도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열 마디 중 한두 마디라도 담고 그대로 실행하면 고맙죠. 소통의 비결은 안전거리인 것 같아요. 친할수록 거리를 먼저 지켜야 하고, 어른이 먼저 지켜야 해요. 후배들도 날 어려워해요. 친하다고 다 받아주다가도 어느 선에서는 안전거리를 지키니까요. 눈치 빠른 후배들은 그 선을 잘 지키죠. 그래서 오래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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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쓰는 일기, 독서, 산책…
꽃에서 배우는 인생의 답 
 
김수미는 1949년생이다. 올해 나이 일흔셋. 적지 않은 나이지만 본인의 이름을 내건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반찬 메뉴를 직접 구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게스트 섭외도 제작진과 같이 의논한다.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최고의 비결은 건강이다. 
 
“나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웃음) 따로 건강관리를 안 해도 타고난 체질인 것 같아요. 많이 움직여서 그런가 봐요. 집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거든요. 우리 동네에 서리풀 공원이 있어요. 날이 따뜻하면 오후에 두 시간 정도 걷고 사우나에 가서 샤워만 하고 와요. 걸으면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 그렇게 행복해요.” 
 
건강을 자만하지 않는 것도 그가 지키는 원칙이다. 아무리 일 욕심이 나도 나이와 건강을 고려해서 조금씩 천천히, 즐기면서 하려고 한다. 
 
“운이 좋게 일이 많이 들어와요. 영화나 드라마도 코로나 풀리면 찍자고 제안이 들어왔고요. 물론 내 기분은 더 올라갈 수 있는데, 안 올라가려고 하고 욕심을 안 내요. 내가 여기서 일 욕심을 부리면 건강을 해칠 것 같아서요.” 
 
 
그런 지혜는 주로 자연에서 얻는다. 산책을 하면서 만나는 조그마한 꽃과 풀을 보면 인생의 해답도 만나게 된다고. 
 
“사람들이 꽃을 보고 좋다고 하는 건 아름다워서잖아요. 그런데 꽃은 꼭 져요. ‘꽃이 왜 필까?’ 물으니 어떤 분이 그래요. 지기 때문이라고요. 어느 시인이 이 세상에 안 지는 꽃이 없다고 했어요. 아름답기 위해서, 향을 내기 위해서, 그리고 지기 위해서 피어요. 얼마나 큰 의미가 있어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시를 좋아하는 그답게, 고은의 ‘순간의 꽃’이라는 시를 소개했다.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보지 못한/그 꽃’이라는 시구가 너무 좋아서 액자로 만들어서 내 방에 걸어놨어요. 올라갈 때는 꽃이 어디 있는지 몰라요. 내려올 때 다 보이죠. 사람 사는 게 꼭 그래요. 연예인이든 사업가든, 한창 일할 때는 안 보여요. 막상 올라가면 하산하는 길밖에 안 남았잖아요. 하산은 영원히 가는 길이고요. 여태 못 봤던 것들이 내려놓고 보니까 아주 제대로 보이는 것 같아요. 제가 요즘 그래요.”   
 
 
#생명의 경이로움 알게 한 손녀 조이  
시어머니에게 배운 며느리 사랑 
 
이렇게 인생의 황혼기를 맞고 있는 김수미를 설레게 하는 존재가 최근 생겼다. 바로 작년에 태어난 손녀 조이다. 2019년 12월 김수미의 아들은 배우 서효림과 결혼했고, 2020년 6월 딸을 낳았다.  
 
“나이가 드니 점점 설렘이 없고 감동도 없어져요. 30대 때만 해도 첫눈 오면 날아갈 듯 좋았는데 첫눈도 몇십 년 봤고, 낙엽도 오륙십 년 봤고, 다 본 것들이에요. 그런데 어느 날 손녀가 태어났어요. 내 핏줄이라는 걸 떠나서 하나의 생명체가 우리에게 온 것이 너무 놀라웠어요. 때 안 탄 애기가 고사리 손으로 뭘 쥐려고 하는 걸 보면 내 때가 다 벗겨지는 것 같아요.” 
 
요즘 그는 아들과 며느리가 매일 카카오톡으로 보내주는 손녀의 사진과 영상을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잡고 일어서고, 한 발짝씩 내딛는 등 매일매일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누가 안 가르쳐줘도 스스로 하는 모습은 영롱함과 경이로움 그 자체다. 
 
며느리 서효림에 대한 사랑도 남다르다. 두 사람은 6개월 동안 엄마와 딸로 드라마 촬영을 한 사이라, 가족이 되기 전부터 가까운 사이였다. 
 
“드라마 끝나고도 계속 연락해서 우리 집에도 오고, 밖에서 밥도 먹고 쇼핑도 같이 다녔어요. 그랬는데 어떻게 지들끼리….(웃음) 운명이라는 게 있나 봐요. 우리 아들하고 며느리하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나서 생각도 못했거든요. 어느 날 보니 그렇게 불이 붙어서 그렇게 되더라고요. 우리 아들이 결혼을 안 해서 항상 가슴이 묵직했는데, 아주 그냥 딱 풀려버렸어요.(웃음) 연애하다가 애부터 딱 가지니까 더 좋았죠.” 
 
서효림은 방송에서 시어머니 김수미와의 다정한 고부 관계를 종종 전했다. 시어머니 대신 ‘엄마’라는 호칭을 쓰고, 집안일을 한 번도 시키지 않았다는 스토리도 전했다. 
 
“나도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시어머니가 그렇게 나를 편안하게 해줬어요. 하다못해 부부싸움을 해도 늘 나한테 미안하다고 그랬어요. ‘아직 애가 철이 덜 들었다’면서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신혼 초에 제가 녹화 갔다 오면 제 방에 꽃꽂이를 해놓으셨어요. 그리고 메모를 써 놨어요. ‘일은 잘했니? 미안하다’ 이런 내용을 담아서요. 그럴 땐 가슴이 뭉클해요. 아들이 하나인데, 아들 편을 안 들고 꼭 내 편을 들어주셨거든요. 저도 그런 시어머니가 되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며느리한테 말다툼하거나 싸우면 나한테 이르라고 말했는데, 아직 한 번도 안 싸웠다고 하네요.” 
 
 
사랑하는 가족과 일로 인생을 꽉 채운 김수미는 행복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는 마지막 인사에 웃으며 대답했다. 
 
“내 소망은 큰 병 없이 사는 거죠. 어차피 내 앞으로 보이는 길은 뻥 뚫린 신작로처럼 잘 보여요. 무사무탈(無事無)만 하면 되겠죠. 손녀가 나중에 컸을 때 할머니가 없어도 ‘우리 할머니 참 좋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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