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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건희 회장 떠나던 날...이재용·부진·서현 우애 빛난 삼남매부터 발인식 비하인드까지

2020-11-25 08:18

취재 : 이근하 기자  |  사진(제공) : 조지철,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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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떠났다. 아버지를 잃은 애통함은 재벌도 예외 없었다. 서늘한 가을 공기가 감싸던 10월, 고 이건희 회장의 마지막 길을 다녀왔다.
10월 25일 이건희 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4년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5개월 만이다. 부인 홍라희 여사와 이재용 부회장 등 가족들은 전날 이 회장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았으며 고인의 임종을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을 알리며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고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한다”고 전했다. 10월 28일 영결식 또한 간소히 비공개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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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부진·서현, 우애 빛난 삼남매

 
영결식 당일 어둠이 가시기 전 오전 5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주변으로 취재진이 들어찼다. 영결식 직전까지도 진행 시간은 공개되지 않았다. 7시 30분쯤 유족들은 암 병원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빈소가 있는 장례식장과 가장 가까운 건물로, 250m 정도 떨어져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검정 상복을 입고 있었고 홍라희 여사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하얀 치마저고리와 두루마기 차림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전체 표정을 읽을 순 없었지만 눈가의 슬픔이 역력했다. 특히 장녀 이부진 사장은 흰 손수건을 든 채 연신 울먹였다. 찡그린 미간 사이로 슬픔의 깊이가 느껴질 정도였다. 홍 여사가 딸의 손을 꼭 잡고 위로했다. 유족들은 암 병원 지하를 통해 장례식장으로 이동했으며 이 건물 지하에 있는 대강당 입구가 출입 통제됐다. 언론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고인의 동생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조카 이재현 CJ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등도 영결식에 참석했다. 영결식은 이수빈 삼성경제연구소 회장의 약력 보고로 시작됐다. 이수빈 회장은 고인의 삶을 회고하다 “영면에 드셨다”는 부분에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고인의 50년 지기 김필규 전 KPK통상 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그간의 추억을 나눴다. 그는 “‘승어부’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를 능가한다는 말로, 이것이야말로 효도의 첫걸음”이라며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이건희 회장보다 승어부한 인물을 본 적 없다”고 했다. 또 “부친의 어깨너머로 배운 이건희 회장이 부친을 능가하는 업적을 이루었듯 이재용 부회장은 새 역사를 쓰며 삼성을 더욱 탄탄하게 키워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뒤이어 추모 영상 상영, 참석자 헌화가 끝난 오전 8시 20분께 유족들은 다시 암 병원 입구로 나왔다. 이부진 사장은 여전히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이 부회장이 부축하기도 했다. 오빠 이 부회장은 버스에 먼저 올라 따라 승차하는 동생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서현 이사장은 뒤에서 언니를 지탱했다. 유족을 태운 차량은 장례식 건물로 이동했다가 8시 50분 즈음 빠져나갔다.

운구 행렬은 생전 고인의 발자취가 담긴 공간을 차례로 돌았다.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과 이 회장이 살았던 한남동 자택, 이태원동 승지원 등을 정차 없이 순회했다. 승지원은 선대 이병철 회장의 집을 개조해 삼성그룹 영빈관으로 쓰던 곳이다. 이 회장이 집무실로 자주 이용했다.

고인이 마지막으로 머문 곳은 경기도 화성 반도체 사업장이었다. 사업장 정문에는 ‘회장님의 발자취를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운구차는 시속 10km로 약 25분간 사업장 내부를 돌았다. 이 회장을 배웅하기 위해 나온 수백 명의 임직원들이 국화를 들고 도로를 메웠다. 일부 직원은 울고 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수원 가족 선산에 영면했다. 장지는 홍라희 여사의 뜻에 따라 결정됐다고 알려졌다. 수원 선산은 이병철 선대회장의 부모와 조부가 잠든 곳이다. 이부진 사장은 여기서도 이재용 부회장의 오른팔을 붙잡고 슬픔을 견뎠다. 기업 수장이기 전 그 역시 누군가의 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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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들 광고 좀 하겠다”
각별했던 부녀

 
딸들은 눈물로 아버지를 보냈다. 다 헤아릴 순 없겠으나 이 회장이 이부진, 이서현 자매를 얼마나 아꼈는지 읽혔다. 삼성가는 딸의 경영 참여에 차별을 두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병철 회장은 장녀 이인희 한솔 고문과 막내딸 이명희 신세계 회장에게 경영 참여의 기회를 줬고 이건희 회장도 두 딸이 경영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1997년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앞으로 여성의 역할이 늘고 파워도 더 강해진다. 몇 년만 지나면 여성 인력 중에서 경영자가 많이 나올 것이다. 여성 인력 활용이 선진국의 척도가 된다”고 했었다.

공식 석상에서도 딸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2010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전시회에선 두 딸의 손을 꼭 잡고 입장했다. 당시 취재진이 딸과 동행한 이유를 묻자 “우리 딸들 광고 좀 해야겠다”고 너스레 떨었다. 딸들은 아버지의 불편한 걸음을 맞추며 글로벌 IT기업의 흐름을 익혔다. 2년 뒤 같은 행사에서도 부녀는 종일 함께했다. 이부진 사장이 삼남매 중 유난히 아버지 외모를 닮았다. 경영 스타일도 빼닮았다 하여 ‘리틀 이건희’라는 별명도 있다. 

이 회장에게는 2005년 유학 도중 사망한 ‘아픈 손가락’ 윤형 씨도 있다. 막내딸 윤형 씨는 과거 미니 홈피에 여느 대학생처럼 글을 남기는 등 소탈하고 활발한 성격이었다. 이 회장은 뉴욕에서 딸의 장례를 치른 뒤 서울 혜화동 원불교 원남교당에 빈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후 종종 미국을 찾아 딸을 추모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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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에게 노잣돈을…
발인식 비하인드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조문했다. 정·재계 인사를 필두로 고인과 연이 닿았던 예술·체육계 인사의 발걸음이 줄을 이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재계 어르신 분들이 오래 계셔서 많은 가르침 주시면 좋은데 참으로 안타깝다”고 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도 직접 빈소를 찾았다. 그는 “생전에 저희 부친 조문도 해주셨고 이재용 부회장께서 어머니(이희호 여사)상에 조문해주셨다”며 “당연히 제가 와서 조문하는 것이 도리”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피아니스트 백건우, 조성진도 보였다. 이건희 회장은 생전 대한레슬링협회장,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예술과 체육에 조예가 깊다. 백건우는 심경을 묻는 취재진에게 “아버님을 잃은 것 같다. 다른 말 할 것도 없다”고 울먹이며 “사랑한다”는 말을 남겼다.

일반 조문객들도 눈길을 끌었다. 발인일 새벽, 빈소 출입이 불가능하단 걸 알면서도 찾아왔다. 한 남성은 5시 30분쯤 숨을 고르며 입구에서 서성였다. 그는 “이건희 회장님 가시는 길 공기라도 느끼고 싶어 식당 장사를 마감하자마자 달려왔다”고 말했다. 곧바로 정문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이곤 돌아갔다. 다른 중년 남성은 장례식장 건물 맞은편에서 향불을 피우고 연신 애국가를 완창했다. 그는 운구 차량이 완전히 나갈 때까지 추모를 멈추지 않았다. 또 다른 남성이 운구 차량을 막아서는 상황도 벌어졌다. 그는 노잣돈이 든 것으로 추정되는 흰 봉투를 흔들며 차량을 따라붙었으나, 보안요원들의 제지로 오래가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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