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늙어서 곧 만나요” 사랑하는 벗과 함께한 김동률의 ‘산책’

2025-11-18     임언영 기자

콘서트 막바지, 전람회의 ‘첫사랑’이 흐르던 4분 30초 동안의 묵직한 공기와 피아노 선율, 흐느낌은 너무나도 생경한 경험이었다. 객석 곳곳에서 실제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고 피아노 앞에 홀로 앉은 김동률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노래가 끝나고, 무대 뒤 영상에 ‘사랑하는 나의 벗 동욱이를 보내며’라는 글귀가 떠오를 때 마침내 알았다. 김동률은 그렇게, 본인만의 방식으로, 가슴을 쥐어뜯으며 ‘첫사랑’을 보내고 있었다.

이후 이어진 곡은 ‘기억의 습작’이었다. 김동률은 피아노 건반을 꾹꾹 누르며, 눈물을 꾹꾹 누르며 ‘많은 날이 지나고 나의 마음 지쳐갈 때, 내 마음속으로 쓰러져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찾아와 생각이 나겠지’라고 노래했다. 그 어떤 말보다 무거운 전율과 가슴 시린 감동이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을 꽉 채웠다. 그곳엔 지난해 말 세상을 떠난 그의 오랜 음악적 동반자이자 그룹 전람회의 멤버였던 고 서동욱이 있었고, 그 모든 것을 함께 추억하는 팬들도 있었다.

 

10일 오후 ‘2025 김동률 콘서트-산책’이 열린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 “월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조용조용하고 고즈넉하다”는 농담도 주고받으며 시작된 공연은 결국 이렇게 모두의 마음속에 진한 감동을 남긴 채 마무리됐다. 콘서트의 타이틀인 ‘산책’처럼, 김동률은 한 걸음 한 걸음 오랜 관객들과 나란히 걸으며 또 한 번 ‘명품 공연’의 발자국을 남겼다.

김동률은 “(4년 마다 콘서트를 열어서) 원래 ‘월드컵 가수’였는데, 그렇게 하다간 환갑을 훌쩍 넘길 것 같아서 이번에는 2년으로 줄였다”면서 콘서트의 시작을 알렸다. “(콘서트마다 티켓 매진 행렬을 두고) 죄송한 마음에 이번에는 1회차를 늘려서 진행했다”면서 “올해가 데뷔 32년차인데, 오래된 팬들이 있어서 부러울 게 없다”고 현장을 찾은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김동률의 이번 콘서트는 11월 8일부터 10일, 13일부터 16일까지 총 7일간 7회에 걸쳐 열렸다. 티켓 오픈 당일 총 7회 공연의 7만 석은 모두 매진되며 역대급 기록을 세웠다.

콘서트는 김동률의 음악적 고집과 그것을 존중하는 팬들의 배려심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랑한다는 말’,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부르며 무대에 등장한 김동률은 관객들에게 휴대 전화 촬영 자제를 부탁하며 “눈과 마음으로 즐겨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자리를 채운 1만 명의 관객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그 약속을 지켰고, 덕분에 음악과 빛에만 집중하는 공연이 완성됐다.

모든 무대가 팬들을 향한 배려였다. 김동률은 콘서트 선곡 과정을 전하면서 “오래 전부터 찾아온 팬들을 먼저 생각하고 준비한다”고 말했다. “처음 콘서트에 온 분들을 배려해 인기곡을 넣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랫동안 지켜보신 분들이 듣고 싶어 하는 곡을 위주로 골라 나중에 그들에게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다”면서 콘서트를 준비하는 과정을 전했다.

이지원 지휘자가 이끄는 24인조 오케스트라, 박은찬(드럼)·정동환(피아노) 등이 포진한 7인조 밴드, 6인조 브라스 세션, 8인조 코러스, 그리고 안무팀까지, 무대 위 연주자 및 퍼포머만 60명에 달할 정도로 음악적인 완성에 공을 들인 무대들이 이어졌다. 이것은 뮤지션 김동률의 뚜렷한 음악적 소신이 만든 결과물이다. 김동률은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제 공연을 찾아주시는 이유는 풍요로운 어쿠스틱 연주를 들을 수 있어서라고 생각한다”면서 “제 자랑이긴 하지만 아날로그 악기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편곡으로 ‘음악 지킴이’ 역할을 하려 한다”고 본인의 생각을 전했다. 직접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도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를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아한다고.

덕분에 섬세한 편곡으로 새롭게 탄생한 곡을 들을 수 있는 호사가 가능해졌다. ‘여행+J’s Bar에서’ 무대에서는 마치 뉴욕의 재즈 바에 와 있는 듯한 전율을 느낄 수 있었고, 안무팀과 함께한 ‘시작+동화’, ‘황금가면’ 무대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관객들이 있을 정도로 역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후배 가수 보아에게 선물했던 ‘옆 사람’을 새롭게 편곡해 처음 선보인 무대도 큰 호응을 받았다.

김동률은 “대학가요제로 비교적 수월하게 데뷔했다”면서, “첫 앨범이 사랑받을 때 ‘나는 내리막길만 남았구나’라는 조바심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큰 경기장에서 관객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뭐라고, 이 많은 사람들이 와주시는 게 여전히 신기하다”고 벅찬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30년 동안 한결같이 좋아해주시고, 글 하나 올렸을 뿐인데 찾아와주시고 정말 감사하다. 개인적인 바람은 지금까지처럼 오래오래 음악을 하고 싶고, 그 여정에 팬들이 함께 해주셨으면 한다. 각자 일상 열심히 건강하게 살다가 가끔 만나는 반가운 친구처럼, 한동안 살아가는 버팀목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 걸음 한 걸음 산책을 하듯, 무대 위에서 그가 건네는 진심 담긴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발자국처럼 남았다. 그가 콘서트 말미 팬들에게 남긴 말은 “조금만 더 늙어서 곧 만나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