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 한 번이면 나도 크리에이터? ‘AI 유튜버’ 시대

2025-11-15     이지은 기자

로또 당첨을 꿈꾸며 퇴사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퇴근 후엔 넷플릭스와 배달 음식으로 심신을 달랜다. 상사의 “좀 더 샤~한데 빵한 거 없냐”는 황당한 요구에는 ‘내적 비명’을 지른다. 하루에도 열 번은 넘게 감정이 요동치는 K-직장인의 초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AI 유튜버, ‘정서불안 김햄찌’. 그는 현대인의 애환을 20~30초짜리 쇼츠에 녹여내며 채널 개설 3개월 만에 구독자 60만 명을 모았다. 짧은 영상 안에도 온갖 밈과 기승전결을 완벽히 담아낸다.

실제 햄스터를 본뜬 귀여운 외모와 달리 시니컬하고 현실적인 대사를 쏟아내는 게 매력인 이 유튜버는, ChatGPT·소라(Sora)·하이루오 등 생성형 AI 툴로 제작된 100% 인공지능 캐릭터다. 대본부터 이미지, 영상까지 대부분의 제작 과정이 AI로 이루어진다. 가상의 존재지만, 유니버설·카카오페이·샐러디·포토이즘·밀맥주 등 여러 브랜드의 러브콜을 받으며 광고 시장의 핫 아이콘이자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프롬프트로 탄생한 캐릭터가 이제는 콘텐츠의 주인공이자 수익 모델로 기능하는 셈이다. 

김햄찌를 비롯한 AI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배경으로 박성혜 교수는 “빠른 제작 속도, 개인화된 콘텐츠 제공 그리고 높은 확산력”을 꼽았다. AI는 시청자 반응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학습해 트렌드에 즉각 대응하고,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곧바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갈 수 있다. 이런 효율성에 전파력의 결합이 AI 콘텐츠를 단숨에 시장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핵심 동력이 됐다.

 

100% 인공지능 캐릭터가 뜬다  
‘핫 아이콘’ 된 AI 유튜버 ‘정서불안 김햄찌’ 

AI 콘텐츠의 성공은 비단 ‘정서불안 김햄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동물·인간 등 다양한 형태의 ‘AI 인플루언서’와 인공지능 기반 영상이 콘텐츠·마케팅 시장을 빠르게 점령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삼성생명, LG유플러스,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이 AI 모델을 내세운 광고 영상을 선보였으며, 최근에는 ‘야나두’가 제작한 AI의 영어회화 강의 쇼츠가 조회수 1300만 회를 돌파하며 화제를 모았다.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완벽한’ 외형과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주제로 도파민을 자극하는 ‘무적의 AI 콘텐츠’가 잇따라 등장하며, 이제 생성형 AI로만 제작된 캐릭터 및 콘텐츠는 영상 산업의 주류가 됐다.

창작 환경도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카메라와 배우, 비싼 장비가 없어도 텍스트 한 줄이면 그럴듯한 영상을 만들 수 있다.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생성’ 버튼을 한 번 더 누르면 그만이다. 제작비·시간·인력은 물론 전문 지식까지 최소화되면서 창작의 문턱은 눈에 띄게 낮아졌다. 말 그대로 누구나 ‘감독’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영상 제작이 쉬워지면서 이에 따른 실험적인 제작 시도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렇게 AI가 영상 콘텐츠의 판도를 바꾸면서 유튜브·인스타그램 등 SNS에는 하루에도 수천 개의 AI 생성 영상이 쏟아지고 있다. 주제 선정부터 스토리 구상, 대본 작성, 이미지·영상 생성까지 AI의 손이 안 닿은 영역이 없다. 이런 영상들은 이른바 ‘양산형 AI 쇼츠’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다. 

기업들도 이러한 변화를 적극 수용하는 중이다. AI 인플루언서를 마케팅 전면에 내세우거나, 전 과정을 AI로 제작한 광고를 선보이며 빠른 트렌드 대응과 비용 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이처럼 영상 산업은 AI가 인간의 노동과 창작을 가장 빠르고, 가장 노골적으로 대체하는 영역이 됐다. 

 

AI 유튜버 ‘정서불안 김햄찌’

 

성공 요인은 ‘이야기의 힘’ 
저작권, 허위 정보 해결은 숙제 

하지만 효율성이라는 장점 너머로, 창작자의 역할에 대한 오래된 논제가 다시 고개를 드는 중이다. 박 교수는 “처음 카메라가 발명됐을 때 아카데미즘 화가들이 받았던 충격과 비슷하다”며 “AI를 전면에 내세운 채널들이 부상하며 기존 영상·애니메이션 업계의 관행과 역할이 재정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가 인간 창작자의 능력과 제작 역량을 보완하는 도구이자 가능성으로 작용하면서도, 동시에 기존 작업 방식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AI 기술이 진보할수록 더욱 해결이 어려워지는 부분도 있다. 바로 ‘저작권’과 ‘신뢰성’이다. AI가 기존 작품을 학습해 유사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면서 원작자의 권리가 침해될 가능성이 커지고, 정교하게 생성된 영상이 허위 정보를 담을 위험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연령층이나 어린 시청자들이 AI로 제작된 의사·변호사 등의 ‘전문가’ 콘텐츠를 사실로 믿고 따라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박 교수는 “법적·윤리적 기준이 마련되는 속도보다 기술이 훨씬 빠르다”며 “무분별한 유통이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 툴의 발전으로 기술적 장벽은 낮아졌지만, 콘텐츠의 본질은 여전히 ‘스토리텔링’에 있다. SNS에서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AI 쇼츠가 순간적인 재미는 줄 수 있어도 오랜 시간 마음에 남는 감동은 사람의 손에서 만들어진다. ‘정서불안 김햄찌’처럼 성공한 AI 콘텐츠의 진정한 힘도 기술이 아니라 ‘이야기’에 있다. 화려한 영상미보다 시청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인간적인’ 스토리텔링이 해당 유튜브 채널의 더 큰 성공 요인이다. 

이와 관련해 박 교수는 “앞으로 콘텐츠 시장은 인공지능이 지배하기보다는 AI 기술과 인간 창작자의 협업을 중심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알고리즘’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이야기의 힘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