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이신화의 유럽 인문 여행] 화려한 아르누보 건물이 즐비한 오라데아 구 시가지

2025-09-04     이신화
구시가지 궁전 거리. 

 

오라데아의 ‘공화국 거리’는 중앙역에서 시작된다. 중앙역에서 구시가지로 들어서면 도보 전용 길이다. 세 개의 거리가 교차하는 중심부에 위치한 구시가지 도로는 페르디난트 1세 광장까지 약 2km 정도로 짧은 거리지만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예부터 중요한 무역로였고 현재는 오라데아의 상업 밀집 지역이다. 그 주변에는 멋진 궁전 건축물, 교회, 극장, 동상 등을 볼 수 있다. 여행 현장에서는 중구난방으로 보았지만 동선에 맞춰 소개한다.

오라데아 중앙역

오라데아 중앙역을 여행의 시작점으로 한다. 그냥 어느 도시에나 있는, 특징 없는 기차역이라 생각했는데 1857년,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그의 아내 비텔스바흐의 엘리자베스(시시)가 참석해 기초석을 놓았다니 신기하다. 그러니까 합스부르크 지배 시절에 시작되었다는 것. 그러나 기차역이 완공되기까지는 거의 10년이 걸렸다. 오라데아 역은 1868년~1870년 사이에 건설되었다.

현재의 역사는 1902년, 오라데아 출신의 헝가리 건축가인 칼만 리마노치 시니어와 엔지니어 렌데스 빌모스가 건축했다. 기존 건물의 확장 공사를 설계하고 지휘했다. 칼만 리마노치 시니어는 칼만 리마노치 주니어의 아버지로 오라데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 집안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에 걸쳐 건물의 규모는 보존되었지만, 반복적인 개조 공사를 거치면서 원래의 네오 낭만주의 장식 요소가 모두 사라졌다. 오라데아에는 중앙역 외에도 19세기 말부터 벨렌차역(현재 오라데아 동역)과 이오시아역이 생겼다. 이오시아 역은 화물 역사로만 이용된다.

오라데아 공화국 길

오라데아의 공화국 길(리퍼블릭 스트리트, Calea Republicii, The way of the Republic)의 메인 도로는 중앙역에서 약 1km 정도 차도를 따라 가서 길 건너 우측 골목길로 들어서면 된다. 이 보행자 도로는 19세기 후반부터 도시의 가장 중요한 무역로였고 현재까지 주요 상업 중심지다. 중앙역과 도심을 잇는 도시의 주요 간선도로 역할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공화국 길은 여러 가지 이름을 가졌다. 1727년에는 나지 우트차(Nagy utca, 큰 거리), 1890년에는 푀 우트차(Fő utca, 중심가), 1900년에는 라코치 우트(Rakoczi út, 중앙가), 1920년에는 킹 페르디난드 스트리트(King Ferdinand Street), 그리고 1945년 이후부터 공화국 길로 불렸다.

중앙역 개통 이후 주택이나 복합용도 건물을 짓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토지가 제공되면서 이 지역은 개발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분리파 궁전은 중앙역에서 페르디난트 1세 광장까지 이어지는 이 도로에 지어졌다. 20세기 초에는 이 간선도로에 두 개의 병원과 여러 개의 국영 철도 회사 건물이 들어서기도 했다.

모스코비츠 미크샤 궁전. 
구시가지 궁전 거리. 

 

공화국 거리의 대표 궁전들

공화국 거리에서는 깜짝 놀랄 정도로 거대한 건물들을 만날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1900년에서 1914년 사이에 지어진 세 개의 대형 아르누보 궁전을 꼽는다. 슈테른 궁전, 모스코비츠 미크사 궁전, 아폴로 궁전인데 각각 다른 아르누보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중 보지 말라고 해도 보이는 건물이 모스코비츠 궁전이다. 거대한 건물은 물론 청색 빛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풍부한 장식 덕분에 가장 화려한 건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모스코비츠 미크샤 궁전

모스코비츠 미크샤 궁전은 여러 주류 제조 및 조제 시설을 소유한 사업가 모스코비츠 미크사의 집이었다. 이 건물은 부다페스트 출신의 교수이자 엔지니어였던 실라르드 지엘린스키의 설계를 바탕으로 건축가 ‘칼만 리마노치 주니어’가 건축했다. 1904년 가을부터 1905년 봄까지, 기록적인 속도로 빠르게 지어졌다. 리마노치 주니어는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 2층 건물에 식물 모티프 장식을 더해 장엄한 그림을 완성했다. 오라데아에서 최초로 주택 건설에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 사용되었다.

모스코비츠 궁전은 지하와 두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층은 창고로, 2층은 상점과 창고로 사용되었으며, 안뜰에는 주방이 딸린 작은 2룸 아파트가 있었다. 트라이안 거리에 위치한 입구는 복도를 통해 연결되며, 복도 끝에는 주 계단이 있다. 두 번째 계단은 안뜰에 있는 주 계단과 평행하게 윙(wing)에 있다. 1층과 2층에는 안뜰을 둘러싼 갤러리가 아파트로 연결된다. 이 아파트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재분할되었고 현재는 외관만 볼 수 있다.

슈테른 궁전

슈테른 궁전은 1904년, 당시 화학자이자 엔지니어였던 스테른 미클로스가 지방 의회로부터 중앙 도로 바로 옆의 땅을 매입하면서 시작된다. 이 거대한 건물은 ‘검은 독수리’ 궁전을 설계한, 유명한 건축가 마르셀 코모르와 데조 야캅의 작품이다. 궁전의 건축 양식은 궁전 외관 곳곳에서 발견되는 헝가리 전통 예술의 특징을 강조한다. 현재는 1층의 장식은 모두 철거되었고, 두 개의 출입문만 온전히 남아 있다.

아폴로 궁전

19세기, 현재 아폴로 궁전이 있는 자리에 아폴로라는 여관이 있었다. 1910년 시의회는 이 부지에 새 건물을 짓기로 결정했다. 1911년 봄 칼만 리마노치 주니어가 프로젝트를 발표했고, 경매는 1912년 3월에 열렸다. 칼만 리마노치 주니어가 최고가를 제시해 낙찰되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는 1912년 7월 완공되기 전에 사망했다. 건축가의 미망인은 시의회에 건축가이자 엔지니어인 크라우제 티바다르에게 새 건물 건설을 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고인이 된 건축가의 협력자였다. 1914년 말에 완공되었다.

지방 자치 단체는 수입을 얻기 위해 건물의 방을 임대했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면서 세입자를 찾는 것이 어려웠다. 그중 카페는 여러 차례의 경매 끝에 세입자를 찾았다. 오라데아 출신의 에르뇌 뷔르거가 12년간 카페를 임대했다. 금융 위기와 전쟁 상황 속에서도 카페는 의료진, 상인, 지역 산업가, 그리고 도시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로 남아 있었다.

공산주의 시대에는 국영 백화점으로 변했고, 1980년대에는 식료품점으로 재편되었다. 1990년대 이후 카페는 더 많은 변화를 겪었고, 현재는 한때 시티 카페가 있던 자리에 도박장이 운영되고 있다.

리마노치 칼만 가문의 궁전들

리마노치 칼만 센 궁전은 1905년, 건축가 리마노치 칼만 시니어 가문의 옛집에 지어졌다. 설계는 그의 아들인 리마노치 칼만 주니어가 했다. 고딕 양식의 요소를 가미한 절충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이 궁전은 베니스의 카 도로(Ca' d'Oro, 황금의 집) 궁전을 훨씬 단순화한 복제품이다.

3층 건물은 하나 이상의 방을 갖춘 수십 채의 아파트와 높은 천장을 자랑하는 1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내부 공간을 상업적 목적으로 임대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건축가 리마노치 시니어의 유언에 따라 그의 사후 도시가 궁전을 물려받았다.

리마노치 칼만 주니어 궁전도 있다. 1903년경 지어진 건축물은 1921년부터 정교회 주교구의 거주지로 사용되고 있다.

아우렐 라자르 동상. 
오라데아 국립 극장.

 

아우렐 라자르 동상

아우렐 라자르 동상은 2007년 완성된 조각가 이오안 미헬레의 작품이다. 2m가 넘는 거대한 청동상이다. 아우렐 라자르는 오라데아에서 태어나 평생을 보내며 작업했다. 그는 트란실바니아 루마니아인들의 민족 해방에 중요한 역할을 한 위대한 정치가다. 법학 박사였던 그는 "트란실바니아 루마니아 인들의 독립 선언서"를 작성했다. 그의 집은 2008년 12월 1일 대연합 90주년을 기념해 박물관이 되었다.

페르디난트 1세 광장

페르디난트 1세 광장은 유서 깊은 건축물들이 있는 오라데아 중심 광장이다. 이 광장은 크리술 레페데 강 북쪽 기슭의 올로시그 지역에 위치해 있다. 주요 보행자 도로인 공화국 거리와 여러 거리가 광장으로 이어지며, 라디슬라우스 왕 다리를 통해 강 남쪽에 있는 유니언 광장과 연결된다.

광장의 이름은 역사 속에서 여러 번 바뀌었다. 한때 로마 가톨릭 주교 라슬로 베메르의 이름을 따서 베메르 광장으로 불렸으나, 1923년 퀸 마리 광장으로 바뀌었다가 1940년에 다시 베메르 광장으로 바뀌었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된 후 스탈린 광장으로, 1966년에는 공화국 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95년 시의회는 1914년부터 1927년까지 루마니아를 통치했던 페르디난트 1세 국왕의 이름을 따 광장의 이름을 짓기로 결정했다.

오라데아 국립 극장

광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랜드마크다. 레지나 마리아 극장과 시글리게티 극장이라는 두 개의 연극 기관이 들어선 건물이다. 레지나 마리아 극장은 루마니아어로 공연하고 시글리게티 극장은 헝가리어로 공연된다. 퀸 마리는 페르디난트 1세 국왕의 부인이고 에데 시글리게티는 헝가리의 극작가다. 그들의 동상이 있다.

오라데아 국립극장은 이오니아식 기둥과 옅은 부조로 장식된 페디먼트가 있는 역사적인 그리스식 정면을 갖춘 절충주의 양식의 극장이다. 입구 앞 계단 양옆에는 그리스의 뮤즈 여신 멜포메네(비극을 상징)와 탈리아(희극을 상징)를 묘사한 두 개의 조각상이 있는데, 이 조각상들은 부다페스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극장 내부는 홀, 박스석, 발코니 등 세 층으로 구성되었다. 공연장은 완벽한 음향을 확보하기 위해 설계되었으며, 오케스트라를 위한 피트도 마련되어 있다. 현재 총 670석을 수용할 수 있다.

페르디난트 1세 광장의 주요 건물들

오라데아 국립극장 오른쪽에는 페르디난트 1세 광장과 공화국 거리를 나누는 오라데아 바자르가 있다. 극장 뒤에는 옛 우르술라 수도원(현재는 아디 엔드레 고등학교)과 오라데아 국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있다.

극장 왼쪽에는 아도르한 하우스와 아스토리아 그랜드 호텔이 있고, 그 아래로는 트란실바니아 호텔과 구 오라데아 중앙 저축 은행 건물이 있다. 광장 중앙에는 페르디난트 1세의 왕비였던 마리 왕비의 청동상이 서 있다.

광장 남동쪽 모퉁이, 스트라다 이오시프 불칸과 리퍼블릭 애비뉴 교차로에는 콜로즈스바리 하우스, 구 리마노치 호텔, 그리고 포이나르 하우스가 있다. 광장 남쪽 끝, 강 근처에는 레베이 하우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