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이신화의 유럽 인문 여행] 클루지 나포카의 체타투이아 언덕
클루지나포카에서 보낸 혼자만의 시간
야외 민족지학 박물관을 다녀온 날,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서 낯익은 얼굴을 봤다. 마른 체형에 중성적인 인상, 홍콩을 '중국'이라 부르면 단박에 정색하던 바로 그 남자였다. 몰도바 키시너우에서 처음 마주쳤고, 루마니아 이아시에서도 봤으며, 클루지나포카에서 또 다시 만난 인연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우연을 핑계 삼아 커피 한 잔쯤 건넸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몬테네그로에서는 일본인 여행자와 세 번 마주친 끝에 밥과 술을 함께한 적도 있었으니. 하지만 이번엔 그저 눈인사만 나눴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구를 만나도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클루지나포카에서 '홀로' 여행을 이어갔다.
소메슐 미크 강
유명한 성채 언덕으로 향했다. 루마니아어로는 ‘체타투이아 언덕(Cetățuia Hill)’, 헝가리어로는 ‘펠레그바르(Fellegvár)’라고 불리는 곳이다. 도심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언덕을 향해 걷다, 강 하나를 만났다. 처음엔 그냥 도시 한가운데 흐르는 개울쯤으로 여겼지만, 이름을 알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바로 ‘소메슐 미크(Someșul Mic)’ 강이었다.
이 강은 아푸세니 산맥에서 시작해, 로드나 산맥에서 발원한 소메슐 마레 강과 합류해 하나의 큰 강줄기를 이룬다. 전체 길이는 약 178㎞. 루마니아 여러 도시를 지나 헝가리까지 흐르며, 그중 약 50㎞는 헝가리 영토를 지난다. 규모로 보면 루마니아에서 다섯 번째로 크다.
주요 건물과 시설 대부분이 강의 오른쪽 둑에 자리해 있어, 나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성채 계단에서 만난 아이들
소메슐 미크 강을 건너 언덕으로 향하던 길. 가파른 계단 위로 아이 셋이 먼저 뛰어올랐다. 따가운 햇살 아래 힘겹게 걷던 중이었는데, 아이들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났다. 세 사람 중 여대생은 약간의 영어를 할 줄 알았고, 두 명은 그녀의 11살, 15살 남동생이었다.
처음엔 동네 아이들인 줄 알았다. 옷차림도 수수했고, 쇼핑백 하나만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이들은 클루지나포카에서 100km 떨어진 작은 도시에 살고 있었고, 쇼핑을 위해 도시로 나왔다가 시간이 남아 언덕에 들른 참이었다.
계단을 함께 오르며 자연스럽게 가족 이야기를 나눴다. 여대생은 여섯 남매 중 첫째였고, 아버지는 목수, 어머니는 일곱째를 임신 중이라 했다. 형제자매가 많은 게 좋다던 그녀는 동생들을 돌보는 일도 기꺼이 감당하고 있었다.
며칠 뒤, 페이스북을 통해 사진을 전달했다. 동시에 그녀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의 20대에게는 낯선 일이지만, 루마니아에서는 흔한 삶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가 단지 '아이만 많이 낳는 엄마'로 머무르지 않길 바랐다.
체타투이아 언덕
‘체타투이아 언덕(Cetățuia Hill)’은 합스부르크 제국 시절, 군사 요새로 사용된 ‘전략적 장소’다. 1687년, 오스트리아가 트란실바니아를 장악하며 블라지 조약을 체결할 당시엔 겨울철 주둔군을 수용할 공간이 필요했는데, 클루지 도심의 중세 요새로는 감당이 어려워 이 언덕을 선택했다고 한다.
지금은 요새의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성채는 원래 네 개의 성문과 막사, 수비대 본부, 무기 창고, 식품 저장소 등 다양한 건물로 구성돼 있었다. 대표적인 성문은 북쪽의 ‘비엔나 문(Wiener Tor)’으로, 차량 접근이 가능했고 장교 숙소도 함께 배치됐던 곳이다. 동쪽의 수문(Wasser Thor)과 아페이 문(Apei Gate)도 주요 출입구였으며, 성 안에는 파우더 룸과 빵집 같은 실용 공간들도 마련돼 있었다고.
현재의 요새
18세기 말, 체타투이아 요새는 군사적 기능을 잃은 채 감옥으로 사용됐다. 1848년 혁명 당시에는 색슨족 루터교 목사이자 혁명 영웅으로 추앙받는 스테판 루트비히 로스(Stephan Ludwig Roth, 1796~1849)가 이곳에 수감돼 처형되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 현재는 성채 대부분이 사라진 상태로, 일부 건물과 성벽만 남아 있다. 산사태로 지반이 크게 무너졌고, 1970년대에는 언덕 남쪽 구역에 벨베데레 호텔이 들어서며 기존 터가 완전히 파괴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물은 네 채뿐이며, 과거 보루 중 하나는 현재 ‘낙하산 타워(Turnul Parașutiștilor)’라는 전망용 구조물로 쓰이고 있다.
출입문도 이제는 두 곳만 남았다. 북쪽의 ‘비엔나 게이트’와 남동쪽의 ‘워터 게이트’다. 언덕에 세워졌던 십자가는 공산주의 시절 철거됐다가, 1995년 철제로 다시 세워졌다. 원래의 십자가는 이곳에 수감됐던 사람들을 기리는 상징이었다.
요새의 볼거리들
1900년, 오스트리아-헝가리 황제 프란츠 요제프의 아내 엘리자베트 황후가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지나면서, 체타투이아 언덕은 ‘공원’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곳의 역사가 잊히지 않기를 바랐던 지역 주민들 덕분에, 언덕과 공원의 이름으로 ‘체타투이아’라는 지명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당시 남쪽 능선에는 황후를 기리는 동상도 세워졌다.
도심에서 체타투이아 언덕 정상까지 가려면, 상공회의소 옆 소메슐 강 다리를 건너 237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계단을 오르면 클루지나포카의 수호성인 성 요한 네포무크의 동상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언덕 일대는 지금도 시민과 여행객들이 하이킹, 산책, 조깅을 즐기는 여가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도시 전경이다. 세인트 마이클 교회, 센트럴 파크, 클루지나포카 식물원 등, 여행 중 거쳐 온 명소들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소메슐 미크 강둑의 궁전들
소메슐 미크 강변을 따라 늘어선 건축물들은 성채 언덕에서도 시선을 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사이, 클루지나포카에 조성된 이 복합 건물 단지에는 네오고딕, 절충주의, 분리파 양식 등 다양한 건축 스타일이 공존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베르데 궁전(Berde Palace)’이다. 1891년, 산업협회 회장이자 정육점·와인 상인이었던 샤무엘 베니니가 처음 세운 건물로, 이후 클루지대학교 초대 총장 아론 베르데가 거주하며 그의 이름을 따 현재의 명칭이 붙었다. 밀가루 상인과 와인 상인 등 여러 소유주를 거친 이 궁전은, 현재 소메슐 미크 강변에 우뚝 서 클루지의 벨 에포크 건축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남아 있다.
엘리안 궁전(Elian Palace)은 고딕 양식의 첨탑과 르네상스·바로크 요소가 어우러진 화려한 외관을 자랑한다. 건축주는 당대 최고의 와인 상인 중 한 명이었던 빅토르 엘리안이다.
강변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면, 바보스 궁전(Babos Palace)과 스제키 궁전(Szeki Palace)이 나란히 자리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보스 궁전은 약사 산도르 바보스를 위해 지어진 분리파 양식의 건물로, 르네상스적 요소가 조화롭게 표현된 것이 특징이다. 스제키 궁전은 대학 교수 미클로스 스제키의 의뢰로 헝가리 건축가 사무 페츠가 설계한 작품이다.
Data
체타투이아 언덕(Cetăşuia Hill):주소:Strada Emil Racoviță 60a, Cluj-Napoca 400124 루마니아
엘리안 궁전(Elian Palace):주소:str. Horea 2, 클루지나포카
바보스 궁전(Babos Palace):주소:Piața Mihai Viteazu 1, Cluj-Napoca 400036 루마니아
스제키 궁전(Szeki Palace):주소:Bulevardul Eroilor 2, Cluj-Napoca 400394 루마니아
베르데 궁전(Berde Palace):주소:Strada Dacia, Cluj-Napoca, Roma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