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이신화의 유럽 인문 여행] 마리화나와 홍등가가 합법화인 나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워털루 광장 벼룩시장
어느 도시나 오래된 시장이 있다. 사람들이 살기 위해 재래시장은 필수다. 암스테르담에도 알버트 쿠입 마켓, 블로멘마르크(꽃시장), 노르데르 마켓, 뉴마르크트 광장 등 다양한 재래시장이 있다. 하지만 일부러 찾아다니기보단 걷다 마주치는 시장을 구경하면 그만이다. 나는 렘브란트 하우스 근처에서 ‘워털루 광장 벼룩시장’을 만났다.
옛 게토가 있던 자리에 위치한 이곳은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오래된 벼룩시장으로, 300여 개 노점이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문을 연다. 1882년 레프로젠그라흐트(Leprozengracht)와 하우트그라흐트(Houtgracht) 운하를 메우며 시장이 생겼고, 1893년부터는 유대인 상인들이 광장으로 노점을 옮기길 결정하며 상설 시장이 됐다(유대인 안식일인 토요일 제외).
원래 이 지역은 유대인 지구였다. 이곳에는 유대인 가족 26가구가 살았는데, 그들은 가난했고, 글을 쓸 수 없었고, 사진을 찍을 돈도 없었다. 그래서 거의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의해 주민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며 폐허가 됐고, 시장은 벼룩시장으로 변했다.
지금은 암스테르담 사람들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인 자전거부터 예술품, 서적, 빈티지 카메라, 목공예품 등을 판다. 운 좋으면 쓸만한 걸 건질 수도 있다는데 눈길을 끄는 물건은 드물었다. 광장에는 시청과 오페라 건물인 스토페라(Stopera), 모세와 아론 교회(Mozes en Aäronkerk)가 자리한다.
뉴마르크트와 와그
렘브란트 광장 쪽으로 걷다가 뉴마르크트(새시장, Nieuwmarkt)를 만났다. 광장은 멋진 건축물이 눈길을 끌었지만, 그 주변이 시장인 줄은 몰랐다. 토요일엔 유기농 장터가, 5~10월 일요일엔 벼룩시장이 열려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 즐겨 찾는다고 한다.
광장 중앙에는 15세기 성문이었던 와그(Waag)가 남아 있다. 와그는 네덜란드어로 ‘무게’를 뜻하며, 이곳은 17세기 상인들이 물건을 팔기 전 무게를 재던 계량소였다.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오래된 비종교 건물로, 1970년 국가기념물로 지정됐다.
렘브란트의 ‘해부학 교실’
이 건물은 한때 박물관, 소방서, 해부학 극장 등으로 사용됐다. 특히 렘브란트의 명화 ‘해부학 교실’(1632)은 이곳에서 실제로 열린 해부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해부학자 튈프 박사의 주도로 1년에 한 번 일반인에게 해부학 시연을 공개했고, 시신은 사형수의 것만 사용할 수 있었다.
렘브란트의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수업’(De anatomische les van Dr. Nicolaes Tulp)은 1632년 그려진 유화로, 현재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이 작품은 원래 외과의사 협회의 회의실에 걸기 위해 제작되었으며, 렘브란트의 초기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건물은 19세기에는 펜싱장, 가구 작업장, 석유 램프 작업장, 소방서, 도시 기록 보관소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됐다. 19세기 전반에는 건물 앞에서 단두대 처형이 집행되기도 했다. 20세기에는 암스테르담 역사 박물관, 유대인 역사 박물관 등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1989년부터 몇 년간 비어 있다가 복원되었으며, 현재는 ‘레스토랑 카페 인 더 와그(Restaurant-Café In de Waag)’로 운영 중이다. 또한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된 측면 입구, ‘세인트 루크 길드의 문’(Gate of the Guild of Saint Luke)도 주목할 만하다.
17세기 교회와 운하
뉴마르크트에서 렘브란트 광장으로 향하다 보면 아름다운 운하 풍경이 펼쳐진다. 그 중심에는 ‘주이더커크’(Zuiderkerk, 남부 교회)가 있다. 이 르네상스 양식의 개신교 교회는 1614년 헨드릭 드 키저(Hendrick de Keyser)가 설계했으며, 탑은 1656년에 완공되었다. 교회에는 매달 종 4개가 울린다.
이 교회는 1929년까지 예배당으로 사용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유대인들을 강제 수용소로 보내기 전 집결지로 이용됐다. 전쟁 말기인 1944~1945년 겨울, 사람들이 매장 가능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죽어가면서 임시 영안실로 사용되었다. 1970년 붕괴 직전의 교회는 잠시 문을 닫았고, 1976년부터 1979년까지 리노베이션을 거쳤다. 1988년부터 전시 공간과 시립 정보 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이곳은 렘브란트와도 깊은 인연이 있다. 렘브란트의 세 자녀가 이 교회에 묻혔고, 렘브란트의 가장 유명한 제자 페르디난드 볼(Ferdinand Bol)도 이곳에 잠들어 있다. 또한 주이더커크는 클로드 모네가 1874년 그린 그림의 주제이기도 하며, 이 작품은 현재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근처에는 도개교인 스틸마스터스 브릿지(Staalmeestersbrug)와 철학자 바뤼흐 드 스피노자의 동상(조각가 니콜라스 딩스, 2008년 공개)도 볼거리다.
렘브란트 광장
렘브란트 광장(Rembrandtplein)은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번화한 광장 중 하나다. 중세 시대에는 이곳이 도시의 관문 역할을 했다. 17세기에는 농부들이 유제품과 가금류를 팔아 ‘버터 시장’으로 불렸으며, 가을마다 댄스 오케스트라와 서커스 텐트가 있는 박람회가 열리곤 했다.
1876년, 렘브란트 동상이 광장 중앙으로 옮겨지면서 광장은 ‘렘브란트 플레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이 동상은 1852년 조각가 루이스 로이어(Louis Royer, 1793~1868)가 만든 작품으로, 암스테르담 공공 공간에 설치된 가장 오래된 동상이다.
20세기 초 렘브란트 광장은 예술가, 젊은이, 노동자들이 모이는 나이트라이프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광장 주변에는 1921년부터 운영된 파테 투친스키 영화관을 비롯해 다양한 호텔, 카페, 오락 시설이 즐비하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는 렘브란트의 야간 경비대 조각상이 설치됐으나, 2020년 2월 철거됐다. 조각품의 임대 또는 구매 문제로 러시아 예술가 미하일 드로노프와 알렉산더 타라티노프와의 협상이 결렬된 결과였다. 언젠가는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까?
마리화나 씨앗을 파는 싱겔 꽃시장
렘브란트 광장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암스테르담의 대표 화훼 시장, '싱겔 꽃시장'(Flower Market Amsterdam)이 있다.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오래된 운하인 싱겔(Singel) 운하 위에 떠 있는 형태로, 1862년 개장해 지금도 매일 아침 신선한 씨앗과 종자가 들어온다.
이곳에서는 튤립, 수선화, 카네이션, 제비꽃, 모란 등 네덜란드의 대표 꽃은 물론, 치즈와 액세서리 같은 기념품도 함께 판매한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처럼 아름다운 꽃을 보기는 어려웠다. 계절이 맞지 않아서인지 꽃은 거의 없었고, 대신 마리화나 씨앗이 눈에 띄었다. 판매되는 꽃 씨의 품질은 의심스럽다고 한다. 2019년 조사에 따르면, 블루멘마르크트에서 구매한 꽃 씨는 상당수가 꽃을 피우지 않았다. 꽃 시장은 볼게 없었고, 오히려 치즈 숍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중에는 옛 동인도 회사 창고를 개조해 운영하는 가게도 있다.
대마초 합법화는 성공했을까?
네덜란드에서 대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꽃시장에서 마리화나 씨앗을 파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시내 곳곳 커피숍에서는 대마초 냄새가 진동한다. 1987년에는 대마박물관(Hash Marihuana & Hemp Museum)까지 문을 열었다.
네덜란드는 1976년 대마초를 합법화했다. 왜일까? 마약 중독자가 급증하자 비교적 중독성이 약한 대마초를 허용하고, 가격을 낮춰 공급함으로써 음지에 있던 마약 조직의 수익을 줄이고, 사람들이 헤로인, 코카인 같은 더 위험한 마약에 손대는 것을 막아보려는 시도였다. 실제로 합법화 초기 몇 년 동안은 강한 마약 중독자가 줄어드는 듯 보였다.
하지만 대마초는 흔히 ‘마약의 입문’으로 불린다. 대마초로 멈추지 않고 더 강한 마약을 찾는 이들이 생겨났다. 대마초를 허용하면 더 강한 마약을 피할 것이라는 기대는 빗나갔다. 오히려 더 많은 마약류가 유통되고 마약 조직과 카르텔이 생겨나면서 살해 사건, 사회 불안, 국민의 마약 중독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대마초 합법화가 이유였다.
암스테르담에는 커피숍, 마리화나 담배 가게, 씨앗을 파는 노점이 흔하다.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관광 수익은 상당했다.
네덜란드 홍등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관광 상품은 홍등가(드 발렌, De Wallen)다. 네덜란드는 일찍이 선상 기술과 해양 무역으로 번영했으며, 청어 등을 잡아 세계에 팔며 부를 쌓았다. 뱃사람을 일컫는 ‘마도로스’(Matross), 유럽 대중레포츠 ‘요트’(Yacht) 같은 단어가 네덜란드어에서 유래했을 정도다.
암스테르담은 다양한 무역인, 선원, 호객꾼, 상인들로 붐볐다. 항구 주변에는 자연스레 홍등가가 형성됐고, 네덜란드는 이를 합법화했다. 구역을 정해 관리하면서 야간 범죄나 성범죄는 줄었고, 성의 자유는 관광 자원이 되어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곳에는 약 250개의 창문형 성매매 업소가 있으며, 2014년에는 세계 최초의 매춘 박물관인 레드 라이트 시크릿(Red Light Secrets)이 문을 열었다.
최근 시 당국은 암스테르담 외곽 지역에 '에로틱 센터'(Erotic Center)라는 별도 빌딩을 세운 뒤, 여기에 드 발렌의 성매매 업소 일부를 옮기려 하고 있다.
홍등가에 가기 전, 사진 촬영은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막상 가본 홍등가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단지 ‘매춘 거리’가 있을 뿐이었다. 관광 수익은 높겠지만, 이곳이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이렇게 암스테르담 여행을 마무리했다.
Travel Data
워털루 광장 벼룩시장(Waterlooplein Market): 주소: Waterlooplein, 1011 PG Amsterdam, 네덜란드
스피노자 기념비(Spinoza Monument): 주소: Jodenbuurt, 1011 HS Amsterdam, 네덜란드
주이더커크(Zuiderkerk): 주소: Zuiderkerkstraat 31, 8011 HE Zwolle, 네덜란드 / 전화: +31 38 421 7356 / 웹사이트: https://zuiderkerk.info/
도개교(Staalmeestersbrug): 주소: Groenburgwal, 1011 HS Amsterdam, 네덜란드
렘브란트 광장(Rembrandtplein): 주소: 1017 CT Amsterdam, 네덜란드
꽃시장: 주소: Singel 630~600, 1017 AZ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대마박물관(Hash Marihuana & Hemp Museum Amsterdam): 주소: Oudezijds Achterburgwal 148, 1012 DV Amsterdam, 네덜란드 / 전화: +31206248926/웹사이트:https://hashmuseum.com/en/
홍등가(De Wallen Red Light District Amsterdam): 주소: Oudezijds Voorburgwal 39, 1012 DA Amsterdam, 네덜란드
홍등가 비밀 박물관(Red Light Secrets Museum): 주소:Oudezijds Achterburgwal 60h, 1012 DP Amsterdam, 네덜란드 / 전화: +31208467020 / 웹사이트: https://www.redlightsecre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