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이신화의 유럽 인문 여행] 오리엔트 특급 열차가 만들어낸 동양의 파리

2025-02-05     이신화 작가
베레케자데 분수대.

갈라타 탑 근처의 베레케자데 분수

이스탄불을 한눈에 조망하려면 갈라타 탑(Galata Kulesi)을 가야 한다. 갈라타 다리에서 찾는다. 다리를 기점으로 1km 정도 걸어 가면 된다. 길을 물어볼 필요도 없다. 탑은 우뚝 솟아 늘 눈길을 끌고 있으니 말이다. 갈라타 다리를 건너면 카라쾨이(Karaköy) 지역에 이른다. 보스포루스 해협과 금각만이 합류하는 바닷가에는 부두가 있고 페리 등이 정박해 있다.

탑으로 오르는 골목길은 경사도가 높다. 그리고 벽에 그래비티도 난무해서인지 왠지 우중충하다. 탑에 거의 이를 즈음에 '실크로드 우호 협력 기념비'도 만난다. 한글로 쓰여 있으니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이 기념비는 2013년 9월1일,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 개최를 기념해 경상북도와 이스탄불, 경주시가 세웠다고 한다.

조금 더 오르니 베레케자데 분수대(Bereketzade Fountain)가 있다. 현장에서는 이곳이 분수라는 것은 상상하지 못한다. 오스만 제국의 분수는 여느 나라와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베레케자데 분수대는 마흐무드 1세 통치 기간인 1732년에 지어졌다. 갈라타와 토파네 지역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물 부족에 대해 알게 된 후 술탄 마흐무드 1세의 어머니인 살리하 술탄(Saliha Sultan)이 만들었다. 이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분수 중 하나로 유명하다. 분수의 정면은 갈라타 탑을 향하고 있는데 현재 한쪽 면만 있다.

갈라타 탑

갈라타 탑.

매표를 하고 중세의 원통형 석조탑인 갈라타 탑 전망대에 오른다. 사방팔방 이스탄불을 조망할 수 있는 멋진 전망대다.

갈라타 탑은 금각만의 보스포루스 해협 합류점의 북쪽에 위치한다. 갈라타 탑의 전신은 507년~508년, 비잔틴 황제 유스티니아노스가 처음 건설했다. '메갈로스 피르고스(megalos pyrgos, 대탑'이라는 뜻)라는 방어탑이었다.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것은 1348~1349년, 이탈리아 제노바 상인들이 재건했다는 기록이다. 제노바 상인들이 이곳에 정착하게 된 때는 1261년. 비잔틴 황제는 라틴 국가로부터 도시를 재정복한 후, 방위 조약의 일환으로 제노바 상인들은 정착시켜 사업을 할 수 있는 허가를 내렸다. 제노바인들은 1267년, 갈라타에 '페라'라는 식민지를 건설해 빠르게 발전시켰다. 제노바 사람들은 자신과 창고를 보호하기 위해 튼튼한 요새를 건설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원형탑으로 지붕 끝은 원뿔 모양으로 십자가가 있었다. '성십자가의 탑'(Turris Sancte Crucis, 그리스도의 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설립 당시 탑 높이가 66.9m로 이스탄불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후, 제노바인들은 어떤 저항도 없이 오스만 제국에 식민지를 넘겨주었다. 당시 상황은 비문으로 남겨져 있다. 이후 파괴, 재건을 반복했다. 16, 17세기에는 전쟁포로 수용소와 보급 창고로 사용되었고, 18세기부터는 메흐테르군단과 화재감시원들의 방화탑으로 사용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탑 중 하나로 여겨지며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임시 목록에 포함되었다. 2020년 10월 6일, 독립 기념일에 박물관으로 개관했다.

오스만 제국의 과학자 아메드의 첫 무동력 비행

갈라타 탑.

이 탑을 검색하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검색된다. 1632년, 오스만 제국의 헤자르펜 아메드 셀레비(Hezârfen Ahmed Çelebi, 1609~1640)는 세계 최초로 무동력 비행을 한 인물이다. 그는 본인이 고안하고 개발해낸 새 모양의 기구를 만들어 갈라타 탑에서 뛰어내려 보스포러스 해협을 건너 아시아 쪽 동네인 위스퀴다르 도간실라르(Üsküdar Dogancılar)에 착륙했다. 3,358m를 활공했다.

그는 사전편집자였던 이스마일 체브헤리(İsmail Cevheri, 940~1002 또는 1008)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스마일 체브헤리는 모스크 지붕에서 날아오르려다 실패해 죽었다.

아메드 첼레비의 비행 사건은 오스만 제국과 유럽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제17대 술탄 무라트 4세(1612~1640)도 처음에는 높이 평가해 금 한 봉지를 선물했다고 한다. 그러나 무라트는 그를 알제리로 추방했다. 과학자는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킬릭 알리 파샤 모스크

갈라타 탑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전경.

갈라타는 역사가 깊은 곳으로 주변에 볼거리가 많은 지역이지만 그럴 시간은 없다. 탑 전망대만 보고 숙소가 있는 탁심 쪽으로 오다가 길을 잃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곳이 킬릭 알리 파샤 모스크(Kılıç Ali Pasha Mosque)다. 예사롭지 않은 건축물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시 90대였던 미마르 시난(Mimar Sinan)이 설계한 건축물이다. 모스크를 중심으로 복합 단지(퀼리예(külliye))가 있다. 킬릭 모스크는 1578년~1580년에 건축되었고 1580년~1587년 메드레세(종교 학교), 하맘(전통 터키식 목욕탕), 튀르베(türbe), 분수 등 주변 단지가 조성되었다. 2011년 모스크를 복원했고, 2015년 주변 복합단지를 완공했다.

이곳은 해군 제독이었던 킬릭 알리 파샤(Kılıç Ali Pasha, 1519~1587)를 위해 지어졌다. 이 모스크는 바다 위에 지어진 최초의 모스크라고 한다. 킬릭 알리 파샤는 보스포러스 해협에 인공 섬을 건설해 세웠다. 현재는 물에서 떨어져 있다.

1883년 운행, 오리엔트 특급 열차

킬릭 모스크 단지는 주마간산으로 보고 야심한 밤거리를 걷고 또 걸어 숙소까지 온다. 이스탄불에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 숙소를 얼른 빠져나온다. 세기적인 영국 추리 소설가인 애거서 크리스티(1890~1976년)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원제: 오리엔트 급행에서의 살인(Murder on the Orient Express), 1934년 작)을 집필했다는 페라 팰리스 호텔(Pera Palace Hotel, Istanbul)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은 한번 손에 들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마성을 지녔다. 좋아하는 작가가 집필했다는 장소에 관심을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린 시절, 소설을 읽을 때는 오리엔트 급행 열차가 실존인지, 창작인지 관심은 없었다. 후에 이스탄불에 오리엔트-익스프레스 열차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중단된 상태였다.

당시 오리엔트-익스프레스 열차는 벨기에 CIWL(Compagnie Internationale des Wagons-Lits)사가 1883년 운행을 시작했다. 벨기에 사업가 조르주 나겔마케스(Georges Lambert Casimir Nagelmackers, 1845~1905)가 8개 철도 회사를 연합해 유럽을 가로질러 튀르키예 이스탄불까지 달리는 세계 최초 대륙 횡단 열차였다. 런던과 파리에서 출발해 스위스에서 알프스 산맥을 관통하는 심플론 터널을 지나 이탈리아 밀라노·트리에스테,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불가리아 소피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등을 거쳐 이스탄불을 오가는 노선이었다.

1883년 10월 4일,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기차가 40명의 승객을 태우고 프랑스 역(Gare de l'Est)을 출발했다. 이 기차는 76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파리와 콘스탄티노플을 연결했다. 왕복 여행은 7일간 지속되었다. 이 한 번의 여행으로 유럽의 지리는 뒤집혔고, 장거리 여행의 개념은 완전히 새롭게 정의되었다. 오리엔트 특급은 왕족, 귀족, 외교관, 사업가 등 유럽 상류층이 즐겨 탔다. 열차는 고급 사교장으로 활용됐고,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소설과 영화의 배경이 됐다.

운행 중단과 다시 부흥

2차 세계대전 이후 열차는 비행기에 밀리기 시작했다. 오리엔트-익스프레스로 2박 3일(60시간) 걸리던 파리-이스탄불을 비행기는 4시간 만에 주파했다. 오리엔트-익스프레스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점차 노선을 줄여나가다 1977년, 운행을 중단했다.

미국 억만장자이자 열차 애호가 제임스 셔우드는 1977년 소더비 경매에서 1920년대 생산된 오리엔트-익스프레스 침대 차량 2대를 사들였다. 셔우드의 열정 덕에 오리엔트-익스프레스는 1982년 런던에서 밀라노를 거쳐 베네치아까지 운행되며 되살아났다. 1998년부터는 이스탄불까지 노선을 연장하며 전성기를 되찾는 듯했다. 하지만 초고속 열차와 저가 항공이 등장하면서 2009년, 유럽 열차 시간표에서 사라졌다. 2009년 12월 12일 마지막 운행을 했고, 12월 14일 운행을 중지했다. 현재, 글로벌 호텔 체인 아코르(Accor) 그룹이 2025년에 복원했다.

역사적인 페라 팰리스 호텔

페라 팰리스 호텔.

오리엔트 특급과 밀접한 관계였던 페라 팰리스 호텔(Pera Palace Hotel, Istanbul)이 이스탄불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이 호텔은 1892년에 건설을 시작했다. 1883년,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의 승객을 수용하기 위해 건축된 것이다. 프랑스-오스만 건축가인 알렉상드르 발라리(Alexandre Vallaury, 1850~1921)가 설계해 1895년에 개장했다.

유명인들의 사진.
호텔 전시관의 피아노.

신고전주의 외관에 실내는 동양적인 연회장이 있었다. 전기 리프트를 설치한 최초의 현대식 호텔이었다. 이 호텔에는 무수한 유명인들이 찾았다. 이 호텔에는 많은 저명한 이름의 객실이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 알프레드 히치콕, 엘리자베스 여왕 2세, 에드워드 8세, 그레타 가르보, 짜짜 가보르, 샤 레자 펠레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 요시프 브로즈 티토, 프란츠 폰 파펜 장군, 사라 베른하르트, 알프레드 히치콕, 피에르 로티, 재클린 케네디, 니네트 드 발루아, 마타 하리, 키케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등 많은 배우, 감독, 정치인, 작가들이 한때 호텔의 손님들이었다.

호텔 정문.

아가사 크리스티는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자주 방문했다.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방인 411호는 현재 아가사 크리스티 룸이다. 그녀가 호텔 객실에서 유명한 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을 썼다는 소문도 있고, 아직 풀리지 않은 그녀의 잃어버린 11일 동안 이 호텔에 머물렀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페라 펠리스 호텔.

또 호텔의 101호실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박물관이다. 그는 1915년 12월부터 1917년 10월까지 여러 번 머물렀다. 1981년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 방은 박물관으로 바뀌었고 흑단 의자, 이국적인 동양 카펫, 희귀한 검은색 실크 기도용 양탄자 등 그의 개인 소장품이 전시되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차 세계 대전 이후 기자로 활동할 때 이 호텔에 거주했다. 그들이 머물던 방에 이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호텔 내부의 사진.

개인적으로는 이 호텔은 비쌌기에 머물 수 없었지만 고양이 담 넘어가듯 몰래 훔쳐보기는 했다. 바닥을 걸어도 소리가 나지 않을 만큼 고급 양탄자가 깔려 있다. 그땐 몰랐다. 페라 팰리스 호텔에서 매일 오전 10시~11시와 오후 3시~오후 4시 사이에 누구나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을. 박물관 방문은 정원을 정해 50명으로 제한한다고.

페라 박물관

페라 박물관.

야심한 밤, 호텔을 들여다보고 나오면서 ‘페라 박물관(Pera Müzesi)’을 만난다. 입구에 경비원이 있었는데 입장료는 무료. 늦은 시간까지 개장하고 있는 이 박물관에서 멋진 그림과 물품들을 만난다. 페라 박물관은 2005년, 수나 키라치 부부(Suna and İnan Kıraç)에 의해 설립되었다. 박물관은 건축가 아킬레 마누소스(Achille Manoussos)의 설계로 1893년에 지어진 전 브리스톨 호텔(Bristol Hotel)의 역사적 건물에 있다. 2003년과 2005년 사이에 건축가이자 복원가인 시난 겐님(Sinan Genim)에 의해 리노베이션 되었다. 그는 건물 외관을 보존하고 내부를 현대적이고 완벽하게 갖춰진 박물관으로 바꾸었다.

페라 박물관 그림.

페라 박물관은 그림, 아나톨리아 도량형, 퀴타히아 타일과 도자기 등의 영구 소장품을 소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국제 대여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거북이 조련사 그림.

특히 관심이 가는 부분은 동양화 컬렉션. 오스만 함디 베이의 작품과 그의 가장 유명한 그림인 거북이 조련사의 작품이 포함된다. 꽤 볼만한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브랜드버스 어워드(Brandverse Awards)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못다 한 이스탄불 이야기

아직 못다한 이야기 중에서 치라간 궁전(Çırağan Palace), 돌마바흐체 궁전((Dolmabahçe Sarayı)이 있다. 둘 다 오스만 제국 궁전이다. 치라간 궁전은 현재 5성급 호텔로 이용되고 있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그 규모와 화려함이 어마어마하다. 그곳에 가긴 했지만 그 긴 역사 이야기는 쓰지 않겠다.

아쉬운 점은 쉴레이마니예 모스크와 톱카프 궁전을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갈라타 탑 전망대에서 본 게 전부다. 이스탄불에서 놓친 곳이 이곳만은 아닐 것이다. 약 2000년의 역사가 뒤섞인 도시의 이야기를 어찌 단 몇 날의 여행으로 다 알 수 있겠는가? 여행이란 ‘꽉 채움’이 아니다. 그래서 이스탄불 여행은 후회는 없다.

그날 밤, 반짝반짝 빛나는 탁심 거리를 걸으면서 생선 골목에 있는 바에 앉아 모처럼 맥주를 마신다. 닭 날개를 안주로 시켰지만 맛은 없다. 대신 웨이터로 일하는 쿠르드족을 만난다. 뉴스에서나 듣던 쿠르드족을 이곳에서 두어 명 더 만나게 된다. 여행의 재미란 이렇게 현실에서 접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것도 큰 재미가 아닐까?


Travel Data

베레케자데 분수(Bereketzade Fountain) 주소: Bereketzade, Galata Kulesi No:1, 34421 Beyoğlu/İstanbul, 튀르키예

킬릭 알리 파샤 콤플렉스(Kılıç Ali Pasha Mosque) 주소: Kemankeş Karamustafa Paşa, Kemeraltı Cd. No:50, 34425 Beyoğlu/İstanbul, 튀르키예

페라 팰리스 호텔(Pera Palace Hotel) 주소: Evliya Çelebi, Meşrutiyet Caddesi, Tepebaşı Cd. No:52, 34430 Beyoğlu/İstanbul, 튀르키예 / 전화번호: +902123774000 / 웹사이트: https://perapalace.com/en/about-us

페라 박물관(pera museum) 주소: Asmalı Mescit, Meşrutiyet Cd. No:65, 34430 Beyoğlu/İstanbul, 튀르키예 / 전화번호: +902123349900

시라간 궁전(Çırağan Palace) 주소: Yıldız, Çırağan Cd. No:84, 34349 Beşiktaş/İstanbul, 튀르키예 / 전화: +902123264646 / 웹사이트: https://www.kempinski.com/en/ciragan-palace

돌마바흐체 궁전(Dolmabahçe Sarayı) 주소: Vişnezade, Dolmabahçe Cd., 34357 Beşiktaş/İstanbul, 튀르키예 / 전화: +902122369000

쉴레이마니예 모스크(Süleymaniye Camii) 주소: Süleymaniye, Prof. Sıddık Sami Onar Cd. No:1, 34116 Fatih/İstanbul, 튀르키예 / 전화: +902124580000

오리엔트 급행 열차 웹사이트: https://www.orient-ex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