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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리게’ 본 고장, 오스트리아 그린칭

  • 기자명 이신화 작가
  • 입력 2022.06.28 15:28
  • 댓글 0
  • 사진(제공) : 이신화 작가
오스트리아 수도 빈 시내에서 북서쪽 외곽에 위치한 그린칭(Grinzing)은 칼렌베르크 산(484m) 밑에 자리한 작은 시골 마을이다. ‘호이리게’라는 와인으로 유명세를 얻은 소도시다. 포도 농장을 따라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로마 때부터 사람들이 거주한 유서 깊은 마을에는 오래된 교회, 수도원 등이 남아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베토벤 등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하던 곳으로 트레일러가 조성되어 있다.
그린칭에서 바라본 빈.
그린칭에서 바라본 빈.

그린칭은 호이리게 와인 마을
오스트리아 빈에서 대중교통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그린칭(Grinzing)이다. 와인으로 유명한 빈 근교 도시. 빈은 삼면이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빈 중심가에 고급스러운 와인 숍들이 있다. 그린칭 구경도 하고 와인도 음미하려는 생각으로 그린칭에 발을 내딛는다. 버스에서 내려 몇 발자국만 떼면 그린칭 메인 도로인 코벤즐가세(Cobenzlgasse)를 만나게 되는데 와인을 파는 레스토랑이 이어진다. 우선 레스토랑을 기웃거려 본다.

다양한 와인따개들.
다양한 와인따개들.
식당의 와인따개 전시장.
식당의 와인따개 전시장.
루돌프스호프 카페.
루돌프스호프 카페.

 

노란색으로 색칠된 루돌프스호프 카페(Cafe Rudolfshof)는 베토벤과 연관이 있는 듯 간판을 내걸었다. 베토벤 분수가 있는 마당에는 연주자들도 눈에 띈다. 또 다른 와이너리 라인프레히트(Weingut Reinprecht)는 와인 박물관을 연상시킨다. 수십 종류의 와인 따개와 코르크, 포도주를 걸러내는 기계, 오래된 그림 등으로 치장한 내부는 예약 손님이 있는지 테이블이 세팅되어 있다. 마틴 제프에게(Zum Martin Sepp) 레스토랑에는 단체 행사가 있는 듯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전통복장을 입은 스태프가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한다. 실내에 책자가 즐비한 것을 보면 출판기념회가 아닐까 짐작한다.

햇포도주를 파는 선술집 호이리게
빈 외곽의 도시들을 묶어 비너발트(wienerwald)라고 칭하는데 그중 와인을 마시기에 가장 좋은 장소로 꼽히는 곳이 그린칭이다. 호이리게는 그린칭 말고도 지베링(Sievering), 노우스티프트(Neustift), 리징(Liesing), 누스도르프(Nussdorf), 노이슈티프트 암 발데(Neustift Am Walde), 오베르아(Oberlaa) 등이 유명한데 빈에서 접근하기 좋은 곳이 그린칭이다.

그린칭 와인은 발효된 적포도주가 아니다. 화이트 와인으로 포도 품종은 그루너 벨트리너(Gruner Veltliner)다. 호이리게 와인(heuriger Wein)이라고 부른다. 호이리게라는 말의 어원은 ‘올해의’라는 뜻의 ‘호이리크(heurig)’이며, ‘포도주 판매주점’이란 뜻의 호이리겐로칼(Heurigenlocal)이 더해져 호이리게가 됐다. 호이리게는 ‘그 해 만든 햇포도주를 파는 선술집’이란 뜻이다.

호이리게 전문 와인 마을로 유명해지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그린칭에 몰려 들었다. 그중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지미 카터, 빌 클린턴 등의 각국 대통령, 알랑 드롱, 소피아 로렌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이곳에 들러 화이트 와인과 전통요리를 즐기고 갔다. 유명인들이 찾아들면서 홍보효과를 누렸다.

옛 와이너리.
옛 와이너리.
와이너리 라인프레히트.
와이너리 라인프레히트.
호이리게 화이트 와인.
호이리게 화이트 와인.

 

호이리게의 유래
호이리게는 오스트리아 전성기인 합스부르크 왕가 시대에 정식 허가를 받았다. 당시 포도재배 농가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와인을 마음대로 팔 수 없었다. 포도주 양조업자들은 자신의 농장에서만 호이리게를 팔아야 했다. 농민들의 불만은 고조되어 포도주 판매권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합스부르크는 30년 전쟁 등의 혼란 속에서 와인 생산이 침체된 상황이었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1717~1780)는 와이너리에 세금과 행정규제 등을 완화시켰다. 이후 그의 아들 요제프 2세(1741~1790) 황제는 1784년 8월 17일, 포도 농민들에게 판매를 허가했다.

와인능선.
와인능선.

포도원 또는 과수원의 소유자 또는 임차인만이 농장에 부셴샹크(Buschenschank, 덤불술집)을 만들 수 있었다. 새 포도주가 완성되면 ‘우리 집에 올해 빚은 새 포도주가 나왔다!’를 알리기 위해 문밖에 소나무(혹은 전나무) 다발을 내다 걸었다. 호이리게는 가을 중 2~3주 동안만 마실 수 있었다. 호이리겐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와인은 가을 초에 판매되는 슈투름(Sturm)이다. 부분 발효 와인으로 상당한 양의 포도가 들어 있다. 현대에는 알름두들러(Almdudler)와 게슈프리츠커(Gespritzer, 일명 스파클링 와인. 탄산수와 혼합된 화이트 와인)가 인기다.

음식과 음악이 어우러진 작은 파티 공간
갓 빚은 백포도주에는 음식과 음악이 필수적으로 조합된다. 20세기까지는 손님들이 음식을 가지고 오는 것이 관례였지만 상업화되면서 음식을 판매하게 되었다. 전형적인 부셴샹크 요리는 ‘브레틀랴우즈(Brettljause)’다. 이것은 냉햄(훈제 고기, 구운 돼지고기, 햄, 말린 소시지, 베이컨, 등심 구이, 훈제 소시지)에 겨자 소스를 뿌려 먹는 요리다. 송아지 고기에 밀가루와 달걀, 빵가루를 입혀 튀겨낸 빈의 대표적인 요리 ‘슈니첼’이나 굴라쉬 요리. 감자, 시금치 등 각종 야채와 소허벅지 살을 오래 삶아 기름기를 뺀 일명 ‘요제프 황제의 건강식’ 타펠슈피츠(Tafelspitz), 새끼돼지 통구이요리인 슈판페르켈(Spanferkel) 등이 대표적이다.

와인 밭.
와인 밭.

와인과 음식에는 음악이 필수다. 바이올린과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악사들이 손님 테이블을 돌며 즉흥 연주로 흥을 돋운다. 와인 바에 연주자가 꼭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그 맛은 어떨까. 솔직히 말하면 후숙 되지 않은 와인은 맛이 없다. 그래서 스파클링을 즐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로마 시대부터 있었던 그린칭
그린칭 마을 구경도 해야 한다. 그린칭은 빈과 마찬가지로 1529년과 1683년에 터키군에게 큰 피해를 입었고, 1604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1809년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그린칭은 재건되어 주변 지역보다 더 나은 지역으로 발전했다. 마을 전체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1892년 빈 시에 포함되었다.

그린칭에는 로마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다고 전해진다. 마을을 걷다보면 성벽 등 남은 유적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또 마을에서는 수많은 비더마이어(Biedermeier, 문학, 음악, 시각 예술 및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에서 번성한 예술적 시대의 주택을 볼 수 있다. 가장 오래된 건축물은 1114년에 건축된 트루멜호프(Trummelhof)다. 오스트리아의 바벤베르크(Babenberg) 공작 가문(합스부르크 전 왕조)이 들어와 지은 건축물이다. 주로 농장으로 사용되었으며 나중에는 기사의 성, 수도원 부지가 되었다. 현재는 폐쇄되었다. 그것 말고도 유명한 건축가인 요제프 호프만(Josef Hoffman, 1870~1956)이 설계한 주택(Villa Moser-Moll, Villa Spitzer, Villa Ast 등)이 남아 있다. 그린칭 교회는 1426년에 착공해 1783년에 본당 교회의 지위를 얻었다.

예술인들이 사랑한 마을
그린칭은 현재 와인마을로 소문났지만 천혜의 자연을 간직한 치유 마을이었다. 로마인들도 자연의 치유력에 대해 언급했다. 18세기에는 헬스 스파로 유명했다. 많은 저명인사들을 매료 시켰다. 음악가, 작가, 과학자, 화가 등이 이곳에 머물렀다. 베토벤, 슈베르트, 슈트라우스, 고골, 말러,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화가, 피팔(Pippal) 등 많은 예술가들이 그린칭을 방문했거나 이곳에 살면서 걸작을 만들었다.

그린칭 트레일러.
그린칭 트레일러.

특히 베토벤은 1808년 하일리겐슈타트(Heiligenstadt)에 집을 얻어 머물면서 목가 교향곡을 작곡했다. 베토벤이 이곳에 집을 마련한 것은 청력을 잃고 스트레스로 인해 위암까지 얻은 상황. 베토벤은 하일겐슈타트라는 마을이 당시 온천으로도 유명한 곳으로 치유를 목적으로 이 집을 얻었다. 그는 이곳에서 유언의 편지를 남겼는데 죽고 난 1827년에야 발견되었다. 그래서 이 집을 하일리겐슈타트 유언장의 생가(Haus des Heiligenstädter Testaments)로 불린다. 베토벤이 이곳에 살게 된 이면에는 안나 마리 폰 에르되디(Anna Marie von Erdődy, 1779~1837) 백작부인도 있다. 에르되디 부부는 그린칭에서 멀지 않은 예들레제(Jedlesee) 영지에서 살았다. 베토벤은 예들레제 저택에 종종 초대받아 머물렀고 결국은 가까운 그린칭에 집까지 얻게 된 것이다. 현재 베토벤이 살았던 베토벤 하우스는 박물관이 되었고 예들레제로 이어지는 길을 ‘베토벤 트레일러’로 만들었다.

칼렌베르크 산과 성 요셉 교회
그린칭 포도밭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칼렌베르크 산(Kahlenberg, 484m) 아래의 레오폴드베르크(Leopoldsberg) 언덕에 있는 건물들이 눈에 띈다. 요제프스도르프(Josefsdorf) 마을이다. 포도밭 사이로 난 산책로는 따라 하이킹이나 트레킹을 하거나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산책로.
산책로.
민가.
민가.

그곳에는 성 요셉 교회, 전망대, 카페 등이 있다. 바로크 양식의 성 요셉 교회는 원래는 1639년에 완공된 로마 가톨릭 교회였다. 그러나 1683년 오스만 투르크 두 번째 진격에 의해 심하게 파괴되었다. 이때 오스트리아는 폴란드 왕, 얀 3세 소비에스키(Jan Sobieski)와 합병해 오스만 투르크를 물리쳤다. 그는 이곳에서 첫 미사를 올렸다고 한다. 프란츠 요세프 2세는 오스만 제국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성요셉 교회의 남쪽에 ‘소비에스키 기념 예배당’을 완공했다. 여러 번 신축과 재건을 통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교회는 여전히 폴란드 사제들이 관리한다.

또 이 곳은 1920년 알버트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학자들이 국제통합과학 백과사전을 만드는 첫 계획을 세웠던 곳이다. 1983년 9월 13일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했다. 근처 전망대에서는 멋진 발아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상큼한 숲속바람과 함께 아름다운 도나우 강과 빈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트램 서는 곳.
트램 서는 곳.

 

Travel Data
가는 방법:
빈 대학교 앞 쇼텐토아-우니베르지테트(Schottentor-Universitaet)역에서 전차 38번을 타거나 지하철 4호선 종착역 하일리겐슈타트에서 38번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성 요셉 교회가 있는 칼렌베르크를 가려면 38A 버스를 타면 그린칭을 거쳐 간다. 그린칭에서 버스로 약 15분이 소요된다.
호이리게 열차: 빈 관광청에서는 4월부터 10월까지 호이리게가 있는 곳들을 찾아가는 호이리게 열차를 운행한다. 호이리게 열차는 트램 D라인의 종점인 뉘스도르프 역에서 출발한다. 뉘스도르프에서 호이리게 마을까지 약 30분 정도 소요. 매일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
트룸멜호프(Trummelhof) 주소: Cobenzlgasse 30, 빈/전화: +43 1 3289061
레인프레챠(Weingut Reinprecht) 주소: Cobenzlgasse 22/전화: +43 1 32014710
베토벤 박물관(Wien Museum Beethoven Museum) 주소: Probusgasse 6/전화: +43 (0)664 889 50 801/https://www.wienmuseum.at/de/standorte/beethoven-museum
성 요셉 교회(St. Joseph on Kahlenberg) 주소: Josefsdorf 38/전화: +43 1 318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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