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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찬일의 배우 이야기 12] 경이롭고 압도적인 김혜수

#소년심판 #심은석

  • 기자명 전찬일
  • 입력 2022.04.15 08:00
  • 수정 2022.06.1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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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를 하나 내보자. 한국영화자료원이 발간하는 월간 <영화천국> 2010년 3월 vol.12에 실렸던 것이다. “현재 그녀는 카리스마 있는 연기력과 청순하면서도 육감적인 이미지를 가진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다. 그런 그녀가 1986년, 데뷔 초에 출연했던 <수렁에서 건진 내 딸 2>에서는 마냥 지켜주고 싶은 앳된 소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녀의 성장과 변신을 20년 넘게 지켜본 영화 팬들이라면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모습이다. 2000년대 이후에 찍은 대표작으로는 <모던보이>, <타짜>, <YMCA야구단>, <신라의 달밤>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연기파 배우와의 연애 사실을 공개해 ‘그녀답다’는 평을 들으며 뭇 남성의 마음을 흔들기도 한 이 배우는 누구일까?” 난이도가 낮긴 하다. 정답은 김혜수다.

이 나라 연기계에 그토록 “카리스마 있는 연기력과 청순하면서도 육감적인 이미지를” 두루 겸비한 스타-배우가 과연 있을까? 판단컨대 없다. 그 점에서 그녀는 이 땅의 남녀 연기자를 통틀어, ‘최정상’에 자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영화인 사전>(소도, 2001)을 빌려, 조금 더 소개해보자. 1970년 9월 부산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김혜수는, 중학교 2학년 때 CF 모델로 출발해 박중훈의 데뷔작이기도 한 <깜보>(1986, 이황림 감독)로 연기세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TV 드라마 <사모곡>(1987), <순심이>(1988)에서 성인 역을 능숙하게 감당해내며, 한 살 선배 하희라와 더불어 하이틴 스타로 단연 큰 주목을 끌었다.

그 존재감은 지속적으로 빛을 발했다. <오세암>(1990, 박철수)의 수녀, <첫사랑>(1993, 이명세)의 순수 여대생, <닥터 봉>(1995, 이광훈)의 개성적 노처녀, <찜>(1998, 한지승)의 연상의 애인 등, 1990년대 선보인 일련의 영화 속 그 모습들은 더 이상 다양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표출됐다. 다양성은 연기 스펙트럼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할진대, 그 지점에서도 그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배우로서 이미 최고 수준을 입증해온 그녀가 목하 전작(前作)들을 능가하는, 일생일대의 연기로 또다시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소년범을 혐오하는 한 판사가 지방법원 소년부에 부임하면서 겪게 되는 소년범죄들과, 소년범들 및 법조계 사람들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다채로운 사건·사연을 극화한 넷플릭스 10부작 웹드라마 

<소년심판>을 통해서다. 10시간쯤은 족히 써야 할 터라, 애당초는 이 화제의 OTT 드라마를 시청할 마음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 긴 시간을 할애한 까닭은, 거의 전적으로 김혜수를 향한 어떤 팬심 때문이었다. 

고백하건대 1990년인가 한 주간신문 취재기자로 2시간에 걸친 심층 인터뷰를 한 이래 줄곧 그녀는, 내가 가장 좋아하고 인정해온 멋진(Cool) 연기자다. 김혜수는 그저 그렇고 그런 대다수 범작들에서도, 그녀만의 존재감을 잃은 적이 없다. 늘 평균 이상의 연기를 펼쳐왔다. 그동안 연기 최고작이라고 여겨온 김인식 감독의 <얼굴 없는 미녀>(2004)를 비롯해 최동훈의 <타짜>(2006), 한준희의 <차이나타운>(2015), 이안규의 <미옥>(2017) 같은 영화들에서는 도저히 잊기 힘든 강렬한 울림을 안겨주는 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최고’였던 적이 거의 없었다. <얼굴 없는 미녀>나 <타짜> 정도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랬던 그녀가 <소년심판>에서 문제(?)의 판사 심은석 역으로, 감탄을 넘어 경이로운 경지의 압도적 연기를 펼친다. 연기의 기본인 완급 조절은 말할 것 없고 강약, 임팩트, 입체성, 복합성 등 모든 층위에서 최상의 수준을 뽐낸다. 10부작 내내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그 힘과 넓이·깊이는 가히 ‘역대급’이다.

한국영화 (제작) 100주년이었던 2019년, 월간 문화전문지 <쿨투라> ‘여자배우 10선’에서 나는 황정순을 필두로 최은희, 김지미, 윤정희, 문희, 장미희, 강수연, 전도연, 전지현, 손예진을 최종 선정했었다. 끝내 한국 영화사의 여걸 중 여걸인 김혜수를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출연작들의 면면이 상대적으로 빈약해서였다. 거의 모든 층위에서 최상의 수준을 구축한 <소년심판>을 계기로, 그 목록을 바꿔야 할 성싶다. 그 교체 대상이 누구일지는 다음 기회에 밝히련다. 김혜수가 염정아, 조인성, 박정민 등과 케미를 뽐낼 류승완 감독의 <밀수>와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은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니지 않을까.    

PROFILE
전찬일은…

영화 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고문과 중앙대학교 글로벌 예술학부 겸임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비평 활동 외에도 글로컬컬처플래너&커넥터 및 퍼블릭 오지라퍼를 표방하며 다양한 문화 기획, 연결을 추진해오고 있다. 그 일환으로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조직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팟캐스트 매불쇼 '씨네마지옥' 코너에 3년째 고정 출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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