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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악의 마음을 읽는 자’ 실제 주인공,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 기자명 이근하 기자
  • 입력 2022.03.25 07:53
  • 수정 2022.03.26 10:50
  • 댓글 0
  • 사진(제공) : 권일용, 뉴시스, SBS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박사를 모티브로 한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 종영했다. 세상을 뒤흔들었던 범죄사건, 그것을 풀어나가는 이들을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고통’에 관해 외쳤다. 권일용 박사가 악의 마음을 읽어온 이유도 마찬가지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 방영되는 내내 온라인 실시간 대화방은 경악과 공포, 슬픔과 분노의 소리로 가득 찼다. 동기 없는 살인의 극악무도함에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한편에서는 그런 ‘악’을 마주해야 하는 존재, 프로파일러에 대해 탄복했다. 범죄자의 심연에 들어가는 과정과 거기서 비롯된 감정들, 어둠에 잠식되지 않기 위한 움직임이 입체적으로 묘사됐기 때문이다. 배우 김남길이 극 중 연기한 ‘송하영’은 권일용 박사를 모델로 했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도 권일용·고나무 작가가 공동 집필한 동명의 ‘국내 최초 프로파일러의 연쇄살인 추적기’를 원작으로 했다.

권일용 박사는 1989년 형사기동대 순경 공채로 경찰에 입문한 이후 형사, 현장감식요원을 거쳐 2000년부터 프로파일러로 지냈다. 김남길은 종영 기념 인터뷰에서 “권일용 교수님과 프로파일러 후배 분들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후배들에게 ‘오직 피해자와 그 가족만 생각하라’고 하시더라”고 언급했다. 권일용은 드라마 종영 직후 개인 SNS를 통해 “드라마의 의미는 결국 피해자들의 고통을 공감하는 것이다. 더 이상의 서사는 없다”고 밝혔다. 극에 다 드러내지 못한 ‘악의 마음을 읽는 자’의 이면을 권일용 박사가 답했다. 사진 촬영은 끝내 정중히 거절했다. 자신을 위협하는 익명의 연락들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마지막 방송을 보면서 퇴직할 때의 심정이었다”라고 쓴 글을 봤다. 드라마를 시청하는 동안 어떤 마음이었을지 궁금하다. 실제 피해자들이 괴로워하는 장면들이 내게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다. (사건) 당시 감정이 그대로 재현돼서 굉장히 힘들게 시청했다.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을 2016년부터 쓰기 시작해 2018년에 출간했다. ‘내가 사건을 이렇게 잘 잡았어’라는 영웅담 식의 내용은 쓰고 싶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하면 가해자, 범죄자에 대한 비난과 처벌 이야기만 가득하지 않나. 이 범죄가 어떻게 일어났고, 피해자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 흔히 자신에게는 닥치지 않을 일이라고 여기지만, 범죄는 우리 주변에 가까이 와 있다.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할수록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고민이 부각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사명감이나 국가관이 투철한 사람은 아니다. 피해자들의 감정을 이해하기 때문에 현장에 있었던 거다. 

정남규(2004~2006년 서울 경기 지역에서 14명을 연쇄살인 했다)가 검거될 때 입은 빨간 운동복이나 파란 마스크 등 드라마에 사실 그대로 표현된 요소들이 많았다. 피해자와 그 유족들이 또다시 고통을 느끼진 않을지 염려스러웠다. 어떻게 생각하나? 나도 많이 고민하고 걱정했던 부분이다. 처음에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거절했었다. 드라마가 어떤 형태로 만들어질지 몰랐기 때문에, 사건을 다시 들춰내는 것이 피해자들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도 보여졌듯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잡혔을 때 우리 사회에 굉장히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시그널이 있었지만 경찰과 국가가 간과했다. 그래서 유영철이 등장했을 때 수사에 어려움이 있었다. 오늘날 N번방, 가스라이팅, 그루밍 등 연쇄살인 못지않게 잔혹하고 파렴치한 범죄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 단계에서 우리가 이전처럼 (시그널을) 간과하고 남의 일처럼 내버려두고 있진 않은가.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프로파일링을 설명할 때 ‘그화(化) 된다’는 표현을 쓰던데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나는 범죄를 한 번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범죄자를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이해’는 그 사람이 가진 서사를 이해하는 게 아니다. 그가 왜 그렇게 행동을 했고, 왜 그 도구를 준비했으며, 왜 그런 방식으로 시체를 훼손했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이해’다. 내가 그 사람처럼 생각해야 이 행위가 왜 발생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화’를 거치는 과정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도 있을 것 같다. ‘그화’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무엇이었나? 영향을 받았다. 어떤 사건에 집중하면 무엇이든 굉장히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나는 자아, 자아에 따른 목표가 뚜렷하기 때문에 길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자아와 목표가 뚜렷한 사람은 상황을 지배할 수 있다. 또 후배들과 현장에 투입돼 브리핑을 마치면 곧바로 헤어지지 않았다. 항상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는 시간을 한두 시간 정도 가졌다. 일부러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사소한 수다를 나눴다. ‘많이 힘들었지. 너 홀로 현장에 있었던 게 아니야’라는 식으로 서로 마음을 지지하는 시간을 만들었고, 그것이 견딜 수 있는 힘이 돼줬다.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한 장면.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한 장면.

프로파일링이 틀린 적도 있었나? 당연히 많이 있었다. 수사 초기에는 막연히 범죄 현장에 나타난 행동만 두고 가해자의 성격, 성향을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사실과 달랐다. 함부로 행동을 분석하고 내 머릿속 생각들로 범죄자를 이해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닫고, 실제 범죄자들을 면담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수많은 케이스를 분석해보니 사람은 본질적으로 선한가, 악한가? 인간의 극악성은 어디까지인가? 본래 선한지 악한지는 답을 못 찾았다. 반반이라고 생각한다. 극악성의 끝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알려진 잔혹함 이외에도 영혼을 파괴하는 자들을 너무 많이 봐와서, 심연이 어디까지인지 잘 모르겠다. 

심리에 답이 있나? 없다. 

그렇다면 프로파일러가 무엇을 어떻게 분석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까? 흔히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프로파일링을 피상적으로 바라본 거다. 프로파일러는 CSI(과학수사계) 요원들과 같이 현장에 출동한다. 범죄현장에 나타난 모든 증거물을 분석하고 어떤 도구가 쓰였는지, 발자국은 어디로 이동했는지 등등 과학적으로 팩트를 기반으로 한다. 막연한 짐작이나 심리학 이론을 적용시켜서 프로파일링을 하지 않는다. 심리학적으로 범죄자의 행동과 마음을 분석하는 일은 가장 마지막에 면담할 때 하는 일이다.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악의 마음을 여는 데 성공했다. 그 순간 표정이나 행동을 어떻게 취했나? 대하는 사람마다 달랐기 때문에 일반화시켜서 답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범죄자들이 내가 이렇게 인터뷰한 내용을 보고 현직 프로파일러들을 곤란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첫마디를 어떻게 건넸느냐 등은 수사기법이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는 게 좋다. 

일하는 동안 고수한 신념이 있다면? ‘범인 앞에서는 큰소리치고, 피해자에겐 부끄러워해야 한다.’ 경찰들이 범죄를 막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한없이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범죄자들 앞에서 단호해야 했다. 억울하게 생을 마쳐야 했던 피해자들과의 약속은 나를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않게 한 배수진이었다. 

고독했다. 시체가 토막이 났는데 그 모양이 어떻고, 범죄 수법이 어떻고. 밥상에서 나눌 수 있는 소재의 직업은 아니었다. 사무실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가족 얼굴 대신 현장 사진이 깔려 있었다. 가족의 안위를 지키는 일도 막중했다. 연쇄살인범 정남규의 집을 압수수색하며 뒤적인 서랍 안에 권일용 박사의 인터뷰 기사 스크랩이 놓여 있었다. 기사 한가운데 그의 얼굴 사진이 실려 있었다. 범인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후로 권 박사는 자신과 가족의 인적 사항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이번 인터뷰 역시 ‘프로파일러 권일용’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프로파일러의 삶에 대해 “가족에게도 속을 털어놓지 못하는 직업”이라고, “참으로 고독한 일”이라고 말한 적 있다. 반대로 가족들도 권일용 박사를 아빠로, 남편으로 둬서 외로운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맞는 말이다. 아이들, 가족들이 되게 외로운 시절을 보냈다. 그 ‘고독한’이라는 표현은 물리적인 관계도 의미하지만, 뭔가 놓쳐서 사건을 잘못 분석했을 때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무게감은 나눌 수 없는 것이라서 고독하다는 거였다.  

범죄 관련 프로그램에 이어 <안싸우면 다행이야>, <동상이몽>에도 출연했다. 방송 출연의 기준이 있나? <알쓸범잡>, <용감한 형사들>은 범죄 이야기니까 출연했다. <안싸우면 다행이야>는 표창원 교수랑 같이 하는 거였고, <동상이몽> 같은 경우는 나도 아내하고 다투고 혼나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혼자 짊어지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사람인데 악에 맞서 싸웠을 뿐이라고. 나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모습도 알려졌으면 싶었다. 

“이제 다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잘 걸어가겠다”고 적은 다짐을 봤다. 구체적인 계획은? 그동안 죽음의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노력을 하려 한다. 예를 들어 ‘지리적 프로파일링’을 응용해 치매 어르신, 아동이 실종됐을 때 빨리 찾아낼 수 있는 시스템이다. 프로파일링을 범죄가 아닌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는 연구를 준비 중이다. 

혹 정치 입문 제안이 들어온다면? 나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다. 고민도 하지 않을 거다. 

다시 태어나도 프로파일러가 되겠는가? 일단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웃음) 그래도 다시 태어난다면 이 길을 후회하지 않고 걸을 거다. 

권일용에게 ‘악의 마음을 읽는다’는 건? 피해자들의 고통을 공감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악의 마음을 읽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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