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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그리는 풍경 작가 권인경

  • 기자명 배기열 아트식스 예술감독(트라바움창의아트센터 관장)
  • 입력 2017.12.1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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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자연의 풍광을 끼고 살던 인간은 그리움이나 목마름의 깊이를 가늠키 어렵습니다. 그러나 곧 깨닫게 됩니다. 적어도 어린 시절을 보낸 각기 다른 도시들은 비슷한 풍경이 더러 있지 않을까 하는 위안 때문입니다. 우리는 금세 자신에게 되물어봅니다. 그리고 풍경이 서서히 잊힐 때쯤, 또 풍경보다 사람의 속내가 더 궁금해집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무엇을 이젠 더 이상 곁에 두고 있지 못하는 성급함이 생깁니다. 그건 아마 심연 속에 도시적 감성이 하나의 풍경으로 가득 들어차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권인경 작가를 만나 ‘가슴으로 그린 풍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도시 풍경을 그리게 된 동기나 이유가 있습니까? 서울 강남 대치동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당시는 주변이 허허벌판이었습니다. 늘 동생이 아파서 저는 부모의 관심 밖이었지요. 친구와 도시를 헤집고 돌아다니며 놀았습니다. 집 밖 도시는 제겐 놀이터요 정이 깊은 풍경입니다. 


풍경 속 삽화처럼 지형지물(특히 의자·화분) 등이 자주 등장합니다. 의자는 누군가의 상징입니다. 변화하는 도시의 상징물일 수 있고, 타인의 취향 혹은 제 삶의 안정을 반영한 오브제입니다. 의자를 보면 끌립니다. 화분은 삶과 죽음의 대상이고 방치된 제 자신일 수 있습니다.


진경산수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림으로 그리는 풍경도 진경이라 생각하십니까? 처음엔 실경을 그렸습니다. 그러다 감정을 담아 그리게 되었고, 그 이후 전혀 다른 시선으로 풍경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를 보면 산이 펼쳐져 있는데 원근법이 무시되어 있지만 바로 태극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진경은 각자의 시선을 진실로 담는 것입니다.  


‘낯선 풍경→하트랜드→상상된 기억→유토피아→변화하는 전체의 조망’ 평론가들이 이렇게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확장되어가는 건지요? 제 그림 속 풍경은 어머니 자궁처럼 유희와 놀이의 공간입니다. 몇 해 전 프랑스 시테 지역에 레지던시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도시는 섬이지만 도시 구조의 전형입니다. 숨은 공간처럼 느껴졌습니다. 거기서 영감을 받아서 ‘하트랜드’라는 화두를 만들었어요. 만약 공간이 없다면 불안해하며 떠있게 될 텐데 저는 제 그림 속 그곳을 은밀한 장소로 풀고 싶습니다.


콜라주와 몽타주를 산수풍경에 도입하고 있습니다. 전사기법이나 복사를 해도 될 것을 왜 번거롭게 오려서 붙이는 행위를 하나요? 초기엔 낯선 풍경을 그렸습니다. 콜라주는 붙이거나 오려서 내용과 구도를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재편집하거나 공간을 조합하는 방식이 제가 하는 작업과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사, 복사는 의미전달에 부적합한 기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생의 트라우마를 빗대어 작품을 설명하는데 설득력이 있거나 작업을 끌고 가는 원천 혹은 동기가 되는지요? 맞습니다. 사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입니다만 ‘프리다 칼로의 삶’처럼 자신의 삶에서 시작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겪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주관적인 일도 보편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내밀성 안에서 보편성을 찾는 것입니다. 이미경 작가(사라져가는 구멍가게를 그리는 분)처럼 누구나 쉬고 싶은 공간, 누구나 채집 가능한 공간도 존재해야 한다고 봅니다.

 

개인의 방 2, 129×161㎝, 한지에 고서 콜라주 수묵채색, 2012


작품이 전체적으로 무겁고 심각해서 일반인이 받아들이기에 쉽지 않아 보입니다. 힘을 빼거나 재미있는 요소, 팝적인 장치를 할 생각은 없는지요? 자세히 보면 재미 요소가 있습니다. 애정을 가지고 보셔야 보입니다.(웃음) 숨은그림찾기하듯 보세요. 팝아트처럼 가볍게 보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퍼즐처럼 만들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 시퀀스가 모여 영화를 만들 듯 파노라마처럼 스펙터클하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도시 풍경에 익숙하고 도시라는 소재를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인데 도시 풍경도 좋지만 자연풍경을 더 담을 계획은 없는지요? 예전엔 산과 꽃이 지루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산수풍경이 등장하곤 합니다. 자연이 필요하면 스스로 들어올 것입니다.  


소재나 구도상 화폭이 크면 좋겠습니다. 300호 이상 대작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작업실이 작아서 작품을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 후원 프로그램(k-medici)이 있다면 어떻게 도와주길 바랍니까? 요즘 큰 작업이 잘 팔리고 있습니다. 천장이 높은 작업실이 있으며 좋겠습니다. 공간 확보를 위해 도와주십시오. 미디어를 활용한 홍보도 필요합니다.


권 작가는 주목할 만한 작가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혹시 영향을 준 사람이 있는지요? 데이비드 호크니와 애드워드 호퍼입니다. 그들의 작업 방식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권 작가의 작품은 일반인을 환기시키거나 감동 혹은 소구하기보다는 구조적인 구성의 완성도에서 놀라게 합니다. 호불호가 극명할 것입니다. 여백을 통한 공기원근법을 사용하거나 힘을 빼주는 기교가 필요합니다. 색감도 더 난색 계열을 사용하는 게 어떻습니까? 아직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화면이 빽빽하다보니 여유 있게 시선을 둘 곳이 없다는 평입니다. 차츰 공간을 분리하고 密(빽빽할 밀)과 疏(소통할 소)를 경영위치(제재의 취사선택과 화면의 구도와 위치설정을 잘하는 것) 할 계획입니다.

 

시작과 끝, 현재와 미래, 실재와 환영이 한 화면에 혼재되어 카오스적입니다. 물리학 용어로 로렌츠 어트랙터(나비가 꽃을 찾아 날아가지만 그 궤적은 일정한 질서가 있다)가 깔려있는지요? 흔히 집 안 청소를 하다가 서랍장 속에 물건을 두서없이 넣어두었는데 무심코 문을 열자 마구 쏟아지는 당혹스러운 느낌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떤 질서나 잘 꾸며진 것보다 ‘날것으로서의 그것’을 만들고 싶습니다.   

 

1 타인의 방 1, 188×125㎝, 한지에 고서 콜라주, 수묵채색, 아크릴, 2016
2 도시-공존(134, 166)
3 상상된 기억들 1, 125×187㎝, 한지에 수묵 콜라주, 아크릴, 2015


종교나 철학, 예술을 사람들이 흔히 멀리서 찾으려 하는데 결국 자기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 안에 타야 내 안에 타자를 찾을 수 있다’는 농담도 있습니다. 권 작가의 풍경은 밖이고 그 풍경을 바라보는 작가는 안에 있고 또다시 그 안은 밖의 일부가 되는 반복된 뫼비우스 풍경 혹은 프렉탈 풍경입니다. 시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방식이 맞습니까? 서양에서는 유토피아, 헤테로피아 개념과 비슷합니다. 동양에서는 소은(小隱)과 대은(大隱)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즉물적으로 부대끼면서 경험하고 또 초월하고 싶습니다.


동양화는 ‘스밈과 번짐’을 통해 시간성이 그 속에 고스란히 남는데 그것이 동양화의 매력입니다. 하지만 그 위에 아크릴이나 다른 질료를 얹어서 시간을 정지시키거나 시간성을 은폐시키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밀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유화와 달리 적층색이 드러나지 않아 발색이 탁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얹힌 채 고립된 감정을 주기 쉽습니다. 동서양 기법을 동시에 쓰고 있습니다. 특히 동양화의 붓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붓이 눕는 방향, 각도에 따라 자유롭게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반드시 붓을 꼿꼿하게 세우는 중봉을 지향했는데 차츰 필에 신이 붙어서 어디로 갈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게 됩니다. 아마 이것을 능격, 묘격, 신격이라 하지 않을까요. 관객이 느끼는 감정까지 제가 컨트롤하기에는 저도 제 감정을 컨트롤을 못해서.(웃음) 


남편이 미디어 작가인데 두 분이 협업하면 멋진 작품이 나올 듯싶습니다. 앞으로 같이 하실 생각은 없는지요? 사랑하지만 자주 싸웁니다. 서로 개성이 강해서 그런가봅니다. 당장은 각자의 세계에 충실할 계획입니다.


작업의 영감을 위해 독서를 하거나 여행하거나 영화를 봅니다. 권 작가는 어떻게 얻으시는지요? 여행을 아주 많이 합니다. 책도 전공 서적보다 다른 분야를 섭렵합니다. 예를 들면 현대사상과 물리학과 같은 책입니다. 엉뚱한 생각이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보편적인 시선으로 보다가는 매몰되기에 새로운 분야에 천착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작업 방향과 전시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색감을 아주 강렬하게 쓰고 싶습니다. 전달의 의미를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싶기도 합니다. 모노톤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전시 계획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2018년 1월 ‘스페인 도로시 살롱’전, 2월 ‘홍콩개인전’, 3월 ‘홍콩바젤’, 4월 ‘중국국제아트페어’, 6월 ‘스위스바젤’, 10월 ‘프리즈 아트페어’ 등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권인경 작가는…
2002년 홍익대 동양화과 졸업, 2004년 동 대학원 동양화과 석사, 2012년 박사
2016 제3회 포스코미술관 신진작가 공모전 ‘The great artist’(포스코미술관)
2015 제4회 바람난 미술 공모전 당선(서울문화재단)
2014 제4회 가송예술상(공아트스페이스)
2011 63스카이아트미술관 New Artist Project 신진작가 선정
2003 제14회 미술세계 대상전 특선(안산 단원전시관)

사진(제공) :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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