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나이에 암에 걸리면 어떨까. 온갖 안타까운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스물여덟에 유방암 진단을 받은 조연우 작가는 짧은 생을 되돌아보며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가보지 못했던 곳을 누비고 다녔다. 가슴에는 수술 흉터가, 가방에는 약이 들어 있는 채로.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밝았다. “인터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목소리가 어찌나 기운이 넘치는지 짧은 통화만으로 웃음이 났다. 유방암 환자의 목소리라기엔 너무 씩씩해서 전화를 잘못 걸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와 만난 날은 수도권에 엄청나게 많은 비가 내려 서울시내 교통이 마비된 상태였다. 이런 날씨에 먼 길을 오기 힘들었을 텐데 조연우 작가의 얼굴은 목소리만큼이나 밝았다. 그런데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한 채로 나타났다. 얼마 전 경주로 여행을 갔다가 카페 계단에서 발목을 접질렸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하늘길이 막히고 오랜만에 떠난 여행에서 작은 해프닝을 겪은 것이다.
 
조연우 작가는 유방암 환자이자 여행가이다. 그가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것은 2016년 그가 유방암 선고를 받은 후부터다. 그때부터 대만, 스페인, 일본, 영국, 모로코, 홍콩, 베트남,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괌 등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암에 걸리기 전에는 대학생 때 일본에 다녀온 것 말고는 해외여행을 별로 하지 못했다. 졸업하고 난 뒤 집과 직장만 오가는 평범한 20대의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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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사하라 사막를 함께 건넌 낙타와 함께.

스물여덟 유방암 환자,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다
 
그러다 스물여덟에 암환자가 됐다. 어느 날 가슴에서 지우개 조각처럼 딱딱한 무언가가 만져졌다. 이상하다 싶어 병원에 갔더니 유방암 2기였다. 암 진단을 받은 뒤는 유방암 환자들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수술로 종양을 제거하고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가 이어졌다.

유방암 표준 치료를 끝내고 호르몬 치료가 시작되자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호르몬 치료가 시작되자 점점 살이 찌고 몸이 무거워졌다. 원래는 마른 체형이었는데 점차 살이 찌기 시작하니 살이 쪄서 병에 걸린 게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다. 갱년기 증상도 나타났다. 갑자기 열이 올랐다가 춥기도 하고 생리도 멎었다. 피부에도 부작용이 생기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을 동시에 겪으니 갑자기 늙어버린 기분이었다.

유방암 환자의 일상은 20대인 조연우 작가가 보내기엔 너무 단조로웠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건강한 음식과 영양제를 챙겨 먹고 운동도 하는, 20대 답지 않은 삶이 이어졌다. 무기력증에 점차 빠져들고 있을 때 여행을 가보기로 했다. 유방암 환자인 그가 여행을 다니면서 겪었던 일과 느낌은 <낙타의 관절은 두 번 꺾인다>는 제목의 책으로 세상에 소개됐다. 요즘 시류에 맞지 않은 다소 철학적인 제목이다.

“제목이 특이하죠? 요즘은 책 제목이 직관적인 게 유행이잖아요. 저도 직장인일 때 소확행에 만족하면서 살던 사람이었는데 아프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렇게 살다가 건강을 놓치니까 근본적인 행복에 다가가고 싶어졌거든요. 더 나은 제목이 나올까 싶어서 1년을 고민했는데 처음 지은 제목만 한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이 제목으로 가기로 한 거예요.”

낙타의 관절이 두 번 꺾이는 모습은 조연우 작가가 모로코 사하라 사막에서 직접 본 것이다. 낙타는 다리의 관절 구조가 사람과 달라서 앉았다 일어날 때 무릎을 편 다음 발목을 한 번 더 펴면서 일어난다. 아마 그가 사하라 사막을 여행하지 않았다면 이런 소소한 발견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앞으로 여행을 계속하면서 작은 것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의 제목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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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페인 바르셀로나 벙커에서.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2 베트남 호이안에서 쿠킹클래스에서 반쎄오 만들기를 하고 있다. 
3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쇠고리를 만든 후 물감을 말리고 있다.

낙타의 관절, 사하라의 별, 홍콩의 야경
 
책의 제목이 탄생한 사하라 사막은 그가 그동안 다녔던 여행지 중에도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곳이다. 모로코에 가기 전날, 아틀라스 산맥에서 야영하던 북유럽 여성 두 명이 무장단체에 참수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신변에 대한 위협이 느껴지는 데다 사하라 사막까지 가는 여정도 참 고됐다. 도시 간 이동을 하려면 버스를 타고 12시간가량 이동해야 하는데 하필 조 작가가 앉은 의자 등받이만 고장이 났다. 지정좌석제라 자리를 옮길 수도 없는 상황에 음식도 맞지 않아 힘들었다. 하지만 사하라 사막에 도착해 밤하늘을 보는 순간 ‘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사하라 사막 하늘을 가득 채운 별은 그간의 힘든 여정을 위로하고도 남을 만큼 황홀했다.

여행은 그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줬다.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쓸모없는 노른자가 너무도 맛있는 에그타르트로 재탄생하는 것에 감탄하기도 하고, 호르몬제를 맞고 갱년기 증상을 보이는 동생에게 가장 좋아하는 홍콩의 야경을 보여주려고 온 언니의 마음에 울컥하기도 했다. 조연우 작가의 여권이 여러 나라의 도장으로 촘촘히 채워지면서 원래의 밝았던 조연우의 모습으로 점차 돌아왔다.

새로운 꿈도 생겼다. 여행 콘텐츠를 소개하는 유튜버가 되고 싶어졌다. 그간 블로그에 여행기와 투병기를 소개했다. 언제든 찾아볼 수 있다는 글의 장점이 좋아 블로그를 썼는데 하루하루의 상황이 생생하게 기록되는 영상의 매력이 좋아 보였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촬영을 해보려고 좋은 카메라도 샀는데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해외여행을 못 가는 대신 요즘은 속초나 경주처럼 국내 여행을 다니고 있다. 그간 몰랐던 우리나라의 좋은 곳을 다니면서 또 다른 힐링을 맛보는 중이다. 다시 해외로 나갈 수 있을 때까지 부지런히 국내의 좋은 여행지를 찾아다닐 요량이다.

“암환자에게 치료는 일부이지 전부는 아니거든요. 암에 걸려도 충분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걸 많은 환우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저 역시 완치가 우선이겠지만 그래도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싶어요. 지금 저의 일상은 평범한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6개월마다 받아야 하는 암 검진 때면 영락없이 환자로 돌아가야 하지만요. 아마 완치가 되더라도 평생 재발과 전이의 불안을 안고 살아야겠죠. 암은 제게 새로운 세계이자 숙제 같은 거예요. 낯선 세계에서 계속 모험을 하면서 저만의 기준을 찾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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