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호는 원래 그림을 그렸다. 미대를 졸업한 화가였던 그는 우여곡절 끝에 건축가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다. 그냥 건축가도 아닌 ‘자연주의 건축가’다. 주변에서 부쩍 그렇게 불러주기도 하지만 스스로 그렇게 회자되길 희망한다. 자연 앞에서 건축물은 조연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간현봉 아래 산자락에 명물이 들어섰다. 이미 지역민과 외지 사람들에게 소문나 있는 곳 ‘UR컬처파크’. UR컬처파크는 세계 특허를 받아 등록된 복합문화공간. 이른바 ‘소리건축’의 상징처럼 떠오른 명소다. 음향기기를 하나도 쓰지 않고 야외 잔디마당에서 공연할 수 있어 전천후 공연장이라 할 수 있다. 궂은 날에는 실내 공연장으로 전환할 수 있으니 연중 300일 이상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것.

UR컬처파크는 중앙의 잔디마당을 둘러싼 환 모양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잔디마당 중심에 키가 없다시피 한 낮은 돌판 재질의 원형무대가 있고, 이 무대를 둘러싼 원형 건물 전체 벽면엔 통유리가 설치돼 있다. 무슨 원리로 만들어진 것일까. 음파의 성질을 이해하면 조금 쉬워진다. 위키백과의 설명을 빌리자면, 실내의 소리는 잘 들리지만 실외에서는 같은 소리라도 작아져서 잘 들리지 않는다. 옥내에서는 직접 귀에 도달하는 음파 외에 주위의 벽에 반사된 소리도 더해져서 들리지만, 옥외에서는 직접 귀에 들리는 음파뿐이므로 옥내보다도 소리가 작아진다. 그래서 야외행사 때는 음향기기를 사용하는 게 통례인 것. UR컬처파크의 야외무대는 음파의 반사를 최대 활용한 아이디어 공간이다. 무대 중앙의 소리는 유리 벽면에 반사되어 큰 울림으로 돌아오고 위로 퍼져나간다. 한 방향의 내벽에 음파를 반사하여 좁은 방향으로 모아서 내보내는 메가폰과 달리 360도 원형의 벽면 반사판이 서라운드 확성 기능을 하게 된다. 유리 벽면의 높이도 면밀히 연구 설계되어야 하고 무대 중심과 유리 벽면 사이의 거리도 계산되어야 한다. 음파 반사판이 특별히 유리여야 하는 이유는 뭘까. 대리석 등 다른 자재보다 음 반사율이 높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건물 안에서도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는 장점이다.

코로나로 뒤숭숭한 데다 장마까지 겹쳤지만 주말 방문객이 적지 않았다. 5월부터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아트 페스티벌이 열리기 때문이다. 도착하자마자 주인장의 권유로 무대 중앙에 서보니 예술가가 된 기분. 하지만 깜짝 놀랄 감동은 소리를 내고 난 뒤부터였다. 낮은 목소리가 울림으로 돌아오는데 마치 마이크가 옆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소리건축’의 의미가 무엇인지 단 몇 초간 체험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아이디어와 설계를 해낸 사람, ‘소리건축물’로 세계 특허를 따낸 건축가, 그리고 이곳을 ‘UR컬처파크’라 이름 지은 대표자는 이형호(56) 씨다. 취재원으로 알게 된 20년 지기지만 단절된 세월이 길었다. 하지만 UR컬처파크는 둘 사이의 공백과 어색함을 메우기에 충분한 빅 이슈가 되었다. 화가에서 건축가로 멋지게 변신한 그를 원주 현장에서 만났다.  
 
어쩌다가 이런 일을 벌이게 됐나? 고생하며 모은 돈으로 산을 매입해뒀었다. 원래 다른 사업을 목적으로 공장을 지으려 했는데, 땅 모양새가 너무 맘에 들어 복합문화공간으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감이 떠오른 순간 곧바로 ‘소리건축’ 공간으로 기획하기 시작했다.

소리건축이란 무엇인가? 난 자연주의 건축을 지향해왔다. 자연을 해치지 않고 자연에 스며드는 건축을 원한다. 자연이 주연이고 건축은 조연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대 건축은 내 건축물이 시각적으로 돋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골몰한다. 기존의 현대 건축은 모두 시각적이었다. 과잉이라 할 만큼 그랬다. 이슈를 만들어야 사업이 되는 구조라 더 그렇다. 그런 걸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만의 자연주의 건축을 시도하고 싶었다. 안도 다다오 같은 세계적인 건축가도 소리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가. 자연주의 건축의 요체는 소리다. 물, 바람, 비, 벌레 등 모든 소리가 자연주의 건축의 소재이자 테마다. 이런 느낌은 SNS에 몇 글자 써서 온전히 설명할 순 없다. 직접 와서 보고 들어야 실감하는 건축이다. 나는 그걸 하고 싶었다. 그런데 거기에 자연의 소리만 담을 게 아니라 사람의 소리, 악기의 소리가 자연에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 UR컬처파크다. 이게 나의 소리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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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건축에 대한 영감은 언제부터 생겼나? 오래전부터 스터디를 했다. 예술의전당 앞에서 건축사무소를 했었다. 교회를 설계하고 뮤지컬 무대 등 예술 공간을 설계하면서 ‘소리 공간’에 관련된 특허를 내고 싶었다. 이 땅을 만나면서 구체화됐다.

사람들이 주목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나? 복합문화공간이라고 콘셉트는 잡았지만 처음엔 걱정했다. 그래서 소리건축에 승부를 걸었다. 젊은 뮤지션들이 음향 장비 없이도 언제든 소리 낼 수 있게 꾸몄다. 젊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음악을 발표할 곳이 마땅치 않다. 지역 주민들은 예술의전당 같은 대처에 나서지 않으면 문화예술을 향유하기 힘들다. 지역 가까이 접근성이 있는 공간이라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기대 이상의 효과에 나 자신도 놀라고 있다. 무대도 소리가 너무 좋아 만족한다. 그래서인지 전문가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국내 음악 전문가, 소리 전문가는 외국에서도 찾아온다. 얼마 전엔 이탈리아 오페라 가수도 방문해서 찬사를 남기고 돌아갔다. 유럽에서도 느끼지 못한 완벽한 소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유럽에서 시작한 소리가 엉뚱하게 한국에 와서 완성됐다고 표현했다. 그날 이후 이걸 꼭 발전시켜야겠다고 다시 한 번 확신했다.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케이스인가? 집음(集音)을 해서 확성하는 아트홀은 여러 곳이 있다. 클래식이 연주되는 세계 굴지의 음악홀이 있지 않나. 하지만 야외무대에 이런 방식의 공연장을 만든 사례는 없다. 그게 인정이 돼서 특허를 받을 수 있었다. 지난해에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이탈리아 콜로세움과 아레나홀 등 여러 홀을 방문했다. 결과적으로 UR컬처파크의 소리 방식에 더 확신을 갖게 됐다. 교회나 성당, 아트홀의 소리는 울림은 있지만 웅웅거리고 깨끗하지 않다. 소리에 대한 고민을 한 건축이지만 소리를 확성해주는 구조일 뿐이다. 스탠드까지 소리가 빠져나가는 길목을 만드는 구조, 딱 거기까지였다. 현대 건축의 선구자로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의 수도원에도 가봤는데, 모든 게 시각적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소리에 대한 고민이 그리 깊지 않았다. 노출 콘크리트에 반사된 소리가 썩 좋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더 자신감을 갖게 됐다. 건축물에 공학적으로, 미학적으로 소리를 입힌 UR컬처파크는 세계 최초라고 자부한다. 그래서 세계 특허를 낸 것이다. 물론 모든 건축물은 소리와 연관돼 있다. 외국에 이어 국내에도 건축음향학과가 생겼다고 들었다. 그런 곳에서 앞으로 연구가 더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과 달리 전공학과도 없는 시절에 모든 걸 경험으로 터득했다. 교회와 성당, 뮤지컬 홀을 설계한 경험으로 소리의 원리에 관심을 가졌다. UR컬처파크를 스터디 모형 삼아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이런 소리 공간을 보급해나갈 계획이다. 디자인적 요소뿐 아니라 소리의 혁신을 담은 공간이라는 자부심이 생겼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돼 코로나19가 닥쳤다. 서울을 떠나 훌쩍 산골로 오니 외로웠고 힘들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아이덴티티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착실히 프로그램을 쌓아가고 있는데 코로나가 찾아왔다. 나쁜 영향만 줬다고 볼 순 없다. 언택트 시대가 되어 실내 공간의 유용성은 사그라들고 실외 공간이 주목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야외공연장이 전국 여러 곳에 있긴 하지만 가장 까다로운 게 야외공연장이라 제대로 운영되기 힘들다. 날씨에 영향 받고, 인건비, 설비비, 장비비 등 유지비용이 십수억이 드니 난감하지 않겠나. 그런데 여기는 실내와 실외공연이 자유로워 365일 중 300일 이상 공연을 지속할 수 있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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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부터 열리고 있는 UR컬처파크 아트 페스티벌. 클래식 연주와 무용, 연극 등 다양한 문화예술공연이 9월 초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에 이어진다.
문화 콘텐츠는 어떻게 선별하나? 주로 클래식 음악을 선택한다. 클래식은 시대가 바뀌어도 음악의 중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음악과 달리 정해진 형식과 엄숙미, 정형화된 공간을 요구한다는 점이 까다롭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나는 이 음악이 좀 더 캐주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음악이 되길 바란다. 넥타이 풀고 자연스럽게 접하는 클래식을 이곳에서 실현하고 싶다. 캐주얼 클래식을 즐길 수 있는 핫 스페이스가 되면 좋겠다. 이 공간은 문화예술 체험공간일 뿐만 아니라 힐링의 공간이다. 공연만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예술가들과 직접 만나고 대화하고 소통하는 자리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젊은 예술가들도 관객 또는 주민들과 섞여 함께 힐링하는 공간이 UR컬처파크다.

많은 문화예술 중 특별히 음악을 꼽는 이유는? 클래식 음악이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건 아니다. 콘텐츠를 기획하기 전에 방향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클래식 음악을 우선으로 선택한 이유는, 가장 솔직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고 그림을 사랑하지만, 그림보다 음악은 더 솔직하고 순수해 좋아한다. 다른 예술은 위장될 여지가 있다. 그런 내 취향이 사운드포커스 홀(컬처파크의 야외 원형무대)을 만들게 했는지 모른다. 무용도 음악이 따르니 공연을 올린다. 뮤지컬과 연극도 가능하다. 다만 포크송이나 트롯 가요 등 대중음악은 예외다. 그런 음악은 아무 데서나 쉽게 접할 수 있지 않겠나. 젊은 예술인들을 위해 문을 열겠지만 유명한 예술가가 오면 좋을 것 같다. 세계적인 스타 뮤지션이 온다면 더 바랄 것 없지 않겠나. 외딴 시골 주민들이 그런 훌륭한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다면 대만족이다.
 
그가 그림 그리는 사람이었다니, 이 대목에서 내가 이미 알던 ‘이형호’를 소개하는 게 적절할 듯하다. 지금은 자연주의 건축가지만, 예전의 그는 화가 겸 카페 사장이었다. 20년 전쯤이었을까. 여행 특집 기사를 만들기 위해 강원도 일대를 쏘다니던 중 치악산에서 그를 만났다. ‘카페 소롯길’이었다. 등산로 옆에 황토로 지은 카페와 작업실이 눈길을 끌어 저절로 발길이 닿았다. 아담한 체구의 한 이가 주인인지 잡부인지 모를 행색으로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명문 미술대학을 졸업한 화가이자 카페 사장.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상대를 놀라게 하는 재주가 읽히는 사람이었다.

이형호는 중고등 학창시절 내내 부모님의 미움을 샀다고 말한다. 공부에 취미가 없고 엉뚱한 생각만 하는 아이였다. 대학을 한 해 낙방하고 집을 나와 독서실 총무로 살았다.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를 만날 고민했지만 통 잡히질 않았다. 남들이 다 알아주는 미술 쪽 재능은 애써 무시한 채 허송세월을 보낸 20대 청년. 다행히 실기에 강해 홍익대에 무난히 합격할 수 있었다. 동양화를 그렸고 과에서 선두로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그림 그리고 사는 건 별로였다. 도피처로 군대를 택했고 고민을 또 시작했다. ‘뭘 하고 살까’라는 물음은 아마도 ‘뭘 하고 살아야 재미있을까’라는 배부른 고민이었을지도 모른다. 복학 후 생각한 진로가 교내 록밴드 동아리 가입이었던 것. 물론 가수가 되리라는 원대한 꿈을 가슴에 품었다. 아시려는지, 당대의 그 유명한 ‘블랙 테트라’. 서강대 ‘킨젝스’와 함께 대학가를 술렁이게 한 밴드에 보컬로 입단했다. 그런데 명은 길지 못했다. 너무나 잘하는 보컬 때문에 포지션 경쟁이 힘들었던 것. 쉽사리는 아니었지만 아주 빠른 시간에 가수의 길을 포기했다. 마음을 그림에다 붙들어놓자 실력이 나날이 늘었다. 1등 졸업에다 수상 경력도 화려했다. 작가로서 탄탄대로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이른 결혼이 문제였다. 생계를 위해 미술학원계에 투신한 그. 본디 의도한 바 아니었지만 학원계의 거물이 돼 돈을 긁어모으게 되었다.

“돈 번 걸로 뭐 할까 하다가 강원도에다 땅을 샀습니다.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 시골에서 그림을 그리려고 했죠. 선배에게 카페와 작업실 설계를 부탁했는데, 그게 영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몇 번을 고치게 하고 밤새 싸우기도 했는데 결론이 안 나서, 이러느니 차라리 내가 짓겠다고 박차고 일어섰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어요.”

결국 황토집 카페 ‘소롯길’과 안채 그리고 작업실은 그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입소문이 문제였다. 그가 지은 황토집이 알려지자 이곳저곳에서 집 지어달라는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 애써 그림에 맘 잡았는데, 뜻밖의 바람이 그를 흔들었다. 전공자도 아닌 사람을 인정하고 의뢰하는 이들이 고마웠다. 밤을 새워가며 고민하고 설계해 내놓은 집들이 한 채, 두 채씩 늘어갔다. 흔들리던 가슴이 아예 휘청거렸다. 혼돈이 시작된 것.

“난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는 정체성과 집짓기의 매력, 소명 같은 것이 막 충돌하는 거예요. 너무 혼란스러워서 집을 떠나 돌아다녔습니다. 지프차를 지나가던 낡은 버스랑 바꿔 침대버스를 만들어가지고 다녔죠. 몸살을 크게 앓고서 결심했죠. 그래, 건축을 하자.”
 
이후로 그가 전국에서 지은 건축물은 전원주택과 펜션, 교회와 성당, 학교와 카페 등 다종다양하다. 무산되긴 했지만 특유의 아이디어로 사찰 건축의 혁신을 가져올 기회도 있었다. 서울로 다시 돌아와 제대로 건축사무소를 차린 게 13년 전. 건축의 길로 아예 들어서고 나니 이 세계가 거의 중노동이었다. 직원을 관리하고 클라이언트와 미팅하고 기획하고 설계하느라 두 손 두 발이 모자라게 일했다. 많이 뛰니 돈이 들어오고 흥할 때도 있었지만, 겉과 달리 속으로 쇠할 때도 많았다. 직원들 월급 걱정에 몸서리칠 때도 많았고, 집까지 날리고 사무실 벽장에서 새우잠 자며 일할 때도 있었다. 직원들 출근 전에 사무실을 나갔다가 출근하는 척 다시 들어오는 쇼도 해봤다며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그의 표정은 건축을 하면서 행복했노라고 말한다.
 
“돈이야 있다가도 없을 때가 있죠. 제도권에 타협하지 않고 혼자 해내려다 보니 힘들 때가 많았죠. 뒤늦게 건축대학원에 진학했어요. 이미 건축하는 사람이어서 다들 건축 전공자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 아니잖아요. 그래서 정체성을 확실히 갖고 커뮤니티를 이해하기 위해 선택한 거죠. 도움이 많이 됐어요. 왜 건축을 하는지, 건축가가 가야 할 방향이 뭔지 배웠습니다. 나도 세계적인 건축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대학원 시절부터였어요. 현대 건축의 흐름이 다 비슷비슷하잖아요. 안도 다다오 같은 우상이 배울 만하지만, 그래서 다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패턴이 있는 듯해요.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우리나라에 한 명도 없는 건 왜일까 생각해봤어요. 나만의 색깔이 없어서 그래요. 독특한 창의성이 부족하고 패턴화돼 있어요. 그래서 서울생활을 다 접고 내려와 이 길로 가는 거예요. 동네 아저씨로 끝나더라도 따라가는 건축 말고 찾아가는 건축을 하려고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건축을 하자는 거죠.”(웃음)
 
이야기는 다시 UR컬처파크로 넘어간다. UR컬처파크는 소리건축을 상징하는 사운드포커싱 홀과 카페, 다양한 세미나실, 어린이체험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숙박비가 좀 비싼 듯하지만 5~6동의 풀빌라 리조트 ‘UR스위츠’도 이미 인기다. 사무실과 이 대표의 거처도 눈에 보이는 곳에 산을 등지고 서 있다. 다 둘러봐도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조화롭고 예쁜데, 아마도 자연이 주연인 곳에 얹힌 조연들이기 때문인 듯하다. 이 좋은 곳이 카페에 들르지 않으면 돈 쓸 일이 없다니 왠지 미안한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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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관람료가 없다. 운영이 될 수 있겠나? 지역의 작은 무대이지만 이런 복합문화공간에서 무대에 서보고 싶은 예술가들이 많다. 예술가들이 발표를 하려면 무대도 필요하고 관객도 필요하다. 모두 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일이다. UR컬처파크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개런티 없이 재능 기부를 하지만 비용 없이 특별한 무대 경험을 할 수 있다. 게다가 특별히 관객을 동원할 필요도 없다. 파크 방문객, 투숙객이 곧 관객이다. 그들을 우선 배정해 무료 공연을 하지만 때로는 유료 공연을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지자체나 예술단체 후원으로 공연을 올리는 예가 많다. 무대가 더 소문나서 스타급 연주자들이 온다면야 매표도 하지 않겠나. 그런 날도 곧 올 거라고 믿는다.(웃음) 현재 운영 수익 대부분은 세미나실 등의 대관료와 쉼터 카페 수입이다.       

참, UR은 무슨 뜻인가? U는 You, R는 Are. 그러니까 You Are~라는 뜻이다. 영어가 워낙 약해서 기본 단어밖엔 아는 게 없다. ‘아이 러브 유’ 정도가 고작이니까.(웃음) 당신이 문화의 중심입니다, 라는 뜻도 되고 당신이 문화인입니다, 또는 당신이 오셔서 느껴보세요, 라는 뜻도 된다. 문화예술을 만드는 생산자와 참여하는 소비자가 동시에 문화인이 된다는 의미다. 가장 평범한 단어지만 큰 의미를 담을 수 있어 좋았다. 젊은 청년들이 SNS에서 그렇게 표현하지 않나. 나도 아들에게서 배웠다.

소리건축물 특허자이다. 후속 건축물이 있을 텐데. 충주에 국제학교 건축설계 주문을 받았다. 그 외에 몇 곳 더 있지만 아직 공개 단계는 아니다. 지자체에서 공연장 설계 의뢰가 들어올 걸로 예상했지만 학교 설계가 들어와 조금 놀랐다. 학교라는 공간이 학생이 수업만 받고 가는 곳이 아니라 주민과 함께 문화를 공유하는 공간이 된다는 건 의미가 크다. 포럼과 아카데미, 공연 등에 사용될 것이다. 선진 외국에서도 곧 의뢰가 들어올 것으로 기대한다.

서울 생활에 미련은 없나? 전혀 갈등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미대를 졸업하고 한창 주목받을 시기에 치악산으로 내려갔던 사람이다. 패턴을 따르기보다 내 것을 만들려고 애쓰는 성격인 것 같다. 아웃사이더 기질이 강하고 도전의식도 강하다. 크게 보고 자잘한 것들은 버린다. 서울에서 설계할 때 직원 50명씩 두고 잘나가는 선배들을 보면서 부럽긴 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들은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매 순간 바쁘고 머리가 복잡했다. 그렇게 사는 것도 행복일 수도 있겠지만 난 내 삶의 질이 더 중요하다. 내게 맞는 길을 찾는 게 더 중요했다. 내게 건축설계라는 일이란 아주 단순하다. 오직 클라이언트 생각만 하기 때문이다. 그분이 열 개를 생각했다면 나는 백 개를 생각해 던져준다. 그러면 감동하고 평생 팬이 된다. 그러니 따로 마케팅을 할 필요도 없고 이미지를 포장해 홍보할 필요도 없다. ‘소롯길’에서 처음 설계하던 때 그 철학을 배웠다. 오래 걸리더라도,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성심껏 몰입해 만들어주니까 감동하더라. 그 감동이 고마워 더 잘 만들려고 애쓰고 다시 감동하고, 그런 식으로 하다 오늘에 이르게 됐다. 서울 사무실 정리하고 시골에 와 있지만 일은 더 많이 들어온다. 기억해주는 분은 계속 기억해준다. 아쉬울 게 없지 않겠나.

UR컬처파크를 처음 만나는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서울 양재에서 80km 정도다. 서울 사람도 두 시간 남짓이면 접근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숙박이 가능한 리조트이기도 하다. 주변에 가볼 곳이 많다. 특히 건축 투어에 딱이다. ‘뮤지엄 산’에서 안도 다다오를 만나고 ‘UR’에서 소리건축 공연장을 방문하면 문화예술 체험과 힐링이 다 된다. 아직 진행형이다. 무엇을 더 채울지 모르는 공간이다. 디자인 충돌을 일으키는 시각적인 건축에 식상한 시민들이 자연과 함께하며 소리건축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좋은 곳인 만큼 편하게 놀러와 누려보면 좋겠다.
 
산골에 땅거미 질 무렵 공연이 시작되고, 휠체어를 탄 발레리노와 천사 같은 발레리나 한 쌍이 황홀한 그림을 연출한다. 감흥이 가시기 전 노련한 듯 서툰 성악가 몇이 소리로 ‘소리’를 선사하는데 그 역시 감동적이다. 비 온 뒤라 습해진 유리벽이 소리를 양껏 반사하지 못했다고, 그는 흠칫 울상이건만 나는 그저 대단하다 말할 뿐이다. 자연주의 건축가가 자연에 선사한 선물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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