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립과천과학관장에 이정모 전 서울시립과학관장을 임명했다. 국립과학관 관장이 2000년부터 개방공모제로 전환된 이후 첫 민간 임명 사례다. 그동안 국립과천과학관장은 관료 출신이 임명돼왔다. 신임 이정모 관장의 임기는 3년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게 대학교수 시절이었는지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재임 때였는지 기억이 감감하다. 어쨌든 그를 포함한 꽤 여럿이 서울시내 모 출판사 좁은 테이블에서 통성명하며 인연을 맺었다. 사회과학과 경제 그리고 과학도서에 관한 그룹 기획회의였던가. 모두들 진지했고 또 유쾌했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 그보다 훨씬 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지만 거리가 별반 다르지 않다. 더부룩한 수염과 불룩한 똥배, 처음 본 사람 누구라도 무장해제 시키는 친근감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하지만 ‘털보관장님’의 존재감은 훨씬 더 커져 있었다. 대학교수를 거쳐 자연사박물관장, 서울시립과학관장직을 수행하고, 이제는 국립기관의 수장이다.

그가 가장 원하고 제일 잘 어울리는 직업은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다. 신기한 과학, 재미있는 과학 그러나 어려운 과학을 쉽게 풀어 전달하는 사람이다. 코로나19 탓에 임시휴관 중인 과천과학관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과학 이야기에 신명 난 두 시간. 인터뷰라기보다 강연에 가까웠다.
 

민간인 출신으론 첫 케이스라고 들었다. ‘공무원 생활’ 소감이 어떤가. 슬기로운가?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란 이름답게 바깥에 나가 네트워크를 더 만들어가야 하는데 행동이 자유롭진 못하다. 재임 기간 동안은 공무원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감내해야 하니 조금 답답하다. 하지만 이전보다 할 일이 많아 소명으로 생각하고 바쁘게 산다. 국립과학관은 훨씬 더 큰 조직이란 걸 실감한다. 규정을 따르면서 잘해 나아갈 방법을 곧 찾게 될 거다.

말하자면 ‘과학 중개상’이다. 과학은 왜 그렇게 중요한가. 이 세상이 좀 더 합리적이고 명랑했으면 좋겠다. 과학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가 있으면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자주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한다. 4대강 개발, 미세먼지에 대한 대응, 전자레인지나 달걀 유해 논란 같은 게 대표적인 예다. 과학적인 사고를 하고 잘 살펴보면, 4대강에 돈 쓸 이유가 하나도 없었고, 전자레인지가 두려울 이유가 없었다. 미세먼지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공기가 좋은 편이다. 우리 어릴 때 연탄 때던 때를 생각해보자. 화력발전소 한가운데서 산 거나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비하면 오히려 공기가 좋아진 건데, 공기가 더 나빠졌다고 과장한다. 갑자기 공기가 나빠졌다고 믿다 보니 정치인들이 쫄게 된다. 그래서 정책 방향을 바꾸게 되는 거다. 과민한 대응이 엉뚱한 데 돈을 쓰게 만들고 시민을 불안하게 한다. 안 그래도 될 일에 비용을 써가며 과민대응을 하면 사회 발전이 늦어지고 답보하거나 퇴보하는 경우가 생긴다. 합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살아야 안심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고 내 돈과 세금을 절약할 수 있다. 그래서 과학으로 이해하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란 무엇인가. 옛날엔 과학은 수월성 교육이었다. 똑똑한 사람이 하는 걸로 생각했는데, 이젠 아니다. 오늘날의 과학은 옛날의 글쓰기와 같다. 기본이다. 지금은 과학적인 리터러시를 가져야 더 행복해지는 시대다. 과학적 지식을 주입하는 시대가 아니고 과학과 친해지게 만드는 시대다. 일상에서 과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주는 게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이다. 물론 과학적 사고를 갖는다는 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아니다. 기본 지식은 필요하다. 그걸 바탕으로 생각을 해야 과학적 사고를 하는 거니까.

과학적 사고를 위한 기본 지식이라면 어떤 걸 말하나. 우리는 대개의 화학물질과 성분이 유해하다고 막연히 생각한다. 화학성분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나쁘다 해도 뭐가 들어 있냐가 아니라 얼마나 들어 있느냐가 진실이다. 예전에 예방주사기에 비소가 들었다고 소동이 있었다. 극히 소량이다. 독성이 생겨 문제가 될 정도가 아닌데 그냥 있다는 사실만으로 과잉 반응한 사례다. 살충제 달걀 사태도 있다. 모든 미디어가 ‘달걀에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이 들었다’고 보도했다. 그나마 딱 한 곳만 ‘피프로닐이 대량으로 들어 있으면 독성이 생긴다’고 보도했다. 말 그대로 대량일 때만 유해한 것인데 그 사실을 가려서 일러주지 못했다. 사실 쌀밥 한 숟갈에도 미량의 비소가 있다. 그러나 쌀밥 1년 먹어서 독성 생긴 사람 있단 소리 들었는가. 시민은 물론이고 미디어가 기본 지식을 모르거나 잘 전달하지 못해 과잉 소동이 일어났다.

‘대량’이란 말도 애매하다. 더 정확하게, 친절하게 알려주는 건 불가능한가. 유럽 기준에 비해 80% 더 들어 있어 문제이긴 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 기준에 따르며 큰 문제는 아니었다. 결론은 체중 60kg인 사람이 60g짜리 큰 달걀을 하루에 5.5개 이상 먹어야 유해할 수 있는 거였다. 독성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려면 하루에 246개의 달걀을 먹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독성이 생기기 전에 배 터져 죽지 않을까? 무조건 괜찮다는 게 아니라 문제가 있으니 주의하라고만 하면 됐을 일이다. 온 국민이 패닉 상태에 빠지고 달걀을 안 먹으니 학교 영양사는 달걀 없는 메뉴를 짜느라 골머리를 앓고 동네 빵집은 망하고 그러면 되겠는가. 정부나 언론은 친절하고 제대로 알려줘야 할 책임이 있다. 신경 쓰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익 보는 사람이 있어서인가. 글쎄, 알 수 없다. 누가 이익일까 생각해봤는데 정말 모르겠다. 그게 무슨 소득이 있을까? 온 국민이 다 손해다. 개인적으로는 기자들과 일선 홍보 라인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봤다.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국회 상임위에 나왔는데, 식품 유해성 관련해 의원들의 추궁이 이어졌다. 추궁이 심해지자 공무원이 ‘그냥 먹어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다음 날 총리가 ‘국민들이 불안에 빠져 있는데 그렇게 무책임하게 말해버리면 되냐’고 화를 냈다고 들었다. 공무원이 잘못했다고 본다. 자기는 기본 지식이 있으니 팩트를 알지만 시민은 모른다. 주변의 오해와 간섭이 귀찮고 짜증났겠지만 이해할 때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야 한다.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알아듣기 편하게 얘기해줘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 안심한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써서 전달하면 좋을 텐데, 보도자료나 기사나 초기엔 그렇지 못했다. 근본적으로 과학이 어려운 건 숫자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숫자랑 친하지 않다. 골치 아프고 귀찮아한다. 쳐다보기 싫어하고 귀담아듣기를 싫어한다. 쉽게 풀어서 떠먹여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교육이 필요하다. 보도자료 내는 거 봐도 저걸 보고 기사 쓰는 게 신기할 정도로 허술한 것들이 있다. 친절하지도 않다. 알아보기 쉽게 핵심을 잘 정리하지 못한다. 공무원들이 그걸 다 잘하지 못하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있는 사람을 기용해야 한다. 모든 과학적 연구는 사이즈가 커서 개인이 만들 수가 없다. 모두 다 세금으로 만드는 거니까 시민들이 알 권리가 있다. 근데 과학자들은 바쁘고 설명할 방법이 없다. 과학자와 시민을 연결하는 커뮤니케이터가 중요하다. 나는 아주 전문적인 과학자라 하긴 뭐하지만 이 일이 좋아서 한 거고 잘 맞는다.

과학 대중화를 위한 연결고리를 책이라고 말해왔다. 과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실용서를 추천한다면? 과학 정보를 충실히 주면서도 통찰도 얻을 수 있는 책으로는 최재천 교수의 <개미제국의 발견>을 권한다. 최고의 책이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도 훌륭한 책이다. <개미제국의 발견>은 개미라는 진사회성 동물을 통해서 우리 인간 사회를 통찰할 수 있게 해준다. 내게 가장 큰 충격을 준 책이었다. 그전까지 과학책은 그냥 과학책이었고, 과학과 세상은 전혀 연결되지 않았는데, 과학을 통해 우리 인간 사회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돼주었다. 또 하나, 우리나라의 과학교양서는 정재승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전까지의 과학책은 누군가 연구해놓은 결과를 섭렵하고 편집해 쓰는 거였다. 인용하고 인용하고 또 인용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과학 콘서트>는 중간 단계 없이 저널 내용을 바로 대중에게 전달하는 글이었다. 나는 그전엔 그런 방식을 상상 못했다. 대중을 위한 글을 쓸 때는 아주 다양한 단계를 거쳐서 살을 붙이고 빼고 하는 거였는데, 이 사람은 그냥 저널 몇 개를 읽고 공통점을 찾아내서 글감을 찾고 줄거리를 만들어냈다. 최고의 작가다. 엉터리가 아닌데 쉽게 쓴다.

그건 성인들 이야기이고, 아이들의 과학은 어떤가. 디지털시대의 과학교육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모든 걸 디지털화하려는 시도가 적절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디지털시대가 되니깐 과학교육도 디지털화시키려 한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아날로그화 되는 쪽을 선호한다. 디지털로 보여주는 실험은 완벽한 결과를 보여준다. 그러나 실제 실험을 하면 매번 그렇게 나오는 게 아니다. 안 되는 경험도 직접 해봐야 한다. 직접 떨어뜨려도 보고 깨뜨리기도 하면서 배워야 한다. 그러면서 재미를 느껴야 한다.

과학을 하면 창의성이 길러지나. 창의성을 많이들 강조하는데, 창의성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기본을 알아야 한다. 암기도 중요하고 숫자도 중요하다. 토막 지식들이 필요하다. 그걸 강조하면 애들에게 너무 단편적인 지식만 준다고 걱정하고, 창의 교육은 왜 안 하냐고들 하는데, 창의성이 나오려면 단편적인 지식이 쌓여야 한다. 어느 순간에 촘촘해지면 그게 연결되는 통로가 생겨 창의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까지가 피곤하니깐 막연한 창의성을 얘기한다. 애들한테 직접 해보게 하고 안 되면 개선점을 스스로 찾게 하고,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그게 창의적인 과학교육이다.

요즘 아이들에겐 어떤 점이 아쉬운가. 끈기를 배워야 한다. 아이들에게 그걸 알려줘야 한다. 구구단이 좋은 예다. 나는 구구단을 외워서 인생이 편해졌다. 그걸 외우느라고 머릿속에서 전략을 세우고 끈기를 키웠다. 국민교육헌장도 외우기 힘들었는데 외우고 나서의 성취감을 평생 못 잊는다. 무수한 실패 끝에 성공의 경험을 맛보는 기회, 기성 세대가 그걸 주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모든 걸 너무 쉽게 주입하려 해서 끈기가 사라지게 하는 건 문제다.

과학자는 똑똑하고 특별하지 않나? 누구나 과학자가 될 수 있을까? 과학자는 똑똑하지 않다. 천재가 아니다. 엉덩이가 무겁다는 특징이 있을 뿐이다. 끈기가 있다는 거다. 아이를 과학자로 키우려면 끈기를 길러주는 게 좋다. 억지로 과학자를 만들려 하지 말고 끈기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관찰해야 한다. 첨단 경험만 주려고 하는 교육, 쉽게 가는 선행교육 같은 건 도움이 별로 안 된다. 시키는 대로 자르고 붙이는 게 체험교육이 아니다. 거기엔 실패가 없다. 남들이 한 것을 따라 하고 뻔한 완성품을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체험학습 하고 뭔가 만들어서 집에 가져가면 멋진 걸 만들었다고 칭찬하지만, 사실은 그게 애들이 만든 게 아니지 않은가. 다 도와준 거다. 결과에 맞춘 체험일 뿐이다. 공공영역의 체험학습은 꽤 많은 시간을 들여도 될락말락하는 것들을 해보는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할 때마다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들을 해야 진짜 체험이다. 안 되면 왜 안 됐는지 따져볼 수 있는 체험, 그래서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체험이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그런 기회가 흔치 않다. 그게 문제다. 학교 현장만 해도 실험에 돈이 많이 드니까 결과가 확실히 나올 실험을 유도하고 그것만 하게 된다. 비용이 많이 드니까. 실험이란 자기 스스로 호기심을 느끼게 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비커에 어떤 물질을 혼합하는 실험을 한다 치자. 일정 간격을 두고 한 방울씩 천천히 넣으라고 하면 지루해한다. 귀찮으니까 100방울을 한 번에 넣게 되면 이상 반응이 나온다. 직접 겪어봐야 한 방울씩 넣는 데 이유가 있다는 걸 스스로 알게 된다. 그때부터는 시키지 않아도 여러 방식으로 찬찬히 실험에 몰입하게 된다. 그런 역할을 과학관이 해야 된다고 본다. 학교 현장이나 문화센터, 학원 등 사적 영역에서 해결하긴 힘들다.
 
 
본문이미지

그런 점에서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가 서울시립과학관이었다. 그가 취임하고서 청소년을 위한 과학관을 만들자고 목표를 세웠다. 학교 가고 학원 가기 바쁜 아이들이 과학관 올 시간이 어디 있겠냐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꾸준한 프로그램 개발로 학생들의 흥미를 끄는 데 성공했다. 교육실험에 참가한 2만 명 중 70%가 중고생이었다. 20%가 성인, 아동들은 오히려 10% 이하로 적었다. 해외의 과학관이 견학을 왔을 정도로 모범적인 사례가 됐다고 한다. ‘선진국 사례’라는 말은 그때부터 무의미해졌다.
 

국립과학관의 역할과 책무는 어떤 것인가. 우리나라 과학 교사들이 우수하다. 미국은 교사들 급여와 복지가 우리보다 못하다. 방학 때 월급이 없어 세컨드 잡을 구한다. 열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우리 선생님들은 열심이다.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 ‘과학사랑 나눔터’ 등 지역마다 과학 교사들 모임이 있다. 그들이 과학관의 큰 고객이다. 과학관이 장비와 기술을 제공하고 그들의 실험을 도울 수 있다. 국립과학관들은 프로그램 개발에도 집중해야 하지만, 136개 전국 과학관의 허브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본다. 과천과학관 방문자 수가 연 150만 명이다. 너무 많이 온다. 이 먼 곳까지 꼭 올 필요 없다. 앉아서 관람객만 늘리는 게 아니라 찾아가는 과학관이 되고 협업하는 과학관이 되면 문제가 해결된다. 이전까지는 과학관끼리 협업이 잘 되질 않았다.

근처 과학관을 가지 않아도 생활 속에서 과학 마인드를 기르는 법, 창의성을 키우는 팁이 있다면? 쉽진 않다.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부모들이 과학과 안 친하다. 과학 교과과정이 엄청나게 많고 복잡해져서 소싯적에 과학 좀 했다는 엄마아빠도 애가 중학생 되면 같이 과학책을 봐줄 수가 없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내가 봐도 어렵다. 제일 좋은 건, 뭐든 같이 해보는 것이다. 온라인도 보고 키트 사다가 함께 해보면 좋다. 중요한 건, 과학을 머리로만 하려 하지 말고 손으로 하면 좋겠다는 점이다. 오감으로 느끼는 과학이 좋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 어릴 때와 달리 그런 경험이 부족하다. 학생발명대회 심사에 가본 적 있다. 거기 나온 작품들이 애들 아이디어라는 건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완성품은 애들 게 아니다. 너무 잘 만들었다. 세운상가 가서 200만, 300만 원씩 주고 만들어왔을 가능성이 크다. 박스 하나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바퀴를 붙였는데 실제로 바퀴가 굴러가는지, 공정의 어려움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 바퀴 달면 그냥 가는 거겠지라는 생각으로 그치면 안 된다.
 
 
본문이미지

이 관장은 음악 하는 둘째딸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피아노로 작곡을 하다가 컴퓨터 작업으로 다른 악기 소리를 넣었다.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선생님에게 들려줬다가 야단을 맞고 돌아왔다는 것. 첼로 소리를 붙였는데 실제 연주가 불가한 곡이었다. 손가락 다섯 개로 할 수 있는 연주가 아닌 거였다. 첼로 두 대가 필요한 연주였다는 것. 직접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예시는 얼마든지 더 있다. 잘난 척하느라 아는 걸 다 집어넣은 코딩. 만족스럽지만 나중에 에러가 나면 어디를 찾아 손을 대야 할지 모른다. 너무 복잡하고 길게 만든 탓이라는 것. 각 기능에 따라 간단하게 설계를 해야 필요할 때 쉽게 찾아 고칠 수 있다는 걸 늦게야 깨닫는다. 이 관장은 “동물 해부에 질색할 아이가 공부 잘하니까 무조건 의대에 지원하는 것도 비슷한 예”라고 말했다.
 

요즘 아이들이 꿈이나 목표의식이 없다고들 말한다. 아이들의 꿈은 자주 바뀐다. 큰 문제 아니다. 내비게이션처럼 길을 잃어 돌고 돌다가도 목적지로 가지 않나. 당장 오늘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게 중요하다. 게임을 하고 싶다면 열심히 하다가 게이머가 되고 싶다 생각할 수 있다. 나중엔 게임 제작이 더 낫다고 생각해도 좋고, 게임 음악이나 그래픽으로 바꾸어도 좋다. 바뀌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그걸 하기 위해서 뭐가 필요한지 알아보고 쌓아나가면 되는데, 안타깝게도 무슨 노력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냥 할 게 없는 것이다. 막연히 핸드폰만 보고 게임에 중독된다. 뭔가 하려면 계기가 있어야 한다. 가장 권하고 싶은 건, 사람을 만나게 하라는 것이다. 과학자가 되려면 과학자를 잘 만나면 부쩍 성장한다. 뇌과학에 관심 있으면 뇌과학자를 만난다. 만나 보면 뇌과학을 알기 위해선 뇌만 알아야 하는 게 아니고 물리학을 알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고 수학도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미리 알게 되는 것은 중요하다. 막연하게 점수 따려고 미분적분을 한 아이랑, 목적을 두고 공부한 아이는 현격히 다르다. 나도 학생들과 주말에 인터뷰 미팅을 여러 번 했다. 뻔한 질문 말고 진지하게 질문을 준비해오라고 해 멘토링을 해주었다. 진지하게 준비한 아이들은 구체적으로 배워간다. 자기 내비게이션을 갖게 된다. 초등학교 때 인터뷰하고 대학생 돼서도 인연 이어가는 학생들이 있다.

두 딸이 모두 예술 분야에 있다. 자식 교육은 내 맘대로 되지 않았을 텐데 어땠나.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 같다. 안 믿겠지만 내가 꽤 예술적이다(웃음). 공부를 썩 잘해서 엄마가 기대가 컸다. 그런데 중간에 제 갈 길 가겠다고 폭탄선언을 하더라. 큰애는 미술 하겠다며 고등학교 수학공부를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 미술 할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작은애는 중학생 때 시험 날 등교를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무 공부 안 하고 음악만 하겠다고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엄마는 충격에 빠졌고 나도 적잖게 놀랐다. 졸업 때까지 최소한의 공부는 하는 걸 전제로 허락했다. 시험 안 보고 숙제 안 해도 좋으니 학교 수업만은 집중해서 들으라고 했다. 둘째딸이 좀 더 걱정스러워 어느 날 정말 후회하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불쑥 내민 말이 명언이었다. ‘아빠가 예전에 내일의 행복 때문에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는 거다. 취지가 약간 다르긴 했지만 내가 한 말이 맞아 아무 말 못하게 됐다(웃음). 아빠로서는 방임형으로 키웠다. 그런데 스스로 자기 꿈을 키워 제 갈 길을 간다.

강연에 잘 어울리는 인기인이다. 비결은? 초등생부터 교수까지 다양한 층위가 이해하는 파워포인트 만들 줄 안다. 그게 편하게 먹히는 것 같다. 야학을 9년 반 했던 경험이 효과를 보는 걸지도 모른다. 적어도 어색하진 않다. 야학에서 노동자와 무학 노인들을 가르쳤다. 노동 인권을 의식화시키는 노동운동이 중요했지만, 그분들이 적어도 검정고시는 통과할 수 있게끔 가르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이념화에만 치중한 당시 운동권의 자기 본위적 태도를 아쉬워했다. 수용자 중심으로 행동하려 했던 것 같다. 계몽하고 주입하는 게 아닌 공감하고 협업하는 관계를 좋아한다.

책을 꽤 많이 읽고, 자주 쓴다. 한정된 시간에 어떻게 그걸 다 소화하나. 적어도 5년 전부터는 문학책을 빼면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책이 없다. 왜냐면, 시간도 부족하지만 어차피 아는 얘기들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포인트만 본다. 아마존 킨들을 보면 먼저 읽은 독자 세 사람이 밑줄 친 곳을 알려준다. 그 부분만 찾아 읽는 방법도 효과적이다. 기본적으로 속독이 된다는 것도 유리하다. 하루 평균 네 시간만 잔다. TV도 안 본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확보한다.

앞으로 꼭 써보고 싶은 책이 있다면? 찰스 다윈 사상사를 쓰고 싶다. 다윈의 생각을 너무나 다윈 중심적이지 않게 쓰고 싶다. 누군가 영국을 가면 우리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과학자 다윈의 흔적을 두루 찾아다닐 수 있도록 돕는 책, 그렇다고 여행서는 아닌 기행문 성격의 사상서쯤 될 것 같다. 오래 전 썼던 <공생 멸종 진화>를 다시 써볼 계획도 있다. 그때 시점의 공룡 이야기 말고 발생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요즘 공룡 연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만>은 쉽게 쓴 에세이여서 부끄러웠는데 중학 교과서에 실렸다.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글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유익하면서도 재미있게 써볼 생각이다.

공룡 이미지가 강해 ‘멸종 전문가’라고도 불린다. 멸종 말고 생성 이야기를 한다면, 미래의 가장 핫한 이슈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로봇과 인공지능 아닐까? 사람들이 그걸 두려워하고 디스토피아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너무 일을 많이 하고 살았다. 일을 줄일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하나. 로봇과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걸 소수만이 독점하기 쉽다. 우리가 선출한 권력이 아니라 구글이나 아마존, 네이버 같은 거대 정보독점기업이 우리를 지배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래사회엔 다른 차원, 다른 형태의 민주주의가 태동할 것 같다. 한쪽에선 로봇과 인공지능이 성장하고 다른 쪽에선 거의 직접 민주주의에 가까운 새 민주주의가 생긴다. 모든 사람이 모여서 투표할 일이 없다. 어디서든 즉각 숙려하고 회의하고 의사표명을 하는 시대가 온다. 로봇과 인공지능이라는 수단을 사회화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기술도 팔로우해야 하지만, 사회과학계도 보다 깊어져야 된다. 4차 산업혁명을 말하면서 기술만 강조하는 건 우려스러운 일이다. 사회과학을 얘기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세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미래 사회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를 준비해야한다.

관련기사

ⓒ woman.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