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칼럼에 지방법원 판사를 모시기로 하자 사진기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인터뷰 현장에선 난감한 기색이 더 역력했다. 얼굴이 알려진 문화예술 쪽 인물을 주로 다뤄온 습성이 있어서다. 콘셉트 잡기가 힘들었을 그에게 유감을 전한다. 이제 그가 왜 인터뷰이가 됐는지 해명(?)할, 나의 시간이다.
말하자면, 법은 공기다. 사회구성원인 모든 사람은 법과 동거 중이다. 법이 걸쳐지지 않는 것이 없다. 법대로 밥벌이하고 법대로 놀고 법 안에서 복닥거린다. 제아무리 ‘법 없이 살 사람’도 진짜로 법 없이 살진 못한다. 그렇게 공기처럼 가까이 있는 법이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건, 우리의 고질적인 적폐다. 법이 준엄한들 인간의 존엄을 뛰어넘을 수는 없지 않은가. 법은 보통 사람의 친구가 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를 인터뷰하기로 마음먹은 건 그 때문이었다. 울산지방법원 박주영(52) 부장판사는 작은 책 하나를 세상에 내밀며 친구처럼 다가왔다.

<어떤 양형 이유>(김영사)는 박 판사의 법정 비망록이다. 고뇌와 갈등, 자책과 슬픔, 사명과 책임으로 이어지는 삶을 진솔하게 담았다. 하지만 자신보다 법 앞에 선 수많은 사람들 이야기가 대부분. 그 틈새마다 판사의 인간적인 고뇌와 감성이 읽혀 감동을 자아낸다.

“(…) 이 책은 곧 1심 판결문이고, 독자는 당사자이면서 곧 상급심이다. (…) 이 책의 독자는 ‘이봐 당신은 틀렸어. 판사로서의 당신 삶을 파기한다’는 주문을 낼 수도 있고, ‘결론은 용케 맞혔군. 이 판결을 인용한다’는 주문을 낼 수도 있다. 염치없게도, 이 판결이 일부라도 인용되기를 바라지만, 전부 파기되어도 항소는 없다. 국민은, 불복할 수 없는 상급심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머리말에선 ‘판결문’이라 했지만 이 책은 어쩌면 반성문처럼 보일 수도 있다. 틀렸든 맞았든 법의 이름으로 행한 모든 것들에 대한 보고서이자 참회록 같다. 기자는 기사로 말하듯 판사는 판결로 말하면 될 것을, 그는 굳이 왜 번거로운 짓을 사서 했을까. 울산지방법원 형사재판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법원은 엄숙하고 판사는 신비하다. 굳이 판사로서의 진짜 모습과 생활인으로서의 자기 이야기를 다 꺼낸 이유는 뭔가? “법원이나 판사에 대한 신비주의와 엄숙주의가 깨지면 법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도 걷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비주의나 엄숙주의가 권위를 세운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권위가 아니라 권위주의 아닌가. 그런 생각으로 썼다.”

법원과 판사에 대해 갖는 부정적인 이미지란 어떤 건가? 어느 정도 실감하고 있나? “현직 판사가 에세이와 소설을 쓰고 드라마 각본까지 쓰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법원과 판사의 업무 내용, 일상, 사고과정, 재판절차 등에 대해 일반 국민들은 잘 모른다. 예전에는 그게 신비감과 권위를 세워주니 도움이 되는 면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것 때문에 오해도 산다. 여전히 판검사들은 좋은 데 가서 술 마시고, 변호사들한테 대접받고, 좋은 차 타고, 돈 받아먹고, 그러다 옷 벗으면 전관예우까지 받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한 그런 것 없다. 변호사 할 때 동료 변호사한데 1300만원 주고 8만㎞ 뛴 중고 그랜저XG를 사서 15년 가까이 탔다. 판사 되고 나서 2016년 미국 연수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대구에 가서 식사를 했는데 이 차가 결국 퍼졌다. 정든 차가 견인되어 가는데 그걸 차마 못 보겠어서 집사람하고 식당 바깥 구석에서 붙들고 울었다. 판사도 그렇게 궁상맞다. 하도 판사 욕을 들으니 우리 큰애가 그랬다. 우리가 똥차 탈 때는 애들이 어디서 듣고 와서 ‘판사가 돈 먹고 뭐 그런다는데 너네 아빠도 그러냐’고 하면, ‘우리 차는 너네 차 백미러 값밖에 안 된다’고 하면 조용해졌다고.”(웃음)

박주영 판사는 판사가 되기 전 7년 동안 변호사 생활을 했다. 그리 넉넉지 않은 대구의 평범한 가정에서 삼형제 중 막내로 자랐다. 재수한 형과 함께 대학에 가게 돼 집안 형편상 지방국립대에 진학해야 했지만 막연히 고향을 벗어나고 싶어 무리수를 감행했다. 역시 막연한 생각으로 서울의 한 법대에 진학했다. 어려운 집안 환경에 대한 보상심리였을까. 사법고시를 쳐서 판검사가 되겠다는 흔한 그림을 머릿속에 억지로 욱여넣었다. 딱히 내게 맞는 옷이라 생각하지 않아 학교생활은 혼란스러웠다. 민주화운동이 한창인 때라 투쟁에 가담했고 재단퇴진운동에도 기웃거렸다.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한 뒤로 고시에 매진했는데, 그도 썩 신통치 않았다. 신림동 고시촌과 사찰 암자를 전전했지만 낙방하길 수차례. 외골수처럼 혼자 공부하던 습성을 바꿔 학교로 돌아와 스터디모임에 참여한 뒤 끝물에 합격해 안도할 수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산으로 광고회사에 원서를 넣은 채 치른 시험이었다.

중간 성적으로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다. 저마다 꿈에 부풀 때였지만 엘리트들과의 숨 가쁜 경쟁이 싫었다. 수업을 빼먹고 음악을 들으러 다닌 날이 많았다. 졸업 무렵엔 최하위권에 닿아 있었다. 임관이나 대형로펌 취업은 힘든 수준. 부산의 소규모 해상 전문 로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왕 뛰어든 일이니 즐겁게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변호사 생활은 왜 접었나? 판사가 된 이유는? “겪어가며 길을 찾아가는 인생이었다. 변호사가 체질에 맞는다고 생각했고 판사 같은 공직생활은 전혀 안 맞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변호사라는 직업은 사람한테서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많았다. 감당할 수 없었다. 돈은 적게 벌더라도 스트레스는 받고 싶지 않았다. 아내가 반대했지만 설득해서 강행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법원의 판결은 왜, 어떻게 그렇게 나오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싶었다. 변호사 일은 그냥 정체된다는 느낌도 싫었다. 매번 엇비슷한 사건으로는 배울 수 있는 게 없었다. 법원은 모든 사건이 모이는 곳이니까 그곳을 경험하러 가야 했다.”

책 내용 중에 소년재판에 관한 얘기가 인상적으로 남는다. 집필할 때 특별히 힘을 준 것 같은데. “책의 기획의도가 양형에 이른 과정과 이유를 설명하고 풀어 쓰는 것이기도 했고, 무거운 주제도 많아 힘들었다. 성범죄나 산재사건 같은 예민한 주제와 꼭 하고 싶었던 소수자 보호 같은 주제들도 신경이 많이 쓰였다. 하지만 소년재판 얘기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가장 수월하게 썼다. 재판을 하면서 받은 슬픔과 번민이 너무 커서 내 마음속에 꽉 차 있던 물꼬를 터주자 얘기가 그냥 콸콸 흘러나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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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부산지방법원에서 소년부 판사로 1년 반을 근무했다. 1500건의 소년사건을 처리했는데 그중 70%는 집안 환경과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들이었다고 말한다. 상상도 못 했던 기구한 사연들이 차고 넘쳤다. 막다른 환경에서 갈 곳 없는 아이들이 사고를 친다. 그럴 때면 불우한 소년들이 그저 불량한 소년으로 인식되게 마련이다. 박 판사는 소년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엄벌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건 틀린 말이 아니라고 말한다. 갈수록 정신적 성숙이 빨라지는 상황에서 괴물 같은 아이들이 저지르는 사건엔 적절히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것. 하지만 그런 몇몇 아이들 때문에 나머지 아이들에 대한 처벌이 덩달아 엄해지고, 그나마 턱없이 부족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가 사그라들까 봐 염려한다.

법정에서 만난 참담하게 불행한 아이들 이야기가 많다. 판사로서 할 일이 뭐라고 생각하나? “소년부는 성인범 재판과 다르다. 특별법인 소년법을 통한 후견적 조처, 대안적 조치들이 다양하다. 우리 사회가 후진적 사회는 아니라는 증거다. 소년범은 교도소가 아닌 쉼터나 소년원 같은 시설로 보낼 수 있다. 후속 관리도 이루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컨트롤타워가 없어 자원이 낭비된다는 것이다. 법원과 시청 아동청소년과, 법무부, 검찰, 여성가족부까지 다 관련 일을 하는데 업무들이 중복된다. 예산도 갈라져 있다. 부산가정법원 소년부 시절, 시와 조인해 소년시설 지원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데 협조를 얻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한때 소년 관련 기관들을 모아 인터넷 카페도 만들고 소통도 하고 예산도 나누고 했다. 그런데 내가 나오고 나서는 흐지부지됐다. 법원은 관련 예산이 턱없이 적지만 역할은 지대하다. 판결로서 집행 내용을 결정하는 곳이니까 남의 일처럼 놔둘 수가 없다. 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협력 시스템이 잘 안 굴러가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소년범 아이들의 후속 관리는 실제로 어떤가? “성인범이라면 격리냐 구금이냐 풀어주느냐만 결정하면 되지만, 아이들에게는 대안이 필요하다. 시설에서 관리도 필요하고 대안 가정도 필요하다. 그런데 사회적 관심과 인프라는 외국에 비해 부족하다. 소년들은 ‘사회 내 처우’가 기본이 돼야 하는데 사회 내에 보낼 곳이 별로 없다. 사실 거의 방치하는 수준이다. 위탁 부모도 모집하고 멘토도 공모하지만 턱도 없다. 사회 전체적으로 사회 내 처우를 감당할 역량을 개발해야 한다. 한마디로, 부족하고, 갑갑하다.”

18세가 되면서 시설에서 나와야 하는 아이들이 사각지대에 놓인다고 들었다. “그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은 1990년부터 대안적 사법 운동이 촉발됐다. 다양한 문제 해결 법원이 생겼고, 중간 처우의 집도 많다. 출소 후 사회에 진입하기 전에 일정 기간 머무는 집이다. 완충 지역과 완충 기간을 동시에 두는 시스템인데, 반면 우리는 가혹하다. 열여덟 살이면 바로 내보내야 하는 처지인데, 사회에 아무 연고도 없는 아이들이 어떻게 바로 적응할 수 있겠나.”

협력 시스템이 해결 방안이라고 했다. 그럼 컨트롤타워는 누구여야 할까? “물론 법원이다. 소년법은 특별법이고 교화와 복귀에 중점을 둔다. 그들에 관한 최종 결정 권한을 가지고 판결과 명령을 내리니 법원이 컨트롤타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법원은 결정기관이고 결정을 실행할 집행기관은 여러 곳으로 갈라져 있다. 수시로 연락하고 상의하고 협업해야 한다. 집행기관 협력이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애로점이 많다. 예산을 쥔 집행기관에 너무 이래라저래라 하는 걸 불편해할까 봐, 행여 갈등이 생길까 봐. 헤게모니 싸움으로 비칠까 봐 눈치 보게 되는 게 한계다. 일개 판사지만 현실을 알고도 열심히 해보려고 24시간 내내 그 생각만 한 시절이 있었다. 처분과 집행, 협업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어떻게 돈을 타낼까를 만날 궁리했었다.”(웃음)

오지랖이라고 비난도 홀대도 받았겠다. “어지간한 판사는 공무원들이 만나려 하지도 않는다. 부장판사 정도 돼야 겨우 만나준다. 억지로 밥 먹으면서 설명하고 커피 마시면서 사정하고… 그러면서 억지로 예산 타내곤 했다.”

그렇게 어렵게 한 일의 결실은 뭐였나? 보람이 있었다면? “제도적으로 개선된 게 몇 가지 있고 책도 몇 권 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좋은 건 애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거다. 오토바이 절도와 갈취로 소년원으로 가게 된 아이가 있었다. 엄마는 찾아가면 쫓아내고 해서 누나랑 단둘이 사는데, 누나는 내레이터 모델 하느라 자기 살 길 바빠 정신이 없었다. 아이는 소년원 가서 외모도 달라졌고 태도도 변했다. 그림을 곧잘 그려서 검정고시 보고 미대에 진학했다. 대부분 아이들은 한두 달 정도는 반짝 달라지긴 하는데, 걔처럼 계속 좋아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가정적으로 불우했던 애들은 가끔 편지를 보내온다. 어떤 남자아이는 쉼터 선생님과 자원봉사 어머니들이 학교 갈 때 ‘잘 다녀오라’고 인사해주는 게 너무 고마워 눈물이 났다는 얘길 썼다. 자기한테 그런 인사를 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거다. 소년재판은 한 기일에 30건, 아주 많게는 100건까지도 했었다. 대체로 나무란다. 똑바로 살라고. 좋은 얘길 찬찬히 해주고 싶어도 그럴 시간이 없다. 늘 마음에 걸렸다.”

법정에서 수많은 범죄를 접하다 보면 인간의 본질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겠다. “특히 형사재판을 하면서 깜짝 놀란다. 거의 매주 살인과 강간 사건이 터진다. 의붓딸 강간은 수시로 터지고 친족 강간도 많다. 형사재판부 한두 달 만에 인간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으론 구체적 인간은 선하다는 생각을 한다. 성선설에 좀 더 가깝다. 범죄 사실을 공소장의 활자로만 보면 끔찍하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까, 놀라고 질린다. 그런데 법정에서 당사자를 보면 저런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게 평범하고 순진해 보인다. 법정에 선 인간은 작고 초라하고 선하다. 그래서 합의부나 배심재판에서 형량이 예상보다 내려가게 마련이다.”

그래도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피폐해지기 쉽지 않나? 항상 의심해야 하는 직업 아닌가. “사수였던 선배 판사와 함께 야근하며 부검 사진을 살펴볼 때였다. 한마디로 끔찍했다. 부검 감정서는 여러 번 들춰보게 되는데, 오죽하면 그 페이지들은 다시 안 보려고 클립으로 한꺼번에 집어놓고 넘기곤 했다. 그때 선배 판사님이 ‘영혼에 상처를 받지 말자. 다치지 말자’고 하셨다. 나도 선배가 돼서 배속판사들한테 그렇게 말한다. 감정 다치지 말고 상처 받지 말자고 한다. 그래도 실제 재판에 들어가면 여전히 힘들어한다. 늘 의심해야 하는 직업이라 힘든 것도 맞다. 성범죄 재판이 특히 진을 뺀다. 증거는 피해자 진술이 대부분인데, 피해자가 성인인 경우도 힘들지만 미성년이나 장애인이면 몇 배로 더 힘들다. 피해자 아이가 법정에서 손발을 덜덜 떨며 너무 힘들어한다. 그런데 피고인 측이 반대심문 중에 합리적인 공격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걸 듣다 보면 측은하고 불쌍해 보이던 애가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열다섯 살 아이의 끔찍한 고통을 의심하게 되는 지경…. 그건 판사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괴로운 일이다.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아이와 그 어머니의 고통을 거짓이라 느끼지 않지만, 혹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해야 하는 거다. 판사들은 법정에 나온 사람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다. 표정과 눈빛, 몸짓 등 진술 태도 전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본다. 가해자를 무고하는 건 아닌지, 피해자를 더 억울하게 하는 건 아닌지 끝까지 의심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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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판사는 메소드 연기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메소드 재판’이다. 누군가 칼에 찔린 사건이면 내가 칼에 맞는 상상을 해본다. 피해자의 심정, 그 가족의 심정을 이해해야 하니까. 반대로 찌르는 사람 입장도 생각한다. 메소드 연기에 빠지면 배우가 자살하듯 판사도 어떤 심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감정이입을 전혀 안 할 수도 없는 일. 가해자나 피해자의 동기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냉정한 판결을 내려야 할 자리에서 감정이입을 한다니 의외다.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일 뿐 실제로는 감정이입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일부러도 한다. 사실 안 하면 더 편하지 않겠나. 제출된 증거자료만으로 처리하면 끝이다. 빨리 덮고 가서 쉬고 싶은 유혹이 있지만, 결국 하게 된다. 중요한 건, 일방적이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균형감각을 유지하면서 양쪽 모두에 감정이입을 해야 한다.”

그럼, 직관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은가? “직관적 판단이 사실 더 많다. 유죄냐 무죄냐도 결과론적으로 그런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그러진 않지만 재판이 무르익어갈 때쯤 직관적 결론에 이른다. 증거가 백중하거나 양측이 첨예하게 맞물려 있는 경우에 더 그렇다. 판사의 가치관이 작용한다. 과연 어느 쪽을 더 보호해야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수도 있다.”

위험하진 않나? “판단의 자연스러운 모습 아닌가. 탁 떠오를 때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떠오르는 건 아니고, 평소의 가치관이 잘 정립돼 있어야 가능한 판단의 순간이 있다. 오히려 법 원칙, 법의 도그마에만 빠져 있으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해석의 여지가 많아도 막 잘라내고 쳐내게 된다. 그러면 오히려 정확한 판단을 못 하게 된다. 해석의 범위를 좁혀야 하는지, 넓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판사 스스로 물어야 한다. 망신살도 문제지만, 내 결정이 피고와 원고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엄청나게 여러 번 묻는다.”

일반인이 법원과 판사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은 뭘까? “가장 대표적인 게 판사는 재판 하루 하고 매일 논다는 거 아닐까?(웃음) 판결문을 다른 사람이 써준다는 오해도 한다고 들었다. 아니다. 민사재판은 일주일에 한 번, 형사재판은 일주일에 두 번이 일반적이다. 판결문은 당연히 직접 쓴다. 가장 큰 건 전관예우에 대한 오해다. 골프 치고 접대 받고 돈 받고 다 한단다. 그거 아무리 얘기해도 납득을 안 하더라. 하지만 구체적인 경험보다 바이럴로 굳어진 게 대부분이다. 재판을 받은 본인 경험이라면 모를까. 그냥 돌고 도는 소문으로 오해를 받는 건 억울하다. 정신 나간 사람 아니면 자기 커리어를 버리고 그런 짓을 하는 경우는 없다. 옛날에는 모임에서 수시로 밥 먹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거 없다. 법원 근처 나가서 식사하면 옆 테이블 변호사가 밥값 계산해주고 나가는 게 매너라 생각한 때도 있었다. 지금은 그런 거 전혀 없다. 처벌도 무겁다. 의심하는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알 수 없는 얘기다. 내 경험상으로는 없다.”

법정 드라마가 흔해졌다. 드라마와 현실은 어떻게 다른가? “요즘은 그나마 사실적이다. 예전엔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그래도 다른 점이 있다면, 실제 법정은 드라마처럼 재미있지 않다. 너무 재미없다. 그리고 법봉 두드리는 드라마는 그냥 채널 돌려야 한다. 법봉 두드리는 법정은 없다. 한 재판이 그렇게 장시간 열리지도 않는다. 짧게 여러 번 하는 식이다. 실제 재판정에 와보면 재판부와 검사, 변호인 아니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게 지나간다. 뭔 얘긴지 알아듣지도 못한다. 드라마처럼 논쟁이 붙는 거 없다. 드라마니까 드라마틱하게 만든 것뿐이다. 단, 참여재판은 사건 전후 맥락을 다 알 수 있어 재미있다. 국민 배심원 재판에 참여해보면 알 수 있다.”

오래전 석궁사건이 생각난다. 판결로 인해 위협을 받은 적은? “석궁사건은 우리도 깜짝 놀란 사건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그 정도는 아니다. 살인 위협이라든가 실제 위해를 가하는 일은 없다. 조폭도 많이 겪었지만 실제론 순순하다. 조폭보다는 오히려 사이코패스가 겁이 난다. 정신질환자는 위협적이다. 오래전에 양형 문제로 특수강간죄 피고인 때문에 좀 불안한 적은 있었다. 찾아올까 봐.(웃음) 눈빛이 유난히 흉악한 피고인이 있다. 그러면 재판부도 사람인 이상 시선을 피하는 경우가 있다. 유영철 사건 때는 법대로 뛰어오른 적도 있다던데… 나는 아직 직접 위해를 당한 적은 없다.”

판사의 퇴근 후 삶은 어떤가? 독서량이 많을 것 같다. “골프 등 사람들과 어울리는 운동은 거의 안 한다. 저녁에 하는 트레드밀 운동이나 산책이 전부다. 9시 출근인데 일에 따라서 출근도 퇴근도 시간은 탄력적이다. 처리해야 할 사건만 끝내면 되니까. 주말도 하루 정도는 나오는 경우가 많다. 여가는 영화와 음악, 산책 정도다. 개인적 일상은 밋밋하다. 책을 참 안 읽는 사람에 속한다. 선배 판사의 영향으로 2009년부터 책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늘 활자를 보는 직업이라 책을 잡아도 피곤하고 잘 안 들어와서 그런 것 같다. 영화나 음악을 많이 접했다. 음악은 잡식성이지만 재즈와 클래식을 주로 들었다. 책은 2~3년 전부터 이북 다운로드 받아서 운동하며 음성으로 듣는다.”

요즘 읽는 책, 법과 가까워질 가벼운 책을 권한다면? “법철학이나 법소설 등 법을 다룬 책은 외국 것이 많은 것 같다. 소설 <레 미제라블>, <죄와 벌>도 법철학이 잘 다뤄져 있는 책이다. 최근 책 중엔 <칠드런 액트>가 인상적이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너무 잘 썼다.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이라는 책도 좋았다. 다양한 사람들을 화자로 다룬 책인데, 판사 입장에서도 공감이 컸던 책이다. 판사인 내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스쳐갈까 생각해봤다. 만 명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 책 쓰기 전에 그걸 먼저 봤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긴즈버그 대법관의 책도 감명 깊었다.”

아내와 함께 아들 둘을 키우는 가장이다. 가족과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는 아빠라서 가끔은 미안하다. 몇 해 전 미국 연수 1년이 가족에게 온전히 충실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너무 붙어 있다 보니 100%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며 웃었다. 딸이 있었다면 판사 사위를 얻었을 것 같다는 말은 농담 반 진담 반이라는데, 듣고 보니 진담 쪽에 가까워 보인다.

“일단 시간이 없어요. 돈도 없죠. 그러니 딴 데 정신 팔 겨를이 없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도덕적이고 윤리의식 강하고 책임감도 강하겠죠. 남편감으로는 좋지 않나요? 법정에서 나쁜 남자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판사만큼 착한 사람도 드문 것 같아요.”(웃음)

판사로서나 그 이후 삶의 계획은? “법복을 언제까지 입고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판사로서는 선례가 될 수 있는 의미 있는 사건을 맡아보고 싶다. 최우선은 무고한 사람 가두거나 죄지은 사람 풀어주거나 하는 오판 안 하고 무탈하게 사는 거다. 갈수록 판단이 흐려질 테니 언젠가 옷을 벗고 나면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다. 로스쿨 등에서 후배를 양성해도 좋고 무변촌에서 약자들을 변호하고 싶기도 하다. 돈을 많이 벌어놓았다면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대중에게 읽힐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법률 쪽은 저자의 층이 두텁지 않다. 도움이 된다면 내가 그걸 해보고 싶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그간의 업보를 씻기 위해 재소자 상대로 글쓰기 강의를 할까 생각 중이다. 재소자들 반성문의 80~90%는 대필이다. 개인적인 생각과 감성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정에서도 그렇다. 말이든 글이든 자기표현을 하고 싶어도 못 한다. 무슨 얘길 하고 싶은지 눈에 보이는데 스스로 못 한다. 그게 너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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