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는 방향의 물살을 마주했다고 해서 거슬러 오르지는 않는다. 물살을 따라 노를 잘 젓는 법을 찾을 뿐. 테이는 자신을 “집착하지 않는 편”이라며 물살에 빗댔다. 흐르는 대로 움직이되 목표는 확실하게. 가수로서도 뮤지컬 배우로서도 나름의 ‘노질’을 갖춘 것 같았다.
테이가 창작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이하 <루드윅>)에서 장년의 베토벤으로 분한다. <루드윅>은 베토벤의 천재적인 재능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조명한 작품이다. 강압적인 교육으로 고통 받은 유년 시절과 청력을 잃은 청년 시절, 사랑하는 조카와의 갈등이 고조된 장년 시절을 아우른다.

테이의 <루드윅> 출연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연이은 출연 소감에 대해 “더 진하게 잘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로 임한다고 답했다. 한 시간 남짓 인터뷰를 나눠보니 무대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그는 한껏 짙어졌다.
 
코로나가 여전한 시기에 공연을 해야 하는 마음이 어떨지. 배우들 마음은 다 같을 거예요. 너무 속상하면서도 너무 감사해요. 이 상황이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고 이 시대 인류가 맞닥뜨린 거잖아요. 무대에 설 수 있음에 감사하고 ‘한 회 한 회 더 잘하자. 감사한 공연이다’라는 마음가짐이 더 진해진 것 같아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루드윅>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이미 제게 깊이 들어와버린 작품이에요. 작년에 했을 땐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어요. 추가 공연에 캐스팅된 거였고 연습기간이 길지 않았거든요. 다시 할 수 있다면 더 디테일하게 하고 싶다 생각했었는데 마침 그럴 기회가 와서 기뻤어요. 베토벤을 더욱 이해하고 이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의 답을 찾으면서 깊어진 것 같아요.
 
말씀하신 ‘답’은 찾았고요? 더 찾아야겠지만 어느 정도 찾았죠. 정답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초연 때와 다른 점은 확실히 생겼네요. 50대의 루드윅을 표현하기엔 제가 너무 어린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 점을 극복하는, 다시 말하면 기술적인 면에 힘을 실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에 대한 저만의 믿음, 힘을 뺄 수 있는 익숙함이 생겨서 더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나 해요.
 
‘나이 든 목소리’를 내는 것도 어려움 중 하나였겠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할 때도 비슷한 고민을 했었는데 그때 연구한 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루드윅>은 목 컨디션이 안 좋을수록 편해요.(웃음) 일부러 톤을 내리지 않아도 돼서 목을 안 풀고 시작합니다. 목소리 잠긴 날이 공연하기 좋아요. <루드윅>의 노래는 울부짖음이 많거든요.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감정을 많이 토해내야 해요. 다행히 성대가 건강한 편이에요.
 
지난해 인터뷰 때 “<루드윅>은 나를 돌아보게 한 작품”이라고 했어요. 올해도 그렇던가요? 그땐 필사적으로 ‘루드윅’에게 다가가려고 했던, 제가 가진 것을 루드윅에 녹이려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답변을 한 것 같아요. 지금은 베토벤 인생 자체를 이해하려고 해요. 저를 돌아보는 것보단 ‘진짜 베토벤’을 많이 봤어요. 요새 드라이브할 때 듣는 것도 베토벤 음악이에요. 들을수록 경이로워요.
 
‘진짜 베토벤’을 발견하면서 음악가로서 테이와 베토벤의 접점은 없었나요? 찾으려고 할수록 너무 큰 갭이 보여서.(웃음) 공통점을 찾긴 어려웠지만 그의 삶도 연예인의 삶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해요. 공개된 곳에서 연주하고 실시간으로 대중의 반응을 받아온 사람이었잖아요. 힘들었을 것 같아요. 거리를 일반적으로 걷기가, 그래서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은 너무 좋아하지만 불편한 사람은 너무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가 이해됐어요.
 
몰입도가 훨씬 깊어진 것 같아요. 배역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겠는데요. 글쎄요. (빠져나오는) 과정이 점점 짧아지는 것 같아요. 예전엔 제게 없던 감정을 만들어서 터뜨려버리니, 일상으로 돌아가는 작업이 오래 걸렸어요. 지금은 저한테 있는 걸 끄집어내서 대입하니까 오히려 제가 위로를 받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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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고통,  대중과 나누고 싶진 않아
 
베토벤이 겪었을 고통에 공감하고 있었다. 테이는 가수로 데뷔하자마자 큰 사랑을 받았다. 꼬리표처럼 붙는 사건도 없다. 그래서 그의 공감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테이는 “꺼내 보면 굴곡이 있는 가수 생활이었다”고 말한다.
 
<루드윅>은 베토벤 인생을 시기별로 보여줘요. 테이의 지난 시간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요? 음, 그렇게 해보진 않았는데… 꺼내어 보면 굴곡이 있는 가수 생활이었으니까…
 
굴곡이요? 있죠. 다만 저는 대중이 제 좋은 모습만 봐줬으면 좋겠어요. 연예인 중에 본인 감정을 드러내는 분들도 계신데 저의 괴로움을 대중과 나누고 싶지 않아요. 대중이 알아주고 위로해주면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억지로 (괴로움을) 드러내고 싶진 않아요. 라디오 디제이를 하면서 많이 생각한 결과예요. 기분이 다운된 날이라도 밝게 멘트를 하니까 스스로 치유되더라고요. 청취자도 즐겁게 하루를 마무리하실 수 있고. 제 역할이 그런 거 같아요.
 
그렇게 되면 연예인 테이와 김호경(테이 본명)의 차이가 너무 커지잖아요. 예전엔 엄청 컸는데 지금은 같아요. 어두운, 힘들었던 일을 많이 겪어내선지 빨리 이겨내는 자신을 발견하면 대견하기도 해요. 친구들하고 힘듦을 나누면서 덜어내고, 같이 부둥켜안는 기술이 많이 좋아졌어요.(웃음) 테이로도, 김호경으로도요.
 
데뷔와 동시에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생긴 부담감이 컸던가 봐요. 부담밖에 없었어요. 후배들처럼 연습생 생활을 거치면서 데뷔한 거면 신났을 텐데 길거리 캐스팅으로 가수 제의를 받아서 앨범을 냈는데 덜컥 잘된 거예요. 아무 준비가 안 된 상태여서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그래서 버라이어티 방송도 안 나가려 하고 그러다 보니 소속사 대표님이랑 신경전도 하고(웃음) 방송국에 모질게 대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낸 자신이 대견하다고 했어요. 정확히 어떤 뜻인지. 너무 아픈 시기들이 갑자기 몰려왔어요(인터뷰 당일 테이는 ‘아픈 시기’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았다. 오랜 시간 함께 일한 동료들이 세상을 등진 사건이 연달이 일어났었음을 짧게 언급했다).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그래도 부정적으로만 집중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걸 선택한 제가 대견했어요. 그걸 도와준 게 친구들, 동료들이었어요.
 
뮤지컬 무대에서 노래하는 테이를 보니 ‘가수 테이’는 언제쯤 볼 수 있을지 궁금해졌어요. 감사합니다.(웃음) 그렇게 생각해주는 분들이 계셔서 너무 감사하고 죄송해요. 늘 고민이에요. “잊히지 않으려면 습작을 주기적으로 내야 한다”고 조언하는 동료도 있고, “때 되면 자연스레 나오면 된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 제 음악이 그냥 흘러가버리면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그만큼 애착이 있는 거죠. 그래서 조금 (음악에) 집중할 수 있을 때, 빨리 내고 싶을 정도로 안달나는 곡이 생겼을 때 내 음악을 하자고 마음먹고 있어요.
 
 
# 마흔을 앞두고…
 
‘아이’ 이야기가 나오면 유난히 말이 많아진다. 유년의 베토벤을 연기하는 아역배우에 대해선 “너무 예쁘다”고 연신 말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결혼에 집착하진 않는다”지만 결혼할 때가 온 듯했다. 테이는 마흔을 앞두고 있다.
 
‘대식가’로 워낙 유명한데 작품 활동 중에는 식단관리를 어떻게 해요?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면서 3개월 동안 20kg 넘게 찌는 바람에 100kg을 찍을 뻔했어요. 작품을 할 때마다 식단으로 10kg 이상을 줄이곤 했는데 요요가 심하게 오더라고요. 아,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웃음) 두 달 전부터는 운동량을 엄청 늘렸어요. 그거밖에 방법이 없는 거 같아요. 체중은 비슷한데 체지방량이 줄어드니까 확실히 사이즈가 줄고 건강한 느낌은 들어요.
 
성대 보호 때문이라도 밤늦게 많이 먹으면 안 되죠?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어요.(웃음) 역류성 식도염? 저는 안 먹으면 역류되는 것 같던데.(웃음) 오히려 먹어야 편하게 잠들어요. 제겐 수면제보다 음식이에요.
 
‘햄버거 가게’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코로나 여파에 괜찮아요? 2호점 계약할 때는 코로나 이전이었는데 오픈과 동시에 코로나가… 정말 큰일이죠.
 
‘테이’ 하면 ‘노래 잘하는 가수’, ‘뮤지컬 배우’, ‘대식가’라는 수식이 대표적이에요. 추가하고 싶은 게 있나요? 그 정도만 해도 너무 감사한데요. 개인적으론 ‘라디오 디제이’가 좋아요. ‘디제이를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립다’ 문득 문득 생각해요.
 
왜요? 술, 담배를 안 해서 친구들이랑 커피숍에서 수다 떠는 게 일상이 되어 있어요. 그렇게 일상을 얘기하는 게 즐겁더라고요. 일상을 편하게 나눌 수 있는 매체가 라디오에요. 매일 새로운 친구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잖아요. 음악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엄청난 행복이거든요.
 
카페에서 친구들과 수다라니 의외네요. 아, 요새는 오래 떠들고 있으면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엔 엄청난 힐링이었다면 이제는 알 수 없는 한심함이 생겨요.(웃음) 늘 기다리고 창작해야 하는 직업이니까 이야기하는 시간이 다 창작에 도움 된다고 생각했었죠. 물론 지금도 도움은 되는데 그럴 시간에 뭔가 더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와요. 마냥 편하게 얘기를 나누지 못하는 나이가 됐어요. 친구들은 애도 봐야 하고 와이프 허락도 받아야 하고요.(웃음)
 
테이 씨는 결혼 계획 없어요?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요.(웃음) 어릴 땐 정말 빨리 하고 싶었는데…
 
결혼 의지를 놓아버린 건가요? 크게 집착하지 않기로 했어요. 근데 애들을 너무 좋아해요. 동료들이랑 아이 교육 이야기 하는 것도 너무 좋고. 한편으론 요즘 애들이 마스크 쓰고 다니는 걸 보면서 이런 환경에 애를 낳는다면 아이들이 감사해할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요. 결혼을 하긴 할 건데 계획은 뭐…  (결혼을) 못하고 있는 게 맞는 거죠.(웃음)
 
결혼도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집착’이 없는 사람 같기도 해요. 맞아요. 일단 집착을 안 해요.(웃음) 가수를 시작한 것도 연기를 시작한 것도 뮤지컬을 하게 된 것도 집착을 했다기보다 흘러온 거예요. 저는 흔히 ‘물살’이라고 표현하는데 물살이 제가 원하지 않는 방향이라고 해서 거슬러 올라가기보단 잘 저어서 가고 싶어요. 그것에도 좋은 메시지가 있더라고요. 노를 잘 젓고 싶어요.
 
‘노질’을 하려면 원동력은 있어야죠. 물살 자체가 원동력이 됐어요. 물살이 마르지 않는 것에 감사할 줄도 알고요.
 
‘테이스럽다’를 정의해보면요? 글쎄요, 그것도 집착하지 않아요. 점점 발전하는 걸 넘어서 ‘테이는 역할을 참 잘한다’라는 평가를 받으면 좋겠어요. 어디서 어떤 역할이 주어져도 제 역할을 해내더라, 쓰임이 괜찮은 사람이다, 뭐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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