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이정재가 악역으로 출연하면 그 영화는 흥행에 성공한다.’ 이번에도 그 공식은 깨지지 않았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스타일리시한 킬러로 변신한 이정재를 만났다.
“좋은 평 들었으면 좋겠어요. 관객들이 ‘영화 재미있네!’ 해주셨으면 좋겠고요.”

여유로운 표정의 이정재가 ‘그렇게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어도 개봉을 앞둔 심정은 늘 긴장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브라더’라는 외침과 함께 468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신세계>의 두 주역, 이정재와 황정민이 7년 만에 재회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이런 이정재의 너스레가 무색하게 개봉 직후부터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배우가 만드는 추격전은 스토리와 재미 그리고 스타일리시함까지 모두 잡았다. 관객들은 ‘역시!’라는 환호로 작품에 응답하고 있다.

영화에는 ‘멈출 수 없는 두 남자의 추격전’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청부살인업자인 인남을 레이가 끈질기고 무자비하게 추격한다. 이정재가 맡은 역은 한국, 일본, 태국을 넘나들며 지독하리만치 인남을 쫓아다니는 추격자 레이다. 그에게 쫓기는 인남 역을 맡은 황정민은 “의상부터 스타일까지 모든 부분을 치열하게 분석하며 레이 그 자체로 탄생했다”고 이정재를 극찬했다. 관객들 역시 그런 레이를 두고 한국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캐릭터라는 반응이다. ‘캐릭터 사냥꾼’이라는 수식이 있을 정도로 새로운 캐릭터 작업에 매력을 느끼는 이정재의 선택은 이번에도 옳았다.

레이의 어떤 점이 ‘캐릭터 사냥꾼’ 이정재를 끌었나.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독특한 캐릭터로 내가 잘 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어떻게 해보겠다는 아이디어가 번뜻 떠오르지 않았지만 묘한 독특함을 잘 활용해서 구현해내면 좀 더 새로운 게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번에는 이 캐릭터가 어디까지 가야 하나, 캐릭터 잡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시나리오에서도 레이는 스타일리시하고 화려한 인물이었나? 독특함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했다. 이렇게 맹목적으로 추격을 하는 데는 과연 복수심만 있어서일까 생각했는데 왠지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좀 더 묘한 캐릭터로 만들어서 관객들에게 ‘쟤는 좀 저럴 것 같아’라는 믿음을 주고 싶었다. 시각적인 것에서 믿음을 확실하게 드려야겠구나 생각해서 첫 등장의 비주얼이라고 할 수 있는 타투나 의상에서 많이 고민했다. 첫 미팅 때 나름대로 생각했던 이미지들을 usb에 담아 보여드렸더니 많이 놀라시더라.

타투가 압권이다. 여러 버전이 있었다. 좀 더 센 타투를 하고 싶었는데, 내 표정보다 타투에 시선이 간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줄였다.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의 레이 모습이 나왔다. 전체적인 색감도 모노톤의 킬러에서 컬러풀한 킬러로 바뀌었다.

이 스타일리시한 액션이 청불이 아니라 15세 관람가라 놀랍다. 사실 시나리오 받았을 때부터 15세 관람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심의에서 청불 등급을 받았다가 재심 때 15세 관람을 받았는데, 한 커트도 안 바꿨다고 들었다. 영화가 관객들에게 주는 의도나 의미를 잘 설명하셨던 것 같다. 실제로 과도하게 잔인한 장면은 안 찍었다. 인남의 절실함, 레이의 집요함은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표정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관상>의 수양대군 첫 등장신 유명하지 않나. 이번 작품에서도 레이가 등장하고 나서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어떤 영화에서든 자기가 맡았던 캐릭터의 첫 등장과 마지막 장면은 너무도 중요하다. 처음 장면에서는 ‘저 캐릭터가 뭘 하더라도 믿음이 간다’를 보여줘야 하고, 마지막에서는 여운이 남았으면 하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 물론 영화마다 차이는 있다. 어떤 작품은 가볍게 시작해서 점점 커진다. 이번 작품에서는 레이가 등장하면서 또 다른 속도를 가중시킨 면이 있다. 정확하게 시나리오의 속도를 내야 하는 숙제는 잘 푼 것 같다.

반면 퇴장은 조금 아쉽지 않나? 영화 일을 오래하다 보니 개인적인 아쉬움보다는 팀워크를 생각하게 된 지 오래다. 나도 인남의 마지막이 너무 궁금했고, 그것이 정말로 잘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레이는 잘 안 보여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올곧이 인남의 감정으로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하니 그 정도면 해피했던 것 같다. ‘깔끔하게 끝났다’ 정도?(웃음)

황정민과 7년 만의 재회가 화제다. 오랜만에 작업한 소감은? <신세계>의 황정민과 <다만악>의 황정민은 전혀 다른 캐릭터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신세계>에선 자기의 신분을 감춰야만 하는 모습을 보여드렸다면 여기서는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와일드하면서 거침없는 캐릭터를 표현했다. 그때와는 다른 환경에서 연기할 수 있는 조건이라서 재미있게 했다.

질문을 바꿔, 황정민의 새로운 또는 달라진 모습을 발견한 것이 있다면? 이 형이 옷태가 좋구나!(웃음) 표현이 굉장히 깊었던 것 같다. 자칫 잘못하면 신파 아닌 신파처럼 보일 수도 있었는데, 그걸 너무 잘 표현하셨다. 정민이 형의 마지막 장면들이 많이 짠한 것 같다.

액션 연기 힘들지 않았나. 시나리오 상에서 몸으로 하는 액션은 많지 않았고 주로 총격 액션이었다. 그런데 레이가 태국 마피아들과 싸우는 장면이 몸으로 싸우는 장면으로 현장에서 갑자기 바뀌었다. 팔다리를 다 써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갑자기 하려니까 마음같이 잘 안 되더라. 상황이 갑자기 바뀐 것도 있고, 내 몸이 왜 이렇게 생각만큼 안 움직이지 하는 당황스러움도 있었다.(웃음)

시사회 끝나고 평이 좋다. 인터넷 좀 찾아봤나? 보지 않았다. 못 보겠더라. 보통 시간이 좀 지나서, 개봉 끝나갈 때쯤 보는 편이다. 개봉 앞둔 소감은 매번 똑같다. 개봉 전 또는 개봉 막 했을 때의 떨림은 여전하다. 촬영할 때는 생각한 모든 게 표현됐으면 좋겠고, 개봉할 때는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무리 오래 일을 했어도 그 마음은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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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에서 감독으로
영화 안에서 넓어지는 스펙트럼

이정재는 감독 도전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그가 영화 <헌트> 촬영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은 이미 언론을 통해 화제가 됐다. <태양은 없다>에 같이 출연한 동료이자 연예계 대표 절친 정우성을 섭외하고 싶어 러브콜을 보내는 중인데, 아직 결정이 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언제부터 연출을 마음먹었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것은 몇 년 됐다. 8~9년 정도? <도둑들> 때 임달화 선배님이 어떤 때는 연기를 하고 연출도 하고, 친구 영화의 프로듀싱을 해주는데 그게 너무 부러웠다. ‘이 사람은 영화인이구나’ 생각했다. 그때 그런 자극이 꽤 있었다.

배우에서 감독으로, 영화 안에서 스펙트럼을 넓히면서 달라진 지점이 있다면?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아직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을 찍고 있어서, 연출에 대한 생각은 한참 뒤에 하지 않을까 싶다. 내년 되어서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하면 그때 집중해서 봐야 할 게 생기지 않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섣불리 말씀드리기 조심스럽다.

‘절친’ 정우성도 영화를 찍고 있다. 감독 정우성은 어떻게 보나. 촬영 현장에 갔더니 유려하게 연출을 하고 계시더라. 너무 여유 있었다. 찍은 것도 몇 장면 봤는데, 굉장히 잘 찍혔다. 현장에서 호흡 잘 맞춰가면서, 배우로서 큰형 노릇을 하는 것 이상의 연출자로서의 모습을 봤다. ‘이 아저씨(정우성)는 연출을 계속해야겠다’ 생각했다.(웃음)

이정재와 정우성은 실과 바늘이다. 두 사람이 함께 출연한 첫 작품 <태양은 없다>를 다시 찍는다면 어떨 것 같나. 지금 그 캐릭터 하라고 하면 더 잘할 수 있냐? 당연히 더 잘할 수 있겠지만 나는 못한다. 그때의 심리 상태와 에너지로 만든 거라서, 아무리 내가 경험을 많이 했지만, 과거의 캐릭터를 다시 해보겠냐고 하면 그만큼 잘할 수 있을까? 충분히 고민을 많이 해서 최대치를 끌어올린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못할 것 같다. 자신 없다.

요즘 <오징어 게임> 촬영 중이다. 새로운 플랫폼 작업은 기존 영화, 드라마와 어떤 차이가 있던가. 플랫폼이 다른 것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자극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같이 작업하는 황동혁 감독이 놀랍다고 느끼는 중이다. 저 감독은 어떻게 저렇게 변화무쌍하게 찍을 수 있을까. <마이 파더>부터 <남한산성>까지, 어떻게 한 감독이 찍는 영화일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도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감독이었다. 다른 건 똑같다. 8부작짜리다 보니 조금 긴 영화를 찍는 느낌이다.

이정재에게 플랫폼은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역시 나에게는 캐릭터다. 표현해보지 않았던 캐릭터를 보면 흥분감이 있다. 호기심이 생기고,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혼자 상상하다가 실마리를 찾게 된다. 영화든 드라마든 상관없다. 캐릭터만 마음에 들면 된다. 두 시간 안에 끝나는 영화도 중요하지만 에피소드가 몇 개가 되더라도 호흡이 긴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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