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사람이 있다면 주말 저녁 9시 뉴스의 앵커 얼굴을 떠올려보자. 박지원 아나운서는 주말 를 통해 차분하고 이지적인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냉철한 앵커의 이미지를 보이는 그는 사실 KBS의 아나운서실의 발랄한 막내다. 웃을 때 볼에 쏙 파이는 보조개가 매력적인 박지원 아나운서를 서울 여의도 KBS에서 만났다.
박지원 아나운서를 만난 날은 이제 막 더위가 시작되던 초여름이었다. 바람이 잘 들지 않는 KBS 신관 로비에서 만난 박지원 아나운서는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기자를 향해 걸어왔다. 박지원 아나운서와 마주 앉은 날은 뒷목으로 땀이 흘러내릴 정도로 유독 더웠는데 더운 줄 모르고 그와의 대화에 빠져들었던 것은 박지원이란 사람이 주는 특유의 청량함 때문이었다.

박지원 아나운서는 이제 막 방송생활을 시작한 새내기다. 2018년 KBS 공채 45기 아나운서로 입사해 1년간 KBS 대구에서 지역순환 근무를 하고 서울로 올라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가 지역에 있는 동안 46기 아나운서가 입사했지만 서울 지역 KBS 아나운서실에서는 막내를 맡고 있다. 아나운서의 이미지가 찰떡인 그는 국악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학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아나운서가 됐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어렸을 때 막연하게 ‘나도 하고 싶다’, ‘멋있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학창시절에는 무용을 전공했는데 원 없이 무용을 해서 그런지 문득 다른 길이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잠도 못 자고 진로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무용을 할지, 아니면 선생님을 할지, 또 다른 무언가에 도전할지. 제가 잘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접점을 찾으니까 아나운서였어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2년만 준비해보자 마음먹고 시작했는데 2년 안에 합격했어요. 잠 못 자고 고민한 보람이 있었죠.”

아나운서가 되고 나서는 그의 부모님이 가장 기뻐했다. 딸이 방송에 나오는 것만 봐도 신기하고 대견해 하신단다. 아버지는 여전히 “오늘도 수고 많았어” 하며 간단히 격려만 하는 반면 어머니는 딸의 방송을 매번 매의 눈으로 평가한다. “오늘은 머리가 이상하던데?”, “오늘 스타일 너무 좋더라” 하는 식으로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준다. 
 

입사 2년 차 뉴스 앵커 되다

아직 아나운서가 된 지 2년이 되지도 않았는데 그는 이미 <KBS 뉴스 9>의 주말 앵커를 맡고 있다. 이소정 앵커가 공중파에서 최초로 여성 기자 출신 앵커가 됐을 때 그는 오디션도 없이 주말뉴스 앵커에 낙점됐다. 지역순환 근무를 마치고 서울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이다. 보통 뉴스 앵커는 사내에서 오디션을 거쳐 선발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급하게 일이 진행됐기 때문인지 따로 오디션 없이 바로 박지원이 발탁됐다. KBS의 간판 아나운서로 키우려는 뜻이 아니냐고 물으니 요즘은 딱히 그렇지도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요즘은 예전이랑 분위기가 달라서 뉴스를 하고 싶어 하는 아나운서가 많지 않아요. 아무래도 뉴스를 맡게 되면 다른 프로그램을 하는 데 제약이 생기니까요. 뉴스 앵커는 시청자가 기대하는 이미지가 명확하잖아요. 제가 입사한 지 2년도 안 돼서 뉴스 9 앵커를 맡으니까 사람들이 실제 나이보다 더 나이가 많은 줄 아세요. 저 평소에는 발랄한 스물일곱이에요. 뉴스 할 때는 무게감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지만 회사에서는 막내답게 지내고 있답니다. 발랄하다는 말 꼭 넣어주세요.(웃음)”

문득 궁금해졌다. 아나운서실의 막내는 어떻게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지. 선배들의 우편물이 도착하면 전달하고 사무실로 오는 전화를 받는 것은 보통의 직장인들과 비슷했다. 다만 전화의 내용이 조금 다르다. 이곳으로 걸려오는 전화는 발음을 물어보거나 외래식 표기법을 쓰는 것을 항의하는 등 시청자의 민원(?)을 처리해야 하는 전화가 많다. 그래서 아나운서실에서 근무할 때 전화가 걸려오면 휴대폰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 시청자의 질문에 답을 하려면 빠른 검색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도전! 골든벨>도 KBS의 막내 아나운서들이 전담으로 맡는 프로그램이다. 손미나, 김보민, 오정연, 박은영 등 KBS 간판 아나운서들이 활약했던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이 프로그램은 박지원이 대구에서 지역근무를 했을 때부터 인연을 맺었다. 당시 <골든벨> MC를 맡았던 이혜성 아나운서가 출장으로 자리를 비우면서 박지원이 임시 진행을 맡았다. 그때 그를 눈여겨본 제작진이 서울에 올라오면 같이 일하자는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그리고 결혼과 함께 퇴사한 강서은 아나운서의 뒤를 이어 <골든벨> 진행을 맡았다.

“<도전! 골든벨>이 선배들한테 워낙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출장 갈 일도 많고 촬영시간도 9시간씩 되거든요. 그래도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게 신기하고 감사해서 선뜻 하겠다고 했어요. 출연하는 학교가 충청권이나 경기권이면 서울에서 새벽에 출발하는데 그보다 더 멀리 있는 지역은 전날 근처에서 하룻밤 자고 나서 녹화를 시작해요. 덕분에 같이 진행하는 강성규 아나운서랑 추억이 많이 생겼어요.(웃음)”

뉴스 앵커, <도전! 골든벨>의 진행자로 활동하면서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도 생겼다. 어쩌다 한 번씩이지만 그가 아나운서라는 것을 알아볼 때면 신기하다.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로도 ‘잘 보고 있다’, ‘언니 같은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는 말을 들을 때면 고맙고 일하는 보람도 느낀다. 시청자가 보이는 말 한마디, 반응 하나하나가 신기하기만 하다.

1999년 첫 방송을 시작한 <도전! 골든벨>은 최근 방송을 쉬어가기로 결정했다. 대강당에서 학생들을 모아놓고 진행하는 프로그램 특성상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더는 녹화를 진행하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골든벨>이 박지원이 진행한 첫 정규 프로그램인 터라 서운한 마음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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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에 <박지원 토크쇼> 하고 싶어요

코로나19 상황으로 출연 중인 프로그램이 사라지는 안타까운 일은 있었지만 또 새로운 경험도 시작했다. <불후의 명곡>에 아나운서 선배들과 함께 출연하게 된 것이다. 녹화 때마다 소름 돋는 라이브를 선보이는 가수들의 무대를 보면 순간 뉴스 앵커의 이미지를 잊을 만큼 ‘찐 리액션’이 나온다. 얼마 전 <미스터트롯> 출연진이 나온 편에서는 나태주의 퍼포먼스를 보고 턱이 빠지게 놀랐단다. 그는 아나운서가 돼서 좋은 점 중 하나가 이처럼 귀한 장면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라며 웃었다.

<골든벨>의 공백을 채우려면 다른 프로그램을 물색해야 할 터.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없는지 물었더니 “지금은 배우는 단계라 뭐든지 주어지는 대로 다 해보고 싶다”는 모범적인 답을 내놨다.

“요즘 KBS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이 많이 줄었어요. 그러다 보니 저희 아나운서들이 출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이 없어서 아쉬워요.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에는 주7일 근무를 할 만큼 일이 정말 많았다고 하던데 지금은 그 정도로 많진 않아요. 시청자들을 많이 만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한 10년 정도 지나면 제 이름을 건 토크쇼를 하고 싶어요. 타 방송사 프로그램이긴 한데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를 재밌게 봤거든요. 그런 프로그램을 나중에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러려면 제가 더 열심히 해야겠죠.”

주말은 뉴스 준비에 평일에는 녹화와 회사 업무에 여념이 없다가 휴일이면 테니스를 치러 간다. 아나운서가 보이는 직업이라 보니 관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래서 필라테스를 하고 있지만 활동적인 운동이 하고 싶어서 테니스를 시작했다.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코트에 나가지 못하고 있지만 연습만은 열심히 하고 있다. 얼마 전 코치에게 칭찬을 받았다며 기자에게 자랑하듯 말하는 모습이 그의 말마따나 발랄한 스물일곱이었다. 그럼 보통의 스물일곱처럼 좋은 만남도 하고 있냐고 물으니 “남자친구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죠”라고 답했다. 연애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이상형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배울 점이 많고 어른스러운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외모요? 외적인 이상형은 배우 조인성이에요. 오늘 어떤 선배가 강동원 씨 인터뷰를 가는데 같이 가자고 했는데 강동원 씨가 아니라 조인성 씨였으면 아마 열일 제쳐두고 갔을 거예요. 꼭 한 번 봤으면 좋겠어요.(웃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방 그를 보내줘야 할 시간이 됐다. 예정에 없던 라디오 뉴스 진행이 급하게 잡혔단다. 막내들의 업무가 이렇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생긴 공백을 메우고 궂은일은 나서서 해야 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그는 조금씩 베테랑 아나운서의 길로 들어선다. <박지원 토크쇼>가 방송될 10년 뒤, 그가 어떤 아나운서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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