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햇살 가득한 주말 오후의 미술관. 구혜선이 새하얗게 웃으며 걸어 들어왔다. 지난해 안재현과의 이혼 공방으로 떠들썩한 시간을 보낸 그는 다시 본인의 찬찬한 호흡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림을 그렸고, 짧게 어학연수도 다녀왔으며,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학업에도 복귀했다.
구혜선을 만난 곳은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진산갤러리다.

<항해-다시 또 다시>라는 제목이 붙은 그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아기자기하고 소담한 공간이다. 구혜선이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그렸다는 그림들에는 환하고 밝은 기운이 감돌았다. 아기자기하게 표현된 물고기들은 자유로워 보였고, 투명한 파란색에서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졌다.

오랜만에 인터뷰에 나선 구혜선의 모습도 그림과 다르지 않았다. 작년 8월 안재현과 뜨거운 이혼 공방을 벌인 이후 많은 변화를 경험해온 그는 많이 달라졌다. 이혼 공방이 이어졌지만 많이 생각했고, 영국 런던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으며, 그림을 그리고 학교에도 복귀했다. 그러는 사이 폭풍 같았던 감정들도 차분히 가라앉았다.
 

잘 지냈어요? 얼굴이 화사해졌어요. 그런 말은 언제 들어도 좋은 것 같아요.(웃음) 살을 많이 뺐어요. 얼마 전에 SNS에 8㎏이 빠졌다고 올렸는데, 거기서 더 빠져서 지금은 11㎏을 뺐어요. 나는 똑같은 나라고 생각하고 건강미가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옷이 안 맞고 수면 무호흡증이 심해져서 치료 차원에서 체중 감량을 했어요. 몇 년 동안 안 뺐었는데, 어머니랑 같이 지내면서 (살 빼라는) 잔소리와 등살에 못 이겨서.(웃음)

그사이 많은 일이 있었네요. 먼저, 런던은 어땠어요? 정말 바람만 불더라고요.(웃음) 내가 때를 잘못 맞춰 왔나 했는데, 거긴 원래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처음 가본 곳이에요. 학교 집중 코스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만 했어요. 길 익히고, 전철이나 기차 타는 거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한참 헤매고요. 본능적으로 깨닫고 나서는 내 집처럼 왔다 갔다 했어요. 집에서는 예습복습 하고 학교 가서 다시 공부하고, 내일 뭐 먹을까 생각하고요.

그렇게 혼자서 멀리, 장시간 떠나본 건 처음이죠? 공부하러 간 건 처음이에요. 사실 두 달이 긴 시간은 아닌데, 일상에서 이탈한 기분은 들더라고요. 거기 갔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변화를 경험한 거예요. 제가 몰입하고 공부하는 걸 좋아해서, 그렇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이 감사했어요.

오랜만에 하는 학교생활은 어때요? 신입생들이랑 열일곱 살 차이가 나요.(웃음) 온라인으로 강의를 듣고 있어요. 발표도 각자 준비해서 하고 실시간으로 찬반토론을 해요. ‘와 장난 아니다. 친구들 대단하다’ 생각해요. 저희 어머니가 잔소리가 많으신 분인데 공부할 때는 잔소리를 안 하세요.(웃음)

최근 SNS를 보니 편안함이 느껴졌어요. 과거 사진도 꽤 있던데 이유가 있나요? 지금이라서 그렇다기보다는 원래 한 번씩 과거 여행을 해요. 스무 살 때는 10대를 돌아보며 ‘내가 저때 저랬는데’, 스물다섯 살에는 스무 살을 보면서 ‘그때 참 어렸다’ 하고요. 지금 보면 또 그때가 너무 어리고요. 그런 시간을 한 번씩 갖게 돼요. 어릴 때는 먹고사느라 바빴어요. 어릴 때는 성공하고 싶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지금도 물론 그것도 중요한데 그보다는 내가 어떻게 늙어가는 게 더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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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현과의 이혼 공방은…
소속사와도 결별 수순 밟는 중

폭로전으로 이어진 구혜선과 안재현의 이혼을 둘러싼 공방은 요란하고 피로했다. 소속사 없이 혼자 맞섰던 구혜선에게도, 그것을 지켜보는 팬들에게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두 사람의 이혼 공방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고,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이혼 이야기를 안 꺼낼 수 없어요. 인터뷰 앞두고 언니랑 통화를 했어요. “이혼 관련 질문을 하시면 어떻게 대답할까?” 하고 물어봤더니 “그게 중요할까? 궁금하실 수는 있는데, 그렇다고 되게 궁금한 일은 또 아닐 텐데” 하더라고요.(웃음) 굳이 옛날 일을 꺼내서 내가 이랬다저랬다 말하는 게 너무 어쭙잖을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우리에겐 심각한 문제지만 그러기엔 너무 사회적인 고민들도 많은 시기잖아요.

이혼 소송은 어떻게 진행 중인가요. 정리 쪽으로 가고 있어요.

합의가 됐나요? 아니면 작년 상황 그대로, 여전히 평행선인가요? 합의라기보다는 답이 나와 있어요. 답은 정해져 있고, 저는 가만히 기다리는 거죠. 때가 되면 결론이 나오겠죠. 지금은 움직일 필요도 없는 상황이에요. 그 문제는 제 선에서 떠난 얘기라서, 저는 제 할 일 하고 열심히 살면 될 것 같아요.

안재현 씨와 같은 소속사라 상황이 애매했어요. 소속사와의 관계는 정리가 됐나요? 정리가 될 거예요. 사실 이번 주에 되기로 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늦어졌어요. 법원에서 처리 일정이 늦어졌거든요. 서로 합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환경도 같이 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답은 정해져 있었죠. 계약한 기간이 2개월밖에 안 돼요. 어떻게 보면 저도 피해자지만 소속사도 피해자일 수 있잖아요. 그런 쪽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게 생각 안 하면 화가 나니까요.

이젠 화가 안 나나요. 화 많이 냈잖아요.(웃음)그렇게 화낸 적은 처음이었어요. 중학교 때나 친구들이랑 쌈박질을 했지, 모든 싸움은 손해라는 걸 알 만한 나이임에도 화를 냈으니까요. 이번에 ‘아직 화가 살아 있네? 난 내가 화 못 내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성깔 있네? 그래 난 성깔 있었어’ 혼자 생각했죠.

초연함이 느껴지는데요. 지금은 사실 많이 무감각해요. 지난 일들에 대해서, 자꾸만 원초적인 것에 집중하다 보면 사람이 가라앉아요. 내가 어떤 걸 성찰하려고 스스로 꿰뚫어 보거나 누군가를 관찰하면 나도 모르게 깊은 구덩이에 빠져요. 그러면 염세적인 생각밖에 들지 않고요.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시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탁, 깨어 나왔어요.

어떻게요? 충격 요법으로요. 뭔가 충격적인 일을 겪고 나서 깨어났어요. 나를 감싸고 있던 두꺼운 장벽에서 탁. 그것이 무엇인지는 진심으로 언급하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거든요. 진짜 싫은 거죠. 내 인생 낭비하고 싶지 않고. 이미 후회한 것은 다 지났으니 앞으로의 것들만 생각해야죠.

아직 시간이 많이 흐른 건 아닌데, 빨리 털고 일어났네요. 안 그러면 제 손해잖아요. 사실 정확한 결론이 저에게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나에게 의미가 있었다면 중요했을 텐데,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럴 가치는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믿고 있어요. 제가 공부를 막 했잖아요.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면서 (이혼 관련 이야기는) 입 밖에도 안 꺼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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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든든한 가족이라는 울타리

함께 <미스터트롯> 보면서 보낸 힐링의 시간

구혜선은 원래 살던 곳에서 지내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어머니가 자주 집을 오가는 것.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새삼 느꼈다고 한다. 여섯 살 조카와 보내는 시간이, 가족들과 함께 TV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힘든 시간에서 벗어나는 힘이 됐다. 그는 요즘 <미스터트롯>에 푹 빠져 지낸다.

요즘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지내세요? 어머니와 같이 지내시나요? 같이 지내는 건 아니고, 자주 왔다 갔다 하면서 가깝게 지내요. 저는 원래 살던 곳에 살고요. 워낙 가족들과 같이 잘 지내요. 여섯 살 조카와 보내는 시간도 좋아요. 서로 “내 엄마야”, “내 할머니야” 하면서 싸울 때도 있는데 또 진지한 이야기할 때는 잘 통하는 사이예요.

<미스터트롯>을 즐겨 보신다고요? 이런 이야기 하면 푼수 같을 수 있는데.(웃음) 제 망각에 도움이 된 게 <미스터트롯>이에요. 모든 방송을 다 봤고, 86번 채널에서 해주는 재방송은 100번도 넘게 본 것 같아요. 엄마랑 “오늘 누구 뽑힌 거 봤어?”, “그 노래 들었어?” 하고 통화를 하고 동영상을 공유해요. 요즘은 <사랑의 콜센타>에 전화하고 있어요. 실제로 전화가 연결되면 어떤 말을 할지 서로 이야기하고 그래요. 누구에게 어떤 노래를 불러달라고 할지도 준비하고 계시고요.(웃음) 휴대폰 메모장에 홈페이지 주소 적어두고 엄마가 이야기할 때마다 확인해서 알려줘요. <라디오스타>나 <비디오스타> 나올 때 스케줄을 확인하고요.

‘찐’ 팬이시네요. 엄마랑 저랑 모든 화제가 <미스터트롯>이었어요. 아빠가 경북에 계신데, 시간 되면 TV 보시라고 전화해드려요. 요즘 제 삶의 엔도르핀이에요. 샤워하다가 나도 모르게 트로트를 흥얼거리고 있어요.(웃음) 사실 여러 가지 상황들 때문에 분위기가 좋지 않았는데, <미스터트롯> 덕분에 가족이 화목해졌어요. 부모님과 음악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걸 느껴서 좋았어요.

작년과 올해 구혜선에게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일련의 시간들을 보내면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요? 성숙 혹은 변화,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요. 저라는 사람은 변한 게 없어요. 내가 잠깐 화가 났었고, 내 식대로 풀었고, 또 내 식대로 살아가고 있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 같고요. 그냥 인간에 대해서,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저를 통해서 하게 됐어요. 저는 스스로 ‘나는 이렇다’라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는 절대 이러지 않아’라는 기준이 확실히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인간에 대한 이해? 이런 것도 조금 더, 저를 통해 확인한 것도 있고요.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짐도 많이 하게 되고요.

배우로서의 행보가 멈췄어요. 그 부분에 대한 고민도 하시나요. 하죠. 근데 좀… 버티는 시간인 것 같아요. 이제 내가 어리지 않고 사고방식도 많이 변했고요. 극단적인 예인데 드라마에서 며느리 역할을 강조하면 저는 연기가 힘들어요. 할 수는 있겠는데 ‘그게 왜?’라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드니까요. 나의 생각은 그렇지만 그게 보편적인 우리 사회라는 걸 깨달을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한 것 같아요. 연기는 저를 버려야 하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약간 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개인적인 일로 알려진 것도 있고 그러니까요.

구혜선에게 맞는 옷은 뭘까요. 제가 하이틴은 아니니까.(웃음) 그렇다고 유부녀 느낌도 아닌 거예요. 그런 식으로 나의 장단점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어요. 현재로서는 약간 분명치 않다는 생각도 들고, 고민을 많이 하고 있죠. 생활형 배우가 되어보자라는 마음도 있는데, 스스로 캐릭터가 너무 강한 것 같다는 생각이 있어요. 나쁘게 말해서 좀 튄다는 느낌.

스스로를 지나칠 정도로 객관화하시네요. 좀 그런 경향도 있어요. 냉정하게 저를 보면서 때가 되면 나에게 잘 맞는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림, 음악, 영화 등등 다방면에서 활약했어요. 결국 구혜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공부하고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너무 나한테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이러다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해서요. 지금보다 좀 더 이타적인 사람, 사회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응원하는 팬들도 많지만 오해하는 분들도 많아요. 해명하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오해는 시간이 지나면 풀릴 거라고 생각해요. 다 지나가겠죠. 솔직히 말해서, (이혼 공방이) 저한테나 중요한 일이지 대중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잖아요. 제 입장에서 “이런 거 억울했고, 이런 거 보여드리고 싶었는데”라고 말해도 과연 대중들이 저한테 관심이 있을까요. 사회적으로 크게 어려운 일도 있었는데. ‘우리 살기도 바쁜데, 쟤 왜 저래?’ 하실 것 같아요.(웃음)

인터뷰 내내 화살을 본인에게 돌리네요. 한번 남한테 돌려봤잖아요.(웃음) 이러나저러나, 결과는 똑같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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