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폴 상습 투약 혐의로 재판장에 선 재벌 2세는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그에겐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병원 치료와 운동으로 반드시 극복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8월 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정종건 판사 심리로 열린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 혐의 결심 공판. 채승석 전 애경개발 대표이사는 재판정 가운데서 선처를 호소했다. 채 전 대표는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로 1994년 애경그룹에 입사한 뒤 그룹계열 광고회사 애드벤처 차장과 애경개발 전무를 거쳐, 2005년 애경개발 대표로 부임했다. 프로포폴 투약과 관련해 수사를 받게 되자 2019년 11월 사의를 표명했다.
채 전 대표는 2017년 9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강남 성형외과에서 103차례에 걸쳐 치료 외 목적으로 프로포폴을 투약하고, 지인들의 인적 사항을 병원 측에 건네 투약 내용을 거짓 작성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수사 단계부터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이날 공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채 전 대표는 피고인 신문 과정 중 변호인 측 질문에 일관되게 답했다. 
“애경개발에서 경영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업무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아 오랫동안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렸습니까?”
“네.”
“그런 상황에서 프로포폴을 반복적으로 투약 받으며 자신도 모르게 의존하게 됐습니까?”
“네.”
 
 
어두운 색 정장 차림, 야윈 얼굴
채 전 대표는 재판 시작 10분 전쯤 변호인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이례적인 풍경이 눈에 띄었다. 검사가 채 전 대표와 변호인을 법정 앞 복도에서 마주치자 서로 꽤 ‘깍듯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채 전 대표는 차분한 회색빛 정장 차림에 안경과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지난 6월 2일, 그가 프로포폴을 맞았다는 병원의 원장 김 모 씨와 간호조무사 신 모 씨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자신의 투약 사실을 밝혔을 때보다 야윈 모습이었다. 아이로니컬하지만, 안정된 느낌의 표정도 얼핏 비쳤다. “(채 전 대표가) 더 늦기 전에 범행이 발각돼 차라리 다행이라는 심정을 토로했다”고 변호인이 설명했다.

변호인은 “채승석 씨는 프로포폴에 의존하는 삶이 얼마나 위험한지, 프로포폴을 왜 금지하는지 알게 됐다. 지난 잘못이 자신의 나약함에서 비롯됐다고 스스로 책망하면서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동안 채 씨는 걷기, 자전거 타기 등 운동과 상담치료, 약물치료로 (프로포폴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현재 금단 증상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변호인은 채 전 대표가 회사와 주주들의 손해를 걱정해 자발적으로 애경개발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는 점, 현재 부정맥 등 질환을 앓고 있어 병원에서 정기적인 치료를 받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편 검찰은 채 전 대표에게 징역 1년 6개월과 추징금 4,532만 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동종 전과가 있음에도 재범한 사정, 범행 기간과 횟수가 적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죄질이 좋지 않다”고 실형의 필요성을 짚었다. 다만 “수사 초기부터 자백하고 본인 다이어리와 휴대전화를 적극 제출하는 등 수사에 성실히 임한 점, 해당 의원이 운영될 수 없도록 원장과 실장의 구속에 크게 기여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또 검찰은 “유흥업소 여직원 등만 피부 미용을 하며 프로포폴을 즐기는 게 아니라 재벌 남성도 프로포폴에 중독될 수 있다는 점 등 오남용의 위험을 알린 점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향후 회사 복귀?
“그건 아직…”

채 전 대표는 2014년 햇빛 알레르기 치료 목적으로 해당 병원을 처음 방문한 뒤 반복적으로 프로포폴을 투약하면서 중독까지 이른 것으로 확인됐다. 10회 투약 패키지에 450만 원가량을 지불했다. 어떤 점이 좋아 프로포폴을 계속 투약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정신이 몽롱해지고 한두 시간 편히 쉴 수 있어서 좋았다”고 답변한 바 있다.

프로포폴은 정맥에 투여하는 수면마취제로 국내에선 2011년 마약류로 지정됐다. 수면내시경이나 간단한 시술, 성형수술을 진행할 때 주로 쓰인다. 호스를 통하거나 링거에 섞어 정맥에만 투여하면 돼 주사 방식이 간단하다. 여느 마취제보다 마취 유도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고 회복이 빨라 정상적인 목적으로 투여할 경우 환자와 의사 모두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일부 사람은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환각 효과를 착각할 만큼 개운함을 느끼는데, 이것에 집착하면 중독으로 이어진다. 채 전 대표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저도 사람이라 구속이 무서웠는데 그것 때문에 자수한 것은 아니고, 솔직히 오랫동안 다른 병원에서도 프로포폴을 맞아서 이런 날이 올 거라고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6월 2일 병원장 김 모 씨와 간호조무사 신 모 씨의 공판에서 채 전 대표가 했던 말이다.

그는 프로포폴 투약의 그릇됨을 충분히 알면서도 빠져나오지 못했었다. 마침내 프로포폴에서 벗어난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재판장을 빠르게 나서는 채 전 대표를 잠시 붙잡았다. 앞만 보고 걷던 그가 세 번의 부름 뒤에야 고개를 돌렸다.

“현재 건강 상태는 괜찮은가”,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 “더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가벼운 미소로만 답했다. 마지막으로 회사 복귀 의사를 묻자, 그는 “그건 아직…”이라며 변호인들과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채 전 대표에 대한 1심 선고 결과는 9월 10일에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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